신이 점지해준 왕
타르퀴니우스 왕은 로마에 중요한 성과를 적지 않게 남겼다. 그는 38년 동안이나 왕 자리를 지킨 끝에 갑자기 살해당했다. 그는 이제 겨우 젖먹이인 손자 둘과 이미 결혼한 딸 둘을 남겼다. 사위인 세르비우스 툴리우스가 왕 자리를 물려받았다. 그때는 BC 576년이었다.
이제 툴리우스 이야기를 할 때다. 그의 부모는 누구였으며, 왕이 되기 전 일개 시민이었을 때 어떤 행동을 보였는지를 살펴보자. 그의 가족 내력에 대해 내가 가장 동의하는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라틴 도시인 코니쿨룸에 툴리우스라는 왕족이 살고 있었다. 그는 미모와 덕성 등에서 코니쿨룸의 어떤 여인보다 뛰어난 오크리시아와 결혼했다. 코니쿨룸이 로마에 정복당했을 때 툴리우스는 전투를 하다 목숨을 잃었다. 오크리시아는 당시 임신 중이었는데 노예가 돼 로마로 끌려왔다. 타르퀴니우스는 그녀를 아내 타나퀼에게 선물로 주었다.
타나퀼은 오크리시아의 사정을 듣고는 바로 자유인으로 풀어주었다. 다른 어떤 여인보다도 친절하고 명예롭게 대했다. 오크리시아가 아직 노예였을 때 아들을 낳았다. 그녀는 아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툴리우스라는 이름을 주었다.성은 세르비우스라고 지었다. 아들을 낳을 때에는 노예였기 때문이었다. 그리스어로 세르비우스는 ‘굴종한다’ ‘복종한다’는 뜻이다.
툴리우스의 출생을 다르게 다룬 역사도 있다. 약간 우화적으로 처리한 내용이다.
로마인이 다양한 공물을 바치고 모든 음식 중에서 첫 부분을 바치는 궁전의 신성한 화로가 있었다. 화로의 불 위로 남자 성기 모양이 나타났다. 오크리시아가 화로에 떡을 바치러 가다 가장 먼저 발견했다. 그는 즉시 왕과 왕비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타르퀴니우스는 이야기를 듣고 신기한 현상을 보러 갔다. 그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모든 일에 지혜로우며 특히 점술과 관련해서는 에트루리아의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타나퀼은 왕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이것은 신의 뜻입니다. 왕의 화로가 어떤 인간보다 뛰어난 자손을 점지해준다는 겁니다. 그 아이는 화로에 나타난 영혼 덕분에 임신한 여성에게서 태어날 겁니다.”
타르퀴니우스가 데려온 다른 점술사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왕은 놀라운 현상을 가장 먼저 본 오크리시아가 영혼과 관계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오크리시아를 신부처럼 꾸민 뒤 기적이 발견된 방에 혼자 가두었다. 신 또는 정령은, 그것이 불카누스인지 아니면 가정의 수호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오크리시아와 관계를 가졌다. 그녀는 곧 임신했고 열 달 뒤 툴리우스를 낳았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는 신뢰성이 꽤 떨어진다. 비슷한 다른 이야기도 있다.
어린 툴리우스는 어느 날 정오 무렵 궁전의 열주 회랑에서 앉아 잠이 들었다. 그때 그의 머리에서 불꽃이 피어올랐다. 오크리시아와 타나퀼이 열주 회랑을 걸어가다가 이 모습을 보았다. 그들을 따라 가던 노예들도 이 놀라운 장면을 목격했다. 불꽃은 그의 머리를 완전히 태울 것처럼 타올랐다. 오크리시아가 달려가 아들을 깨우자 불꽃은 사라졌다.
툴리우스가 왕 자리에 오르기 전에 한 행동 중에 기억할 만한 것은 여러 가지가 있다. 타르퀴니우스가 칭찬했고 로마인이 나중에 그를 왕으로 뽑은 이유가 될 만한 일이었다.
툴리우스는 아직 소년이었을 때 기병대에서 복무하고 있다. 그는 타르퀴니우스가 에트루리아를 상대로 시작한 전쟁에 참여했다. 툴리우스는 정말 훌륭하게 싸워 곧바로 유명해졌고 누구보다 먼저 용맹상을 받았다. 나중에 에트루리아를 상대로 한 전쟁이 터져 에레툼 근처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을 때 그는 누구보다 용감하게 싸웠다. 이번에도 왕에게서 가장 용감하다는 칭찬을 들으며 풀잎관을 선물 받았다.
툴리우스는 스무 살 때 라틴 도시들이 파견한 지원병을 지휘하는 일을 맡았았다. 타르퀴니우스가 에트루리아를 눌러 패권을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비니 족과의 첫 전쟁에서는 기병대장을 맡았다. 그는 적을 도망가게 만들었고, 안템나이까지 쫓아갔다. 그리고 다시 용맹상을 수상했다.
툴리우스는 사비니 족을 상대로 한 다른 전쟁에도 여러 차례 참가해 기병과 보병을 지휘했다. 그는 늘 가장 용감한 전투력을 자랑했고, 어느 누구보다 먼저 풀잎관을 머리에 썼다. 사비니 족이 마침내 항복해서 도시를 로마에 바치러 왔을 때 타르퀴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툴리우스는 이번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툴리우스는 공공 업무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계획을 설명하는 능력도 누구보다 탁월했다. 그는 미래의 어떤 상황을 만나도, 어떤 사람을 만나도 대처할 수 있게끔 미리 준비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다.
이런 성과 덕분에 로마인은 투표를 실시해 그를 평민에서 귀족으로 승격시켜 주었다. 타르퀴니우스도 왕이 되기 전에 이런 영광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누마 폼필리우스가 똑같은 영광을 차지한 바 있었다.
타르퀴니우스는 툴리우스를 사위로 삼았다. 그에게 두 딸 중 하나를 준 것이었다. 왕은 질병과 나이 때문에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게 되자 툴리우스에게 왕족의 개인적인 일뿐만 아니라 국가의 공적인 일까지 모두 처리하게 맡겼다.
모든 경우에 툴리우스는 충실했고 공정했다. 사람들은 공적인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능력에 있어서 타르퀴니우스와 툴리우스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다.
툴리우스는 원래부터 통치할 능력을 타고난데다 행운의 여신 덕분에 통치권을 얻을 기회를 잡게 됐다.
타르퀴니우스가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두 아들 때문에 목숨을 잃자 툴리우스는 일의 진행 과정으로 볼 때 그가 왕 자리에 오를 것이라고 믿었다. 게다가 행동하는 성격이었기 때문에 기회가 손아귀에서 미끄러지는 것을 두고 보지 않았다.
툴리우스가 최고 권력을 장악해서 행운의 주인공이 되도록 도운 사람은 타나퀼이었다. 그녀가 툴리우스를 도운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먼저 툴리우스는 사위였다. 또 그녀는 이전부터 본 많은 신탁 때문에 툴리우스가 왕 자리에 오르는 게 운명이라고 믿었다.
나타퀼의 아들은 아버지가 죽기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두 아들을 남겨두었다. 타나퀼은 안쿠스 마르키우스의 두 아들이 왕 자리를 차지할 경우 그녀의 손자들을 해치고 모든 왕족을 추방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타나퀼은 궁전 문을 모두 닫고, 모든 경비병은 아무도 궁 안에 들어오거나 밖에 나가지 못하게 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모든 사람에게 죽기 직전의 타르퀴니우스가 누워 있는 방에서 나가게 했다.
타나퀼은 유모에게 손자들을 다른 방에 데려가라고 한 뒤 방에 남아 있던 툴리우스와 딸, 오크리시아에게 이렇게 말했다.
“툴리우스! 왕은 이 방에서 당신을 가르치고 훈련시켰지요. 친구나 친척 누구보다 당신을 더 우대했지요. 그리고는 이 방에서 최후를 맞았요. 그는 불경한 범죄의 희생자랍니다.
왕은 개인적 일을 처리하기 위한 유언을 남기거나 나라의 공적 업무에 대한 명령도 남기지 않았어요. 우리 중의 어느 누구도 포옹하지도 않았고 마지막 작별인사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지요.
이 불쌍한 아이들은 곤궁해질 뿐만 아니라 목숨까지 위태롭게 됐답니다. 권력이 왕의 암살자인 마르키우스 가문의 손에 넘어가면 가장 무자비한 방법으로 이 아이들은 목숨을 잃겠지요. 심지어 여기 있는 툴리우스, 왕이 딸을 준 당신의 목숨도 안전하지 못할 거예요. 또 왕의 친구들과 친척, 불쌍한 우리 여인들도 사정은 다르지 않지요.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사악한 왕의 암살자들이나 적이 권력을 잡도록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 속임수와 책략으로 그들을 막아야 해요. 지금은 그런 수단이 필요할 때예요.
필요하다면 모든 방법과 무력을 동원해 그들에게 노골적으로 맞서야 해요. 하지만 적당한 조치를 취하기만 한다면 무력은 필요 없을 거예요.
그러면 적당한 조치가 무엇일까요? 무엇보다 왕의 죽음을 숨겨야 해요. 시민들 사이에 소문을 퍼뜨려야 해요. 왕은 치명적 상처를 입지 않았다고요. 의사들이 이렇게 거짓말을 하게 만들어야 해요. 며칠 뒤에는 왕을 다시 보게 될 거라고. 그러면 내가 시민들 앞에 나서 이렇게 발표하는 거예요.
‘왕은 회복될 때까지 사위 둘 중 하나에게 개인적 일은 물론 공공의 일을 맡겼다.’
로마인은 실망하기는커녕 당신이 나라를 다스린다는 사실에 더 기뻐할 거예요. 이미 과거에 나라를 잘 다스린 경험이 있다는 걸 잘 아니까요.
왕이 살아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적들의 힘은 빠지게 돼 있지요. 모든 위험 요소를 모두 제거하고 나면 당신은 군사력을 장악하고, 왕을 암살한 사람들을 시민들 앞에 세워 재판을 받게 하는 거예요. 먼저 마르키우스의 두 아들부터 시작하세요. 모든 적에게 사형 선고를 내려야 해요. 아니면 영구추방 및 재산 몰수 선고를 내리세요.
그리고 당신의 정부를 천천히 세우는 겁니다. 친절로 시민들의 호의를 사세요. 어떤 부정한 일도 저지르지 않도록 매우 조심하세요. 후한 선물로 가난한 시민들의 마음을 얻어야 해요. 나중에 적당한 때에 왕이 죽었다고 선언하는 거예요. 이어 성대한 장례식을 거행하는 거예요.
툴리우스, 당신은 우리 부부 손에 자라고 교육받았어요. 아들이 부모로부터 받을 모든 장점을 다 받았지요. 그리고 우리 딸과 결혼했고요. 이제 로마 왕이 되는 거예요.
이 어린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은 자상함을 보여주기를 바라요. 당신이 이 자리에 오르도록 내가 도와줬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자라서 공공 업무를 할 능력이 되면 그 중 큰 아이를 로마의 지도자로 선출하기를 기대한답니다.”
타나퀼은 말을 마친 뒤 두 손자를 사위와 딸의 품으로 밀어 넣었다. 두 사람에게서 두 아이에게 연민이 생기도록 했다. 타나퀼은 방에서 나가 시종들에게 지시했다.
“왕의 부상을 치료할 준비가 됐으니 의사를 부르도록 해라.”
밤이 지나고 다음 날 수많은 사람이 궁전 앞으로 몰렸다. 타나퀼은 길 쪽으로 난 창문 앞에 갔다. 그녀는 왕을 암살하려 한 청년들이 누구인지를 공표했다. 그들에게 암살을 사주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밝혔다. 시민들은 비극을 한탄하며 공모자들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이 자들은 사악한 음모를 꾸몄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왕을 죽이지 못했습니다.”
타나퀼의 이야기를 들은 시민들은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왕은 다 나을 때까지 툴리우스에게 사적이든 공적이든 모든 일을 처리하도록 맡겼습니다.”
사람들은 매우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왕이 치명적 부상을 입지 않았다고 믿었다. 오랫동안 로마의 여론은 그렇게 돌아갔다. 툴리우스는 왕의 릭토르를 대동하고 다른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포로 로마노로 갔다.
“마르키우스 가문 사람들은 모습을 나타내도록 하시오. 여기서 왕 암살 시도에 대한 재판을 열도록 하겠소.”
하지만 마르키우스의 두 아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한참이나 기다리던 툴리우스는 이렇게 선언했다.
“마르키우스의 아들들에게 영구 추방 형벌을 선고합니다. 그들의 재산은 모두 몰수해 국고에 귀속시키겠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