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비우스와 여러 역사학자는 타르퀴니우스가 남긴 아이들이 그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나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왜 이 아이들을 그의 손자들이라고 주장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려고 한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리분별을 할 수 있는 나이일 때 이삿짐을 꾸려 에트루리아를 떠났다. 그는 공직 활동에 참여하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고 알려져 있다. 행정관이 돼서 공적 업무를 처리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에트루리아에서는 어떤 공직도 맡을 수 없었기 때문에 에트루리아를 떠났다.
타르퀴니우스가 에트루리아를 떠날 때 최소한 30대였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 법으로는 행정관이 돼서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데 필요한 나이가 그 정도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보다 다섯 살 정도 젊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이사할 때 25세 정도였을 것이다. 모든 로마 역사학자는 그가 에트루리아 출신의 아내를 데리고 떠났다는 것에 동의한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 결혼한 여인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안쿠스 마르키우스 통치 첫 해에 로마로 갔다. 이것은 겔리우스의 주장이다. 하지만 리키니우스는 통치 8년째였다고 주장한다. 어쨌든 그는 그 이전에 온 것은 아니다. 안쿠스 통치 9년째 되던 해에 그는 왕의 명령을 받고 기병대를 이끌어 라틴 도시와의 전쟁에 참전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가 로마에 갔을 때 스물다섯 살 이상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24년 동안 왕 자리에 있었던 안쿠스 통치 8년째에 그의 친구로 받아들여졌다면, 그리고 38년 동안 통치했다면 그는 죽었을 때 80대였을 것이다.
많은 역사학자의 추정대로 타나퀼이 다섯 살 젊었다면 타르퀴니우스가 죽었을 때 그녀의 나이는 일흔다섯 정도였을 것이다. 그녀가 50대에 두 번째 아들을 임신했다면(더 많은 나이에는 여자들이 아이를 임신할 수 없다. 50대는 출산 한계다) 이 아들은 타르퀴니우스 사망 시점에 스물다섯 살 안팎이었을 것이다. 큰 아들 루키우스는 스물일곱 안팎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타르퀴니우스가 낳은 두 아들은 유아일 수가 없다.
타르퀴니우스가 암살됐을 때 두 아들이 성인이었다면 타나퀼이 남편의 유산인 왕 자리를 두 아들에게서 빼앗아 노예 여인의 아들이며 외부인에게 넘겨줄 만큼 정신이 없는 여인이었을 리가 없다. 또 인생의 절정기였던 두 아들이 아버지의 왕 자리를 빼앗겼을 때 그렇게 비굴하고 느릿한 태도로 부당한 처사를 견뎠을 리도 만무하다.
이 모든 게 사실이라면 툴리우스는 출생에서 그 둘보다 장점을 갖고 있지 않았다. 둘보다 겨우 세 살 많았기 때문에 나이에서도 유리한 게 없었다. 그래서 두 아들이 왕 자리를 그에게 기꺼이 물려줬을 리가 없다.
툴리우스는 타르퀴니우스 사후 왕국을 물려받아 44년간 다스렸다. 툴리우스가 왕 자리에 올랐을 때 타르퀴니우스의 장남이 스물일곱 살이었다면 그가 툴리우스를 죽였을 때에는 일흔을 넘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일부 역사학자가 전하는 전승에 따르면 그때 타르퀴니우스의 장남은 왕 자리에 올랐을 때 인생의 황금기였다. 그는 원로원에서 툴리우스를 끌어내 계단 아래로 던져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왕 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이 일로부터 25년 뒤였다. 같은 해 그는 아르데아와 전쟁을 했다.
이때쯤이면 96세에 이르렀을 노인이 여러 전쟁에 잇달아 나선다고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못하다. 그리고 그는 쫓겨난 뒤 14년 동안 여러 차례 로마에 전쟁을 시도했다. 그가 직접 참전했다고 전해진다. 이것도 상식과 맞지 않다. 이런 주장에 따르면 그의 나이는 110세 이상이었어야 한다. 지중해 기후에서 이렇게 오래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런 모순을 이해한 일부 로마 역사학자는 다른 모순을 끌어와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들은 타나퀼이 아니라 다른 여인 게가니아가 두 아이의 어머니였다고 주장했다. 타르퀴니우스와 게가니아의 결혼은 비합리적이다. 그는 80대 노인이었다. 그 나이의 노인이 아이를 얻는다는 건 믿기 어렵다.
타르퀴니우스가 아이를 낳지 못한 건 아니었다. 그에게는 결혼한 두 딸이 있었다. 이런 모순을 고려해볼 때 두 아이는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이 아니라 손자였다고 나는 생각한다. 이런 주장에 루키우스 피소도 동의한다.
툴리우스는 왕국 통치권을 장악하고 마르키우스 일파를 몰아낸 뒤 왕권을 완전히 장악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제야 타르퀴니우스가 부상 때문에 결국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하고 아주 성대한 장례식을 치러 주었다. 웅장한 기념물도 건립했고, 다른 여러 가지 명예도 선물했다. 툴리우스는 이때부터 두 아이의 보호자로서 그들의 재산을 돌봐주고 나라의 공공 업무도 잘 돌봤다.
귀족은 일의 진행 과정에 불만이 많았다. 그들은 분개했고 모욕감을 느꼈다. 툴리우스가 원로원 동의를 받지도 않고 법에 정해진 다른 절차를 거치지도 않고 스스로 왕권을 장악한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다. 그들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들은 수시로 모여 툴리우스의 불법 통치를 끝낼 방법을 논의했다. 그들은 이렇게 결론 내렸다.
“툴리우스는 먼저 원로원 회의를 소집해야 한다. 왕은 왕권을 상징하는 파스케스와 다른 물건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렇게 한 뒤에 원로원은 인테르렉스를 임명하고 법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사람을 선출해야 한다.”
원로원이 계획을 짜고 있을 때 툴리우스는 이미 그들의 생각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가난한 시민들을 구슬리기로 했다. 그들을 동원해 왕권을 지킬 생각이었다. 툴리우스는 민회를 소집한 뒤 타르퀴니우스의 두 아이를 데리고 가 이렇게 연설했다.
“시민 여러분, 저는 이 두 아이를 돌봐야 할 매우 큰 의무감을 느낍니다. 아이들의 할아버지인 타르퀴니우스 선왕은 아버지도 없고 나라도 없는 저를 받아들여 키워주었습니다. 저에게 어떤 아이에게도 뒤지지 않는 관심을 보였습니다. 타르퀴니우스는 또한 저에게 두 딸 중 하나를 시집보냈습니다. 제가 그의 아들인 것처럼 그의 인생 내내 저의 명예를 지켜주고 아껴주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일들입니다.
반역 음모가 그를 덮친 뒤 선왕은 저를 믿고 두 아이를 맡겼습니다. 그가 인간의 운명에 굴복할 경우 보살피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엄청난 호의라는 빚을 진 두 아이를 배신하고 버린다면 누가 저더러 신을 공경하고 인간에게 공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할까요?
능력이 미치는 한 저는 주어진 신뢰를 배신하지 않을 것입니다. 두 아이를 황량한 상태에 내버려두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두 아이의 할아버지가 로마에 선물한 큰 이익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로마가 앙숙인 다른 라틴 도시에 굴복하지 않게 만들었습니다. 이웃 중에서 가장 강력한 에트루리아를 로마의 속국으로 만들었고, 사비니 족은 로마에 복종하게 했습니다. 엄청난 위험을 무릅쓰고 이런 일을 이루었습니다.
타르퀴니우스가 살아있다면 여러분은 그로부터 받은 모든 이익을 감사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지금 그는 죽었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은혜를 베푼 사람과 함께 그 업적의 기억을 땅에 묻을 게 아니라 감사의 뜻을 그의 후손에게 돌려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여러분 모두 두 아이의 공동 보호자가 됐다고 말입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남긴 왕권을 두 아이에게 약속하십시오. 아이들은 단 한 사람, 저의 후원보다는 여러분 모두의 공동 지원으로부터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두 아이를 몰아낼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왕권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여러분에게 부탁드립니다. 로마인이여! 여러분에게 최고의 이익을 주기 위해 제가 겪었던 투쟁을 생각하십시오. 고려할 가치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적지 않았던 투쟁 말입니다. 그 내용을 잘 아는 여러분에게 굳이 다시 말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이 저에게 빚진 것을 이 아이들에게 호의로 되갚아주기를 부탁드립니다.
제가 왕 자리를 맡기로 한 것은 왕권을 차지하고 싶어서 이러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저는 다른 사람만큼이나 자격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타르퀴니우스 가문을 돕기 위해서 이러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두 고아를 버리지 마십시오. 두 아이는 왕권을 잃을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게다가 두 아이의 적들이 꾸미는 음모가 성공한다면 도시에서 추방당할지도 모릅니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 필요하고 어떻게 해야 의무를 수행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려고 계획한 여러 가지 혜택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리고 민회를 소집한 이유도 설명하겠습니다. 가난 때문에 빚을 졌지만 갚을 능력이 없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자유를 얻은 이 시민들이 다시 자유를 잃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들을 돕겠습니다. 그들은 로마 시민이며 조국을 위해 봉사하다가 많은 고난을 겪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재산을 털어 그들의 빚을 갚을 만큼 내놓겠습니다.
앞으로 돈을 빌리는 사람들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는 걸 용납하지 않겠습니다. 어느 누구도 자유인의 신체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지 못하게 법을 만들겠습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의 재산을 갖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시민은 국가에 전쟁세를 내야 합니다. 이것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빌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모든 시민에게 자산 내역을 내놓을 것을 명령합니다. 누구나 자산 규모에 따라 세금을 달리 내게 할 것입니다. 이미 위대하고 훌륭하게 통치되는 여러 도시에서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많이 가진 사람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적게 가진 사람이 적게 내는 것이 공정하고 공공 이익에 부합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시민들의 힘으로 얻은 공공용지를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만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이 땅을 호의로 얻었든 돈을 주고 산 것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대신 땅을 분배받지 못한 사람들이 이용해야 합니다. 자유인인 여러분이 절대 남의 소작농이 되거나, 내 땅이 아니라 남의 땅을 경작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고귀한 영혼은 일상용품조차 부족한 사람의 가슴에는 살 수 없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저는 정부를 공평하고 불편부당하게 꾸릴 것입니다. 또 모든 사람에게 공정하게,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꾸릴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민을 부당하게 취급해도 된다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여러분 같은 가난한 사람들을 자유인으로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큰 힘을 가진 사람은 열등한 사람에게 정의를 요구하거나 그들로부터 정의를 요구받을 때 부당한 짓을 하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저는 폭력을 예방하고 정의를 보호하는 법을 만들 것입니다. 저는 ‘모든 시민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툴리우스가 이런 내용의 연설을 이어나가자 민회에는 큰 박수와 우레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가 타르퀴니우스에게 보인 충성심과 정의를 칭찬하는 사람도 있었고, 가난한 시민에게 보여준 인간적 태도와 관대함을 높이 사는 사람도 있었다. 어떤 사람은 비천한 상태에 있는 시민을 바라보는 툴리우스의 겸손함과 민주적 정신에 박수를 보내기도 했다. 그는 합법적이고 정당한 지도자이기 때문에 모두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다.
민회 다음날 툴리우스는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채무자 명단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명단에는 금액과 채권자 이름을 적게 했다. 그는 완성된 명단을 포로 로마노에 비치하라고 명령했다. 그리고 모든 시민이 보는 가운데 채권자에게 부채를 청산하게 했다.
툴리우스는 이어 공공 토지를 사용하거나 개인적으로 점유하고 있는 사람은 정해진 시간 안에 소유 행위를 중단하게 명령하는 왕명을 발표했다. 토지를 할당받지 못한 모든 시민은 이름을 제출하게 했다.
툴리우스는 이외에도 여러 법을 만들었다. 때로는 로물루스와 누마 폼필리우스가 만든 옛 법을 고치는 것이었다.
툴리우스가 일들을 하나씩 처리하자 귀족들의 분노는 더 커졌다. 그들은 원로원의 힘이 뒤집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더 이상 이전과 같은 행동 계획을 추진할 수 없었다.
귀족들은 처음에는 툴리우스의 불법적 권한을 제거하고 인테르렉스를 임명한 뒤 합법적으로 왕 자리를 차지할 사람을 뽑으려고 했다. 이제는 현재 상태를 인정하기로 했다. 전혀 간섭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원로원이 직접 뽑은 사람을 국가 수장으로 임명할 경우 평민은 그에게 맞서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원로원이 새 왕 선출권을 시민에게 넘겨주면 모든 쿠리아는 툴리우스를 뽑을 게 뻔했다. 원로원은 그가 계속 왕권을 유지하게 내버려두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그들은 툴리우스가 원로원을 설득해서 공개적으로 왕 자리를 받은 게 아니라 시민을 속여 훔친 것이라고 생각했다.
원로원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다. 툴리우스가 너무 교묘하게 원로원의 술책을 압도해서 그들의 뜻과는 달리 왕권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오랫동안 귀족이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소문을 로마에 퍼뜨렸다.
툴리우스는 아주 허름한 옷을 입고 아주 낙담한 표정을 한 채 어머니 오크리시아와 타나퀼, 아내, 그리고 모든 왕족을 대동해 포로 로마노에 갔다. 많은 군중이 모여 장관을 이뤘다. 그는 민회를 소집했고, 연단에 올라 이렇게 연설했다.
“이제 더 이상 타르퀴니우스의 두 아이는 외롭지 않습니다. 적의 손에 상처를 입을 위험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저는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귀족은 저에게 음모를 꾸미고 있습니다. 일부가 저를 죽이려고 한다는 정보를 입수했습니다. 제가 크든 작든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이 아니라 제가 평민에게 준 이익에 그들이 분개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푸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채권자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중에서 가난한 사람이 빚 때문에 감옥에 갇히거나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피로 획득해 국가에 속하게 된 땅을 부당하게 이용하거나 소유한 사람들은 땅을 포기해야 할 처지가 됐다면서 남의 것을 돌려주기는커녕 마치 유산을 빼앗긴 것처럼 분노하고 있습니다. 전쟁세를 면제받아왔던 사람들은 재산 평가서를 내고 그에 따라 세금을 내야한다는 사실에 화를 냅니다.
그들이 불평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성문법에 따라 살아야 하고, 가난한 사람을 마치 돈을 주고 산 노예처럼 학대하는 대신 공평하게 정의를 나눠주고 정의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귀족들은 공동전선을 구축하려고 논의했으며, 추방자를 불러들이기로 했으며, 마르키우스의 아들들에게 나라를 맡기려고 했습니다. 나라를 사랑했던 여러분의 왕 타르퀴니우스를 암살한 죄를 물어 여러분이 투표를 통해 불과 물의 사용을 금지한 바로 그자들 말입니다. 불경한 짓을 저지른 다음 재판에 나오지 않고 추방당한 바로 그자들 말입니다. 만약 제가 이런 계획에 대한 정보를 일찍 받지 못했다면 그들은 외국 군대의 도움을 받아 추방자들을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로마로 데리고 왔을 겁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여러분은 잘 아실 겁니다. 마르키우스 형제는 귀족의 지지를 받아 아무런 어려움 없이 국정을 장악한 뒤에 먼저 저를 체포하겠지요. 왕족의 수호자이자 그들에게 형벌을 선고한 저를 말입니다. 이어 두 아이는 물론 타르퀴니우스의 모든 친족과 친구를 파멸시키겠지요. 그들은 본성적으로 야만성과 독재 정신을 갖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아내, 어머니, 딸을 노예처럼 취급할 겁니다.
암살자를 다시 불러들여 왕으로 삼고, 여러분에게 은혜를 베푼 사람의 두 아들을 파멸시키고, 할아버지가 물려준 나라를 손자들에게서 빼앗는 게 여러분의 즐거움이라면 저는 운명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아내, 아이들과 함께 하늘에서 인간의 삶을 다스리는 신과 정령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간청합니다. 두 아이의 할아버지인 타르퀴니우스 선왕이 여러분에게 끊임없이 주었던 혜택에 대한 보답으로,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여러분에게 주었던 여러 가지 봉사에 대한 보답으로 저에게 단 하나의 친절을 베풀어주시기 바랍니다. 그것은 바로 여러분의 감정을 표시하라는 것입니다.
저보다 다른 사람이 이런 영예를 얻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두 아이, 그리고 다른 모든 타르퀴니우스의 친척은 여러분에게 로마를 맡기고 물러날 것입니다. 저도 더 관대한 결정을 내릴 것입니다. 이미 미덕과 영광을 발휘할 만큼 충분히 살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선의를 받지 못한다면 저는 더 이상 여러분 사이에서 불명예스럽게 살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홀을 가져가서 귀족에게 주십시오. 저는 어떤 혼란도 일으키지 않겠습니다.”
툴리우스가 이렇게 말하고 회의장을 떠나려고 하자 시민들은 엄청난 함성을 질렀다. 눈물과 간청이 섞인 함성이었다. 그들은 툴리우스에게 계속 그 자리에 남아서 국정을 통제하라고 간청했습니다. 포로 로마노의 다른 곳에 자리 잡고 있던 일부 귀족은 미리 툴리우스에게 지시받은 대로 이렇게 소리쳤다.
“툴리우스를 왕으로!”
“쿠리아를 소집해서 투표를 합시다.”
모든 쿠리아는 똑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툴리우스는 이런 장면을 본 뒤 일이 그냥 제멋대로 흘러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저의 봉사를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왕이 되면 더 많은 특혜를 여러분에게 드릴 것입니다. 선거날짜를 정하겠습니다. 시골 사람들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이 참석하십시오.”
사람들이 모두 모였을 때 툴리우스는 쿠리아 별로 투표를 실시하게 했다. 모든 쿠리아가 만장일치로 툴리우스에게는 왕이 될 자격이 있다고 선언하자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원로원은 더 이상 간섭하지 마시오. 평민의 결정을 재가해달라고 요청하지 않겠소.”
툴리우스는 이런 방식으로 왕이 됐다. 그는 행정에 많은 개혁을 도입했다. 또 에트루리아를 상대로 엄청나고 기억에 남을 만한 전쟁을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