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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Dec 16. 2020

10.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2)

라틴 동맹의 패권을 잡다


타르퀴니우스는 모든 라틴 도시에 사절을 보내 특정한 날에 페렌티눔에서 회의를 열겠다고 통보했다. 상호 이익과 관련한 중요한 문제를 협의하고 싶다는 게 회의 개최 이유였다.


라틴 도시 대표들은 회의장소에 나타났다. 하지만 그들을 모은 타르퀴니우스는 정해진 시간에 나타나지 않았다. 대표들은 오래 기다렸다. 대다수는 그의 행동을 모욕적이라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 코릴라에서 온 투르누스 헤로도니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다. 재산이 많고 친구도 많은데다 전쟁에서 용감하고 정치 논쟁에서도 능력이 없지 않아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그는 타르퀴니우스의 사위인 마밀루스와 사이가 나빴다. 마밀루스 때문에 타르퀴니우스와도 적이 됐다. 헤로도니우스는 타르퀴니우스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타르퀴니우스가 보인 여러 행동을 보십시오. 그가 오만하고 건방진 증거입니다. 라틴 도시 회의를 직접 소집해놓고도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마밀루스는 장인인 타르퀴니우스를 변명하려고 애썼다. 


“타르퀴니우스가 늦는 것은 불가피한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회의를 내일로 미룹시다.”


의장단은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음날 타르퀴니우스가 나타나 회의가 소집됐다. 그는 늦은 이유를 간단하게 설명하고는 바로 패권 문제를 논의하자고 했다. 


“나의 할아버지 타르퀴니우스가 전쟁을 통해 장악했기 때문에 패권은 당연히 나의 것이오. 그 증거로 여러 도시가 나의 할아버지와 맺은 조약을 제시하겠소. 각 도시가 나와 우호 관계를 지속할 경우 많은 혜택을 드리겠다고 약속하지요. 그러하니 사비니 족과의 전쟁에 동참하시오.”


타르퀴니우스가 늦게 온 걸 비난한 헤로도니우스가 앞으로 나서 타르퀴니우스에게 패권을 넘겨줘서는 안 된다고 대표들을 설득했다. 


“패권이 당연히 이 사람 것이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이 사람에게 패권을 넘겨주면 라틴 족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의 할아버지 타르퀴니우스와 조약을 맺었습니다. 그에게 패권을 넘겨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죽었기 때문에 조약은 종료됐습니다. 후손에게 똑같은 특혜를 부여한다는 조항은 조약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에게 주어진 특혜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하는 이 사람은 불법적이고 사악한 사람입니다. 그가 왕권을 장악하기 위해 로마인에게 저지른 짓을 생각해 보십시오. 끔찍한 짓을 얼마나 많이 자행했습니까?


타르퀴니우스는 법에 따라 로마인의 동의를 받아 왕권을 잡은 사람이 아닙니다. 무력과 폭력으로 빼앗았을 뿐입니다. 독재정권을 세우고는 많은 시민을 죽이거나 내쫓고 재산을 빼앗았습니다. 로마인에게서 언론과 행동의 자유를 빼앗았습니다.


이렇게 사악하고 불경한 성격을 가진 사람에게서 선하고 자애로운 걸 기대한다는 건, 그리고 혈육이나 친구로서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 살려두지 않은 사람이 낯선 사람을 살려둘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웃기는 일이고 미친 짓입니다. 로마인의 불행을 두고 볼 때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끝까지 싸운다면 노예의 이구움을 받아들이지 않게 될 겁니다.”

헤로도니우스가 타르퀴니우스를 맹비난하자 회의에 참석한 대부분 대표는 큰 감동을 받았다. 타르퀴니우스는 다음날 회의를 재개하자고 요청했다. 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회의는 해산됐다. 그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모아 어떻게 할지 대책을 논의했다.


이들은 타르퀴니우스에게 대다수 대표의 호의를 사기 위해 사용해야 할 수단과 논쟁 요지를 제안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대책으로는 상황을 개선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비난을 논박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을 거요. 대신 나를 비난한 자를 파멸시켜 버릴 생각이오.”


지인들이 모두 동의하자 그는 상세한 공격 내용을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 전혀 예상할 수 없고 미리 대비할 수도 없는 음모였다. 그는 헤로도니우스의 하인 중에서 가장 질 나쁜 자를 골랐다. 주인의 짐을 꾸린 하인이었다. 타르퀴니우슨느 그를 돈으로 매수했다.


“밤중에 많은 무기를 가져가서 헤로도니우스의 짐에 숨겨두게. 절대 들켜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하게.”


다음날 회의가 재개됐다. 타르퀴니우스는 앞으로 나서 헤로도니우스의 비난에 대해 간단하게 변명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을 이어갔다.


“일전에 헤로도니우는 내 딸과 결혼하겠다고 하더군요. 지금 나를 비난하는 모든 내용에 대해 당시에는 ‘당신은 아무 잘못이 없다’라고 말했지요. 나는 이런 자와 딸을 결혼시키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지요. 거부당한 걸 분개한 그는 지금 나를 비난하게 된 것이오. 


만약 나를 사악한 자라고 생각했다면 장인으로 모실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소. 내 딸과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면 지금 나쁜 사람으로 몰아붙여서는 안 되지요.


내 이야기는 대충 마무리합시다. 이제 여러분 이야기를 합시다. 가장 큰 위험에 처한 줄도 모르는 여러분 말이지요. 지금은 내가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생각할 때가 아니오. 여러분의 안전과 여러분 도시의 자유를 걱정해야 할 때요.


각 도시의 수장인 여러분을 향해 이 선동가가 음모를 꾸미고 있기 때문이오. 그는 여러분을 모두 죽인 다음 라틴의 패권을 장악할 준비를 하고 있지요. 그래서 여기 온 거라오. 


나는 괜한 추론으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오. 음모에 가담한 사람으로부터 지난밤에 들은 정보를 가지고 이야기하는 것이오. 여러분에게 논쟁할 수 없는 증거를 제시하리다. 그의 숙소로 갑시다. 그가 숨겨놓은 무기를 보여주리다.”


타르퀴니우스가 연설을 마치자 회의 참석자들은 안전을 걱정하면서 소리를 질렀다. 이들은 헤로도니우스에게 무죄를 입증하라고 요구했다. 그는 반역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주저하지 않고 조사를 받아들여 의장단을 숙소로 초대했다.


“타르퀴니우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여행에 필요한 수준 이상으로 무기를 갖고 있는 게 드러나면 나를 죽이시오. 하지만 나를 비난한 사람의 말이 거짓이라면 그를 처벌해야 할 것이오.”


의장단은 그의 숙소로 몰려갔다. 당연히 그의 행낭에서 하인이 숨겨둔 많은 무기가 발견됐다. 그들은 헤로도니우스에게 발언할 기회를 다시는 주지 않았다. 그를 구덩이에 던지고 생매장해버렸다. 


이들은 다시 회의를 속개해 모든 대표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며 타르퀴니우스를 칭찬했다. 이어 할아버지 타르퀴니우스와 맺었던 것과 똑같은 조건으로 그를 동맹의 지도자로 삼았다. 그리고 조약 내용을 기둥에 새겼고 맹세로 이를 확인했다.


타르퀴니우스는 라틴 동맹의 패권을 장악한 뒤 헤르니키의 여러 도시와 볼스키의 여러 도시에 사절을 보내 우호, 동맹 조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헤르니키 도시들은 만장일치로 동맹에 찬성했다. 하지만 볼스키 도시 중에서는 에케트라, 안티움 두 도시만 찬성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조약이 영원히 지켜질 것이라는 징표로 로마인, 라틴인, 헤르니키인, 볼스키인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신전을 건립하기로 했다. 해마다 신전에 모여 공동축제를 열고 공동 희생제례를 거행할 생각이었다.


모든 도시가 이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는 회합 장소로 여러 도시의 중앙에 위치해서 알바를 내려다보는 높은 산을 골랐다. 그는 이 산에서 매년 축제를 연다는 법을 만들었다. 축제 기간 동안 모든 사람은 서로에게 적대 행위를 삼가고 유피테르 라티아리스 신에게 공동 희생제례를 거행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각 도시가 희생제례를 거행할 때 책임져야 할 분담금과 희생제례를 끝낸 뒤 받을 몫을 정했다. 이 축제에 참가한 도시는 모두 47개였다.


로마인은 오늘날에도 이 축제와 희생제례를 거행하고 있다. 이를 페리아리 라티아니(라틴 축제)라고 부른다. 축제에 참가하는 일부 도시는 양, 치즈, 우유를 가져온다. 다른 도시는 각자의 성격에 맞는 물건을 가져온다. 희생제물로는 황소 한 마리를 바친다. 각 도시는 각자 몫으로 고기를 나눠 받는다. 그들이 거행하는 희생제례는 모두를 위한 것이고, 로마인은 이 행사를 총감독한다.


타르퀴니우스는 여러 조약으로 권력을 확보한 뒤 군대를 이끌고 사비니 족을 공격하기로 했다. 로마인 중에서 무기를 들더라도 자유를 외칠 가능성이 가작 적은 사람들을 병사로 고르고, 동맹국에서 온 지원군을 보탰다. 지원군 병사가 로마군 병사보다 훨씬 많았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비니 영토를 초토화시키고 연이은 전투에서 적을 패퇴시켰다. 그는 수에사에 사는 포메티니인을 공격하러 갔다. 어떤 도시의 주민보다 번성하고 재산이 많아 늘 부담이 되고 공격적인 사람들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포메티니인이 노략질을 하고 강도짓을 했으면서도 배상을 요구받았을 때 거만하게 응대했다고 비난했다. 수에사는 전쟁을 기대하면서 무장을 한 채 기다리고 있었다.


타르퀴니우스는 맨 앞에서 전쟁을 이끌었다. 그는 많은 적을 죽여 패주시킨 뒤 성벽에 가두었다. 적이 성 밖으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자 근처에 진지를 구축한 뒤 해자와 목책으로 성을 에워쌌다. 그리고 매일 성벽을 공격했다.


포메티니인은 오랫동안 공격을 잘 막아냈다. 포위의 어려움을 잘 견뎠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자 생필품이 떨어지고 체력도 떨어졌다. 지원을 받지도 못했고 쉴 수도 없었다. 똑같은 사람들이 밤낮없이 눈을 뜨고 있어야 했다. 그들은 결국 함락되고 말았다.


타르퀴니우스는 무장한 사람을 모두 학살했다. 병사들에게 모든 여인과 어린이는 물론 많은 노예를 포로로 끌고 가라고 했다. 성 안팎에서 발견한 모든 전리품을 모두 로마로 옮기라고 했다. 


전리품을 한 장소에 모은 뒤 10분의 1을 신전 건설비로 떼어내 뒤 나머지는 병사들에게 나눠주었다. 이렇게 배분한 금과 은의 양은 상당했다. 모든 병사가 각각 은 5천 아세를 차지할 정도였다. 또 신전을 짓기 위해 떼어놓은 은도 400탈렌트(1만 8천㎏) 이상이었다.


타르퀴니우스가 수에사에 머물고 있을 때 사비니 족 최정예 부대가 둘로 나눠 로마 영토로 쳐들어와 시골을 초토화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에레툼 근처에, 다른 하나는 피데나이 근처에 진지를 차렸습니다. 강력한 군대가 그들을 저지하지 않으면 모든 걸 잃을 것입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수에사에 일부 병력을 남겨두고 전리품과 다른 물건을 지키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서둘러 에레툼 인근에 진을 친 사비니 군대를 향해 진격했다. 그는 적의 진지에서 멀지 않은 높은 곳에 진지를 꾸렸다.


사비니군 장군들은 피데나이에 주둔한 군대를 불러들인 뒤 해가 뜨면 전투를 시작하기로 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는 다음과 같은 전략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는 로마군을 두 개로 나눠 하나는 밤에 몰래 피데나이에서 오는 도로를 점령하라고 지시했다. 다른 하나는 낮에 진지에서 나가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사비니족은 로마군의 규모가 작다고 생각했다. 피데나이의 우군이 언제든 올 거라고 믿고는 로마군과 싸우려고 출격했다. 양측은 곧바로 격돌했다. 전투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타르퀴니우스가 밤에 미리 숨겨둔 군대는 뒤로 돌아가 사비니군 후미를 공격했다. 


사비니군은 그들을 보고 당황해 무기를 버리고 달아났다. 도망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로마군에게 포위된 거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었다. 로마 기병은 사방에서 그들을 압박해 도륙했다. 일부만 겨우 재앙을 피해 달아날 수 있었다. 사비니군 대부분은 로마군에 살해당하거나 항복했다.


진지에 남은 사비니군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다. 첫 공격을 받자마자 함락됐다. 사비니군의 재산은 물론 로마에 쳐들어와 빼앗은 모든 물품과 포로가 로마군에 압수돼 원래 주인에게 돌아갔다.


타르퀴니우스는 첫 전투에서 성공을 거둔 뒤 군대를 이끌고 피데나이에 있는 사비니군을 향해 진격했다. 이들은 에레툼에 있던 우군의 괴멸을 알지 못했다. 이들은 진지에서 나와 행군할 준비를 했다. 로마군이 가까이 다가왔을 때 창에 여러 장군의 머리가 꽂혀 있는 걸 봤다. 로마군은 적에게 공포를 불어넣으려고 장군 머리를 앞세웠던 것이었다. 사비니군은 우군이 대파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더 이상 싸울 용기를 내지 못했다. 그들은 목숨을 살려달라고 간청하면서 항복했다. 


사비니족은 너무나 부끄럽고 불명예스러운 방법으로 군대를 잃었기 때문에 희망을 가질 수 없었다. 그들은 다른 도시를 공격당할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면서 평화를 요청하는 사절을 로마에 보냈다. 


“로마에 항복하겠습니다. 타르퀴니우스 왕에 복속하겠습니다. 앞으로 조공을 바치겠습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사비니 족과 평화조약을 맺었다. 똑같은 조건으로 여러 도시의 항복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수에사로 돌아갔다. 그는 그곳에 남겨둔 병력과 함께 로마로 개선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이어 볼스키 지역으로 여러 차례 쳐들어갔다. 때로는 전군을 이끌고, 때로는 일부만 데리고 갔다. 그곳에서도 많은 전리품을 빼앗았다. 그가 바라는 대로 전쟁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웃에서 다른 전쟁이 터졌다. 쉬지 않고 7년이나 이어질 정도로 긴 전쟁이었고, 매우 심각하고 예기치 못한 결과를 낳게 된 중대한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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