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폴란드에 아주 젊고 잘 생기고 생각도 올바른 왕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정말 친절해서 백성들로부터 진심으로 사랑받았습니다.
어느 해 여름날 저녁 왕자는 호수 둑을 혼자 걷고 있었습니다. 그는 멀리 이상한 장면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해가 지는 곳에서 마치 장미꽃처럼 생긴 붉은 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구름 속에서 날개 달린 생명체 3개가 날아올랐던 것이었습니다. 천사도 아니고 새도 아니었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소녀들이었습니다.
세 소녀는 땅에 내려앉자마자 날개와 옷을 둑에 벗어놓고는 호수 안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신나게 물장구를 치면서 놀았습니다. 정말 재미있고 즐거워보였습니다.
몰래 덤불에 숨어 있던 왕자는 살금살금 기어 나와 날개 한 쌍을 숨겼습니다.
세 소녀는 물에서 충분히 놀았다고 생각했을 때 호수에서 나와 서둘러 옷을 입었습니다. 두 소녀는 하얀 옷을 입고 하얀 날개를 달았지만 막내는 날개와 옷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세 소녀는 당황했습니다. 시간에 쫓긴 나머지 두 소녀는 마치 새처럼 하늘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홀로 남은 소녀는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두 손을 붙잡은 채 눈물만 흘렸습니다. 그때 덤불에 숨어 있던 왕자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왜 여기서 울고 계신가요?”
소녀는 울음을 멈추지 않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멀리 있는 황동산의 공주예요. 가끔 이 호수에 목욕하러 언니들과 함께 오곤 했지요. 그런데 오늘 누군가 제 날개를 훔쳐가 버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날개를 찾을 때까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한답니다.”
“저는 이 나라의 왕자예요. 아버지가 왕이시지요. 당신의 날개는 내가 갖고 있답니다. 저의 아내가 돼 주신다면 날개를 돌려드리지요.”
“좋아요. 그렇게 할게요. 하지만 날개를 먼저 돌려줘야 해요.”
“먼저 교회에 가서 결혼식부터 올리도록 해요.”
왕자는 공주의 손을 잡고 교회에 갔습니다. 교회의 집사에게 왕과 왕비를 모셔오라고 시켰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결혼을 허락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왕과 왕비는 아름다운 며느리를 보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그래서 결혼도 허락하면서 정말 행복하게 잘 살라고 축복까지 내려주었습니다.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됐고, 결혼식도 차질 없이 이어졌습니다.
교회에서 돌아온 왕자는 기쁨에 들떠 신부에게 입을 맞춘 뒤 날개를 돌려주었습니다. 소녀는 정말 기뻐하면서 어깨에 날개를 달고는 창밖으로 날아가더니 멀리 사라져버렸습니다.
궁전에서 펼쳐지던 결혼식 잔치에 참석한 하객들은 모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왕의 표정은 어두워졌고, 왕비의 얼굴은 노랗게 변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역시 신부를 잃은 왕자였습니다. 그는 부모에게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황동산에 다녀오도록 허락해주십시오. 그곳에 가서 제 아내를 찾아오겠습니다.”
아들의 깊은 상심을 이해한 왕은 그곳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궁전을 떠난 왕자는 오랫동안 여행했습니다. 가는 길에 사람을 만나면 황동산이 어딘지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런 산이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왕자는 희망을 잃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어느 날 저녁 왕자 앞에 반짝이는 빛이 나타났습니다. 왕자는 빛을 따라갔습니다. 빛이 이르는 곳에 사람이 살고 있으면 하룻밤 묵어가려고 했습니다.
빛은 왕자를 한동안 데리고 갔습니다. 아주 넓은 평원을 지났고, 깊은 계곡도 건너갔습니다. 마침내 빛은 아주 짙은 숲에 도착했습니다. 왕자는 그 빛이 아주 외로운 오두막에서 새어나온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왕자는 오두막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는 은둔자가 죽어 누워 있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신에 대한 공부를 하다 수명이 다해 눈을 감은 것이었습니다. 은둔자 주변에는 초 여섯 개가 타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을 묻어줘야겠군.’
하지만 왕자는 그를 묻을 방법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를 데리고 나갈 도구가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주변에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와줄 손길도 없었습니다. 왕자가 어떻게 하면 은둔자를 묻을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을 때 벽에 박힌 나무못이 툭 떨어졌습니다. 거기에 걸려 있던 가죽 채찍도 떨어졌습니다. 왕자는 채찍을 주웠습니다. 거기에는 이런 글자가 적혀 있었습니다.
‘마법의 채찍.’
왕자의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는 채찍을 휘두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 너는 마법의 채찍이로구나. 그렇다면 먼저 내가 지금 원하는 걸 할 수 있는지 알아보자꾸나.”
왕자가 말을 마치자마자 채찍은 그의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잠시 후 숲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먼저 숲 관리인이 오두막에 들어왔습니다. 이어 일꾼 여러 명이 따라 들어왔습니다.
일부는 관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일꾼들은 무덤을 팠습니다. 숲 관리인은 오두막에서 나가더니 잠시 후 교회에서 신부를 모시고 왔습니다.
새벽 무렵 장례 미사가 시작됐습니다. 멀리 떨어진 여러 교회에서 종이 땡땡거리며 울렸습니다. 해 뜰 무렵에는 아주 정중하게 시신이 땅에 묻혔습니다. 장례식이 끝나자 숲 관리인과 일꾼들, 신부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채찍은 왕자에 손에 다시 돌아왔습니다.
왕자는 마법의 채찍을 허리띠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오두막에서 나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한두 시간 뒤 그는 다른 숲에 도착했습니다. 숲 한가운데에 넓은 공터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열두 명이 서로 피투성이가 될 정도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그만 하시오. 당신들은 누구기에 이렇게 서로를 잡아먹지 못해 싸우고 있는 것이오?”
“나그네요! 마침 적당한 시기에 잘 왔군요. 우리는 도적이랍니다. 이 신발을 서로 차지하려 싸우고 있는 것이지요. 대장이 방금 죽었는데 신발은 그의 것이었지요. 신발을 신으면 단걸음에 20㎞를 갈 수 있답니다. 신발을 가지는 사람은 우리 대장이 된답니다. 이 신발을 누가 가져야하는지 당신이 결정해주면 우리는 거기에 따르리다. 대신 우리는 여행할 때 쓸 수 있도록 금화 한 상자를 드리도록 하지요.”
왕자는 신발을 집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채찍을 꺼내 이렇게 명령했습니다.
“마법의 채찍아! 이번에도 내가 원하는 대로 하거라.”
채찍은 도적떼를 모두 묶어버렸습니다. 꼼짝할 수 없게 된 도적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왕자는 신발을 신고 달아나버렸습니다. 그는 열 걸음을 달렸습니다. 그 덕분에 순식간에 도적떼의 소굴에서 200㎞ 떨어진 곳까지 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황동산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빨리 걸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왕자는 할 수 없이 신발을 벗어 허리에 꽂았습니다. 그리고 마법의 채찍은 허리띠에 매달았습니다. 그리고 평소처럼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걷던 왕자는 바위 사이에 난 조그만 길로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다시 다른 사람 열두 명이 싸우고 있었습니다.
“당신들은 왜 싸우고 있는 것이오?”
“우리들은 어제 죽은 대장이 갖고 있던 모자를 차지하려고 싸우는 것이지요. 이 모자를 쓰면 사람 눈에 안 보이게 되지요. 마침 잘 됐소. 나그네여, 당신이 이 모자의 주인을 결정해 주시오. 우리는 그 결정에 따르리다.”
왕자는 빙긋이 웃으며 다시 마법의 채찍을 꺼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묶여 꼼짝도 못하는 사이에 모자를 쓰고 신발을 신고 달아나버렸습니다.
왕자는 신발과 모자, 그리고 마법의 채찍을 이용해 황동산에 가서 아내를 찾기로 했습니다. 그는 신발을 신고 모자를 쓴 뒤 채찍을 꺼내 휘둘렀습니다.
“마법의 채찍아! 나를 황동산으로 데려다오. 나의 아내가 기다리는 그곳에 가야겠구나.”
마법의 채찍은 왕자의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땅바닥에 길게 드러누웠습니다. 마치 조용한 바다를 항해하는 조그만 보트 같았습니다. 채찍은 마치 새가 하늘을 날듯이, 뱀이 땅을 기듯이 조용히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왕자는 1m 뒤에서 채찍을 느긋하게 따라갔습니다. 20분 쯤 지났을 때 그의 눈앞에 아주 웅장하고 조용하고 근엄해 보이는 황동산이 나타났습니다.
왕자는 산을 처음 보았을 때에는 드디어 아내를 되찾게 됐다며 매우 기뻐했습니다. 하지만 산을 자세히 살펴보고 나서는 절망하게 됐습니다. 산은 마치 수직처럼 서 있었습니다. 산꼭대기는 구름 위에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날개가 없다면 이렇게 뾰족하고 높은 산을 걸어서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다. 왕자는 절망에 빠졌습니다.
‘저기를 어떻게 올라갈 수 있지?’
왕자는 신발을 신고 모자를 쓴 채 산 주변을 돌아다녔습니다. 30분쯤 후 그는 방앗간을 발견했습니다. 그곳에는 절구 돌 열두 개가 있었습니다. 주인은 아주 나이가 많은 마법사였습니다. 수염이 얼마나 길던지 땅에 끌릴 정도였습니다. 그는 주전자가 보글보글 끓고 있던 화롯가에 서서 긴 쇠숟가락으로 주전자 속에 있는 물건을 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끊임없이 화로에 나무를 집어넣었습니다. 왕자는 주전자를 보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여기서 무엇을 하고 계신 거예요?”
마법사는 아주 무뚝뚝하게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왕자는 웃으며 다시 물었습니다.
“이 방앗간에서는 무슨 일을 하나요?”
마법사는 짜증이 난다는 듯이 대답했습니다.
“자네가 참견할 일이 아니라고 했잖아.”
왕자는 마법사를 어떻게 하면 만족시킬 수 있는지 생각했습니다. 그는 몰래 마법의 채찍에게 그 방법을 물었습니다. 채찍은 왕자의 손에서 빠져나가더니 마법사를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마법사는 달아나려고 했습니다. 왕자는 마법사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했습니다. 그는 채찍에게 돌아오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법사에게 친절한 목소리로 다시 물어보았습니다.
“이 방앗간에서는 무슨 일을 하는지 말씀해주시면 안 될까요?”
“이 방앗간은 황동산의 세 공주 것이라오. 그들은 매일 산에서 이곳으로 밧줄을 내려 보내지요. 그리고 내가 밀가루를 담아주면 다시 끌어올린다오.”
마법사가 말을 마치자마자 두꺼운 비단으로 만든 밧줄이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끝에는 커다란 바구니가 묶여 있었습니다. 왕자는 보이지 않게 해주는 모자를 쓰고 바구니에 올라타 밀가루 봉지 옆에 숨었습니다. 밧줄은 잠시 후 위로 올라갔습니다.
세 공주는 밀가루가 든 바구니를 끌어올려 창고에 넣고는 궁전으로 돌아갔습니다. 궁전은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고 아름다웠습니다. 궁전 바깥벽은 은으로 만들었습니다. 안쪽 벽은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창문은 모두 크리스탈이었습니다. 의자와 탁자는 다이아몬드로, 바닥은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습니다. 천장은 마치 하늘처럼 꾸며져 별과 달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가장 큰 방에는 태양이 있었습니다. 이곳에서 사방팔방으로 빛이 퍼져나갔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새들이 노래를 불렀고, 원숭이들은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재미있는 동화를 계속 떠들어댔습니다. 그 방 한가운데에 세 소녀가 앉아 있었습니다.
언니 두 명은 베틀을 이용해 황금 실을 잣고 있었습니다. 왕자의 부인인 막내는 두 언니와 떨어져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머리를 팔에 기댄 채 분수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녀의 눈에서 진주처럼 영롱하게 반짝이는 눈물 두 방울이 똑 하며 떨어졌습니다. 두 언니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막내야, 무슨 걱정을 하고 있는 것이니?”
“나의 남편, 왕자를 그리워하고 있어요. 나는 왕자를 사랑하고 있답니다. 그 사람에게 정말 미안해요. 불쌍한 사람! 우리는 서로 사랑하게 됐지만 나는 혼자 도망쳐 버렸지요. 그 사람에게 돌아가고 싶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벌써 나를 잊어버렸겠지요. 그의 진심을 배반하고 달아나서 정말 미안하다고 왕자에게 용서를 빌고 싶어요.”
창고에 숨어 세 소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왕자는 밖으로 달려 나갔습니다. 그는 모자를 벗어 던지고 막내, 즉 그의 아내 앞으로 갔습니다.
“아니오! 내게 용서를 빌 필요가 없어요. 내가 용서할 것도 없어요. 당신을 정말 사랑하니까요.”
막내는 갑자기 나타난 왕자를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그녀는 왕자에게 달려가 두 손을 꼭 잡았습니다. 왕자는 여기에 왜 왔으며, 어떻게 올라왔는지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언니, 왕자를 따라가겠어요. 두 언니와의 이별은 아쉽지만 새로운 행복을 찾아 떠나겠어요.”
막내는 날개를 활짝 펼쳤습니다. 그리고 왕자를 꼭 껴안고 하늘로 힘껏 날아올랐습니다. 두 사람은 약 한 시간 뒤 왕과 왕비의 궁전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돌아온 왕자와 며느리를 아주 기쁘게 맞았습니다. 그들은 이후로는 다시는 헤어지지 않고 아주 행복하게, 그리고 백성들을 잘 보살피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