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브루투스의 비극(1)

타르퀴니우스의 복귀 음모

by leo


로마 왕정은 건국 이래 244년간 이어졌지만 마지막 왕 시대에 독재로 변하는 바람에 결국 BC 507년 뒤집어지고 말았다. 이어 귀족정이 수립됐다. 그해를 4개월 남겨놓고 루키우스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루키우스 타르퀴니우스 콜라티누스는 왕과 같은 권한을 가진 첫 집정관이 됐다. 로마인은 집정관을 자문관이라는 뜻인 ‘콘술’이라고 부른다.


로마군은 아르데아와 휴전을 맺은 뒤 로마로 돌아왔다. 두 집정관은 독재자를 몰아내고 며칠 뒤 민회를 소집했다. 그들은 긴 연설을 통해 화합의 장점을 설명했다. 그리고 도시에 머물러 있던 사람들이 이전에 투표로 결정했던 모든 것을 다시 투표로 통과시켰다. 타르퀴니우스 가문의 영원한 추방이 그 내용이었다. 로마인은 정화의식을 치른 뒤 신성한 약속을 했다. 두 집정관이 희생제물 앞에 서서 먼저 맹세했고, 다른 시민도 따라서 맹세했다.


“우리는 추방한 타르퀴니우스와 그의 아들들, 그리고 그 후손들이 로마로 들어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어느 누구도 로마의 왕으로 만들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도 로마의 왕이 되겠다는 꿈을 꾸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로마인이 한 맹세는 그들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자식들 그리고 후손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다. 역대 왕들은 로마에 많은 혜택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에 로마인은 로마가 살아 있는 한 그 관직의 이름만은 유지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로마인은 폰티피케스와 아우구르에게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 중에서 종교적 의례를 감독하는 직위에 가장 어울리는 사람을 뽑게 했다. 그에게는 군역, 병역 등 모든 의무를 면제해주었다. 그를 종교적 의례의 왕(렉스 사크로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이 자리에 임명된 첫 인물은 귀족인 마니우스 파피리우스였다. 평화를 사랑하고 아주 조용한 사람이었다.


두 집정관은 여러 문제를 해결한 뒤 걱정을 하게 됐다. 로마인이 새로운 정부 형태에 대해 잘못된 인상을 받거나 왕 두 명이 국가의 통치자가 될 수 있다고 걱정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두 집정관은 각각 왕처럼 도끼 열두 개를 앞세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로마인의 걱정을 해소하고 권력에 대한 증오를 줄이기로 했다. 그래서 ‘두 집정관 중 한 명은 도끼 열두 개를 앞세우는 반면, 다른 한 명은 작대기 하나를 든 릭토르 열두 명을 앞세워야 한다’고 결정했다. 다른 역사학자는 ‘두 집정관은 돌아가면서 도끼 열두 개를 앞세울 수 있으며, 각 집정관은 돌아가면서 한 달씩 도끼 열두 개를 소유하기로 결정했다’고 주장한다.


이 조치는 물론 다른 조치 덕분에 두 집정관은 평민은 물론 하층 계급 사람들이 현존 질서 유지를 갈망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은 툴리우스가 도입해 민주적이고 인도적이라는 평가를 받은 계약법을 되살렸다. 타르퀴니우스가 폐지한 법이었다. 두 집정관은 시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국정과 관련해 민회를 소집할 권리를 되돌려주었다. 거기서 투표를 실시하고, 이전 관습에 따라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했다.


두 집정관의 조치는 로마인을 만족시켰다. 로마인은 오랜 노예상태에서 벗어나 기대하지 않았던 자유를 얻었다. 그들 중에는 눈에 띄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단순함이나 욕심 때문에 독재 치하를 그리워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들은 로마를 배신할 음모를 꾸몄다. 다함께 모여 타르퀴니우스를 복위시키고 두 집정관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타르퀴니우스는 왕좌에서 쫓겨난 뒤 잠시 가비이에 머물렀다. 그는 로마에서 찾아온 추종자를 모았다. 자유보다는 독재가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또 라틴 도시들의 도움으로 왕좌를 되찾겠다는 생각으로 기회를 엿보았다.


하지만 라틴 도시들은 그에게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로마와 전쟁을 할 생각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실망한 나머지 에트루리아 도시인 타르퀴니이로 갔다. 어머니의 고향이었던 도시였다. 타르퀴니우스는 타르퀴니이의 행정관들을 선물로 매수한 뒤 민회를 열어 그를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렇게 연설했다.


“저와 타르퀴니이는 친척 관계입니다. 할아버지가 에트루리아 여러 도시에 보여줬던 호의를 생각해 보십시오. 할아버지가 여러분과 맺었던 조약을 떠올려 보십시오.


저는 지금 비참한 지경에 빠졌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습니다. 하루를 보낼 필수품조차 부족한 방랑자가 됐습니다. 세 아들과 함께 피난처를 찾아 한때 저에게 복종했던 여러 나라들을 떠돌고 있습니다.


여러분! 로마에 사절을 보내주십시오. 저의 재산을 돌려주라고 요구해 주십시오. 로마의 권력자 중에는 저를 위해 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를 복위시키려고 도와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타르퀴니우스는 민회의 동의를 얻어 사절단을 직접 선출했다. 그는 사절단에게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지 일일이 가르쳤다. 그리고 그들에게 편지를 주었다. 친척과 친구에게 간청하는 내용을 담은 편지였다. 마지막으로 사절단에게 금을 선물로 주고 길을 떠나게 했다. 사절단은 로마에서 원로원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타르퀴니우스는 소수의 수행원을 데리고 안전을 보장받은 채 로마로 오고 싶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먼저 원로원에서, 그리고 원로원의 허가를 받는다면 나중에는 민회에서 연설하고 싶어 합니다. 그곳에서 즉위 때부터 한 모든 행동을 설명하고자 합니다. 만약 누군가 그를 비난한다면 모두 로마인의 판단에 맡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스스로를 변호해서 추방당할 이유가 없다고 납득시켜 왕 자리를 돌려받는다면 로마인이 결정하는 조건에 따라 귀국하고 싶어 합니다.


로마인이 더 이상 왕정을 원하지 않고 다른 정부 형태를 바란다면 타르퀴니우스는 고향 도시인 개인 재산만 돌려받고 로마에 머무르면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망명과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자 합니다.


원로원에 간청합니다. 모든 사람이 인정하는 정의의 원칙에 따라 어느 누구도 스스로를 변론하거나 재판을 받을 기회를 빼앗겨서는 안 됩니다. 그에게 스스로를 변론할 기회를 줘야 합니다. 로마인이 직접 재판관을 맡으면 됩니다.


로마인이 타르퀴니우스에게 이런 호의를 베풀 생각이 없다면 중재에 나선 타르퀴니이를 생각해서라도 좀 더 관대하게 행동하기를 부탁드립니다. 로마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은 우리 도시에 호의를 베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거만한 생각을 갖지 마십시오. 언젠가는 죽게 마련인 인간에게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분노를 품지 마십시오. 비록 여러분의 기분과 반대될지라도 이런 간청을 하러 온 우리를 생각해서 자비로운 행동을 한다는 데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선린관례를 위해 적대감을 잠시 숨기는 것은 현명한 사람의 처사이며, 적대감으로 선린관계를 망치는 것은 어리석은 야만인의 행위라는 걸 염두에 두시기를 바랍니다.”

타르퀴니이 사절이 긴 말을 마치자 브루투스가 일어나 반박했다.


“에트루리아인이여! 타르퀴니우스의 로마 귀환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마십시오. 이미 투표로 그들을 영구 추방한다고 결정했습니다. 그 독재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람이 받아들이려 해도 동의하지 않겠다고 신에게 맹세했습니다. 당신들이 법이나 맹세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합리적인 요구를 할 게 있다면 이야기하십시오.”


“우리의 첫 노력은 기대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당신들에게 행동을 설명하고 싶어 하는 청원자를 위해 사절로 여기 왔고, 모든 사람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권리를 달라고 호소했지만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우리 결론은 이렇습니다.


더 이상 타르퀴니우스의 귀환을 요청하지 않겠습니다. 다른 종류의 정의로운 행동을 해주기를 간청 드립니다. 타르퀴니이 정부는 우리에게 이렇게 지시했습니다. 법이나 맹세조차도 여러분을 구속하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타르퀴니우스가 할아버지 때부터 소유한 재산을 돌려주라는 것입니다. 그는 여러분의 재산을 강제로 또는 속임수로 빼앗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도 있습니다. 그에게 속하는 재산을 돌려줌으로써 여러분에게 아무런 불편도 끼치지 않고 다른 장소에서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타르퀴니이 사절단은 말을 마치고 물러갔다. 두 집정관 중에서 브루투스는 재산을 돌려주는 데에 반대했다.


“독재자의 재산을 돌려줘서는 안 됩니다. 그가 나라에 끼친 피해에 대한 벌로 압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타르퀴니우스에게서 전쟁을 할 수 있는 자원을 제거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타르퀴니우스는 재산을 돌려받아 개인 생활을 즐기는 데에 만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로마에 전쟁을 시도할 겁니다. 무력으로 권좌에 돌아오려고 시도할 겁니다.”


콜라티누스는 정반대 이야기를 했다.


“로마에 피해를 끼친 것은 독재자이지 그의 재산이 아닙니다. 두 가지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로마가 타르퀴니우스의 재산을 노리고 그를 권좌에서 몰아냈다는 잘못된 여론을 세상에 퍼뜨릴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타르퀴니우스에게는 빼앗긴 재산을 되찾아야 한다는 전쟁 명분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타르퀴니우스가 재산을 돌려받더라도 로마에 돌아오기 위해 전쟁을 시도할 수 있을지는 불분명합니다. 반면에 그들이 재산을 돌려받지 못한다면 평화에 동의하지 않으리라는 것은 분명합니다.”


두 집정관이 서로 다른 견해를 내놓자 원로원은 어떤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논의하느라 여러 날을 소비했다. 브루투스의 주장은 편리해보였고, 콜라티누스의 주장은 정당해 보였다. 결국 원로원은 편의성과 정당성 중에서 하나를 고르기 위해 시민들을 심판관으로 삼기로 했다.


두 집정관에게서 상세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30개 쿠리아는 투표를 실시했다. 그 결과 1표 차이로 재산을 돌려주자는 결정이 내려졌다. 에트루리아 사절단은 두 집정관에게서 이런 답변을 듣고는 정당성을 편의성보다 더 높이 평가한 로마를 칭찬했다.


사절단은 타르퀴니우스에게 재산을 돌려받게 됐다는 편지를 썼다. 이들은 로마에서 가구를 모으고, 가지고 갈 수 없는 재산을 처분하느라 바쁜 척 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도시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혼란을 불러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르퀴니우스가 미리 일러준 대로였다.


에트루리아 사절단은 타르퀴니우스에게 받은 편지를 로마에 있는 그의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그들로부터 답장을 받느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또 여러 시민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감정을 살폈다. 허약한 신념 때문에 쉽게 말에 넘어가거나, 가난하거나, 독재자 밑에서 누렸던 특권을 그리워하는 사람을 만나면 헛된 희망과 돈을 줌으로써 유혹하려고 애썼다.


인구가 많은 대도시에서는 흔히 그러듯 좋은 정부보다는 나쁜 정부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신분이 미천한 사람뿐만 아니라 저명한 사람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사람 중에 두 명의 유니유스가 있었다. 티투스 유니우스와 티베리우스 유니우스였다. 둘 다 집정관 브루투스의 아들이었다. 이들은 막 성인으로 접어든 나이였다. 두 명 외에 다른 두 명의 비텔리우스가 있었다. 브루투스의 처남인 마르쿠스 비텔리우스와 마니우스 비텔리우스였다. 이들은 정부 일을 맡을 만한 능력을 갖춘 사람들이었다.


콜라티누스의 조카인 루키우스 아퀼리우스와 마르쿠스 아퀼리우스도 이들과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둘은 브루투스의 두 아들과 비슷한 나이였다. 공모자들은 아퀼리우스의 집에 모여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 독재자를 복귀시킬 계획을 세웠다.


로마가 엄청나게 번성할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뜻 덕분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히 이 경우에 더 그렇다. 젊은이들은 너무나 어리석은 열병에 사로잡힌 나머지 독재자에게 직접 편지를 쓰는 데 동의했다. 그에게 공모자의 수뿐만 아니라 언제 두 집정관을 공격할지 알리는 내용이었다. 타르퀴니우스가 편지에 이렇게 썼기 때문이었다.


‘왕좌에 복귀할 경우 보상을 받아야 할 사람의 이름을 미리 알고 싶군.’


두 집정관은 우연히 편지를 입수하게 됐다. 공모자들은 콜라티누스의 조카인 두 아퀼리우스의 집에서 밤에 모이곤 했다. 그들은 종교 행사나 희생 제례를 준비하기 위해 초대받은 것처럼 꾸몄다.


행사를 마친 뒤에는 하인들에게 모두 나가라고 했다. 방문 앞에 서 있지도 못하게 했다. 그런 다음에 회의를 진행했다. 타르퀴니우스를 불러들일 방법과 그들의 자필로 쓴 편지를 전달할 방법을 논의해 이렇게 결정했다.


‘편지는 아퀼리우스 형제가 에트루리아 사절단에게 전달한다. 그들이 타르퀴니우스에게 건네주기로 한다.’


그때 아퀼리우스의 집에는 카에니나에서 포로로 잡혀와 노예가 된 뒤 술을 따르는 일을 하던 빈디키우스라는 노예가 있었다. 그는 하인들을 모두 나가라고 하는 주인의 명령을 이상하게 생각했다.


‘저들은 나쁜 짓을 꾸미고 있는 게 분명해.’


빈디키우스는 몰래 문 앞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문틈으로 방 안을 엿보기도 했다. 거기서 모두의 서명이 든 편지를 발견했다. 그는 주인의 심부름을 가는 것처럼 꾸며 바로 집에서 빠져나갔다. 당시는 한밤중이었다.


빈디키우스는 두 집정관에게 달려가기를 주저했다. 두 사람은 아들과 처남, 조카 등을 신경 쓰느라 이 문제를 조용히 덮어둘 우려가 컸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곧바로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에게 갔다. 독재자를 몰아내는 데 앞장선 네 명 중 한 명이었다.


“나리, 저의 안전을 보장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유피테르 신의 이름으로 약속하겠다.”


발레리우스가 맹세로 안전을 약속하자 빈디키우스는 아퀼리우스의 집에서 보고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설명했다. 발레리우스는 주저하지 않고 새벽 무렵 많은 클리엔테스와 친구들을 무장시켜 아퀼리우스의 집으로 쳐들어갔다.


“나리, 새벽에 어인 일이십니까?”


“루키우스와 마르쿠스에게 급히 할 말이 있다. 지금 두 사람은 어디에 있느냐?”


발레리우스는 아퀼리우스 집안 하인들의 제지를 받지 않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모자들은 여전히 그곳에 모여 있었다. 발레리우스는 편지를 압수하고 공모자들을 체포해 두 집정관에게 끌고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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