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지켜 로마 구한 코클레스
푸블리콜라라는 별명을 얻은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는 3년 연속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동료 집정관은 두 번째로 선출된 마르쿠스 호라티우스 풀빌루스였다. 이때 에트루리아 도시인 클루시움의 왕 라르스 포르세나가 로마에 전쟁을 선언했다. 그는 클루시움으로 도망쳐 온 타르퀴니우스에게 이렇게 약속했던 것이다.
“당신을 왕으로 다시 받아들인다는 조건으로 로마인과 화해하도록 해주겠소. 아니면 로마인이 빼앗아간 당신 재산을 되찾게 해주리다.”
포르세나는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 호소와 협박을 뒤섞어가면서 타르퀴니우스 복귀를 요구했다. 로마는 타르퀴니우스를 복귀시키거나 화해할 생각은 물론 재산을 돌려줄 수 뜻도 없다면서 이렇게 대답했다.
“로마 원로원은 유피테르 신에게 타르퀴니우스를 절대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소.”
포르세나는 로마인에게 모욕을 당했다며 분개했다. 두 요구 조건 중에서 하나도 얻지 못한 것은 부당한 처사라고 생각했다. 재산이 많고 절대 권력을 쥐고 있어 아주 거만했던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로마의 주도권을 뒤집을 좋은 기회가 온 거야. 내가 오랫동안 꿈꾸던 일이지. 로마에 전쟁을 선포해야겠어.’
타르퀴니우스의 사위인 옥타비우스 마밀리우스도 전쟁에 따라 갔다. 마밀리우스는 열정을 불태울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는 로마에 반기를 든 라틴 도시인 카메리움과 안템나이의 병사들을 이끌고 투스쿨룸에서 출격했다. 로마와 전쟁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휘말린 다른 라틴 도시의 병사들도 그를 따라갔다. 그는 많은 지원병을 지휘하게 됐다.
두 로마 집정관은 이 소식을 듣자마자 농부들에게 모든 재산, 가축, 노예를 산악지대로 피신시키라고 지시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보호하기에 충분한 성채를 튼튼하게 지어놓았던 것이다.
두 집정관은 성채를 보강하고 병력을 증강해 야니쿨룸 언덕을 강화했다. 보급품도 충분히 쌓아두었다. 이 언덕은 테베레 강 건너편에 있는 높은 언덕이었다. 위치가 아주 좋아서 적군이 이곳을 차지하면 로마를 공격할 때 전초기지로 이용할 우려가 컸다.
두 집정관은 또 좀 더 민주적인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좀 더 우호적인 조치를 시행했다.
“빈민은 왕정 시대에 부과 받았던 모든 세금을 면제받는다. 군사적 목적이나 전쟁에 내는 모든 세금도 내지 않아도 된다.”
빈민들이 개인적 이익을 챙기려고 독재자 편으로 넘어가지 않게 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두 사람은 나라를 지킬 때 빈민을 이용할 수 있다면 국가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 두 집정관은 병사들을 오랫동안 훈련시켰다. 그리고 로마 앞의 마르스 평원에 진지를 세웠다.
포르세나는 야니쿨룸 언덕을 단숨에 점령했다. 그곳에 에트루리아 경비병을 배치한 뒤 바로 로마로 진격했다.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로마를 점령할 생각이었다. 그가 다리 근처에 갔을 때 로마군이 강 앞에 모여 있었다.
“전투를 준비하라. 우리 병력이 압도적으로 많다. 로마군을 병력으로 눌러버리면 된다. 저들은 오합지졸이다. 단 한 번의 전투로 붕괴시킬 수 있다.”
클루시움의 좌익은 타르퀴니우스의 두 아들 섹스투스와 티투스가 지휘했다. 둘은 로마에서 도망친 사람들은 물론 가비이군 중에서 최정예병을 이끌고 있었다. 여기에 적지 않은 외국 지원병과 용병도 있었다. 우익은 타르퀴니우스의 사위 마밀리우스가 이끌었다. 로마에 반기를 든 라틴 도시 병사들이 그의 지휘를 받았다. 포르세나는 중앙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로마군의 우익은 스푸리우스 라르키우스와 티투스 헤르미니우스가 지휘했다. 이들은 섹스투스, 티투스와 맞섰다. 좌익은 푸블리콜라의 동생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와 전년도 집정관인 티투스 루크레티우스가 담당했다. 이들은 마밀리우스와 맞대결하게 돼 있었다. 중앙은 두 집정관이 지키고 있었다.
양군은 용감하게 싸웠다. 상당한 시간 동안 전투를 벌였다. 로마군은 경험과 인내력에서 우세했고, 에트루리아와 라틴 연합군은 병력에서 앞섰다. 양측에서 많은 병사가 쓰러지자 로마군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먼저 좌익에서 싸우던 병사들이 겁을 먹었다. 사령관인 발레리우스와 루크레티우스가 부상을 당해 이송되는 걸 봤기 때문이었다. 우익에서 싸우던 병사들은 타르퀴니우스의 두 아들이 이끄는 군대에 승리를 거두기 직전이었지만 좌익이 달아나는 걸 보고는 똑같은 두려움에 휩싸였다.
로마군은 도시로 달아났다. 그들이 다리를 지나려 할 때 적군이 강력하게 공격해 왔다. 로마는 함락의 위기에 빠졌다. 만약 적군이 달아나는 로마군과 함께 성 안에 들어오면 함락은 시간문제였다.
적의 공격에 맞서 로마군을 구한 것은 세 명의 기지 덕분이었다. 두 명은 노장인 스푸리우스 라르키우스와 티투스 헤르미니우스였다. 이들은 우익을 지휘하던 장군이었다. 그리고 젊은이 한 명도 있었다. 바로 푸블리우스 호라티우스였다. 전투에서 한쪽 눈을 잃어 잘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나중에 코클레스라고 불린 사람이었다.
호라티우스는 아주 잘 생겼을 뿐만 아니라 매우 용감하기도 했다. 그는 집정관인 마르쿠스 호라티우스의 조카였다. 그리고 알바의 삼형제와 싸워 이긴 로마 삼형제 중 한 명인 다른 마르쿠스 호라티우스의 후손이었다.
세 사람은 다리를 등지고 서서 상당한 시간동안 적이 다리를 건너지 못하게 막았다. 이들은 일대일로 싸우다 여러 차례 창과 칼에 맞았다. 하지만 로마 병사들이 모두 다리를 건널 때까지 제자리를 굳건하게 지켰다.
헤르미니우스와 라르키우스는 로마군이 모두 무사히 다리를 건넌 걸 확인했다. 적군과 싸우느라 무기는 사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었다. 이들은 후퇴했다. 호라티우스는 혼자 다리를 지켰다. 두 집정관과 다른 병사들은 이렇게 용감한 병사는 살아야 한다면서 소리를 질렀다.
“호라티우스, 어서 후퇴하게.”
호라티우스는 그들의 말을 듣지 않고 제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헤르미니우스와 라르키우스에게 이렇게 외쳤다.
“병사들을 끌고 와서 다리를 부수도록 하시오. 다리를 거의 다 부수면 소리를 질러 알려주시오.”
호라티우스는 두 사람에게 이렇게 알린 뒤 혼자서 다리를 지켰다. 적들이 몰려오자 칼로 찌르고 방패로 막았다. 다리를 건너려는 시도를 다 막아냈다. 적군은 더 이상 달려들지 못했다.
“저 사람은 죽으려고 작정한 사람이야. 미친 사람이나 마찬가지야.”
호라티우스 양쪽에는 강이 흐르고 있고 바로 앞에는 시체 더미가 쌓여 있어 적군은 그에게 쉽게 접근할 수 없었다. 적군은 멀리서 창과 돌을 던졌다. 어떤 병사들은 칼이나 죽은 사람의 갑옷을 던지기도 했다.
호라티우스는 그들이 던진 무기를 주워 계속 버티며 싸웠다. 그들에게 무기를 되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적이 던지는 무기가 너무 많아 온몸에 많은 상처를 입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창이 엉덩이를 찌르는 바람에 고통이 극심해 움직이기조차 힘들었다. 그때 그는 동료들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다리를 거의 다 부쉈다. 얼른 달아나.”
호라티우스는 무기와 함께 강으로 뛰어들어 급류를 거슬러 헤엄쳤다. 그는 다행히 목숨은 물론 무기도 잃지 않고 건너편으로 갈 수 있었다.
이런 행동 덕분에 호라티우스는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 로마인은 그에게 풀잎관을 씌우고 노래를 부르며 로마로 데리고 갔다. 각 가정에서 시민들이 몰려나왔다. 그가 살아 있을 때 마지막 모습을 보려는 것이었다. 그들은 호라티우스가 부상 때문에 죽는다고 생각했다.
호라티우스가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나자 로마인은 포로 로마노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중무장한 모습의 동상을 세웠다. 그리고 그에게 멍에를 씌운 소를 끌고 갈 수 있는 만큼의 땅을 선사하기로 했다. 공적으로 베푼 영광 외에도 모든 시민은 생필품 부족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호라티우스에게 각각 하루치 식량을 나눠주었다. 이렇게 한 사람은 무려 30만 명을 넘었다.
위기에서 놀라운 용기를 보여준 호라티우스는 로마인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지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그는 부상 때문에 장애를 얻어 더 이상 국가를 위해 봉사할 수 없게 됐다. 이런 불운 탓에 그는 집정관 직이나 군 사령관 자리를 얻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