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에 넘어온 클라우디우스
푸빌리콜라 즉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와 티투스 루크레티우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푸블리콜라는 네 번째, 티투스는 두 번째였다.
두 사람이 집정관으로 일할 때 사비니 족은 모든 도시의 대표를 모아 총회를 열었다.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하겠습니다. 로마와 맺었던 조약은 종잇조각이 됐습니다. 우리는 타르퀴니우스와 맹세했는데, 그는 권력에서 밀려났기 때문입니다.”
사비니 족을 유혹한 사람은 타르퀴니우스의 아들인 섹스투스였다. 그는 여러 도시의 중요 인물이나 영향력 있는 인물을 개인적으로 만나 힘을 합쳐 로마에 맞서라고 독려했다. 그 중에서 두 도시가 그들의 설득에 넘어갔다. 피데나이와 카메리아였다. 이들은 로마에서 이탈해 사비니 족의 동맹이 되기로 했다.
사비니 족은 섹스투스에게 절대 권력을 주어 총사령관으로 임명했다. 그에게 모든 도시에서 병력을 소집할 권리를 부여했다. 그들은 최근 전투 패배의 이유를 병사들의 나약함과 장군들의 어리석음 때문으로 보았다.
사비니 족이 전쟁 준비를 하는 동안 로마에 행운이 찾아와 적에게서 힘을 빼앗아 오게 도와주었다. 로마를 배신하고 떠난 도시들 때문에 생긴 손실을 보충해 주어 균형을 이루게 하는 일이었다.
레길룸이라는 사비니 족 도시에 살던 사람 중에 티투스 클라우디우스가 있었다. 가문이 좋고 재산도 많아 영향력이 큰 사람이었다. 그는 전 재산은 물론 많은 친척과 친구, 상당한 수의 클리엔테스(피후견인)를 데리고 로마에 왔다. 그가 데리고 온 사람은 무장 병력만 해도 500명을 넘었다.
여러 도시에서 권력을 잡고 있던 사람들이 정치적 대립 관계 때문에 클라우디우스를 미워했다. 그는 로마와 전쟁하는 것을 마땅치 않게 생각했다. 총회에서 로마와의 조약이 효력을 잃었다는 주장에 반대했고, 다른 도시 사람들이 통과시킨 결의안을 레길룸 사람들이 인정하지 못하게 했다.
이 때문에 정적들은 그에게 반역죄를 뒤집어 씌워 재판에 넘기려 했다. 재판 결과를 걱정한 그는 모든 재산을 챙겨 친구들과 함께 로마로 가버렸다. 그가 적지 않은 힘을 보태준 덕분에 로마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
원로원은 클라우디우스에게 귀족 신분을 주고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큰 땅을 제공하기로 결정했다. 또 피데나이와 피케티아 사이 지역의 공용 부지를 그에게 선사했다. 그는 이 땅을 사비니에서 따라온 지지자들에게 나눠줄 수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이 사람들은 클라우디우스 씨족을 형성하게 됐다. 오늘날까지 그 명성을 유지하고 있는 씨족이다.
양측은 전쟁에 필요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다. 사비니 족이 먼저 군대를 이끌고 나서 진지 두 곳을 구축했다. 하나는 피데나이에, 다른 하나는 피데나이에서 멀지 않은 곳에 세웠다. 둘 다 재앙이 벌어질 경우 시민들을 보호하는 것은 물론 도시 밖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피난처로 이용될 수 있는 장소였다.
로마의 두 집정관은 사비니 족의 출격 사실을 알게 되자 병사들을 이끌고 나서 각각 다른 곳에 진지를 차렸다. 발레리우스는 사비니 진지 근처에, 루크레티우스는 거기서 멀지 않은 언덕이었다.
전쟁의 결과는 야전에서 재빨리 결정돼야 한다는 게 로마인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사비니 족 장군 섹스투스는 어떤 종류의 위험이라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로마군의 과감성과 일관성에 맞서 야전을 벌이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했다. 그는 밤에 기습공격을 퍼붓기로 결정하고는 해자를 매우고 성벽을 기어오르는 데 필요한 준비를 서둘렀다. 공격 준비가 마무리되자 그는 정예병을 이끌고 로마군 참호로 진군하려고 했다. 그는 피데나이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에 이렇게 알렸다.
‘우리가 진지에서 출격한 사실을 인지하면 곧바로 경무장한 채 피데나이에서 출격하시오. 그리고 적장한 장소에 매복해 있다 루크레티우스가 발레리우스를 도우러 오면 그들 뒤로 돌아가 기습공격을 시도하시오.’
섹스투스는 백인대장들에게 계획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적당한 시간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때 한 탈주병이 로마 진지로 달아나 집정관에게 그의 계획을 일러바치고 말았다. 잠시 후 기병대가 나무를 하던 사비니 족 병사 여러 명을 붙잡아 돌아왔다. 발레리우스는 그들을 따로 분리해 심문했다.
“사비니 장군의 계획은 무엇이냐?”
“사다리와 나무판을 준비하라고 했습니다. 언제, 어디서 사용할 것인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발레리우스는 부관인 라르키우스를 다른 집정관 루크레티우스가 머물고 있는 진지로 보냈다. 적의 의도를 알려주고. 적을 어떻게 공격하는 게 좋을지 자문을 구했다. 발레리우스는 대대장들과 백인대장들을 모아 적 탈주병과 포로들로부터 얻은 정보를 알려주었다. 그리고 각자가 무슨 일을 할지 그리고 암호를 알려주고는 이렇게 격려했다.
“적에게 복수할 최고의 기회를 잡았다. 용감한 병사로서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섹스투스가 정예병을 모아 로마군 진지로 행진을 시작한 시간은 아직 자정 이전이었다. 그는 병사들에게 최대한 조용히 행군하라고 했다.
“로마군 참호 근처까지 갈 때까지 로마군에게 들쳐서는 안 된다.”
맨 앞줄에서 행군하던 병사들은 로마군 진지 근처에까지 접근했다. 그들은 경비용 횃불을 보지도 못했고 초병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했다. 그들은 로마군을 비웃었다.
“초병 초소를 이렇게 내버려두고 안에 들어가 자다니 로마군은 생각 밖으로 매우 멍청하군.”
사비니 병사들은 나무로 여러 곳의 해자를 메우고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해자를 건넜다. 이때 로마군 병사들은 해자와 목책 사이에 무리를 지어 몰래 기다리고 있었다. 어두웠기 때문에 사비니 병사들은 이들을 볼 수 없었다. 로마군 병사들은 해자를 건너오는 사비니 병사들을 하나씩 살해했다. 후미에 있던 사비니 병사들은 한참이나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때 불이 밝혀지고 구름에 가려져 있던 달이 모습을 나타냈다. 그제야 해자로 접근하던 사비니 병사들은 죽어 널브러진 동료들의 시체를 보게 됐다. 뿐만 아니라 로마 병사들이 그들을 공격하러 사방에서 달려들고 있었다. 사비니 병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황급히 달아났다.
로마 병사들은 큰 함성을 지르며 일제히 진지에서 달려 나갔다. 다른 진지에 있는 로마군에게 보내는 신호이기도 했다. 루크레티우스는 기병대를 보내 정찰을 시켰다. 적이 매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보병 정예병을 이끌고 뒤를 따라갔다. 기병대는 피데나이에서 나와 매복 중이던 사비니 병사들을 발견하고 공격을 퍼부었다. 뒤따라오던 로마군 보병이 그들을 추격해 학살했다. 이 공격에서 사비니군과 그들의 동맹군 병사 1만 3천500명이 목숨을 잃었다. 4천200명은 포로로 붙잡혔다. 그들의 진지도 함락 당했다.
피데나이는 며칠간 포위공격에 시달리다 결국 함락당하고 말았다. 피데나이 사람들이 공격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병사를 거의 배치하지 않은 쪽으로 로마군이 쳐들어갔기 때문이었다. 로마군은 피데나이 사람들을 노예로 삼지도 않았고 피데나이를 파괴하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사형당하는 일도 거의 없었다. 두 집정관은 이렇게 판단했다.
“전투에서 패한 사람들이 죽고 재산과 노예를 빼앗긴 것만으로도 피데나이 사람들이 저지른 실수에 충분한 처벌이다. 피데나이 사람들이 다시 무장하지 않도록 하려면 로마의 관습대로 온건한 대책이 필요하다. 주범만 처벌하면 된다.”
두 집정관은 피데나이 사람들을 광장에 모아놓고 이렇게 연설했다.
“여러분 모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형당해 마땅합니다. 여러분이 로마로부터 받은 호의에 보답하거나 과거의 불행에서 교훈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러분 중에서 주모자만 매질하고 사형시킬 것입니다. 나머지는 예전처럼 피데나이에서 계속 살 수 있게 허용하겠습니다.”
두 집정관은 피데나이에 주둔군을 남겨두기고 결정했다. 피데나이 사람들의 땅을 빼앗아 주둔군 병사들이 이용하게 했다. 이렇게 일을 마무리한 두 집정관은 군대를 이끌고 귀향했다. 그리고 원로원 결정에 따라 개선식을 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