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푸블리콜라(5)

영웅의 아름다운 최후

by leo


투베르투스라는 별명을 가진 푸블리우스 포스투미우스가 두 번째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동료 집정관은 라타누스로 불린 아그리파 메네니우스였다.


사비니 족은 다시 대군을 이끌고 로마로 쳐들어왔다. 벌써 세 번째 전쟁이었다. 그들은 로마가 미처 대비하기도 전에 성 앞까지 쳐들어왔다. 로마는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전혀 예상도 못하고 있어 인근 성채로 피할 수도 없었던 농부들뿐만 아니라 당시 시내에 살고 있던 사람들도 많이 죽었다.


포스투미우스는 적의 공격을 참을 수 없었다. 그는 서둘러 젊은이들을 모아 성벽 밖의 로마인을 구하러 달려 나갔다. 신중함이 결여돼 있었고 열정만 넘쳐난 공격이었다. 사비니군은 로마군이 질서도 없이 서로 흩어져서 무모하게 쳐들어오는 것을 보고는 마치 도망가는 것처럼 후퇴했다. 이들은 다른 병사들이 대기하고 있는 숲으로 포스투미우스를 끌어들였다.


숲에서 갑자기 돌아선 그들은 로마군과 격돌했다. 동시에 다른 사비니군이 큰 함성을 지르며 숲에서 뛰어나와 로마군을 공격했다. 사비니군은 수에서 압도적으로 우세했다. 이들은 대오를 갖추지 않고 무질서한데다 급히 달려오느라 지친 로마군을 맹공격했다.


로마군은 큰 피해를 입고 달아났다. 사비니군이 로마로 이어지는 도로를 봉쇄하는 바람에 이들은 인근 언덕으로 달아날 수밖에 없었다. 사비니군이 언덕을 에워싸고 곳곳에 병사를 배치해 지키는 바람에 로마군은 갇히고 말았다.


이런 비극적인 소식은 곧 로마에 전해졌다. 로마에는 혼란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이 성벽으로 올라가 상황을 살폈다. 그들의 입에서 두려워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투에서 승리한 사비니군이 밤을 틈타 로마로 쳐들어올지도 모른다.”


“얼마나 많은 병사가 전투에서 학살당했을까? 서둘러 지원병이 달려가지 않으면 살아남은 병사들도 식량 부족 때문에 얼마 못가 포로로 붙잡힐 거야.”


모든 로마인은 그날 밤을 불안 속에서 뜬눈으로 지새울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다른 집정관 메네니우스는 모든 로마인을 무장시킨 뒤 대오를 갖춰 성벽 밖으로 행군했다. 언덕에 갇힌 병사들을 구하러 나간 것이었다. 로마군의 접근을 지켜본 사비니군은 더 이상 머무르지 않고는 언덕에서 철수해 달아났다.


“가축, 노예, 돈 등 전리품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다.”


로마인은 이 패배를 개탄했다. 그들은 주저하지 않고 전군을 모아 사비니 영토로 쳐들어가기로 했다. 로마인은 아주 부끄러우면서도 예기치 않았던 패배를 설욕하고 싶어 어쩔 줄 몰랐다. 그때 사비니에서 사절이 와 이렇게 요구했다.


“우리는 로마군에 이미 대승을 거뒀소. 우리의 요구를 로마가 거절한다면 주저하지 않고 로마를 점령할 것이오. 타르퀴니우스의 귀국을 허용하시오. 그리고 로마의 주권을 사비니에 넘기시오. 우리가 요구하는 대로 정부 형태를 바꾸고 법도 고치시오.”


그들의 무례하고 거만한 태도가 로마인을 더욱 화나게 했다. 거만한 사비니 사절에 로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당장 돌아가서 사비니 족 총회에서 이렇게 전하시오. 무기를 내려놓고 모든 도시를 로마에 넘기시오. 그리고 이전처럼 우리에게 복종하도록 하시오. 평화를 원한다면 이런 요구를 다 받아들인 뒤 사비니군이 갑자기 쳐들어와 로마에 끼친 피해에 대해 재판을 받고 보상하도록 하시오. 우리 요구를 거부한다면 당신들의 도시에서 엄청난 전쟁이 벌어지는 걸 보게 될 것이오.”


로마와 사비니는 이런 요구를 주고받은 뒤 전쟁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 그리고 양측 모두 전군을 이끌고 들판으로 나섰다. 사비니군은 훌륭한 무기를 갖춘 청년들을 모든 도시에서 불러 모았다. 로마는 로마뿐만 아니라 여러 성채에서 모든 병사를 소집했다. 나이가 많은 병사들과 노예들은 도시와 성채를 지키라고 지시했다. 양측 군대는 사비니 도시인 에렉툼 근처에서 지척 거리에 진지를 차렸다.


양측 군대는 적의 동정을 살폈다. 서로 진지의 크기나 포로에게서 얻은 정보로 상황을 판단했다. 사비니군은 확신을 가졌다. 로마군의 병력이 형편없이 적었던 것이다. 반면 로마군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로마군은 용기를 가지기로 했다. 신이 여러 가지 호의적 조짐을 보냈기 때문에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었다. 특히 전투를 앞두고 대열을 정비할 때 봤던 마지막 조짐은 그들을 더욱 격려했다. 그것은 이런 내용이었다.


로마인은 진지의 천막 옆 땅에 창을 꽂아둔다. 날카로운 철제 머리에 길이는 1m 정도인 창이다. 던지면 앞으로 곧바로 날아가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곳곳에 세워놓은 창의 머리에서 화염이 솟아올랐다. 마치 횃불처럼 진영 전체를 밝힐 정도로 환했다. 화염은 밤새도록 타올랐다. 점술가는 이 현상을 이렇게 해석했다.


“하늘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주 빨리 손쉽게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모든 것은 불에 굴복한다. 불에 타지 않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로마군은 엄청난 용기와 힘에 충만한 채 전투에 나섰다. 수에서는 절대적으로 열세였지만 용기를 굳게 믿고 병력이 몇 배나 많은 사비니 군대에 맞서 싸웠다. 여기에 로마군의 오랜 경험과 어떤 고난이라도 견디려는 의지가 더해졌다. 어떤 위험에도 굴하지 않겠다는 로마 병사들의 용기가 불타올랐다.


좌익을 맡은 포스투미우스는 지난번의 패배를 설욕할 욕망에 불타고 있었다. 그는 적의 우익을 뒤로 밀어냈다. 그의 머리에는 목숨은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직 승리를 얻겠다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는 미쳤거나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처럼 적진 한가운데 뛰어들었다.


우익에서 메네니우스의 지휘를 받던 로마군은 엄청난 위기에 몰렸지만 물러서지 않고 끝까지 버텼다. 그들은 포스투미우스의 병사들이 적군을 압도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더 힘을 내어 적을 밀어붙였다.


사비니군은 좌익과 우익 모두 무너지는 바람에 대패를 당하고 말았다. 중앙에 선 사비니군은 양쪽 측면이 무너진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됐다. 그들은 로마군 기병의 압박을 받는 바람에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사비니군은 모두 진지로 달아났다. 로마군은 그들을 추격해 진지를 곧바로 함락했다. 사비니군의 전멸을 막은 것은 시간이었다. 밤이 찾아오는 바람에 달아난 사비니군은 겨우 고향으로 도망갈 수 있었다.


다음날 두 집정관은 사망한 로마군 병사를 화장했다. 그리고 전리품을 모으고 포로를 로마로 이송했다. 포로는 상당히 많았다. 전리품 외에 병사들이 빼앗은 약탈품도 상당했다. 전리품은 경매로 판매했다. 모든 로마인은 개인 분담금을 돌려받았다. 그들은 전쟁 장비를 준비하느라 비용을 각자 지출했던 것이었다.


두 집정관은 가장 명예로운 승리를 거둔 뒤 귀향했다. 원로원은 두 집정관에게 개선식을 거행할 영광을 부여했다. 메네니우스는 더 크고 더 영광스러운 개선식을 거행했다. 그는 전차를 타고 로마로 들어갔다.


반면 포스투미우스는 조금 작은 개선식을 거행했다. 로마인은 이런 개선식을 오바티오(박수갈채)라고 불렀다. 오바티오는 정규 개선식과 달랐다. 오바티오 개선식을 거행하는 장군은 전차를 타지 않고 걸어서 시내로 들어간다. 뒤에는 군대가 따른다. 장군은 황금으로 장식하지도않고 수도 놓은 옷을 입지 않는다. 황금 왕관을 쓰지도 않는다. 그는 집정관이나 법무관의 공식 의상인 자주색 단을 댄 하얀 토가를 입을 수 있을 뿐이다. 그리고 월계관을 쓴다. 홀을 들 수도 없다. 나머지는 정식 개선식을 치르는 장군과 똑같이 할 수 있다.


포스투미우스가 사비니와의 마지막 전투에서 어느 누구보다 용감히 싸워 눈에 띄었음에도 오바티오 개선식을 치르게 된 것은 처음에 겪었던 처참하고 부끄러운 패배 때문이었다. 그는 많은 병사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살아남은 병사들과 함께 겨우 포로가 되는 걸 모면했다.


두 사람이 집정관일 때 푸블리콜라로 불렸던 푸블리우스 발레리우스가 병에 걸려 숨졌다. 그는 당대에 모든 미덕에서 어떤 로마인보다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가 가장 존경받은 단 한 가지 이유만 설명하고자 한다.


발레리우스는 왕정을 폐지하고 왕의 재산을 압수한 첫 네 귀족 중 한 명이었고, 네 차례나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그는 두 번의 전쟁에서 승리를 거둬 두 차례 개선식을 거행했다. 첫 개선식은 에트루리아를 상대로 한 전쟁 이후였고, 두 번째는 사비니 족을 상대로 한 전쟁 이후였다.


그는 엄청난 부를 쌓을 기회를 많이 잡았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그를 부끄럽게 여기거나 잘못했다고 비방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람을 노예로 만들고 가치 없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탐욕에 사로잡혔다고 욕할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발레리우스는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작은 땅을 부쳐 먹고 살았다. 자기 통제력이 뛰어났고 어떤 욕망에도 굴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았다. 아주 적은 돈으로도 자식들을 출생 신분에 걸맞게 키웠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많이 가져서 부자가 아니라 적게 요구하기 때문에 부자입니다.”


발레리우스가 인생을 통틀어 보여준 근검절약의 증거는 죽은 뒤에 드러났다. 그는 훌륭한 위엄을 가진 사람에게 어울리는 장례식을 치르거나 그런 무덤을 마련할 수 있을 만큼의 재산을 남기지 않았다. 가족은 마치 평범한 평민이 죽은 것처럼 그의 시체를 아주 초라하게 로마 밖으로 이송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조용히 화장하고 묻으려고 했다.


원로원은 발레리우스와 그의 가족이 얼마나 궁핍한지 뒤늦게 알게 됐다. 그래서 이렇게 결정했다.


“발레리우스의 장례식 비용을 국고에서 부담한다. 포로 로마노 인근 벨리아 언덕 기슭에 장소를 정해 화장식을 치르고 매장한다.”


로마에서 이 같은 영광은 오늘날까지도 발레리우스 외에는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로마 시내에는 죽은 사람을 매장할 수 없다’는 법이 생겼다. 그가 묻힌 곳은 아주 신성한 곳으로 간주됐다. 원로원은 그의 후손들도 그곳에 묻힐 수 있게 허용했다. 어떤 재산보다 더 큰 영광이었다.


하루를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 말고는 아무것도 구하려 하지 않았던 발레리우스는 로마인로부터 화려한 장례식을 선물로 받았다. 마치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왕의 장례식 같았다.


로마의 모든 귀부인은 한마음으로 1년 내내 그를 기렸다. 유니우스 브루투스가 죽었을 때와 똑같았다. 귀부인들은 그 동안 귀금속을 착용하지 않았고 자주색 옷도 입지 않았다. 아주 가까운 친척이 죽었을 때 장례식을 거행한 뒤에 이런 식으로 망자를 기리는 게 로마인의 관습이다. 그들은 그만큼 발레리우스를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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