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동맹의 반발
이듬해에는 베켈레누스라는 별명을 가진 스푸리우스 카시우스와 오피테르 베르키니우스 트리코스투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스푸리우스는 사비니와의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는 쿠레스 근처에서 힘든 전쟁을 벌여 승리했다. 사비니군 1만 300명이 죽었고 4천 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마지막 비극에 압도당한 사비니는 스푸리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 평화를 간청했다.
사절단은 스푸리우스의 조언에 따라 로마로 갔다. 그들은 여러 차례 간곡하게 호소한 끝에 겨우 화해와 전쟁 종식을 허가받을 수 있었다. 원로원의 조건은 이러했다.
“스푸리우스가 원하는 만큼 로마군에 곡식을 제공해야 하오. 각 병사에게는 보상금을 주고, 땅 800만 평을 로마에 넘겨주시오.”
스푸리우스는 개선식을 거행했다. 다른 집정관 베르기니우스는 카메리아를 상대로 전쟁에 나섰다. 로마가 사비니와 전쟁을 하는 사이 로마와의 동맹을 파기하고 이탈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로마군 절반을 이끌고 출정했다. 어디로 가는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그는 밤새 행군했다. 카메리아가 로마군의 접근을 모르고 준비를 하지 않았을 때 기습공격을 감행하려는 것이었다.
로마군이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카메리아 성벽 근처까지 접근했을 때 날이 밝았다. 그는 진을 치기 전에 공성기와 사다리를 준비했다. 그리고 포위 작전에 사용할 모든 장비를 동원했다. 카메리아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로마군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그들의 견해는 엇갈렸다.
“당장 문을 열고 집정관을 받아들여 항복해야 합니다.”
“모든 힘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적을 도시 안으로 들여서는 안됩니다.”
카메리아 시내에서는 혼란과 분열이 이어졌다. 로마군은 성문을 부수고 성벽 낮은 쪽으로 타고 올라가 카메리아를 점령했다. 그는 병사들에게 하루 동안 약탈을 허용했다. 다음날에는 포로들을 한 장소에 모으게 했다. 반란 주모자를 처형하고 나머지는 노예로 팔아버렸다. 카메리나는 잿더미로 만들었다.
BC 499년 포스투무스 코미니우스와 티투스 라르키우스가 집정관 자리에 올랐다. 라틴 도시들은 연이어 로마와의 선린 동맹에서 탈퇴했다. 타르퀴니우스의 사위인 옥타비우스 마밀리우스가 각 도시들의 유력 인사들을 설득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때로는 선물을 주고 때로는 간절히 호소하면서 타르퀴니우스의 복권을 도와달라고 애원했다.
라틴 도시 총회가 열렸다. 로마를 제외하고 모든 도시가 페렌티눔에서 모이기로 했다. 총회에서 전쟁과 관련해 투표를 할 계획이었다. 또 누구를 장군으로 선출하고 전쟁 준비를 어떻게 할지 결정할 방침이었다.
이 무렵 집정관급 인사인 마르쿠스 발레리우스가 로마 사절로 여러 도시를 돌며 반란에 가담하지 말라고 호소하고 있었다. 당시 여러 도시의 권력자들이 병사들을 보내 로마의 농토를 약탈하고 로마 농부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르쿠스 발레리우스는 라틴 도시 총회가 열려 전쟁과 관련한 투표를 실시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직접 총회장에 갔다. 그는 총회 의장에게 발언권을 달라고 요청했다.
“저는 로마가 여러 도시에 보낸 사절입니다. 일부 도시가 로마에 도적떼를 보냈기 때문입니다. 저는 여러 도시에 가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붙잡아 로마에 넘겨달라고 했습니다. 이 도시들이 선린 동맹에 가입할 때 맺은 조약의 조항에 따른 요구였습니다. 앞으로는 새로운 범죄 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런 일 때문에 선린관계에 금이 가지 않도록 신경을 써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도시가 여기에 모여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할 준비를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저는 여러 증거를 갖고 있습니다. 로마는 참석을 통지받지 못한 유일한 도시라는 점도 그런 증거 중 하나입니다. 동맹 조약에는 ‘의장이 총회를 소집할 경우 모든 라틴 도시는 참석해야 한다’는 규정이 있는데도 말입니다.
로마에 대해 왜 화가 났고 어떤 불만이 있기에 모든 도시가 총회에 참석하도록 초청받았는데 로마만 유독 빠졌는지 이상하군요. 로마는 동맹의 지도자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에 총회에 가장 먼저 참석해서 가장 먼저 의견을 제시하는 도시가 아니던가요? 로마는 여러 도시에 큰 이익을 주는 대신 지도자 역할을 맡는 데 여러분은 동의하지 않았던가요?”
마르쿠스 발레리우스가 연설을 끝내자 아리키아에서 온 대표가 연설 기회를 얻었다.
“로마는 우리를 에트루리아 전쟁에 끌어들였습니다. 우리 도시뿐만 아니라 모든 라틴 도시가 에트루리아인에게 자유를 빼앗겼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라틴 도시와 선린조약을 맺은 바 있는 타르퀴니우스 왕은 우리에게 조약의 맹세를 지키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피데나이와 카메리아에서 탈출한 사람들은 불만을 터뜨렸다. 피데나이 사람들은 “우리 도시는 함락됐다. 주민들은 추방됐다”고 한탄했다. 카메리아 사람들은 “고향 사람들은 노예로 전락하고 도시는 잿더미로 변했다”고 개탄했다.
“로마에 전쟁을 선포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타르퀴니우스의 사위인 마밀리우스가 일어났다. 그는 긴 연설을 통해 로마를 맹비난했다.
발레리우스는 그들의 비난에 일일이 응수했다. 주장의 정당성이라는 측면에서 로마가 옳다고 반박했다. 각 도시 대표는 어떤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비난과 반박을 되풀이하면서 하루를 허비하고 말았다. 다음날 의장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더 이상 로마 사절은 총회에 참석하지 마시오.”
의장은 타르퀴니우스와 마밀리우스, 아리키아 대표, 그리고 로마를 비난하고 싶어 하는 다른 도시 대표에게 말할 기회를 준 뒤 투표를 실시했다. 의장은 발레리우스에게 투표 결과를 이렇게 통보했다.
“로마와의 조약은 효력을 상실했소. 로마가 부당한 행동을 계속했기 때문에 라틴 도시와의 유대 관계는 끊어진 것이오. 어떤 식으로 로마를 처벌할지는 시간을 두고 고려하겠소.”
라틴 도시 총회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로마 시내에서는 또 다른 음모가 꾸며지고 있었다. 많은 노예가 여러 언덕을 점령하고 곳곳에 불을 지르기로 한 것이었다.
그들의 음모는 사전에 발각됐다. 두 집정관은 성문을 닫고 주요 지역에 병사를 배치했다. 두 집정관은 이어 밀고자가 일러준 대로 공모에 가담한 노예를 붙잡아 들였다. 그들을 매질하고 고문한 뒤 십자가에 못 박았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와 마니우스 툴리우스 롱구스가 집정관일 때 피데나이 시민 중 일부가 타르퀴니우스의 지원을 받아 피데나이에 있는 성채를 점령했다. 그들은 생각을 달리 하던 피데나이 사람들을 죽이거나 추방시켰다. 그리고 로마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다.
로마는 사절단을 보냈다. 피네나이 반란 세력은 이들을 적처럼 취급했다. 노인들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렸다. 이들은 로마 사절단을 도시에서 쫓아내버렸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들으려 하지 않았다.
로마 원로원은 여러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모든 라틴 도시를 상대로 전쟁을 할 생각은 없었다. 모든 도시의 모든 사람이 총회 결정 내용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은 전쟁을 꺼렸다. 조약을 그대로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조약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보다 많았다.
로마는 집정관 마니우스 툴리우스에게 대군을 주어 피데나이로 쳐들어가게 했다. 그는 피데나이 영토를 초토화시키면서 전진했다. 아무도 그들을 막으러 나서지 않았다. 툴리우스는 성벽 근처에 진지를 차렸다. 그리고 성 안의 주민들이 외부로부터 식량, 무기 등 여러 가지 지원을 받을 수 없게 했다. 피데나이는 이렇게 해서 성벽 안에 갇혀 버렸다. 그들은 여러 라틴 도시에 사절을 보냈다.
“즉시 지원을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라틴 도시 총회의 의장은 다시 회의를 소집했다. 그는 타르퀴니우스 일파와 피데나이 사절에게 연설 기회를 주었다. 그리고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과 가장 저명한 인사들부터 시작해서 각 대표에게 견해를 밝히라고 했다.
“로마와 어떻게 전쟁을 벌이는 게 가장 좋겠습니까?”
많은 대표가 의견을 내놓았다. 격정적인 사람들은 이렇게 주장했다.
“타르퀴니우스를 왕 자리에 돌려놓아야 합니다. 피데나이를 도우러 가야합니다.”
이들은 군 사령관 자리에 올라 큰 전투에 참가하고 싶어 했다. 각 도시에서 절대 권력을 원하던 사람들이 주로 이런 목소리를 냈다. 타르퀴니우스 일가를 지원해 로마의 왕 자리에 돌려놓을 경우 그들이 권력을 잡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기대했다. 반면 재산이 많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다르게 주장했다.
“우리는 조약을 지켜야 합니다. 성급하게 무기를 들어서는 안 됩니다.”
평화론자는 평민에게서 큰 호응을 얻었다. 전쟁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평화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밀리게 됐다. 주전론자는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로마에 사절단을 보내 총회에 초청합시다. 그리고 타르퀴니우스와 다른 망명객들을 사면해서 받아들이고 전통적인 정부형태로 돌아가라고 요구합시다. 피데나이에서는 철수하라고 합시다. 라틴 도시들은 친척이 나라를 빼앗기는 걸 그냥 두고 볼 수 없다는 이유를 붙이면 됩니다. 로마가 어떤 것도 받아들이지 않으면 전쟁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로마가 절대 이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은 적대감을 숨기려 했을 뿐이었다. 이들은 그 동안에 반대편을 유혹하고 호의를 베풀어 생각을 돌리게 만들 생각이었다. 라틴 총회는 이런 결정을 내렸다.
‘1년 기한을 둔다. 로마는 우리 제안을 검토해야 한다. 그 사이 우리는 여러 가지를 준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