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C 495년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니우스와 마르쿠스 미누키우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두 집정관은 군사적 활동은 물론 역사에 남길 가치가 있는 행정적 업적을 남긴 게 없었다. 라틴 도시들과의 휴전이 로마에 쉴 틈을 주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채무 상환을 유예하는 법은 채무 탕감을 원하는 빈민이 일으킨 혼란을 잠재우는 효과를 발휘했다. 원로원은 다음과 같은 법을 발표했다.
‘로마인과 결혼한 로마 출생 여인은 남편과 함께 로마에 남을지 아니면 다른 도시로 떠날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남자 아이는 아버지와 함께 남아야 하며 여자 아이는 어머니를 따라가야 한다.’
로마와 라틴 도시는 친척이자 친구 관계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여인이 결혼을 통해 다른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원로원 법령에 따라 자유를 얻은 여인들은 대부분 로마에 살겠다고 했다. 라틴 도시에서 남편과 살고 있는 로마 출신 여성들은 아버지에게 돌아갔다. 반면 로마인과 결혼한 라틴 여성들은 딱 두 명만 제외하고는 모국으로 가지 않고 남편과 함께 사는 길을 선택했다. 이것은 앞으로 전쟁에서 누가 이길지를 미리 알려주는 행복한 조짐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집정관 시기에 포로 로마노에서 카피톨리노 언덕으로 이어지는 길 쪽에 사투르누스 신전이 완공돼 봉헌식을 치렀다. 해마다 사투르누스 신을 기리는 축제와 희생제례를 국가 비용으로 치르기로 결정했다.
사투르누스 신전 앞에는 헤라클레스가 만들었다고 알려진 제단이 옮겨졌다. 헤라클레스에게서 성스러운 희생제례를 치를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리스 전통에 따라 이 제단에서 번제 제물로 첫 수확물을 바쳤다. 일부 역사학자는 이 신전을 건립한 사람은 전년도 집정관인 티투스 라르키우스라고 주장한다. 다른 역사학자는 왕 자리에서 쫓겨난 타르퀴니우스라고 말한다.
다음 해 집정관은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와 티투스 베르기니우스였다. 이 해에 라틴 도시들과의 휴전이 종료됐다. 양측은 전쟁 준비를 다시 시작했다. 로마 측에서는 모든 시민이 자발적으로, 열정적인 의지를 갖고 싸움에 대비했다. 하지만 라틴 도시의 경우 대부분 열정이 부족했고 마지못해 움직였다.
라틴 도시들의 지도자들은 타르퀴니우스와 마밀리우스로부터 뇌물을 받아 부패한 상태였다. 전쟁을 원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은 의사 결정 과정에서 제외돼 있었다. 말할 권리는 더 이상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았다.
많은 사람은 이런 상황을 개탄하면서 도시를 떠나 로마로 이주했다. 도시를 장악한 사람들은 그들이 떠나는 걸 막으려 하지 않았다.
“저들은 자발적으로 추방을 선택했습니다. 오히려 적에게 큰 부담을 지우게 될 것입니다.”
로마는 그들을 모두 받아들였다.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성벽 안에서 로마를 지키는 일을 맡겼다. 그들을 백인대에 나눠 배치해 일부는 도시 인근 요새로 보냈고, 일부는 식민지에 분산 배치했다. 그들이 소동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전쟁을 앞두고 로마인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현재 상황은 다시 한 번 한 명의 행정관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판단에 따라 모든 일을 처리하고 행동에는 책임질 필요가 없는 독재관을 선출해야 합니다.”
두 집정관 중에서 나이가 적은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가 동료 집정관 베르기니우스에 의해 독재관으로 임명됐다. 그는 선례에 따라 티투스 아이부티우스 엘바를 사마관으로 선임했다.
포스투미우스는 병역 의무를 진 모든 로마인을 등록시켜 4개 군단으로 나누었다. 한 군단은 그가 직접 통솔하고 두 군단은 베르기니우스와 아이부티우스에게 맡겼다. 나머지 한 군단은 로마 방어 임무를 맡은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에게 할당했다. 독재관이 전쟁 준비를 다 마치자 정찰병이 돌아와 정보를 전했다.
“라틴동맹은 전군을 이끌고 출정했습니다. 소규모 로마 주둔군이 배치돼 있던 코리비오를 기습 공격해 함락했습니다.”
라틴군은 주둔군을 모두 죽이고 코리비오를 완전히 파괴해버렸다. 그들은 이 지역을 전쟁 준비를 위한 베이스캠프로 삼기로 했다. 라틴군은 시골 지역에서 가축을 약탈하거나 노예를 사로잡지는 못했다. 이미 오래 전에 농부들은 가축 등 전 재산을 챙겨 근처의 성채로 피난했기 때문이었다. 라틴군은 대신 버려진 집에 불을 지르고 농지를 초토화시켰다.
볼스키 족의 주요 도시인 안티움에서 파견한 적당한 규모의 군대가 라틴군에 합류했다. 그들은 무기, 곡식 등 전쟁에 필요한 모든 물품을 갖추고 있었다.
“안티움 군대가 합류했으니 볼스키 족의 다른 도시들도 머지않아 우리에게 힘을 보태러 달려 올 것이다.”
포스투미우스는 정보를 입수한 뒤 서둘러 출정했다. 적이 군대를 다 모아 더 강력해지기 전에 공격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군단을 이끌고 밤에 강행군해 라틴군 인근에 도착했다. 라틴군은 레길루스 호수 근처에 진을 치고 있었다. 포스투미우스는 라틴군이 접근하기 어려운 위쪽 언덕에 진을 꾸렸다.
“이곳에 캠프를 차리면 적보다 많은 이점을 누릴 수 있을 것이오.”
라틴군의 사령관은 섹스투스 타르퀴니우스와 옥타비우스 마밀리우스였다. 다른 곳에 진지를 설치했던 둘은 병력을 합쳤다. 두 장군은 천인대장과 백인대장들을 모두 모아 의견을 물어보았다.
“전쟁을 어떻게 치르는 것이 좋겠는가?”
바로 공격하자는 주장이 가장 먼저 나왔다.
“로마의 독재관이 접근하기 어려운 언덕에 진지를 차린 것은 자신감을 가진 게 아니라 겁을 먹었다는 증거입니다. 적은 아직 두려움에 휩싸여 있습니다. 바로 공격하는 게 좋겠습니다.”
다른 견해도 나왔다.
“해자를 파서 로마군을 진지에 가두면 어떨까요. 일부 병력을 주둔시켜 그들을 꼼짝 못하게 만들어놓고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로마로 진군하는 겁니다. 로마군 정예병은 여기 출정했기 때문에 로마는 쉽게 함락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기다리자는 사람도 있었다.
“볼스키 족의 여러 도시에서 올 병력과 다른 동맹 도시에서 파견할 병력이 합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게 낫습니다. 무모한 공격보다는 안전한 방법을 고르는 겁니다. 시간을 끌수록 로마는 불리해집니다. 반면 우리는 시간이 늘어질수록 유리해집니다.”
라틴군의 천인대장, 백인대장 회의가 벌어지는 동안 티투스 베르기니우스가 통솔하는 두 번째 로마군단이 도착했다. 그는 포스투미우스가 떠난 다음날 출발했던 것이었다. 그는 독재관의 진지에서 떨어진 산등성이에 캠프를 차렸다. 바위가 많아 아주 위치가 좋은 곳이었다.
독재관의 군단은 오른쪽에, 베르기니우스의 군단은 왼쪽에 진지를 차린 탓에 라틴군은 로마로 가는 길을 차단당하고 말았다. 라틴군 지도부의 혼란은 더 커졌다.
“무엇보다 안전을 우선시합시다. 그리고 로마군의 두려움도 고려합시다. 시간을 끌수록 우리의 식량 보급량은 늘어날 것이오.”
포스투미우스는 라틴군 장군들의 경험 부족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사마관 티누스 아이부티우스에게 최정예 기병과 경무장 보병을 데리고 가라고 명령했다.
“라틴군에게 식량을 보급하는 길 중간에 있는 언덕을 점령하시오.”
라틴군이 눈치 채기 전 깊은 밤에 아이부티우스가 이끄는 병력은 진지를 떠나 숲속을 행진한 끝에 언덕을 차지했다. 라틴군의 두 장군은 후미에 위치한 중요한 장소를 로마군에게 빼앗긴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라틴에서 보급품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없게 됐군요. 로마군이 목책과 해자로 캠프를 강화하기 전에 언덕에서 몰아냅시다.”
섹스투스는 말에 올라 병력을 이끌고 전속력으로 로마군이 점령한 언덕으로 달려갔다.
‘로마군은 기습을 전혀 예상하지 못할 거야.’
아이부티우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용감하게 공격을 막아냈다. 섹스투스는 전진과 후퇴를 되풀이하며 계속 싸웠다. 언덕을 점령하고 있던 로마군은 지형적 특성 덕분에 큰 도움을 받았다. 반면 아래에서 공격하던 라틴군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손해만 보면서 비효율적인 고생만 하고 있었다.
이때 포스투미우스가 추가 지원병을 보냈다. 섹스투스는 더 이상 공격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진지로 돌아갔다. 포스투미우스는 추가 병력을 보내 언덕 방어를 더 강화했다.
마밀리우스와 섹스투스는 더 이상 시간을 끌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일찍 전투를 벌여 결론을 내기로 결심했다.
두 사람의 생각을 모르던 포스투미우스는 처음에는 전투를 하지 않고 전쟁을 끝내고 싶어 했다. 두 적장의 경험 부족을 잘 이용하면 그런 결과를 얻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나중에는 서둘러 전투를 벌여 결말을 짓기로 결심했다. 여러 도로에서 정찰 활동을 하던 기병이 라틴군의 연락병을 붙잡았는데 볼스키 족이 라틴 장군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압수했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이틀 뒤 볼스키 군대가 도착할 것이오. 헤르니키 군대도 며칠 안에 도착할 것으로 기대하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