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원인 모를 불행한 일이 갑자기 생기곤 합니다. 용기를 내지 않는다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누구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서쪽 바닷가 높은 언덕 오두막에서 행복하게 살던 목동 가족에게 그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목동에게는 아내와 세 아들 그리고 딸 하나가 있었습니다. 큰아들과 둘째아들은 하루 종일 산과 들로 다니며 사냥을 했습니다. 어린 막내아들은 아버지를 따라 염소들을 산에 몰고 갔습니다. 딸은 바다에 직접 뛰어들거나 낚싯대로 물고기를 잡았습니다. 목동 가족은 먹을거리가 넘쳐난 덕분에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면서 아무런 걱정없이 즐겁고 단란하게 살았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염소 가죽을 팔러 다른 마을로 가는 사이에 막내아들 혼자 염소들을 몰고 언덕에 나갔습니다. 점심 무렵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고 날씨가 매우 쌀쌀해졌습니다. 아주 짙은 안개가 바다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더니 언덕을 하얗게 뒤덮어 버렸습니다. 안개를 틈타 숲에서 아주 거칠고 억센 손이 나타나더니 막내아들을 잡아가버렸습니다.
밤이 깊어가자 염소들은 늘 하던 대로 한 마리씩 집에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염소를 데리고 갔던 막내아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막내가 왜 집에 오지 않는 것이지?”
아버지와 세 남매는 모두 언덕에 가서 사라진 막내를 찾아보았습니다. 하지만 어두운데다 안개마저 짙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바다가 어딘지, 산이 어딘지는 물론 손과 발이 어디 있는지도 알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아버지와 세 남매는 할 수 없이 그대로 집에 돌아갔습니다. 막내 걱정을 하느라 가족 중에서 어느 누구도 밤새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없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 밝았을 때 바다에서 올라왔던 안개는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가족은 언덕은 물론 바다와 근처 숲을 돌며 막내아들을 찾아다녔습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막내아들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조금씩 시간이 흐르더니 어느 새 1년 하고도 하루가 지났습니다. 목동 가족의 슬픔은 날이 갈수록 줄어들기는커녕 커져갔습니다. 막내동생을 보고 싶어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큰아들 아르단이 어느날 아침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막내가 우리 곁을 떠난 지 1년 하고도 하루가 지났습니다. 분명히 나쁜 악마가 일을 시키려고 붙잡아갔을 겁니다. 동생을 찾으러 다녀오겠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의 용기를 기특하게 생각하면서도 가슴에서 올라오는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찾으러 간다니 참 용기있는 생각이구나. 하지만 미리 아버지, 어머니와 상의를 한 뒤에 결정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고생스러운 먼 길을 떠나는 큰 아들을 위해 떡을 두 개 구웠습니다. 큰 떡과 작은 떡이었습니다.
“내가 만든 떡을 갖고 가거라. 모험이 얼마나 길어질지 누가 알겠니? 둘 중 하나를 고르거라. 나의 축복이 담긴 작은 떡과 먹을 게 많은 큰 떡 중에서 어느 것을 선택하겠니?”
“큰 걸 고를게요. 굶어 죽을 처지가 되면 어머니의 축복이라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아르단은 어머니가 챙겨준 큰 떡을 보따리에 넣고 혼자서 길을 나섰습니다. 원래 덩치가 크고 용맹스러웠던 그는 씩씩하게 걸어갔습니다. 바위뿐인 험한 산길과 가도가도 끝이 없을 정도로 높은 언덕,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강도 그를 막지 못했습니다.
아르단은 하루종일 쉬지 않고 걸었기 때문에 저녁 무렵 무척 배가 고파졌습니다. 게다가 지나치게 무리한 탓에 힘이 다 빠지고 너무 지쳐 더 이상 걸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는 눈앞의 바위에 그대로 털썩 주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가 구워준 큰 떡을 보따리에서 꺼내 먹기 시작했습니다.
“떡 한 조각만 나눠주세요.”
바위 근처 높은 나무의 둥지에 앉아 있던 까마귀가 날아오더니 불쌍한 목소리로 떡을 조금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르단은 까마귀를 흘깃 쳐다보더니 냉정하게 단번에 거절하면서 쫓아버렸습니다.
“다른 데 가서 찾아 보거라. 나 혼자 먹기에도 양이 모자라.”
아르단은 까마귀가 다시 찾아와 귀찮게 굴까 봐 허겁지겁 서둘러 떡을 먹었습니다. 그는 바위에서 한참이나 쉬다가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하늘 너머로 사라지고 어둠이 땅에 내릴 때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그때 멀리 숲속의 한 오두막에서 희미한 불빛이 새 나오는 게 보였습니다.
곧 무너질 것처럼 낡아보이는 오두막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아르단은 문을 두들기지도 않고 성큼성금 오두막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나이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도 힘들 정도로 늙은 할아버지가 따뜻한 불이 피어오르는 화로 옆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습니다. 맞은편에는 소녀가 은으로 만든 빗으로 황금색 머리카락을 빗으며 조용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눈을 뜬 할아버지는 아르단에게 의자를 내주며 친절하게 말했습니다.
“여기 앉아 몸을 녹이게. 그리고 바깥세상이 어떤지 이야기 해주게. 나가본 지 너무 오래됐군.”
“제가 가지고 온 소식이라고는 막내 동생을 찾고 있다는 거예요. 저는 해가 뜨기 전에 바닷가에 있는 마을에서 왔답니다. 할아버지 집에서 나오는 불빛이 어둠을 밝혀주는 걸 보고 달려왔어요.”
“마침 잘 됐군. 나는 뿔이 없는 회색 소 세 마리를 돌볼 사람이 필요했어. 자네가 앞으로 1년 동안 매일 소를 데리고 나가 풀을 뜯어먹게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데려올 수 있다면 만족할 만한 보상을 하지.”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 게요. 내일 해가 뜨면 일을 하러 가겠어요. 1년이 지날 때까지는 보상을 요구하지 않을 거예요.”
황금빛 머리카락을 빗고 있던 소녀는 아르단을 보면서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약속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반드시 큰 어려움을 당하게 될 거예요.”
아르단은 친절한 소녀의 말에 감사하기는커녕 귀찮다는 듯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
다음날 아침 아르단이 오두막 밖으로 나가자 소녀가 소 세 마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할아버지는 출발하기에 앞서 아르단에게 단단히 일렀습니다.
“소들이 어디로 가든 그냥 놔두게. 이 놈들은 좋은 목초지가 어디 있는지 잘 알거든. 자네는 그냥 뒤에서 따라가기만 하게. 소들을 다른 길로 억지로 끌고 가서는 안 돼. 그리고 가는 도중에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관심을 갖지 말게. 엉뚱한 데 신경 쓰느라 소들을 내버려 둬서는 안 되네. 그랬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거야.”
할아버지는 가장 앞에 선 소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툭 건드렸습니다. 소는 음메 하고 잠시 소리를 내더니 숲으로 난 길을 따라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습니다. 다른 두 마리는앞서 가는 소의 양쪽에 나란히 서 뒤를 따라갔습니다. 아르단도 할아버지가 이야기한 대로 아르단은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쉬운 일 덕분에 행운을 얻게 됐다는 생각에 그는 기분이 무척 좋았습니다.
‘1년 뒤에는 충분한 돈을 챙길 수 있을 거야. 그러면 막내 동생을 찾으러 먼 곳까지도 갈 수 있겠지. 그 사이 누가 나타나서 막내 동생 소식을 알려줄지도 몰라.’
아르단이 혼자 속으로 웃는 사이 갑자기 어디선가 황금 수탉과 황금 암탉이 나타났습니다. 아르단은 신비한 닭을 보자마자 무엇이 나타나더라도 관심을 갖지 말라던 할아버지의 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닭을 잡으려고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닭 두 마리는 바로 코 앞에서 뛰어가고 있어 한 걸음만 더 다가가면 당장에라도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닭을 잡을 수 있다고 손을 내뻗을 때마다 손은 허공만 헤맬 뿐이었습니다. 이미 닭은 그의 손에서 벗어나 저 멀리 달아나 버렸습니다.
아르단은 너무 지쳐 더 이상 닭을 쫓아갈 수 없었습니다. 그때 소들을 돌보지 않고 내버려뒀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그는 깜짝 놀라 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다행히 소들은 가까운 풀밭에서 아무런 일도 없다는 듯 조용히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평온하고 느긋한 모습의 소들을 보고 마음을 놓은 아르단은 잠시 쉬려고 나무 아래 짙은 그늘에 드러누웠습니다. 갑자기 그의 눈앞에 사람 머리만큼 큰 황금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나무 사이로 이리저리 굴러다녔습니다. 깜짝 놀란 아르단은 벌떡 일어나 황금 덩어리를 주우려고 달려갔습니다. 하지만 황금 덩어리는 한자리에 박혀 있지 않고 마치 다리가 달린 것처럼 계속 이곳저곳으로 굴러다녔습니다. 아르단은 한참동안이나 쫓아다녔지만 황금덩어리에 손도 댈 수 없었습니다.
아르단은 이번에도 너무 힘들어 결국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시 소들이 있는 풀밭으로 돌아갔습니다. 소들은 이번에는 과일이 주렁주렁 매달린 큰 나무 아래에서 풀을 뜯고 있었습니다. 황금 닭과 황금 덩어리를 쫓아다니느라 무척 배가 고파진 아르단은 할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과일을 따 먹었습니다.
시간은 화살같이 지나가더니 어느 새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버렸습니다. 아르단이 가자고 말하지 않았는데도 소들은 아침에 떠나왔던 집을 향해 걸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르단은 이번에도 소들의 뒤를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올라가는 오두막 앞에서 소녀 혼자 소들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분한 표정의 소녀는 너무 힘들어하는 아르단을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소들을 마구간에 넣은 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젖을 짜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소 세 마리에게서 우유는 단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통을 채운 것은 하얀 우유가 아니라 그냥 투명한 물이었습니다. 소녀가 마지막 소의 젖을 짜고 일어났을 때 할아버지가 화난 얼굴을 하고 나타났습니다.
“자네는 믿을 수 없는 청년이로군. 어떻게 단 하루도 약속을 못 지키나? 당장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할아버지는 손에 들고 있던 기다란 나무 지팡이를 휘둘러 아르단의 가슴을 세게 쳤습니다. 지팡이에 맞은 아르단은 놀랍게도 순식간에 석상으로 변해버렸습니다. 이 장면을 보고 소녀는 놀라지도 않았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소들은 음메 하면서 두어 번 울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아르단이 막내 동생을 찾아오겠다며 집을 떠난 지 1년 하고 하루가 지났습니다. 목동과 아내는 막내아들에 이어 늘 씩씩하던 큰아들도 잃어버려 가슴이 더 아팠습니다. 이번에는 둘째아들 루아이스가 아버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막내 동생과 형이 없으니 너무 괴롭군요. 두 형제를 꼭 찾아오겠다고 맹세하겠습니다.”
아버지는 큰아들이 갈 때처럼 이번에도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너도 네 형처럼 우리와 상의를 하지 않는구나. 어쨌든 형제들을 찾으러 간다니 말릴 수는 없지.”
어머니는 다시 떡 두 개를 구워 하나를 고르라고 했습니다. 루아이스는 형처럼 큰 떡을 골랐습니다. 그는 아르단이 오두막에서 돌로 변한 걸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결국 그도 할아버지 집에 갔다가 형과 똑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루아이스가 막내 동생과 형을 찾아오겠다며 길을 떠난 지 1년 하고도 하루가 더 지났습니다. 이번에는 목동 부부에게 유일하게 남은 딸 엘리사가 두 오빠와 막내 동생을 찾으러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막내 동생이 사라지고 3년하고도 사흘이 지났어요. 두 오빠도 동생을 찾으러 갔다고 돌아오지 않았어요. 그들이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몰라요. 네 남매 중에 이제 저 하나만 남았답니다. 막내와 두 오빠를 찾고 싶어요. 제가 갈 수 있도록 두 분이 허락해 주시고 축복을 내려주시면 정말 좋겠어요.”
아버지는 두 아들과는 달리 이번에는 환하게 웃으며 형제들을 찾으러 가게 해달라는 딸의 손을 꼭 잡았습니다.
“그렇게 하거라. 부모를 공경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너에게 늘 축복이 함께할 거란다.”
어머니는 이전처럼 딸을 위해 떡 두 개를 구웠습니다. 큰 떡과 작은 떡이었습니다. 엘리사는 두 오빠와는 달리 작은 떡을 골랐습니다.
“어머니의 축복이 담긴 떡이 저를 도와줄 거예요.”
엘리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아버지, 어머니에게 무사히 다녀오겠다는 작별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걸은 끝에 늦은 오후 무렵 깊은 숲에 들어갔을 때 갑자기 배가 고파졌습니다. 큰 바위에 앉아 어머니가 구워준 떡을 먹으려고 할 때 뒤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떡 한 조각만 주세요. 딱 한 조각만!”
엘리사는 소리가 나는쪽으로 돌아보았습니다. 검은 까마귀가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울듯한 표정으로 애원하고 있었습니다.
“그래. 네게 조금이라도 나눠줄게.”
엘리사는 빙긋 웃으면서 작은 떡을 조금 뜯어 까마귀에게 눠 주었습니다. 정말 한입거리도 되지 않는 조그마한 떡 조각이었지만 까마귀는 마치 큰 고깃덩어리라도 되는 것처럼 맛있게 먹었습니다. 엘리사는 까마귀에게 작별인사를 하고는 일어나 다시 걸었습니다. 그리고 두 오빠와 마찬가지로 숲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보고 할아버지의 오두막을 찾아갔습니다.
‘저기서 물어보면 막내 동생과 두 오빠를 찾는 데 도움을 받을지도 몰라. 형제들이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야.’
여전히 오두막의 문은 활짝 열려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문을 조심스럽게 두들긴 뒤 잠시 기다리다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화로 옆에 앉아 졸던 할아버지는 엘리사를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따뜻한 차를 한 잔 주었습니다.
“나는 뿔이 없는 회색 소 세 마리를 돌볼 사람이 필요해. 네가 1년 동안 매일 소를 들판으로 데리고 나가 풀을 뜯어먹게 하고 해가 지기 전에 다시 데려올 수 있다면 만족스러운 보상을 할게.”
“꼭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할 게요. 해가 뜨면 일을 하러 가겠어요.”
화로 옆에 앉아 은 빛으로 황금빛 머리카락을 빗던 소녀는 엘리사를 쳐다보면서 안타까운 표정으로 만류했습니다.
“할아버지와 약속하지 않는 게 좋을 거예요. 반드시 큰 손해를 보게 될 거예요.”
엘리사는 소녀의 두 손을 꼭 잡고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나를 걱정해줘서 정말 고마워. 하지만 이 일을 안 할 수는 없어. 네 충고를 꼭 기억해서 늘 조심할게.”
다음날 해가 뜰 무렵 엘리사는 소녀가 마구간에서 데리고 온 소 세 마리 뒤를 따라 나섰습니다. 할아버지가 미리 일러준 것처럼 그들이 이끄는 대로 인내심을 가지고 느긋하게 따라갔습니다.
엘리사는 두 오빠처럼 세상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황금 수탉과 암탉을 만났습니다. 두 닭은 꼬꼬댁 소리를 지르면서 마치 잡아보라는 듯 이리저리 뛰어다녔습니다. 엘리사는 닭 두 마리를 잡아 집으로 돌아가고 엄청난 유혹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신경 쓰지 않기로 한 약속대로 소만 쳐다보기로 했습니다.
잠시 후에는 큰 황금 덩어리가 나타나더니 손만 뻗으면 잡을 수 있는 거리에 서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이번에는 두 닭보다 더 참기 힘든 충동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두 눈을 질끈 감고 두 주먹을 불끈 쥔 덕분에 가까스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는 마법의 나무에 달린 과일이 달콤한 향기를 풍기면서 노골적으로 엘리사의 입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소녀는 입을 꼭 다물고 코를 막아버린 뒤 과일을 옆으로 치워 버렸습니다.
엘리사가 세 가지 유혹을 뿌리치는 걸 본 소 세 마리는 숲과 풀밭을 지나 두 오빠 때보다 더 먼 곳으로 갔습니다. 소들은 다양한 색깔의 화려하고 예쁜 야생화들이 불타고 있는 황무지를 지나갔습니다. 불은 아주 거칠고 뜨거워 멀리서도 대단한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소들은 불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황무지 한가운데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엘리사는 엄청난 불에 휩싸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상당히 무서웠지만, 소 세 마리가 담담하게 걷는 걸 보고는 두려움을 버리고 따라갔습니다.
소들은 나중에는 이상한 거품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강을 건너갔습니다. 엘리사도 그들을 따라 강에 들어갔습니다. 이상한 느낌을 주는 거품이 목까지 차올랐지만 소들이 무사히 건너고 있기 때문에 전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강을 건너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은 평원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소들은 더 이상 걷지 않고 그곳에 앉았습니다. 엘리사는 20m 정도 떨어진 큰 나무 그늘 아래 앉아 소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나무 근처에는 아주 밝은 느낌의 노란 돌로 지은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누가 부르는 것인지 그 집에서 아주 사랑스럽고 달콤한 노랫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엘리사는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어주는 노래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때 멀리서 하얀 옷을 입은 소년이 황급히 달려왔습니다. 소년은 엘리사에게 화를 내듯이 소리를 질렀습니다.
“갈색 머리 엘리사! 네 소들이 들판의 곡식을 뜯어 먹고 있어. 얼른 가서 소들을 밖으로 몰아내.”
“내게 그런 말을 해주기보다는 네가 소를 몰아내는 게 훨씬 낫지 않니?”
엘리사는 웃으며 대답한 뒤 노래소리에 다시 귀를 기울였습니다. 잠시 후 소년이 다시 달려오더니 이번에는 숨이 넘어가는 소리로 외쳤습니다.
“목동의 딸 엘리사! 얼른 가봐. 무시무시한 우리 개들이 네 소들을 쫓고 있어. 그들을 구해줘야 해.”
“네가 개들을 불러들이는 게 더 쉬울 텐데.”
소년이 사라지자 엘리사는 자리에서 일어나 평원을 살펴보았습니다. 소들은 원래 있던 곳에 그대로 앉아 차분하게 풀만 뜯고 있었습니다. 소년이 말한 개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들은 한참동안 느긋하게 풀을 뜯더니 늦은 오후 무렵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습니다. 아침에 나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길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야생화가 불타던 황무지와는 전혀 다른 바싹 메마른 평원을 지났습니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평원에서 뛰어놀고 있는 어미 말과 망아지들은 풀이 풍부한 목초지에서 자라는 것처럼 아주 살쪄 있었습니다.
이어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한 이상한 평원이 나타났습니다. 풀은 아주 짙고 푸르렀습니다. 많은 나무에는 잎이 무성하게 달려 있었습니다. 이곳에도 어미 말과 망아지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얼마나 오랫동안 풀을 못 먹었던 것인지 너무 말라 갈빗대를 셀 수 있을 정도였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아주 넓어 끝을 알 수 없는 맑은 호수가 나타났습니다. 호수에는 작은 배 두 척이 한가로이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한 척에는 아주 즐겁고 행복해 보이는 청년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태양의 땅을 향해 여행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른 한 척에는 검은 옷을 입고 우울한 표정을 한 사람들이 타고 있었습니다. 밤의 땅을 향해 간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었습니다.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일까?’
엘리사는 전혀 반대되는 성격의 두 평원은 물론 완전히 다른 표정을 한 사람들이 탄 두 배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 없어 혼자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잠시 후 해가 산 너머로 완전히 지는 바람에 어둠이 온 세상을 뒤덮어 버렸습니다. 짙은 더움 사이로 거칠고 쌀쌀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갑자기 바가지로 물을 쏟아붇는 것 같은 폭우도 쏟아졌습니다. 온 몸이 비로 젖은 엘리사는 추위에 떨며 얼마나 더 가야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너무 어두워 바로 앞에서 걷고 있는 소들도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소들을 제대로 데려가지 못하는 게 아닌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엘리사는 그 자리에 서 버렸습니다.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어 앞으로 나갈 수도, 뒤로 물러날 수도 없었습니다.
그때 아주 다정한 느낌의 발이 엘리사의 어깨를 건드렸습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낯설고 못 생긴 개 마올모르가 엘리사 머리 위에 있는 바위에 서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올모르를 무척 싫어했습니다. 못 생긴데다 냄새가 나기 때문이었습니다.
“저기 내가 사는 동굴이 있어. 오늘밤은 저기서 보내도록 해. 양고기를 먹도록 해줄게.”
엘리사는 집에서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마올모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못 생겼지만 착하고 친절한 개라서 무서워할 이유가하나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처음 보는 마올모르의 호의를 두려움없이 기꺼이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처음 보는 내게 호의를 베풀어주다니 너는 정말 착하고 고마운 개로구나.”
엘리사는 마올모르의 동굴에 들어가 양고기를 저녁으로 먹고 양가죽 위에 누워 편안하게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 엘리사는 어느 때보다 몸이 가볍고 마음이 편안한 걸 느꼈습니다. 엘리사의 표정이 환해진 걸 본 마올모르는 아주 기뻐하면서 동굴 입구에서 즐거운 얼굴로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엘리사! 너는 나의 호의를 받아준 유일한 사람이야. 나를 놀리지도 않았어. 나중에 혹시 위험이 찾아오면 나를 부르렴. 언제든 도와줄게.”
소들은 밤새 어디에서 추위를 피했는지, 그리고 엘리사가 마올모르의 동굴에 온 걸 어떻게 알았는지 아침 일찍부터 동굴 입구에 서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마올모르에게 고맙다고 작별인사를 한 뒤 소들에게 다시 가자고 했습니다.
소들은 다시 오두막을 향해 걸었습니다. 엘리사는 전날처럼 그 뒤에서 천천히 따라갔습니다. 그들은 하루 종일 걷고 걸었습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메마른 평원에 도착했을 때 해가 졌습니다. 엘리사가 쉴 곳이라고는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거친 바위뿐이었습니다.
“오늘은 여기서 쉬도록 하자.”
엘리사는 소들의 머리를 어루만지며 상냥하게 말했습니다. 소들은 소녀의 말을 알아들은 듯 머리를 끄덕이더니 그 자리에 앉았습니다. 나무 위 둥지에 앉아 있던 검은 까마귀가 엘리사의 목소리를 듣고 날개를 활짝 펼치더니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며칠 전 엘리사에게 떡 한 조각을 얻어먹은 까마귀였습니다.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서 정말 반가워. 이 바위 뒤에 음식이 많고 푹신한 이끼가 깔린 구멍이 있어. 거기에 들어가렴. 거기서 푹 쉬면 아침에는 상쾌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거야.”
“나는 너에게 떡 한 조각밖에 주지 않았는데 이렇게 도와주니 정말 고맙구나.”
엘리사는 까마귀에게 인사를 하고는 바위 뒤로 갔습니다. 까마귀 말처럼 구멍이 보였고, 구멍 안에는 맛있는 음식과 푹신한 이끼가 이불처럼 깔려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음식을 즐겁게 먹고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소들에게 갔습니다. 소녀가 구멍에게 나오는 것을 본 까마귀가 나무에서 내려오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친구가 필요한 때가 오면 다시 나를 부르렴. 언제든 달려갈 테니까.”
소들은 전날 저녁에 앉았던 바위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엘리사가 나타나자 시키지 않았는데도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걸음을 옮겼습니다. 소들과 엘리사는 이날도 하루 종일 힘들게 걸었습니다. 그날 저녁 무렵 그들은 처음 가보는 강둑에 도착했습니다.
“오늘은 더 이상 갈 수 없겠구나.”
소들은 엘리사의 말을 듣고는 강둑 아래에 앉더니 마음 편하게 풀을 뜯어먹었습니다. 엘리사는 소들을 보면서 먹을 게 조금이라도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갑자기 강에서 첨벙첨벙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달 도란돈이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나를 믿으렴. 네게 따뜻한 피신처를 찾아줄게. 그리고 맛있는 생선도 줄게.”
엘리사는 아버지, 어머니로부터 수달 도란돈도 믿을 수 있는 착하고 친절한 동물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을 믿고 아무런 걱정도 없이 따라갈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도란돈이 안내해준 곳에서 저녁을 먹고 마른 수초 침대에서 편히 쉬면서 피로를 말끔히 씻었습니다.
해가 뜰 무렵 엘리사는 개운하게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소녀는 친절을 베풀어준 도란돈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네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정말 힘들었을 거야. 네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도란돈은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가 나를 믿어준 게 오히려 더 고마워. 너는 진실한 친구야. 만약 강에서 헤엄칠 수 있는 동물의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불러. 언제든 달려가서 도와줄게.”
수달은 환하게 한 번 웃은 뒤 강으로 뛰어들더니 순식간에 사라져버렸습니다.
엘리사와 소들은 그날도 쉬지 않고 하루 종일 힘들게 걸었습니다. 그 덕분에 해가 질 무렵에는 마침내 오두막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소들이 무사히 돌아오자 정말 기뻐했습니다. 그는 통에서 건강하고 맛있는 우유가 흘러넘치는 걸 봤습니다.
“정말 잘 했구나. 보상으로 뭘 주면 좋을까?”
“사라진 두 오빠와 막내 동생을 찾으면 좋겠어요. 세 사람이 어디 있는지, 그들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세요.”
뜻밖의 이야기를 들은 할아버지는 아주 진지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는 한참동안 엘리사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아주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그들이 어디 있는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다시 살아올 수 있을지는 몰라. 네가 극복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일이거든.”
“말씀만 해 주세요. 최선을 다할 거예요.”
“먼 산에 아주 신성한 노루 한 마리가 살고 있어. 발은 눈처럼 하얗고 머리에는 나무 가지처럼 생긴 아름다운 뿔을 갖고 있지. 깊은 호수에는 훌륭한 기술자가 만든 작은 기계 오리가 헤엄치고 있어. 온 몸은 초록색 루비로, 두 다리는 노란색 보석인 호박으로 만들었지. 코리부이의 강에는 정말 나이가 많은 큰 연어가 살고 있어. 정말 오래 산 덕분에 온 몸을 덮은 비늘이 황금으로 바뀌었지. 세 동물을 붙잡아 내게 데려오렴. 그러면 두 오빠와 막내 동생이 있는 곳을 알려주마.”
엘리사는 다음날 아침 일찍 서둘러 오두막을 나섰습니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두 오빠와 막내 동생을 데리고 집에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에 발걸음이 가벼웠습니다.
노루가 사는 먼 산으로 올라가는 길은 험한 바위 투성이여서 정말 힘들었지만 엘리사는 포기할 생각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헉헉거리며 산중턱까지 올라갔을 때 멀리 정상에 하얀 다리를 가진 노루가 보였습니다. 땀으로 범벅이 된 채 그 곳으로 뛰어 가보니 노루는 벌써 다른 곳으로 달아난 뒤였습니다. 그때 엘리사의 머리에 마올모르가 떠올랐습니다.
‘맞아! 마올모르가 여기 살지!“
엘리사는 다급한 목소리로 개의 이름을 여러 번 크게 외쳤습니다. 잠시 후 험준한 바위 사이로 아주 튼튼한 다리와 날카로운 이빨을 자랑하는 마올모르가 나타났습니다.
“내가 무얼 도와줄까?”
엘리사는 마올모르에게 산 꼭대기까지 올라온 이유를 털어놓았습니다. 노루를 잡으러 왔는데 멀리 도망가는 바람에 허탕만 쳐 속상하다고 말했습니다. 마올모르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걱정하지 마. 내가 노루를 잡아줄게.”
마올모르는 노루가 서 있던 바위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더니 건너편 산봉우리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이어 컹컹 하며 개 짓는 소리가 여러 차례 들렸고, 노루와 개가 다급하게 뛰어다니는 소리도 들렸습니다.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한참이나 이어졌습니다. 이윽고 기가 죽은 노루가 다리를 덜덜 떨며 엘리사가 있는 곳으로 걸어왔습니다. 바로 뒤에는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고 그르렁거리는 마올모르가 따라왔습니다.
“노루를 어떻게 해줄까?.”
“할아버지가 노루를 산 채로 데려오라고 했어. 네가 나 대신 그곳까지 데려갈 수 있겠니? 나는 오리와 연어를 잡으러 가야 해.”
“그렇게 할게.”
마올모르는 노루를 향해 컹컹 하고 무섭게 짖었습니다. 노루는 달아날 생각은 조금도 하지 못하고 다리를 덜덜 떨면서 산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마올모르가 노루를 끌고가는 모습을 확인한 엘리사는 이번에는 호수로 갔습니다. 초록색 오리가 연꽃 사이에서 헤엄을 치고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웃으며 생각했습니다.
‘바다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헤엄을 배웠지. 오리는 쉽게 잡을 수 있겠어.’
하지만 그것은 엘리사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오리의 헤엄 실력은 엘리사와 비교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오리가 얼마나 빠르고 날쌘지 엘리사는 오리 근처에 갈 수도 없었습니다.
‘맞아, 여기 검은 까마귀가 살지. 그 새에게 도와달라고 해야겠어.’
엘리사는 호수 주변의 숲속을 향해 여러 번이나 까마귀를 불렀습니다. 검은 까마귀는 엘리사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단숨에 숲에서 날아오더니 엘리사의 어깨에 앉았습니다.
“뭘 도와줄까”
“물에서 놀고 있는 오리를 잡아야 해.”
까마귀는 강한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로 날라올랐습니다. 그리고 호수를 차분하게 살피더니 오리가 있는 곳을 향해 힘차게 내려가 강한 부리로 오리를 낚아챘습니다.
“정말 고마워. 이 은혜는 절대 잊지 않을게.”
엘리사는 오리가 달아나지 못하게 발을 튼튼한 밧줄에 묶었습니다. 엘리사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코이부리의 강으로 갔습니다. 연어는 강 깊은 곳 바위 사이를 느긋하게 오가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집에서는 낚싯대로 물고기를 많이 잡았지. 이 녀석은 꼭 내가 잡을 거야.’
엘리사는 날씬한 나뭇가지를 잘라 가느다란 낚싯대를 만들었습니다. 끝에는 긴 줄을 매달았습니다. 정말 정교하게 만든 낚싯대였지만 연어를 잡는 데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연어는 엘리사가 매단 미끼를 쳐다보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강에는 연어가 잡아먹을 수 있는 먹이가 넘쳐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수달 도란돈에게 도움을 요청해야겠어.’
엘리사가 이름을 부르자마자 도란돈이 강에서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달에게 여기에 다시 돌아온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강에 숨은 연어를 잡아야 해.”
도란돈은 엘리사의 말을 듣자마자 지체하지 않고 곧바로 강으로 뛰어들었습니다. 그리고 바위 사이로 달아나는 연어를 쫓아다니며 꼬리를 서너번 흔들더니 단숨에 이빨로 꽉 깨물어버렸습니다. 수달 이빨이 연어의 황금 비늘을 꿰뚫지는 못했지만 연어를 꼼짝못하게 만들 수는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수달에게 정말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서둘러 오두막으로 돌아갔습니다.
“먼 산의 노루, 호수의 오리, 강의 연어를 가지고 왔어요.”
할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일을 아주 깔끔하게 해결하고 돌아온 엘리사를 보고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환하게 껄껄 웃었습니다.
“엘리사. 너는 집에서 어머니의 축복을 담은 떡을 가지고 왔지. 그래서 네가 하는 모든 일에 축복이 내린 거란다. 너는 배고픔에 시달린 까마귀에게 음식을 나눠줬고, 나와 한 약속을 충실히 잘 지켰어. 헛된 유혹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지. 게다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따돌림당한 불쌍한 동물들을 친절하게 친구로 받아들였어. 그래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너에게 절망 대신 희망과 용기가 생긴 거란다.
네가 보여준 용기와 정직에 대한 상으로 막내 동생과 두 오빠를 돌려주마. 세 사람은 믿음이 없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던 거란다. 서둘러 집에 가면 그들은 돌아와 어머니가 만들어준 따뜻한 빵을 먹고 있을 거야. 이제 작별할 시간이구나. 지금처럼 언제나 용감하고 정직하고 지혜롭게 살기를 바란다.”
엘리사는 할아버지에게 정말 감사하다며 고개 숙여 인사했습니다. 그리고 오두막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기 전 할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보았습니다.
“할아버지가 누구신지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나는 세월의 신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