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걸고 아버지 살린 딸

by leo

800년 전 유명한 장군인 호조 다카도키가 어린 천황 대신 일본을 다스릴 때였습니다. 서쪽 바닷가 시마노쿠니 마을에 오리베 시마라는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는 호조의 미움을 사 가미시마 섬으로 귀양을 가게 됐습니다.


“아버지, 저도 따라갈래요.”


“내 걱정은 하지 말고 몸조심하고 잘 지내거라. 꼭 살아서 돌아올게.”


오리베에게는 열두 살 된 딸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도요코였습니다. 일찌감치 아내를 잃은 그는 외동딸을 무척 아꼈습니다. 하지만 귀양을 가는 섬에는 가족을 데려갈 수 없었습니다. 오리베는 딸을 고향 마을에 혼자 두고 가야 했습니다.


집에 혼자 남겨진 도요코는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눈물만 흘렸습니다. 아버지가 건강하게 잘 지내는지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습니다. 두 달이 지났을 무렵 도요코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아버지를 찾아 섬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도요코는 작은 단검 하나와 쌀 몇 줌, 떡 몇 조각만 챙겨 혼자서 집을 나섰습니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한 달 가까이 걸은 끝에 드디어 가미시마 섬이 보이는 바닷가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섬으로 건너갈 길을 찾던 도요코는 해변에서 낡은 배를 고치고 있는 어부를 만났습니다.


“혹시 가미시마까지 태워주실 수 있으신가요?”


“가미시마는 귀양지라서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단다. 게다가 험해서 가기도 어렵지. 아버지가 그곳에 계신 모양이구나.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


가미시마 섬에는 아무나 함부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려면 미리 관청에 신고해 허락을 받아야 했습니다. 섬에 몰래 들어갔다가 들키면 당장 목을 잘릴지도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도요코는 아버지가 있는 섬을 바로 눈앞에 두고 발걸음을 돌릴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쁜 짓인줄 알면서도 할 수 없이 밤에 바닷가에 놓여 있던 배 한 척을 훔쳤습니다. 나중에 아버지를 구해 돌아가면 돈을 벌어 주인 허락없이 배를 사용한 값을 갚을 생각이었습니다.


도요코는 몸집이 작은 어린 소녀였지만 온 힘을 다해 노를 저어 바다를 건넜습니다. 다행히 바람은 아주 부드러웠고, 바닷물의 흐름도 좋아 도요코를 도와주었습니다. 다음 날 저녁 무렵 마침내 배는 가미시마에 도착했습니다. 도요코는 너무 지쳐 움직일 수조차 없어 커다란 바위 밑에서 이슬을 피해 하룻밤을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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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도요코는 썰렁한 바람을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가미시마 섬의 바닷바람은 무척이나 차가웠습니다. 도요코는 옷깃을 여미고 섬을 돌아다니면서 아버지가 있는 곳을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석 달 전에 시마노쿠니에서 온 사무라이 한 분을 보시지 않았나요?”


“글쎄. 그런 사람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구나. 대신 충고를 하마. 아버지가 이곳에 귀양을 왔더라도 만나지 않는 게 좋을 거다. 이 사실을 나라에서 알게 되면 아버지의 목을 자를지도 몰라. 어서 돌아가거라.”


마을 주민들이 들키기 전에 어서 돌아가라고 충고했지만 도요코는 포기하지 않고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습니다. 주민들에게 음식을 구걸해서 먹었고, 바위 밑이나 나무 아래에서 추운 바람을 견디며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한 달 가까운 시간이 지났습니다. 도요코는 어느 날 저녁 큰 바위에 작은 신사가 세워져 있는 걸 보게 됐습니다. 신사 안의 부처는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도요코는 부처에게 절을 하면서 아버지를 찾게 해달라고 빌었습니다.


도요코는 부처의 자비로운 미소를 느끼면서 그 옆에 누웠습니다. 신사에서 하룻밤을 지낼 생각이었습니다. 신사 주변은 정말 아름다운 곳이었습니다. 게다가 바람이 안으로 들어오지 않아 춥지도 덥지도 않았습니다. 얼마나 잠을 잤을까? 도요코는 바위에 철썩철썩 부딪히는 파도 사이로 이상한 소리를 들었습니다.


‘무슨 소리일까?’


하늘에는 밝은 달이 떠 있었습니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아 달은 평소보다 더 밝게 보였습니다. 바위에 아주 깔끔하게 생긴 소녀가 울며 서 있었습니다. 옆에는 승려가 보였습니다. 그는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을 연이어 외고 있었습니다. 소녀와 승려는 하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승려는 염불을 마치자 소녀를 바위 끝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소녀를 바다로 밀어버렸습니다. 깜짝 놀란 도요코는 지체하지 않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소녀는 허우적거리며 바다 아래로 가라앉고 있었습니다. 도요코는 온 힘을 다해 소녀의 목을 잡아 해변으로 끌어올렸습니다. 승려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습니다.


“쓸데없이 끼어드는 걸 보니 너는 이 섬의 사람이 아닌 모양이구나. 그렇지 않다면 오늘 이 일이 왜 벌어지고 있는지를 잘 알 텐데.”


승려는 소녀를 구하느라 지쳐 해변에 누워있는 도요코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숨을 깊이 내쉬었습니다.


“불행히도 가미시마 섬은 악마의 저주를 받고 있단다. 우리는 그 악마를 요후네 후시라고 불러. 그 놈은 바다 깊숙한 곳에 살고 있어. 그러면서 1년에 한 번씩 매년 6월 13일 저녁 8시부터 9시 사이에 열다섯 살 이하 소녀를 제물로 바치지 않으면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협박하고 있지. 지난 7년간 해마다 어린 소녀를 제물로 바다에 빠뜨리는 게 나의 임무였어. 불행하고도 고통스러운 일이야.”


도요코는 해변에 드러누운 채 승려의 말을 끝까지 들었습니다.


“스님, 그게 사실이라면 정말 비극적이고도 슬픈 일이군요. 이제 소녀에게 울음을 멈추고 집에 돌아가라고 하세요. 제가 대신 바다에 뛰어들게요. 저는 이곳에 귀양 온 오리베 시마의 딸이랍니다. 아버지를 찾아 여기까지 머나먼 길을 왔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어디에 계신지 도무지 알 수 없네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요. 제가 바다에 뛰어들어 죽으면 이 편지를 아버지에게 전해주세요. 이것이 저의 유일한 부탁이에요.”


도요코는 말을 마친 뒤 소녀의 하얀 옷을 벗겨 갈아입은 뒤 다시 신사로 들어가 부처 앞에서 절을 하고 기도를 올렸습니다.


‘부처님, 바다에 뛰어들어 악마에 맞서 싸울 용기와 힘을 제게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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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요코는 기도를 마친 뒤 작은 단검을 짐 꾸러미에서 꺼내 입에 물고 바다로 풍덩 뛰어들었습니다. 승려와 소녀는 놀랍기도 하고 경탄스럽기도 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마을로 돌아가 주민들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도요코가 사는 마을은 어촌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누구나 헤엄을 잘 쳤습니다. 소녀들은 어릴 때부터 입에 칼을 물고 바다 깊숙이 들어가 해산물을 따오는 일을 했습니다. 당연히 물속에 오래 있을 수 있었고 칼도 잘 사용했습니다.


도요코는 바다 깊숙이 헤엄쳐 들어갔습니다. 어느 때보다 훨씬 밝은 달빛이 바다 속을 훤히 비추고 있었습니다. 도요코는 계속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은색 물고기, 푸른색 물고기를 지나 드디어 바닥에 닿았습니다. 근처에 동굴이 있었습니다.


도요코는 동굴 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사람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도요코는 천천히 헤엄쳐 다가갔습니다. 사람은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자세히 보니 나무로 만든 조각상이었습니다. 왕 대신 나라를 다스리는 호조를 새겨놓은 것이었었습니다. 도요코는 목상이 호조인 걸 알고는 칼로 잘라버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그렇게 해 봐야 무슨 소용이 있지? 힘만 빠지고 숨만 더 가빠질 텐데 말이야.’


악마를 만난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도요코는 목상을 동굴에서 꺼내 뭍으로 가져가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천천히 목상을 등에 묶었습니다.


동굴에서 나오던 도요코 앞에 끔찍한 괴물이 나타났습니다. 온몸에서 형광색 빛이 퍼지는 뱀 같은 동물이었습니다. 다리가 여러 개 달렸고 등과 옆구리에는 비늘이 많았습니다. 길이는 10m 가량 돼 보였습니다. 눈은 불같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이 녀석이 악마인 모양이군. 악마라기보다는 바다괴물이야. 나를 제물로 바친 소녀로 생각하는 모양이지.’


도요코는 마음을 단단히 다지고 단검을 손에 잡았습니다. 괴물은 천천히 다가왔습니다. 괴물이 눈앞까지 접근해 입을 쩍 벌리자 도요코는 옆으로 살짝 몸을 피했습니다. 그리고 괴물의 오른쪽 눈을 단검으로 세게 찔렀습니다.


큰 상처를 입은 괴물은 고통스러운 몸부림을 치면서 동굴에서 빠져나갔습니다. 그러더니 잠시 후 다시 입을 쩍 벌리고 동굴을 향해 달려들었습니다. 하지만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데다 눈에서 나온 피로 주변이 어두워진 탓에 처음보다는 달려드는 속도가 느렸습니다.


도요코는 이번에도 옆으로 살짝 비킨 뒤 괴물의 가슴 쪽으로 다가가 심장으로 여겨지는 곳에 칼을 깊숙이 찔렀습니다. 큰 타격을 입은 괴물은 동굴에서 빠져나가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출구를 찾지 못해 허둥댔습니다. 한참이나 괴로워하던 괴물은 동굴 안에서 깊은 숨을 두세 번 들이쉬고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도요코는 괴물의 머리를 잘라 손에 꼭 붙들었습니다. 그리고 천천히 바다 위로 올라갔습니다. 바위에는 승려는 물론 마을 주민들이 횃불을 들고 몰려나와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제물을 바꿔 바친 탓에 요후네 후시의 노여움을 사 앞으로 고기잡이를 못하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도요코가 무사히 돌아오게 해달라고 부처에게 기도하는 사람은 승려와 원래 제물이었던 소녀뿐이었습니다.


“물 위로 무엇인가 떠올랐다.”


사람들은 바위에서 내려가 바닷가로 갔습니다. 승려와 소녀는 바위에 그대로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습니다.


“여자다. 소녀를 대신해서 바다에 뛰어든 여자가 헤엄쳐 나오고 있다.”


“그럼 악마에게 잡아먹히지 않았다는 것인가? 악마는 어떻게 된 것이지?”


바위에서 바다를 보고 있던 승려와 소녀도 그제야 아래로 달려갔습니다. 승려는 바다로 뛰어들어 기진맥진한 도요코를 데리고 나왔습니다. 잠시 숨을 돌린 도요코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승려, 소녀는 물론 마을 사람들을 보며 말했습니다.


“바다의 악마 요후네 후시는 죽었습니다. 이 칼로 심장을 찔러 죽이고 목을 베어 왔습니다.”


도요코는 손에 들고 있던 요후네 후시의 목을 바닥에 던졌습니다.


“와~~!”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즐거움과 기쁨과 눈물이 섞인 함성이 터져 나왔습니다. 도요코는 등에 메고 있던 목상도 내려놓았습니다. 궁금한 표정을 짓는 승려와 주민들에게 도요코는 바다 밑에서 일어났던 일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도요코는 가미시마 섬 주민들에게 영웅이 됐습니다. 사람들은 도요코를 섬에서 가장 좋은 집에 데리고 가 목욕을 시키고 맛있는 음식도 주었습니다. 승려는 섬을 다스리는 지방 관리에게 이 소식을 알렸습니다. 관리는 다시 호조에게 보고서를 전달했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읽더니 껄껄 하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내가 최근 몸이 안 좋아 고생하고 있었지. 점쟁이들은 바다의 악마에게 저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했어. 보고를 받고 보니 이제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구나. 바다에 나의 목상이 빠졌기 때문에 저주를 받은 것이었어. 목상을 건져낸 도요코의 아버지를 풀어주어라. 두 사람이 고향 마을에서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상금도 잔뜩 주도록 해라.”


도오쿄는 기미시마 섬 한쪽 구석 후미진 곳에 갇혀 있던 아버지를 만나게 됐습니다. 그리고 기미사마 섬 사람들로부터 푸짐한 선물을 받아 아버지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도요코의 이야기는 시마노쿠니뿐만 아니라 전국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도요코를 만나려는 사람들이 전국에서 몰려드는 바람에 한적한 곳이었던 시마노쿠니는 인파로 붐비는 마을이 됐습니다. 당연히 식당, 여관도 장사가 잘 돼 고향 마을 주민들은 다 부자가 됐습니다. 그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모든 건 목숨을 걸고 아버지를 구한 소녀 덕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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