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를 가지고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늘 도와주는 힘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세상 돌아가는 일반적인 이치가 그렇습니다. 먼 나라에 살던 용감한 공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공주는 먼 나라를 다스리던 훌륭한 왕의 외동딸이었습니다. 왕비였던 어머니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나 공주는 아버지인 왕과 단둘이 살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어릴 때부터 선량하면서 지혜로웠고, 모험을 좋아해서 가슴이 뜨거웠습니다. 하지만 공주의 능력을 잘 알지 못하고 어린 소녀로만 생각한 왕은 늘 걱정이 컸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면 누가 딸을 돌봐줄 수 있지?’
아주 하늘이 맑고 구름이 푸른 어느 날이었습니다. 바람도 선선하게 불어 더 이상 사람을 기분좋게 하는 날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왕은 점심을 먹으면서 공주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하늘에서 반짝이는 태양이 내 머리 위에서 빛날 날도 며칠 남지 않았어. 어서 네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걸 보고 싶구나.”
“저도 그럴 생각이에요. 그런데, 저에게 어울릴 만한 남편감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게 문제예요.”
왕은 빙긋이 웃더니 호주머니에서 황금열쇠를 하나 꺼내 딸에게 주었습니다. 공주가 그런 말을 할 것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성에서 가장 높은 탑 꼭대기로 올라가거라. 거기서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발견하면 다시 돌아와서 말해다오.”
공주는 지금까지 탑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연히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들어본 적도, 생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공주는 점심을 다 먹은 뒤 곧바로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탑은 정말 높았기 때문에 한참이나 걸은 끝에야 겨우 강철로 만든 문이 달린 꼭대기 방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공주는 아버지가 준 황금열쇠로 천천히 문을 열었습니다.
“정말 아름답고 훌륭한 방이로구나!”
공주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감탄을 숨길 수 없었습니다. 천장은 많은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처럼 은색으로 화려하고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바닥에는 마음을 부드럽게 어루만져주는 것 같은 연두색 비단 카펫이 깔려 있었습니다.
벽에는 황금으로 만든 창틀이 달린 큰 창문 열두 개가 있었습니다. 유리창에는 기사의 모습이 하나씩 새겨져 있었습니다. 기사들은 모두 칼을 든 채 말을 타고 있었습니다. 공주는 방을 한 바퀴 돌면서 기사들을 유심히 살펴보았습니다. 기사들은 살아 있는 것처럼 공주를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공주는 마지막 열두 번째 창 앞에까지 갔습니다. 그런데 다른 창과 달리 그 창만 하얀 커튼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건 왜 가려놓았을까?’
가슴에서 아주 큰 호기심이 솟아오른 공주는 주저하지 않고 커튼을 걷었습니다. 거기에도 기사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앞에서 본 열한 명보다 훨씬 당당해 보이는 기사였습니다. 그는 하얀 갑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마치 죽은 사람처럼 창백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공주는 열두 번째 기사를 새긴 창 앞에 한참이나 서 있었습니다.
“이 기사야말로 내가 찾던 남편감이야.”
공주가 이렇게 말하자마자 앞서 보았던 열한 명의 기사는 갑자기 스르르~ 하는 소리와 함께 모두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상한 생각이 든 공주는 서둘러 탑에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왕에게 그곳에서 본 것을 하나도 빼먹지 않고 상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왕은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깊이 한숨을 내쉬며 탄식했습니다.
“아! 봐서는 안 되는 것을 보고 말았구나. 너는 엄청난 위험에 빠지고 말았어. 네가 본 그 기사는 이웃나라의 왕자란다. 지금은 검은 마법사의 마술에 걸려 철의 성에 갇혀 있지. 그를 구하러 많은 사람이 갔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못 했어. 이미 엎질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단다. 한 번 내뱉은 말도 주워 담을 수 없어. 딸아, 가거라! 너의 행운이 얼마나 위대한지 한 번 시험해 보거라.”
공주는 다음날 아침 갑옷을 입고 말에 올라 왕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왕이 병사들을 데려가라고 했지만 공주는 혼자 가겠다고 했습니다.
“제 운명은 스스로 개척할 수 있답니다. 하늘이 저를 도와줄 사람을 꼭 보내줄 거예요.”
공주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는 왕을 향해 환한 미소를 남긴 뒤 성문을 나섰습니다. 공주의 가슴은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떤 어려운 일이 닥쳐도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게 공주의 믿음이었습니다.
공주는 얼마가지 않아 깊은 숲속에서 길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한참이나 여기저기를 헤맸지만 어디가 어딘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때 뒤에서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건넸습니다.
“저기요! 공주님, 잠깐만 기다리세요.”
공주는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키가 아주 큰 사내가 멀리서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다리가 얼마나 긴지 성큼성큼 걸은 덕에 금세 공주 곁에 올 수 있었습니다.
“저를 데려가세요. 후회하시진 않으실 겁니다.”
“이름이 무엇인가요? 무슨 일을 할 수 있나요?”
“사람들은 저를 생크스라고 부릅니다. 저는 다리를 마음껏 늘일 수 있답니다. 저기 높은 나무 꼭대기에 새 둥지가 보이시나요? 새 알을 꺼내올게요”
생크스는 말을 마치자마자 다리를 한껏 늘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한참이나 긴 그의 다리는 늘어나고 또 늘어나 나무의 꼭대기까지 올라갔습니다. 그는 팔을 뻗어 둥지에서 새 알을 하나 꺼냈습니다. 그리고 다시 다리를 줄여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대단한 실력을 가졌군요. 그런데, 지금 저에게 필요한 것은 새 둥지에서 꺼낸 알이 아니에요. 먼저 이 숲에서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을 알아야 해요.”
“그건 식은 죽 먹기죠. 잠시만 기다리세요.”
생크스는 다시 다리를 쭉쭉 늘였습니다. 그리고 숲에서 가장 키가 큰 소나무의 세 배를 훨씬 넘는 높이만큼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그는 주변을 살펴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로 저 방향이군요.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길이 있네요.”
생크스는 다시 다리를 줄였습니다. 그는 공주가 탄 말의 고삐를 잡고 길을 찾아 걸었습니다. 두 사람은 잠시 후 숲에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끝을 알 수 없을 것처럼 넓은 평원이 두 사람 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지평선 끝에 아주 큰 회색 바위가 놓여 있었습니다. 거대한 도시의 성이나 아주 큰 산처럼 보였습니다. 생크스는 바위를 가리키면서 환히 웃었습니다.
“저기 제 친구가 있군요. 데리고 가면 큰 도움이 될 친구이지요.”
“잘 됐군요! 저 사람을 불러서 어떤 능력을 가졌는지 한 번 물어보도록 해요.”
“너무 멀어서 불러도 들리지 않을 거예요. 설사 듣는다 해도 여기까지 걸어오려면 한참이나 걸릴 거고요. 제가 가서 데려오는 편이 훨씬 낫지요.”
생크스는 다시 몸을 쭉쭉 늘였습니다. 머리가 구름을 뚫고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그는 길게 늘어난 다리로 성큼성큼 세 걸음을 내디뎠습니다. 그는 지평선 끝에 있던 친구를 어깨에 태워 다시 세 걸음 뒤로 돌아왔습니다. 생크스가 데려온 사내는 몸이 아주 단단해 보이고 둥글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나요?”
“저는 거스라고 합니다. 몸을 넓힐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지요.”
“제게 보여줄 수 있나요?”
“물론이죠. 공주님! 하지만 조심하세요. 말을 타고 저 숲까지 피해서 지켜보셔야 합니다.”
공주는 그의 경고가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생크스는 씩 웃더니 다리를 잔뜩 늘여 숲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공주는 말을 타고 그의 뒤를 따라갔습니다.
두 사람이 피한 걸 확인한 거스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습니다. 그의 몸은 갑자기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거대한 바위만큼, 나중에는 넓은 평원을 가득 채울 만큼 커졌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엄청나게 큰 산이 떨어진 것 같았습니다. 평원이 그의 몸으로 가득 찬 걸 확인한 거스는 그제야 천천히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가 숨을 쉴 때 나오는 바람 때문에 멀리 있는 숲의 큰 나무들이 흔들릴 정도였습니다. 잠시 후 그의 몸은 원래대로 돌아왔습니다.
“거스 아저씨 같은 분을 매일 만나기란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우리랑 같이 가도록 해요.”
세 사람은 평원을 가로 질렀습니다. 그들은 큰 바위 근처에 닿았습니다. 거기서 손수건으로 눈을 가린 사람을 만났습니다. 생크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습니다.
“다른 친구가 있군요. 같이 가면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왜 눈에 손수건을 두르고 있지요? 그렇게 하면 앞을 전혀 볼 수 없을 텐데.”
“공주님! 정반대랍니다. 저는 눈을 가리지 않은 사람보다도 더 멀리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답니다. 눈에서 손수건을 떼어내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볼 수 있지요. 게다가 물건을 뚫어져라 바라보면 물건에 불이 붙는답니다. 아니면 산산조각 나 버리지요. 사람들은 저를 킨이라고 부른답니다.”
킨은 눈에서 손수건을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멀리 있는 바위 하나를 뚫어져라 쳐다보았습니다. 바위는 쾅 하는 소리를 내더니 순식간에 가루로 변해버렸습니다. 게다가 가루에서 불길이 활활 솟아올랐습니다. 그는 다시 손수건으로 눈을 가렸습니다. 공주는 깜짝 놀랐습니다.
“와우! 킨 아저씨는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아저씨를 데리고 가지 않는다면 제가 바보 소리를 듣겠지요. 우리는 지금 철의 성으로 왕자를 구하러 간답니다. 아저씨의 예리한 눈으로 그 성이 어디 있는지 알려주세요.”
“공주님 혼자 말을 타고 가신다면 최소한 1년은 걸릴 거예요. 하지만 우리 셋이 돕는다면 오늘 저녁이면 도착할 수 있지요. 검은 마법사는 우리가 오는 걸 미리 알고 있군요. 우리를 위해 저녁을 준비하고 있네요.”
“성에 갇힌 왕자는 무엇을 하고 있나요?”
“철문이 가로막고 있는 탑의 작은 방에 앉아 계시네요. 마법사는 하루 종일 왕자를 감시하고 있고요.”
“왕자를 구하러 가요.”
“공주님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다 하겠습니다.”
공주와 세 사람은 철의 성을 향해 진군했습니다. 킨이 지름길을 안내했고, 생크스가 다리를 길게 늘여 세 사람을 태워 성큼성큼 걸어갔습니다. 도중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킨이 눈빛으로 부숴버리거나, 거스가 몸을 늘여 옆으로 치워버렸습니다.
공주와 세 사람은 큰 산을 넘고 깊은 숲을 지나고 너른 강을 건너 마침내 철의 성 앞에 도착했습니다. 해가 막 저물 무렵 공주와 세 사람은 성 앞에 놓인 다리를 건너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마치 누가 서둘러 끌어올리는 것처럼 다리는 위로 올라갔습니다. 성문은 쿵 하며 엄청난 소리를 내면서 굳게 닫혀버렸습니다. 아무도 다시 열 수 없을 것처럼 빈틈이 없어 보였습니다.
정원은 물론 마구간, 복도 같은 성 안의 곳곳에 수많은 석상이 서 있었습니다. 아주 훌륭한 옷차림을 하고 칼과 창을 든 기사들과 그들을 따라간 하인들이었습니다. 왕자를 구하러 갔다가 마법에 걸려 불행하게도 돌로 변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공주와 세 사람은 궁전의 여러 방을 둘러보다 아주 넓은 연회장에 들어갔습니다. 곳곳에 등을 켜놓아 마치 낮처럼 아주 밝은 방이었습니다. 길고 넓은 식탁에는 여러 가지 음식과 음료수가 차려져 있었습니다. 마치 네 사람이 올 것을 미리 알고 차려놓은 듯 아주 신선하고 맛있어 보였습니다.
그들은 검은 마법사나 성을 관리하는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오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배가 고파 미칠 지경이었던 네 사람은 할 수 없이 주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음식과 음료수를 허겁지겁 먹었습니다.
그 때 갑자기 큰 문이 스르르 열리더니 검은 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허리가 굽은 노인이었습니다. 머리카락은 다 빠져 대머리였고, 갈색 수염이 길게 자라 무릎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그는 아주 긴 검은색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검은 마법사라고 불리는 모양이었습니다. 허리에는 허리띠 대신 강철 밴드 세 개를 두르고 있었습니다.
검은 마법사 뒤에는 하얀 갑옷을 입고 하얀 모자를 쓴 왕자가 서 있었습니다. 무덤에서 막 나온 것처럼 창백하고 슬퍼 보였습니다. 공주는 왕자를 보자마자 궁전의 탑에서 보았던 기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검은 마법사는 아주 흉측하고 무섭게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공주가 왜 여기 왔는지 잘 알고 있지. 왕자를 데려가겠다는 거잖아? 원한다면 데려가. 단 조건이 하나 있어. 사흘간 매일 밤 왕자를 지키도록 해. 그가 달아나지 못하게 말이야. 그렇게 하면 왕자를 데려가도 좋아. 하지만 왕자를 지키지 못한다면 공주는 물론 나머지 세 사람 모두 돌로 변하는 슬픈 운명을 피할 수 없을 거야.”
검은 마법사는 오른손을 들어 올렸습니다. 왕자는 마치 리모컨에 따라 움직이는 인형처럼 의자에 앉았습니다. 검은 마법사는 아주 잔인하고 비열한 미소를 뒤에 남긴 채 연회장에서 나갔습니다. 공주는 왕자에게 말을 걸었지만 왕자는 전혀 대답을 하지 않았습니다. 마법에 걸려 있어 입을 열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공주는 왕자 옆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밤새 잠을 자지 않고 왕자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생크스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다리를 길게 늘여 연회장의 벽을 가로막았습니다. 거스는 몸을 키워 문 앞에 떡 하니 버티고 앉았습니다. 킨은 홀 한가운데 기둥에 기대 앉아 문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런데 공주와 세 사람이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습니다. 바로 음식과 음료수였습니다. 검은 마법사가 미리 음식에 잠이 들게 하는 마법의 약을 잔뜩 뿌려놓았던 것입니다. 네 사람은 불과 1~2분 만에 모두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무렵이었습니다. 공주는 가슴을 칼로 찌르는 것 같은 통증을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그런데 옆 의자에 앉아 있어야 할 왕자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공주는 세 사람을 깨웠습니다.
“왕자가 사라졌어요.”
“공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찾아볼 게요.”
킨은 창문으로 가더니 손수건을 벗고 주변을 쭉 살펴보았습니다.
“아하! 저기 숨겨놓았군요. 100㎞ 밖에 숲이 있어요. 그곳에 오래 된 참나무 한 그루가 보이는군요. 나무 꼭대기에 도토리가 하나 달려 있네요. 그 도토리가 바로 왕자예요. 검은 마법사가 왕자님을 도토리로 변신시켜 숨겨놓았군요. 가서 도토리를 따오면 될 일이에요.”
생크스는 다리를 늘여 킨을 어깨에 태웠습니다. 그는 큰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뎠습니다. 불과 열 걸음 정도 걷자 숲이 나타났습니다. 그 숲에는 정말 오래 된 참나무가 있었습니다. 생크스는 참나무 끝에 달려 있던 도토리를 따 성으로 돌아왔습니다. 킨은 도토리를 공주에게 주었습니다.
“도토리를 바닥에 던지세요.”
공주는 도토리를 바닥에 던졌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왕자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원래 앉아 있던 의자로 얌전히 돌아갔습니다.
해가 뜰 무렵 문이 쾅 하고 열리더니 검은 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아주 끔찍하면서도 만족스러운 미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왕자가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미소는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는 얼굴을 찡그렸습니다.
“펑!”
갑자기 엄청나게 큰 소리가 나더니 검은 마법사의 허리에 있던 강철 밴드 하나가 터져 버렸습니다. 검은 마법사는 비틀거리면서 뒤로 넘어졌습니다. 그는 화가 난 얼굴로 왕자를 데리고 나가버렸습니다.
그날 낮 동안 공주와 세 사람은 성 안 이곳저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정말 기괴하고 이상한 곳이었습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곳처럼 느껴졌고, 살아 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돌로 변한 한 기사는 칼을 막 빼려는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다른 기사는 칼을 하늘 높이 치켜든 뒤 내리치려는 모습이었습니다. 어떤 방에는 달아나는 기사 석상이 있었습니다. 그는 문턱에 걸려 넘어지려는 자세로 돌이 돼 있었습니다. 마구간에는 돌로 변한 말이 한두 마리가 아니었습니다. 모두 훌륭한 말이었지만 석상이 된 주인의 운명을 따라가버렸습니다.
성 주변에는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았습니다. 근처의 강에는 물조차 흐르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강에는 물고기도 살지 않았습니다. 하늘에서는 노래하는 새도 구경할 수 없었습니다. 하늘에는 짙은 구름이 끼어 해를 가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낮인데도 마치 저녁처럼 어두워 보였습니다.
공주와 세 사람은 아침, 점심, 저녁을 실컷 먹었습니다. 누가 차렸는지 알 수 없지만, 잠시 밖에 다녀오면 식탁에는 근사한 요리가 잔뜩 차려져 있었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즐길 수 없는 맛있는 음료수도 한두 종류가 아니었습니다.
다시 밤이 찾아왔습니다. 식사를 마친 공주와 세 사람 앞에 다시 검은 마법사가 왕자를 데리고 왔습니다. 그는 왕자를 넘겨준 뒤 공주를 잠시 노려보더니 아무 말 없이 나가버렸습니다. 공주와 세 사람은 전날 저녁처럼 절대 잠들지 않고 왕자를 지키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느 순간 다 함께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새벽 공주는 다시 가슴에 통증을 느끼면서 잠에서 깼습니다. 이번에도 왕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킨은 다시 창가로 가서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 오늘은 저기 계시는군요. 200㎞ 밖에 산이 하나 있어요. 산에 아주 큰 바위가 보이네요. 바위 안 깊숙한 곳에 귀한 보석이 박혀 있고요. 그 보석이 바로 왕자님입니다.”
생크스는 이번에는 전날보다 다리를 더 길게 늘여 킨을 어깨에 태웠습니다. 그는 스무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뎌 산에 닿았습니다. 킨은 생크스의 어깨에서 내려 손수건을 눈에서 떼어냈습니다. 그리고 바위를 노려보았습니다.
“펑!”
큰 폭발소리와 함께 바위는 산산조각 나 버렸습니다. 그 안에 있던 작은 보석이 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킨은 보석을 손에 쥐고 다시 생크스의 어깨에 올라탔습니다. 성에 돌아간 두 사람은 보석을 공주에게 건넸습니다. 공주는 보석을 바닥에 던졌습니다. 전날처럼 다시 왕자가 나타나더니 아무 말 없이 의자에 가서 앉았습니다.
잠시 후 검은 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왕자가 여전히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본 그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습니다. 다시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그의 허리에 있던 두 번째 강철 밴드가 터져 버렸습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검은 마법사는 왕자를 끌고가듯이 데리고 나갔습니다.
그날 하루도 지루하게 지나갔습니다. 저녁이 되자 검은 마법사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그는 공주 코앞까지 가서 왕자를 건네주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어디 한 번 두고 보자!”
공주와 세 사람은 이날 밤만큼은 절대 잠들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앉아 있으면 졸린다면서 연회장을 이리저리 걸어 다녔습니다. 하지만 모든 게 허사였습니다. 갑자기 하나씩 바닥에 픽 쓰러지더니 결국 모두 잠들고 말았습니다.
다음날 아침 공주는 전날보다 훨씬 심한 통증을 가슴에 느끼며 잠에서 깼습니다. 역시 왕자는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그녀는 킨을 깨웠습니다. 킨은 이번에는 전날보다 훨씬 오래 주변을 살폈습니다.
“아! 오늘은 왕자님이 아주 멀리 계시네요. 여기서 300㎞ 떨어진 곳에 검은 바다가 있어요. 바다 깊숙한 바닥에 조개가 하나 보이는군요. 조개 안에 황금 반지가 들어 있고요. 그 반지가 바로 왕자님입니다. 생크스와 거스를 데리고 가서 왕자님을 모셔 오면 되겠네요.”
생크스는 다시 다리를 늘였습니다. 그는 서른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뎌 바다에 도착했습니다. 거스가 어깨에서 내리더니 앞으로 나섰습니다.
“이제 내가 실력을 발휘할 차례로군!”
거스는 바닷물을 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도가 얼마나 빨랐던지 바닷물은 순식간에 바닥을 보였습니다. 생크스는 바닥에서 반지를 주웠습니다. 그리고 거스를 어깨에 태워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거스가 바닷물을 너무 많이 마신 탓에 무거워 빨리 달릴 수 없었습니다.
생크스는 할 수 없이 거스를 거꾸로 뒤집어 마구 흔들었습니다. 그의 배에서 엄청난 양의 바닷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때문에 원래 육지였던 곳에 커다란 호수가 생겼습니다. 생크스는 다시 성을 향해 큰 걸음을 성큼성큼 내디뎠습니다.
성에서 두 사람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던 공주는 마음이 급해졌습니다. 조급한 해는 산 너머에서 벌서 머리를 내밀고 있었습니다. 그때 쾅 하면서 연회장 문이 거칠게 열리더니 검은 마법사가 나타났습니다. 그는 연회장 이곳저곳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어디에도 왕자가 없는 것을 확인한 그의 입가에 끔찍한 미소가 번졌습니다.
“낄낄낄! 결국 내가 이겼군!”
마법사의 웃음이 끝나기도 전에 유리창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창 밖에는 다리를 잔뜩 늘인 생크스가 서 있었습니다. 그는 황금반지를 창 안으로 던졌습니다. 공주는 반지를 받아 바닥에 내려놓았습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왕자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안 돼! 이건 반칙이야. 이미 시간은 지났다고….”
검은 마법사는 절망과 분노가 함께 섞인 목소리로 무시무시한 고함을 질렀습니다.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성이 흔들려 무너질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퍼~엉!”
지난 두 번보다 훨씬 큰 폭발음과 함께 검은 마법사의 허리에 있던 세 번째 강철 밴드가 터져 버렸습니다. 검은 마법사는 순식간에 검은 까마귀로 변하더니 창밖으로 날아가 버렸습니다. 이후 검은 마법사는 다시는 세상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검은 마법사가 사라지자 죽은 듯 창백했던 왕자의 뺨에 빨간 색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흐리기만 하던 두 눈도 반짝였습니다. 왕자는 공주에게 다가가 머리를 살짝 숙였습니다.
“공주님! 우리는 탑에서 만난 적이 있지요. 위험을 무릅쓰고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와 저를 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에서 되살아난 것은 왕자만이 아니었습니다. 철의 성 안에 있던 모든 것이 잃어버렸던 생명을 되찾았습니다. 석상으로 변했던 기사들은 물론 마구간에 묶여 있던 말들도 살아났습니다. 성 안의 나무에서는 푸른 잎과 다양한 색의 꽃이 피어났습니다. 마치 사라져 버렸던 봄이 새로 만들어진 것 같았습니다. 하늘을 가리고 있던 검은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습니다. 마법이 두려워 세상 끝에 숨었던 태양이 하늘 위로 솟아올랐습니다. 강에는 다시 물이 철철 흐르고 물고기들은 신나게 뛰어다녔습니다.
생명을 되찾은 기사들은 목숨을 구해준 은인인 공주에게 허리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습니다. 공주는 빙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저에게 감사할 일은 아니에요. 여기 세 분이 여러 분들을 구한 거랍니다. 이 분들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면 저도 여러분과 같은 운명을 피할 수 없었을 거예요.”
공주는 왕자와 함께 말을 타고 고향의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를 도와준 세 사람도 함께였습니다. 딸이 죽었을지도 모른다며 낙심해 있던 왕은 공주가 왕자를 구해 돌아오자 너무 기뻐 기절할 정도였습니다.
공주와 왕자는 며칠 뒤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공주가 목숨을 구해주었던 기사들은 결혼식에 초대받았습니다. 결혼식은 3주 동안이나 이어졌습니다. 모든 일이 다 정리됐을 때 생크스, 거스, 킨은 여왕이 된 공주에게 작별인사를 했습니다.
“이제 우리의 일은 끝난 것 같네요. 이제 다시 세상으로 나가서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을 찾아다녀야겠어요.”
“굳이 험한 세상에서 고생할 필요가 무엇 있나요? 여기서 평생을 편안하게 지내도 되지 않나요?”
“그렇게 편안하고 느긋한 인생은 우리가 원하는 게 아니랍니다.”
세 사람은 만류하는 여왕에게 작별인사를 한 뒤 어디론가 떠났습니다. 이후 그들이 어디로 가서 누구를 도왔는지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