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로마의 분열(2)-전쟁 탓에 망한 평민들의 분노

by leo


원로원이 병력을 얼마나 전투에 투입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한 노인이 포로 로마노에 나타났다. 누더기 같은 옷을 입고 있었고, 수염과 머리는 얼마나 깎지 않았던지 엄청나게 긴 상태였다.


그는 바닥에 주저앉아 통곡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사람들이 주변에 모이자 사정을 설명했다.


“저는 자유 시민으로 태어났습니다. 군대에 갈 나이가 된 이후 모든 전쟁에 출전해 목숨을 바쳐 싸웠습니다. 제가 참가한 전투는 무려 28번이나 됩니다. 용기를 내어 싸운 덕분에 풀잎관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하지만 억압의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로마가 마지막 고난을 겪을 때였지요. 저는 세금을 내느라 빚을 지게 됐습니다. 갖고 있던 농장은 적의 습격 때문에 폐허가 됐습니다. 식량과 필수품이 모자라 시내에 있던 재산도 모두 소진돼 버렸습니다. 빚을 값을 방법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마치 노예처럼 채권자에게 끌려갔습니다. 두 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채권자는 저에게 힘든 일을 시켰습니다. 저는 저항했습니다. 그래서 채찍으로 수없이 얻어맞아야 했습니다.”


노인은 누더기 옷을 벗어 가슴에 새겨진 칼자국과 채찍에 맞아 흘러내리는 피를 보여주었다.


포로 로마노에 모인 사람들의 입에서는 고통스러운 탄식이 터져 나왔다. 평민들은 시내를 돌아다니며 노인의 비극을 호소하면서 사람들에게 도와달라고 목청을 높였다.


함성을 듣고 빚 때문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일시에 채권자의 집에서 뛰쳐나왔다. 그들도 노인처럼 머리가 매우 길었고, 사슬과 족쇄를 차고 있었다. 아무도 그들을 제어할 수 없었다. 그들을 건드렸다간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포로 로마노는 순식간에 억압을 뚫고 달려 나온 채무자들로 가득 찼다.


아피우스는 이들에게서 공격 받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했다. 사람들은 그를 모든 악의 근원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런 현상이 발생한 책임은 모두 그에게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몰래 포로 로마노에서 달아났다.


세르빌리우스는 자주색 옷을 벗어던지고는 평민들의 발아래 무릎을 꿇고 눈물을 터뜨렸다.


“오늘은 참으십시오. 내일 다시 이 자리에 모이십시오. 원로원이 여러분들이 고통에 귀를 기울일 겁니다.”


세르빌리우스는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외쳤다.


“원로원이 결론을 내릴 때까지 어떤 채권자도 빚 때문에 로마 시민을 감금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모인 사람들에게는 어떤 책임도 묻지 않겠습니다.”


세르빌리우스의 임기응변 덕분에 이날 포로 로마노에서는 아무런 사고도 일어나지 않았다.


평민들은 포로 로마노를 떠났다. 그들은 다음날 다시 모였다. 로마 시내에 사는 사람뿐만 아니라 시골에 사는 사람들도 모였다. 날이 밝자마자 포로 로마노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복잡해졌다.


원로원도 소집됐다. 이번 사태를 어떻게 다룰지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아피우스는 소리를 질렀다.


“여러분은 평민의 아첨꾼에 불과합니다. 그들의 광기에 편승했을 뿐입니다.”


세르빌리우스는 아피우스를 꾸짖었다.


“당신은 정말 잔인하고 거만한 사람이군요. 당신이야말로 이번 사건의 원인이오. 당신 때문에 로마에서는 소란이 끊이지 않는 것이오.”


이때 라틴 도시의 여러 기병이 전 속력으로 포로 로마노에 달려왔다. 그들은 이구동성으로 이렇게 외쳤다.


“적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국경 지역에 도착할 것입니다.”


귀족과 기사계급, 그리고 부자들은 모두 서둘러 무기를 들었다. 전쟁에서 패하면 잃을 게 많았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평민, 특히 빚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은 무기를 들지 않았다. 전쟁에 나설 뜻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오히려 껄껄 웃었다.


“전쟁이 일어난다니 정말 기쁘군. 전쟁은 우리의 기도에 신이 답을 주신 것이야. 전쟁이 끝나면 우리는 현재의 고난에서 벗어날 수 있어.”


도와달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평민은 족쇄와 사슬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비웃으며 서로 질문과 답을 주고받았다.


“귀족에게 축복을 내려주려고 전쟁에 참가해야 할까요?”


“귀족의 억압 아래에서 사느니 볼스키의 노예가 되는 게 더 낫습니다.”


원로원은 세르빌리우스에게 대책을 찾아보라고 호소했다. 그는 현재 상황에서 평민으로부터 가장 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세르빌리우스는 포로 로마노에 가서 평민에게 호소했다.


“현재 위기는 갈등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일단 한마음으로 적을 향해 나아갑시다. 조국이 망하는 걸 무관심하게 지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이곳에는 조상들의 신과 무덤이 있지 않습니까? 둘 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아닙니까?


여러분의 부모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여주십시오. 그 분들은 나이 때문에 스스로를 지킬 힘조차 없습니다. 여러분의 아내에게 자비를 베푸십시오. 나라가 망하면 끔찍하고 참을 수 없는 모욕을 겪을 수밖에 없는 여인들입니다. 갓난아기도 생각해 보십시오. 매우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란 이 아이들이 무자비한 모욕과 학대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무엇보다 우선 힘을 모아 현재 위기를 넘깁시다. 그리고 공정하고 편파적이지 않으며 모두에게 축복이 되는 정부를 어떻게 구성할지를 논의합시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획책하지 않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모욕하지 않는 정부 말입니다. 이러한 행동이야말로 진정한 시민이 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은 국가로부터 지원을 받아야 하고, 부당한 상황을 겪고 있는 채권자는 적당한 구호를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가장 훌륭한 인간의 축복, 계약을 지키려는 신념, 조화의 수호자자는 로마에서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습니다. 저를 믿고 이번 전쟁에 나서 주십시오. 도시를 지키는 일은 동료 집정관에게 맡길 것입니다. 전쟁은 제가 지휘하겠습니다. 이미 추첨으로 정했습니다.


원로원은 저에게 약속했습니다. 평민과 맺은 약속은 어떤 것이라고 지키겠다고. 저도 원로원에게 약속했습니다. 평민이 조국을 배신하고 적이 되지 않게 설득하겠다고.


전령들은 들어라. 다시 한 번 로마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목소리를 높여라. 나와 함께 전쟁에 나서는 로마 시민을 억류하거나 팔거나 집을 담보로 빼앗는 일은 금지한다. 또 빚 때문에 그의 가족을 감독에 넣는 일도 금지한다. 어느 누구도 전쟁에 참여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전쟁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의 경우 채권자가 돈을 빌려줄 때 맺은 계약에 따라 빚을 갚도록 강제할 수 있다.”


평민은 세르빌리우스의 약속과 선언을 믿기로 했다. 포로 로마노에 모인 모든 평민은 전쟁에 나서겠다는 열정을 드러냈다. 일부는 전리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에, 일부는 장군의 호의에 대한 감사로, 하지만 대다수는 시내에 남을 아피우스의 혹독한 통치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군에 입대하기로 했다.


세르빌리우스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는 서둘러 행진했다. 그 덕분에 적이 로마 영토로 진입하기 전에 만날 수 있었다.


볼스키 군대는 폼프티누스 평원에 진을 쳤다. 그리고 지원 요청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여러 라틴 도시의 시골 지역을 약탈하고 있었다.


세르빌리우스는 오후 늦게 적의 진지에서 5㎞ 정도 떨어진 곳에 캠프를 차렸다.


볼스키는 한밤중에 로마군 진지를 공격했다.


“로마군은 수가 적다. 게다가 긴 행군 탓에 지쳐 있다. 가난한 사람들이 빚 때문에 일으킨 소란 때문에 싸울 열의도 떨어져 있다.”


세르빌리우스는 밤에는 진지를 지키는 일에만 열중했다. 날이 밝자 적이 무질서하게 시골 마을을 약탈하는 일에 골몰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진지의 작은 문을 몰래 열고 나가자. 그리고 적을 치자.”


로마군은 볼스키군을 기습 공격했다. 일부 볼스키 병사는 완강하게 맞서 싸웠지만 결국 쓰러지고 말았다. 나머지는 서둘러 진지로 달아났다. 이 과정에서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크게 다치거나 무기를 잃어버린 병사도 적지 않았다.


로마군은 달아나는 볼스키군을 바짝 추격해 진지를 포위했다. 그들은 잠시 방어에 전념하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다.


그들의 진지에는 노예, 가축, 무기는 물론 각종 전쟁 물자가 쌓여 있었다. 포로로 붙잡힌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 중 일부는 볼스키 병사들이이었지만, 볼스키를 지원한 나라들의 병사들도 상당수였다. 게다가 엄청난 귀중품도 쌓여 있었다. 금, 은은 물론 값비싼 옷도 적지 않았다. 마치 로마군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를 점령한 것 같았다.


세르빌리우스는 병사들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모든 노예와 포로, 전리품을 여러분에게 골고루 나눠드리겠소. 모든 병사들은 전리품을 갖게 될 것이오. 국고에는 단 하나도 넣지 않을 것이오.”


세르빌리우스는 적의 진지에 불을 지른 뒤 인근에 있는 수에사 포메티아로 행군했다. 이 도시는 크기나 인구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산이라는 측면에서도 그 일대에서 가장 앞선 도시였다. 당연히 그 지역의 지도자 노릇을 했다.


“도시를 포위하라. 밤낮없이 돌아가면서 성을 공격하라. 적에게 한시라도 자거나 쉴 틈을 줘서는 안 된다.”


세르빌리우스는 도시 주민들을 굶주리게 하고 절망케 만들었다. 그 결과 아주 짧은 시간에 도시를 함락할 수 있었다. 그는 성인 나이에 이른 주민 모두를 사형시켰다. 그리고 병사들에게 무엇이든 돈이 될 만한 것은 약탈하게 허락해 주었다.


세르빌리우스는 이런 방식으로 볼스키의 여러 도시를 헤집고 다녔다. 그 결과 어느 도시도 더 이상 그에게 맞설 생각을 못하게 됐다.


세르빌리우스가 볼스키 도시들을 공략하고 있을 때 다른 집정관 아피우스 클라우디우스는 인질 300명 모두를 포로 로마노로 끌고 오게 했다. 약속을 지키겠다는 뜻으로 로마에 붙잡혀 온 인질들이 맹세를 어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모든 사람이 보는 데서 저들을 채찍질한 뒤 목을 베어라.”


며칠 후 세르빌리우스가 원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는 훌륭한 전투를 치른 장군에게 당연히 주어지는 개선식을 허용해달라고 원로원에 요청했다.


아피우스는 이를 거절했다.


“당신은 반란을 부추긴 사람이오. 정부를 사악하게 만들려는 당파주의자요.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국고에 넣지 않았소. 대신 당신 마음대로 병사들에게 선물로 뿌렸소. 의원 여러분. 저 자에게 개선식을 허용해주면 안 됩니다.”


세르빌리우스는 원로원으로부터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그는 로마인에게는 흔치 않게 매우 오만한 행동을 했다. 그는 마르스 평원에 평민을 모이게 했다.


“제가 이번 전쟁에서 어떤 업적을 거뒀는지는 여러분이 잘 알 겁니다. 제 동료는 저를 시기하고 있습니다. 원로원은 저를 오만불손하게 대우했습니다. 제가 거둔 성과와 전쟁에서 함께 싸운 병사들의 공로만으로도 저는 영광스럽고 자랑스러운 개선식을 치를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습니다.


세르빌리우스는 파스케스에 풀잎관을 걸었다. 또 직접 풀잎관을 머리에 쓰고 개선식용 자주색 옷을 착용했다.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로마로 행진해 들어갔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올라간 세르빌리우스는 맹세를 지킨 다음 전리품을 신전에 바쳤다. 이 때문에 세르빌리우스는 귀족의 미움을 더 사게 됐다. 하지만 평민의 지지는 더욱 높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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