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후 집정관 선거가 실시됐다. 퀸투스 술피키우스 카메리누스와 스푸리우스 라르키우스 플라부스가 선출됐다. 라르키우스는 두 번째였다.
로마에는 온갖 희한한 현상이 벌어져 잡다한 소란이 일어났다. 많은 사람들이 이상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데 이상한 목소리가 들렸다. 괴물이나 불가사의한 존재와 비슷할 정도로 특이한 아이나 가축이 태어났다는 보고가 접수되기도 했다. 여러 곳에서 신탁이 내려졌고, 신적 광기에 사로잡힌 여성들이 로마에 끔찍하고 한탄스러운 불행이 닥칠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했다.
역병이 로마를 덮쳤는데 사람은 죽지 않고 단순히 병에 시달린 반면 많은 가축이 목숨을 잃었다. 이런 현상은 신의 뜻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일부 사람은 생각했다.
“로마에서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 마땅한 사람을 쫓아내서 하늘이 분노한 거야.”
반면 이적은 하늘의 뜻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런 일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에 불과하지요.”
이때 티투스 라티누스라는 사람이 작은 가마를 타고 원로원을 찾아왔다. 그는 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라티누스는 연륜이 있었고 꽤 많은 재산도 갖고 있었다. 자기 일을 갖고 있는 농부였고, 인생의 대부분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었다. 그는 원로원에 들어가 이렇게 말했다.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 신이 꿈에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라티누스! 가서 동료 시민들에게 전해라. 최근 행사(루디 마그니 축제) 도중에 벌어진 행진 때 로마인은 받아들일 수 있는 무용수 지도자를 보내지 않았다. 이것을 용인할 수 없다. 그러하니 의례를 다시 거행하도록 하라.’
나는 깨어난 뒤 단순히 꿈인 줄 알고 그냥 무시했습니다. 누구에게나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개꿈이라고 생각했지요.
나중에 다시 유피테르 신 꿈을 꾸었습니다. 그분은 화를 내시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셨습니다.
‘너는 나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원로원에 알리지 않았다. 만약 서둘러 알리지 않으면 신의 섭리를 무시한 대가로 큰 재앙을 겪을 것이다.’
나는 두 번째 꿈을 꾸고도 역시 무시했습니다. 밭일만 하는 늙은 농부여서 원로원에 불길한 전조와 공포로 가득 찬 꿈을 꾸었다고 알리는 게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비웃음을 살 거라고 생각한 것이었습니다.
며칠 뒤 아주 젊고 잘 생긴 아들이 병에 걸린 것도 아니고 다른 분명한 이유도 없는데 갑자기 죽음의 손에 끌려가버렸습니다. 그날 밤 유피테르 신이 다시 꿈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아들을 잃음으로써 나를 경멸하고 무시한 벌을 받았다. 곧 다른 벌도 내려질 것이다.’
나는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 위협을 받아들였습니다. 죽음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미 세상살이에 지쳐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유피테르 신은 나에게 죽음의 벌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사지에 참을 수 없고 잔인한 고통을 보내셨습니다. 얼마나 힘든지 아무리 해도 움직일 수가 없게 됐습니다.
나는 그제야 지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주었습니다. 지인들은 서둘러 원로원에 가라고 충고했습니다.”
라티누스가 이런 말을 하는 동안 사지를 감싸고 있던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말을 다 한 뒤에는 고통이 완전히 없어져 가마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그는 유피테르 신의 이름을 부르더니 건강을 완전히 회복해 걸어서 집으로 돌아갔다.
원로원 의원들은 두려움에 가득 찼다. 다들 너무 놀라 말을 할 수 없었고 신이 하려는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 어쩔 줄 몰랐다. 신이 축제 행렬 때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던 무용수 지도자가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의원 중 한 명이 당시 일을 떠올려보았다. 다른 의원들은 그의 말을 듣고는 옳다고 확인했다.
당시 출신을 알 수 없는 한 로마 시민이 노예를 사형시키기로 하고 동료 노예들에게 끌고 가라고 지시했다. 다른 사람들이 이 처벌의 증인이 되게 하려고 노예를 심하게 채찍질하면서 포로 로마노는 물론 로마의 주요 지점으로 끌고 다녔다. 그때 로마인은 신을 기념하는 축제를 거행하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는 행렬의 앞을 지나갔다.
시민은 노예의 두 팔을 벌리게 하더니 가슴, 어깨를 지나 손목까지 연결한 긴 나무에 단단하게 붙들어 매었다. 노예의 뒤에서 따라가면서 채찍으로 벌거벗은 몸을 사정없이 내리쳤다. 노예는 이렇게 잔인한 처벌을 견디지 못해 저주를 섞은 비명을 쏟아냈을 뿐만 아니라 고통에 못 이겨 아주 보기 흉하게 움직이기도 했다.
“노예의 고통스러워하는 몸짓이 유피테르 신이 말씀하신 받아들일 수 없는 무용수인 모양입니다.”
당시 로마인이 이 축제를 열 때 거행했던 의례를 설명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설명을 더 극적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아니고 꼭 필요한 부분에 신뢰를 주기 위해서다.
로마 원로원이 거행하라고 지시한 이 축제는 독재관 아울루스 포스투미우스가 라틴 동맹과 전쟁을 할 때 신에게 한 맹세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 라틴 동맹은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타르퀴니우스를 왕 자리에 복귀시키려 했다.
원로원은 희생 제례와 루디(경기대회)를 거행하기 위해 해마다 은 500미나이(약 250kg)를 경비로 사용하게 했다. 로마인은 포에니 전쟁 때까지도 축제에 늘 비슷한 금액을 투자했다. 축제 동안에는 그리스 전통에 따라 많은 행사가 열렸다. 또 행진, 희생제례, 루디도 거행됐다.
루디를 시작하기 전 행정관은 신을 기리기 위해 카피톨리노 언덕에서 포로 로마노를 거쳐 키르쿠스 막시무스까지 행진 행사를 거행했다. 행진을 이끈 사람은 성인 나이에 이르렀고 이런 의식에 참여할 만한 나이가 된 젊은이들이었다.
부친이 기사계급이라면 젊은이들은 말을 타고 갔고, 부친이 보병이라면 걸어서 갔다. 이런 행진을 거행한 것은 외부인들이 성인 나이에 이른 로마 젊은이들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당당한지 보게 하려는 목적에서였다.
전차 기수들이 그 뒤를 따라갔다. 일부는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전차를, 일부는 두 마리가 이끄는 전차를, 나머지는 멍에를 씌우지 않은 말을 몰았다. 전차 기수 뒤에는 크고 작은 경기에 출전할 선수들이 걸어갔다. 그들은 급소만 제외하고는 나체 상태였다.
이 관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원래는 그리스에서 거행하던 의식이었지만, 스파르타가 폐지하는 바람에 지금 그리스에서는 사라져 버렸다. 가장 먼저 옷을 벗고 나체로 달린 사람은 올림피아에서 열린 제15회 올림픽에 출전한 스파르타 출신의 아칸투스였다. 그 이전만 해도 그리스인은 경기에 완전히 벌거벗은 채 등장하는 걸 부끄럽게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 관습을 오늘날까지 지켜온 로마인이 이런 관습을 나중에 그리스에서 배운 것도 아니었고,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바꾼 것도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다.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 뒤를 많은 무용수들이 3개 무리로 나눠 따라갔다. 첫 무리는 성인, 둘 째 무리는 청소년, 셋째 무리는 어린이들이었다. 아주 작고 짧은 고대 피리를 사용한 피리 연주자들이 이들과 함께 행진했다. 일곱 줄을 갖춘 상아 리라를 뜯는 리라와 바비타라는 악기를 다룬 연주자들도 함께 행진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는 이런 연주자들이 사라졌지만 로마에서는 고대 희생 제례를 거행할 때 아직도 등장한다.
무용수들은 구리 허리띠를 두른 보라색 튜니카를 입었다. 허리에는 칼을 매달았고, 보통 창보다 짧은 창을 들었다. 머리에는 눈에 띄는 관모와 깃털로 장식한 청동 모자를 썼다.
각 무용수 무리는 다른 무용수에게 춤 동작을 가르쳐주는 한 사람이 이끌었다. 그는 전쟁터에서의 호전적이고 날쌘 동작을 4단음절 리듬에 맞춰 재연하면서 무리를 이끌었다. 이것도 옛 그리스 전통이었다. 피리키오스라고 불린 전투 무용이었다. 그 기원은 두 가지로 알려져 있다.
무용수를 이끌기 시작한 것은 여신 아테나가 처음이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아테나는 거인 티탄 족을 전멸시킨 뒤 기쁨을 나타내기 위해 무기를 들고 승리의 춤을 추었다.
쿠레테스(그리스의 전설적 부족)가 더 일찍 이 무용을 시작했다는 말도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들은 어린 제우스를 돌보면서 그를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무기를 두들기거나 리듬에 맞춰 팔다리를 흔들었다.
로마인이 희생제례나 행진 때 선보인 무용이 그리스와 비슷한 점은 호전적이고 진지한 성격만이 아니라 조롱하거나 야한 성격도 있었다.
무장한 무용수는 사티로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반인반수의 정령)로 분장하거나 시키니스라고 불린 그리스 무용을 묘사하면서 행진했다. 실레누스(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의 동료)로 분장한 무용수는 낡은 튜니카를 입었고 여러 가지 꽃으로 장식했다. 사티로스로 분장한 무용수는 여자 속옷과 염소가죽 옷을 입었다. 머리에는 갈기를 직각으로 세웠고 그 밖의 다른 장식도 꾸몄다. 이들은 다른 사람들의 진지한 동작을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어 구경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폭소를 터뜨리게 했다.
개선식 행렬을 보면 이런 악의 없는 장난과 사티로스 스타일의 놀림은 로마 고유의 오래된 관습이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선식에 참가한 군인들은 가장 유명한 사람을 풍자하거나 놀리곤 했다. 심지어 장군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테네에서 수레를 타고 행진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과거에는 광대 짓을 하면서 긴 문장으로 놀렸지만 지금은 즉석에서 만든 시로 노래를 부른다.
유명한 사람의 장례식에 다른 참가자들과 함께 사티로스로 분장한 무용수 무리가 상여 앞에 서 시키니스라는 춤을 추면서 사티로스의 동작을 흉내 내는 걸 직접 본 적이 있다. 특히 부자 장례식 때 그런 경우가 많았다. 사티로스처럼 풍자하고 춤추는 것은 리구리아나 움브리아가 처음 시작한 게 아니었다. 또 이탈리아에 살았던 야만족이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이것은 그리스의 풍습이었다.
무용수 무리에 이어 리라 및 피리 연주자가 행진했고, 그 뒤로는 향로를 나르는 사람들이 행진했다. 행진이 이어지는 동안 향로에서는 향과 유향이 타올랐다. 금과 은으로 만든 장식용 그릇을 든 사람도 뒤를 따라갔다. 신에게 바친 신성한 그릇과 로마에 속하는 그릇이었다.
행렬의 맨 마지막에는 신들의 형상을 어깨에 멘 남성이 행진했다. 그리스인이 만든 것과 비슷한 형상이었다. 똑같은 옷, 똑같은 상징, 똑같은 선물을 갖춘 형상이었다.
신들의 형상은 유피테르, 유노, 미네르바, 넵투누스 뿐만 아니라 그리스인이 열두 신에 포함시키는 나머지 신도 있었다. 열두 신이 태어난 사투르누스, 옵스, 테미스, 라토나, 파르카, 므네모시네는 물론 신전과 신성한 장소를 바친 모든 신들도 포함돼 있었다. 여기에 유피테르가 신의 왕 자리에 오른 뒤 태어난 프로세르피나, 루키나, 그리고 님프, 뮤즈, 리베르, 사계절의 신과 영혼이 육체를 떠난 뒤 하늘에 올라가 신과 똑같은 지위를 차지한 반신반인인 헤라클레스, 아이스클라피우스, 카스토르와 폴룩스, 헬레나, 판 등도 있었다.
만약 로마를 건국하고 이 축제를 시작한 사람이 야만인이었다면 어떻게 그리스의 모든 신과 정령을 제대로 숭배하고 그들의 옛 신을 무시할 수 있었겠는가?
행진이 끝나면 집정관과 사제들은 곧바로 황소를 잡는다. 희생제례를 거행하는 방식은 그리스와 똑같다. 손을 씻은 다음 깨끗한 물로 희생제물을 정화한다. 머리에 몰라 살사(소금을 섞은 밀)를 뿌린다. 이어 기도를 드린 다음 보조인에게 황소를 제물로 바치라고 지시한다.
일부 보조인은 신전에서 몽둥이로 서 있는 제물을 내려친다. 제물이 쓰러지면 다른 사람들은 희생제례용 칼을 들고 작업을 진행한다. 껍질을 벗기고 소를 분해한다. 처음 바칠 부위로는 안에서 한 조각, 사지에서 한 조각을 뜯어낸다. 몰라 살사를 다시 뿌린 뒤 바구니에 담아 제례를 진행하는 사제들에게 가져간다. 이들은 제물을 제단에 올리고 그 밑에 불을 피운다. 제물이 타는 동안 포도주를 붓는다.
로마인이 오늘날에도 희생제례를 치를 때 이런 의식을 진행하는 걸 직접 보아서 잘 안다. 이 한 가지 증거만으로도 로마를 건국한 사람은 야만인이 아니라 여러 도시에서 함께 온 그리스인이었다고 확신한다. 일부 야만인이 그리스인과 똑같은 희생제례나 축제 중에서 일부 관습을 거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걸 똑같이 한다는 것은 믿기 어렵다.
이제 로마인이 행진 이후에 거행한 루디를 설명할 차례다. 먼저 말 네 마리가 이끄는 전차 경주와 두 마리가 이끄는 전차 경주, 그리고 멍에를 쓰지 않은 말 경주가 이어졌다. 고대 올림피아에서 거행돼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과 똑같다.
전차경주에서 로마인은 처음에 시작한 두 가지 옛 관습을 오늘날까지 계속 지키고 있다. 먼저 말 세 마리가 이끄는 전차 경주가 있다. 고대 영웅시대의 관습이었지만 지금은 그리스에서는 없어진 관습이다. 나란히 달리는 말 두 마리에게 멍에를 씌운다. 그리고 가죽 끈으로 연결한 세 번째 말을 덧붙인다. 이 말을 옛날에는 ‘선도자’라는 뜻인 파레오로스라고 불렀다.
다른 관습은 전차에 올라탄 사람이 벌이는 경주다. 일부 그리스 국가에서 고대 제례의식을 거행할 경우 이런 경주를 치르기도 한다. 기수와 함께 기승한 사람은 파라바타이라고 불렸다. 그는 전차 경주가 끝난 뒤 전차에서 뛰어내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기장 길이만큼 달리는 경주를 벌인다. 전차경주가 끝나면 다른 경기 즉 달리기, 권투, 레슬링에 나설 선수들의 명단이 나온다. 이 세 경주는 고대 그리스에서 실시하던 경기였다.
각 경기 사이에는 우승자에게 우승관을 수여하고 상을 주는 의식을 거행했다. 디오니소스 축제 때 아테네에서 하던 것과 똑같은 방식이었다. 이어 경기에 참석한 사람에게 전쟁에서 획득한 전리품을 보여주기도 했다.
원로원은 이 사건을 기억한 사람 덕분에 노예가 처벌을 받으려고 행진 앞에서 끌려간 사실을 알게 됐다. 그들은 신이 말한 받아들여질 수 없는 무용수는 바로 이 노예라고 결론 내렸다.
원로원은 주인이 노예를 너무 심하게 다룬 사실을 밝혀내고는 그에게 상응하는 처벌을 내렸다. 그리고 유피테르 신을 달래기 위해 돈을 두 배나 들려 다시 행진과 경기를 거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