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아내들은 위험이 눈앞에 닥친 걸 보고 그들을 집에 머물러 있게 했던 체면이나 예의범절 따위는 잊어버린 채 신전으로 달려갔다. 그들은 신을 새긴 조각상에 몸을 던져 한탄했다. 모든 신성한 장소, 특히 유피테르 카피톨리누스 신전은 부인들이 지르는 비명과 애원으로 가득 찼다.
로마를 왕의 손아귀에서 해방시킨 푸블리콜라의 누이인 발레리아라는 부인도 그 자리에 있었다. 삶에 활기가 넘치는데다 사려 깊은 판단을 할 능력이 되는 여인이었다. 발레리아는 갑자기 알 수 없는 신의 영감을 느끼게 됐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전 계단 맨 위에 올라가더니 모든 여인을 향해 연설을 시작했다.
“로마의 여인들이여! 용기를 잃지 마세요. 로마를 위협하는 위험을 너무 지나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답니다. 로마의 안전을 회복할 한 가지 희망이 남아 있기 때문이지요. 이 희망은 단지 우리만이 살릴 수 있는 것이랍니다. 여러분이 무엇이든 할 생각이 있다면.”
발레리아의 말을 듣고 다른 부인이 질문했다.
“남자들도 이미 포기한 상태인데 우리 같은 아낙네가 어떻게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말씀인가요? 우리처럼 약하고 비참한 여인들이 그런 엄청난 힘을 어떻게 가질 수 있다는 건가요?”
발레리아는 주저하지 않고 대답했다.
“힘은 여인이라면 이용할 수 없는 무기나 손이 아니라 선의와 연설에서 나올 수도 있습니다.
부인들은 울부짖으면서 어떤 식으로 일을 해결할 수 있는지 설명해달라고 간청했다.
발레리아는 다시 말을 이어갔다.
“모두 지저분하고 다 떨어진 옷으로 갈아 입으세요. 아이들을 두 손에 잡거나 업고 나를 따라오세요. 나는 마르키우스의 어머니 베투리아의 집에 갈 거예요. 아이들을 그녀의 무릎에 올려놓고는 눈물로 이렇게 호소할 거랍니다.
‘부인! 제발 연민을 베풀어 주세요. 우리가 부인뿐만 아니라 나라에 고통의 원인을 제공하진 않았답니다. 로마는 최악의 위기에 몰렸어요. 제발 부인의 며느리와 손자를 데리고 우리와 함께 볼스키의 진지에 가 주세요. 아드님에게 로마에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히지 말라고 간청해주세요.’
베투리아가 한탄하고 애원한다면 코리올라누스에게는 연민의 정은 물론이고 지금보다 부드럽고 합리적인 마음이 생길 거예요. 그의 가슴은 아들 앞에 무릎을 꿇은 어머니를 내몰라할 할 정도로 가혹하거나 잔인하지는 않아요.”
신전에 모였던 모든 부인은 발레리아의 제안을 따르기로 결정했다.
발레리아는 신의 조각상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제발 저의 말에 매력적인 설득력을 담아주십시오.”
발레리아는 기도를 마친 뒤 신전에서 나갔다. 다른 부인들은 그녀의 뒤를 따라갔다. 다른 곳에서 소식을 듣고 몰려온 여인들도 합류했다. 그들은 코리올라누스 어머니의 집으로 몰려갔다.
코리올라누스의 아내 볼룸니아가 가장 먼저 그 여인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당신들이 원하는 게 뭔가요? 고통과 치욕에 시달리는 집에 이렇게 무더기로 몰려온 이유가 무엇인가요?”
발레리아는 공손한 어투로 대답했다.
“우리는 최악의 위험에 몰려있답니다. 그래서 우리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데리고 벤투리아 부인에게 간청하러 온 거랍니다. 당신은 우리에게 유일한 구세주입니다. 제발 간청 드립니다. 로마에 연민을 베풀어주십시오.
지금까지 어떤 사내의 손에도 굴복한 적이 없었던 이 땅이 볼스키 때문에 자유를 빼앗기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볼스키가 로마를 점령한 다음 땅을 나눠 갖거나 로마를 처참하게 파괴할 생각을 못하게 해주십시오. 우리와 불쌍한 아이들이 적의 무례한 행동에 시달리지 않게 선처해주십시오. 우리는 당신 집안에 일어난 온갖 불행에 있어 어떠한 책임도 없답니다.
부인에게 친절하고 인간적인 기운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과거에 함께 희생 제례와 각종 의식을 거행했던 불쌍한 여인들에게 자비를 보여주십시오. 코리올라누스의 훌륭한 아내인 볼룸니아와 아이들, 그리고 우리와 이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당신의 아드님에게 가서 설득하고 애원해 주십시오.
아드님에게 간청을 멈추지 마시고 많은 보답을 받을 수 있는 하나의 호의를 베풀라고 부탁해 주십시오. 로마에 사는 동료들과 화해해서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고국으로 돌아오라고 말해주십시오.
부인이라면 아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분은 너무나 경건하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들의 무릎 앞에 엎드려 있는 걸 참지 못할 것입니다. 아드님을 로마로 모시고 돌아오면 부인은 로마를 최악의 위기에서 구했다는 영원한 영광을 얻을 것입니다. 또 우리가 남편들에게서 멈출 것 같지 않던 전쟁을 끝냈다는 칭찬을 들을 기회를 주시는 셈이 되는 것입니다.
중재를 잘 함으로써 로물루스와 사비니 족 사이에서 일어난 전쟁을 끝내고, 두 나라를 합침으로써 미약하게 출발한 로마를 위대한 도시로 만든 위대한 여인들의 진정한 후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아드님을 되찾고 조국을 구하고 동포의 목숨을 살리고 후손들에게 사라지지 않은 명성을 남기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발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십시오. 그리고 서둘러 주십시오. 위험은 너무 가까이 와 있어 생각하거나 시간을 늦출 틈도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발레리아는 말을 마친 뒤 눈물을 쏟으면서 조용히 벤투리아의 답변을 기다렸다. 다른 여인들도 똑같이 통곡하면서 자비를 베풀라고 호소했다.
벤투리아는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다 울면서 말했다.
“발레리아, 당신은 내게 도움을 청하러 왔지만 사실 희망이라는 게 아주 미약하고 부질없는 것이에요. 불쌍한 우리 여인네들은 조국을 사랑하고 성격이 어떻든 동료 시민을 살리고 싶어 하지만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는 힘과 권력이 없어요.
로마 평민이 가혹한 판결을 내린 이후 아들은 우리에게서 등을 돌렸답니다. 조국은 물론 우리 가족도 미워하고 있는 것이지요. 다른 사람에게서 전해들은 게 아니라 아들이 직접 나에게 말했기 때문에 알게 된 거예요.
아들은 영구 추방 판결을 받은 뒤 친구들과 함께 집에 왔지요. 우리는 상복을 입고 저기 앉아 있었답니다. 나는 아이들을 무릎에 앉히고 그런 상황에 몰린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듯이 한탄하면서 가장을 빼앗기게 된 우리에게 닥친 불행을 슬퍼했지요. 아들은 멀리 떨어져서 마치 묵직한 돌처럼 눈물도 흘리지 않고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이렇게 말했답니다.
‘어머니에게 저는 이제 없는 사람입니다. 최고의 아내였던 볼룸니아 당신에게도 마찬가지요. 저는 지나치게 용감했고, 조국을 너무 사랑했고, 조국을 위해 너무 많은 전쟁에 나섰다는 이유로 동료 시민들로부터 쫓겨나게 됐습니다.
고귀하지 않은 일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훌륭한 여성처럼 행동하십시오. 제가 없더라도 이 아이들을 위로로 삼으시고 비극을 참으십시오. 어머니와 볼룸니아는 물론 우리 가문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아이들을 잘 키우십시오.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신은 아버지보다는 나은 운명을, 아버지에 뒤떨어지지 않은 용기를 선사할지도 모르지요. 이제 작별입니다. 저는 로마를 떠납니다. 이곳에는 훌륭한 사내를 위한 공간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어머니, 볼룸니아, 아들들은 물론 우리 집을 다스려온 가정의 신과 조상의 화로, 그리고 다른 정령에게도 작별을 고합니다.’
아들이 이렇게 말했을 때 불행한 여인인 나와 볼룸니아는 고난이 바라는 대로 가슴을 치면서 통곡했어요. 아들에게 매달려 마지막으로 한 번만 껴안아달라고 호소했어요. 나는 손자 중에서 큰 아이의 손을, 볼룸니아는 둘째의 손을 잡고 아들에게 다가갔지요. 하지만 아들은 냉정하게 등을 돌리고 말했답니다.
‘이제 더 이상 코리올라누스는 당신의 아들이 아닙니다. 조국이 당신에게서 그런 권리를 빼앗았습니다. 볼룸니아, 나는 이제부터 당신의 남편이 아니오. 나보다 더 운이 좋은 새 남편을 맞아 행복하게 살도록 하시오. 아이들아, 그 사람이 너희들의 새 아버지가 될 것이다. 어른이 될 때까지 할머니와 어머니가 너희를 키울 것이다.’
아들은 이 말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오. 다른 일에는 신경 쓰지 않았고 메시지를 보내지도 않았고 어디로 가는지 말하지도 않았지요. 그리고 혼자 집에서 나갔어요. 하인도 없이 돈도 없이 아무것도 챙기지 않은 채 말이지요. 심지어 하루치 식량도 갖고 가지 않았지요.
아들이 로마에서 쫓겨난 게 올해로 4년째랍니다. 아들은 우리를 낯선 사람 취급처럼 취급하고 있어요. 편지를 쓰지도 않고 소식을 보내지도 않고 우리 소식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아요.
발레리아, 집을 떠날 때 마지막으로 껴안아주거나 입을 맞추거나 다른 사랑의 표시도 하지 않은 사람이 드러낸 단호한 마음에 우리 여인네의 간청이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겠어요?
여러분이 정말 그걸 바라고,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은 역할을 맡기를 기대하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간다고 생각해보세요. 내가 아들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까요? 무슨 요구를 해야 할까요?
나에게 가르쳐주세요. 아무런 죄도 없는데 그를 조국에서 쫓아낸 사람들을 살려주라고 촉구할까요? 그에게 자비나 연민을 전혀 보여주지 않은 평민에게 자비를 베풀고 연민을 보이라고 할까요? 과거에 수많은 재앙을 안겨줬지만 적대감 대신 친구의 우정을 보이면서 받아준 사람들을 배신하라고 할까요? 그를 망친 사람들을 사랑하라고, 그를 보호한 사람들을 해치라는 부탁을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인가요?
제정신인 어머니라면 아들에게, 생각을 가진 아내라면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할 수는 없는 것이에요. 여러분도 사람의 눈으로 보나 신의 눈으로 보나 부당한 일을 우리더러 아들에게 부탁하라고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에요. 다만 우리를 포르투나 여신에게 버림받은 비참한 여인으로서 조용히 살게 내버려둬야 하는 거예요. 더 이상 꼴사나운 행동을 하지 않게 놔둬야 하는 거예요.”
벤투리아가 이렇게 말을 마치자 그 자리에 있던 여인들은 모두 한탄하면서 통곡했다. 울음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로마 전역으로 퍼져나갔고, 잠시 후 그녀의 집 주변에는 사람들이 모여 다함께 통곡하기 시작했다.
발레리아는 다시 한 번 길게 간청했다. 벤투리아는 물론 볼룸니아와 친구든 친척이든 관계를 맺고 있던 모든 여인이 그 자리에 남아 계속해서 애원하면서 벤투리아의 무릎을 붙잡고 울음을 터뜨렸다.
벤투리아는 여인들의 애원과 간청을 더 이상 모른 척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조국을 위해 며느리와 손자, 그리고 함께 가기를 원하는 많은 부인들을 데리고 아들에게 가겠다고 약속하고 말았다.
벤투리아의 약속을 들은 여인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들은 희망이 이뤄지게 해달라고 신에게 기도했다. 그리고 벤투리아의 집에서 나온 다음 두 집정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렸다.
두 집정관은 여인들에게 감사를 드린 뒤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여인들이 이 일을 위해 성 밖으로 나가도록 하는 게 맞는지 모든 의원에게 견해를 내라고 했다.
여러 의원이 많은 견해를 내놓았다. 그들은 밤늦게까지 논의를 계속했다. 일부는 이렇게 주장했다.
“여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적의 진지로 가게 내버려두는 것은 로마에 적지 않은 위험 요인이 될 겁니다. 볼스키는은 사절과 청원인에게 주어진 권리를 무시하면서 그들을 돌려보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로마는 공격을 받지 않고도 점령될지 모릅니다. 코리올라누스와 친척 관계인 여인들만 아이들을 데리고 가도록 합시다.”
다른 사람들은 다른 견해를 주장했다.
“코리올라누스의 어머니와 아내, 아이들이 나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오히려 더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그들은 로마가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인질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의원도 있었다.
“가고 싶어 하는 여인은 모두 가게 합시다. 코리올라누스에게 친척인 여인들은 더 효과적으로 중재를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여인들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출발하기 전에 여인들을 신에게 봉헌하면 신이 그들의 안전을 보증하실 겁니다. 여인들이 만나려고 하는 코리올라누스는 부당하거나 불경스러운 행동으로 그의 인생을 더럽힌 적이 없습니다.”
여인들이 가도록 하자는 주장이 대세를 이뤘다. 이것은 양쪽에 대한 찬사를 내포하고 있었다. 원로원은 큰 위험에 닥쳐서도 흔들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날지 잘 알고 있다는 점에서 지혜롭고, 마르키우스는 로마에서 가장 미약한 존재에 대해서도 불경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에서 경건하다는 것이었다.
두 집정관은 법률을 만든 뒤 이미 어두워졌지만 포로 로마노로 가서 민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원로원 결정을 알렸다.
“모든 로마인은 내일 아침 일찍 성문에 모이시오. 여인들이 나갈 때 배웅해야 하오. 여인들은 가장 중요한 일을 하러 가는 것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