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코리올라누스의 눈물(3) 벤투리아의 읍소

by leo


벤투리아는 코리올라누스 주변에 서 있던 사람들이 보내는 박수가 잦아들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망명 중인 너를 받아주고, 너에게 군 총사령관 자리까지 맡겨준 볼스키에게 배신자가 되라는 게 아니야. 네가 사령관 자리를 맡을 때 했던 약속과 맹세와 달리 동의를 얻지도 않고 마음대로 전쟁을 끝내라는 것도 아니란다. 네 어머니가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에게 수치스럽고 사악한 행동을 강요하는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말아다오.


먼저 합의와 관련해서 절제를 발휘해 두 나라 모두에게 명예롭고 그럴 듯한 평화조약을 맺자고 볼스키을 설득한 다음에 그들의 전체적인 동의를 얻어 전쟁을 그만두라는 이야기란다. 네가 지금 군대를 철수한다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먼저 1년간 휴전한 다음 서로 사절을 주고받으면서 순수한 선린관계와 확고한 화해를 가져오도록 노력하는 거야.


그리고 이걸 확실히 알도록 하렴. 로마인은 불가능한 조건이나 불명예스러운 내용이 협약에 들어있지 않다면, 그리고 설득과 권고를 통해서라면 평화협상에 동의할 거야. 하지만 강요를 당한다면 크든 작든 라틴 도시들이 항복한 뒤에 맺었던 것과 같은 어떤 양보도 하지 않을 거야.


볼스키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그들의 거만함은 지금 하늘을 찌를 것 같구나. 눈에 띄는 성공을 거둔 사람은 늘 그런 법이지. 그러나 ‘평화가 전쟁보다 낫다’거나 ‘선린 사이의 자발적 합의는 어쩔 수 없이 양보한 것보다 훨씬 안전하다’거나 ‘일이 잘 풀리는 것처럼 보일 때 행운을 비는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다. 또 행운이 별로 없어 보일 때도 비열을 짓은 하지 않는 게 현명한 사람이다’라고 네가 그들에게 이야기해보렴. 겸양과 합리적 생각에 도움이 되는 교훈적인 금언, 정치인들이 잘 아는 금언을 사용해보렴. 볼스키는 현재의 허풍에서 벗어나 너에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권한을 줄 거란다.


만약 볼스키가 너의 지도력을 통해 얻은 성공에 고양돼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질 거라고 믿으면서 너의 생각에 반대하고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사령관 자리를 공개적으로 사임하려무나. 그러면 너를 믿어준 사람에게 배신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너에게 가까운 사람에게 적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겠니? 이것에 너에게 부탁하는 호의란다.


아들아! 네가 단언한 것처럼 이것은 불가능한 일도 아니고, 내 입장에서는 부당하거나 불경한 의도를 가지고 양심을 거스르는 것도 아니란다.


내가 부탁하는 일을 한다면, 너를 받아주고 원주민에게나 어울리는 각종 특혜를 나눠준 은인들로부터 은혜도 모른다는 소리를 듣는 불명예를 겪을지도 모른다고 걱정할 수도 있을 거야. 아까 연설할 때 끊임없이 이런 말을 하더구나.


너는 그들에게 훌륭한 이익을 많이 챙겨주지 않았니? 규모나 수로 볼 때 그들로부터 받은 친절을 넘어서는 호의를 이미 베풀어주지 않았니?


볼스키는 고향 땅에서 자유인으로 계속 사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축복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는 이미 그들을 스스로의 주인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로마의 패권을 파괴하는 것이 더 나은지 아니면 연합을 형성해서 똑같은 권리를 가지는 게 나은지를 생각할 수 있을 정도까지 만들어 주었단다. 네가 볼스키 도시를 장식한 전리품을 말하는 게 아니란다. 또 전쟁에 너를 따라온 병사들에게 나눠준 막대한 부를 말하는 것도 아니란다.


너는 너의 도움 덕분에 위대한 도시가 되고 엄청난 번영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 갑자기 얻은 축복에 만족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네가 동포의 피를 흘리지 않을 경우 화를 낸다고 믿는 것이냐?


나는 그렇게 믿지 않는단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게 해주렴. 네가 논리적으로 생각하면 아주 중요한 말이야. 열정만으로 판단하면 아주 사소한 것이지.


네가 조국에 대해 갖고 있는 부당한 증오심을 이야기하는 거란다. 네가 부당한 판결을 받았을 때 로마는 건강한 상태도 아니었고 오래된 헌법에 따라 다스려진 것도 아니었어. 폭력적인 분위기에 휩쓸려 병들어 있었지. 로마인 모두가 당시 너를 쫓아내는 걸 찬성한 것도 아니었어. 다만 사악한 지도자를 추종하는 일부 저열한 사람만 그랬던 것이야.


시민 중에서 가장 나쁜 사람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마음이었다고 치자. 네가 로마에 최고의 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들이 너를 쫓아냈다고 하더라도 네가 조국에 분노를 품는 것은 어울리지 않아.


너와 똑같은 일이 최고의 동기를 갖고 정책을 추진한 많은 사람에게도 일어났었지. 덕망이 정말 뛰어난 탓에 정적이 보낸 부당한 암살자의 숨결을 느껴보지 않은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해.


고귀한 성품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겸손하게 정말 사나이처럼 이런 불행을 참고 견뎠어. 그리고 조국에 어떤 해도 주지 않고 그들이 살 수 있는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지.


콜라티누스라는 이름을 가진 타르퀴니우스가 대표적인 사례란다. 그는 로마를 독재자의 손에서 구해내는 데 힘을 보탰어. 하지만 나중에는 거꾸로 독재자를 불러들이려 한다는 누명을 썼지. 이런 이유 때문에 조국에서 쫓겨나 버렸어. 그래도 그는 추방한 사람들에게 적개심을 품지 않았어. 독재자 편에 서서 로마로 쳐들어오거나, 그의 누명을 해명하려는 행동도 하지 않았지. 그냥 로마의 어머니 도시인 라비니움에 가서 여생을 보냈고, 조국과 친구를 끝까지 사랑했던 거야.


너의 분노를 다 인정하고, 끔찍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어서 적이든 친구든 가리지 않고 분노를 터뜨릴 권리를 갖고 있다고 치자. 그렇더라도 이미 너를 괴롭힌 사람에게 충분히 복수를 하지 않았니? 이미 최고의 농토를 양들의 산책로로 바꿔놓았고, 많은 사람이 엄청난 고난을 치르면서 건설한 도시를 처참히 파괴했고, 3년째 끔찍한 식량 부족에 시달리게 만들지 않았니?


마치 미친 분노를 풀 듯 모든 사람을 노예로 삼고 모든 도시를 폐허로 만들 지경에까지 이르렀구나. 너의 친구인데다 가치 있는 사람들인 원로원 사절이 추방령 해제 및 귀국 허가 조치를 제안했을 때 어떤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 로마가 마지막으로 보낸 사제들도 마찬가지였어. 그분들은 신의 성스러운 화환을 앞에 들고 왔는데도 너는 건방지고 불경스러운 대답만 주고 그들을 피정복민 취급을 하고는 쫓아버렸어.


나는 인간 본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이렇게 가혹하고 오만한 행동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인간이 피난처를 구하려 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구하는 수단으로서 청원자의 나뭇가지와 기도가 만들어졌어. 이것을 보면 모든 분노는 풀리고, 적을 미워하는 대신 불쌍하게 여겨야 하는 거지. 거만하게 행동하면서 청원자의 기도를 무례하게 대하는 사람은 신의 분노를 사게 되고, 결국 비참한 종말에 이르게 되는 법이란다.


우리에게 이런 관습을 만들어 준 신은 사람의 잘못을 쉽게 용서해주고 풀어지는 거란다. 큰 죄를 지었으면서도 신의 분노를 기도와 희생제례로 누그러뜨린 사람은 한둘이 아니지. 만약 네가 이걸 옳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 신의 분노는 영원할 수밖에 없단다. 반면 인간의 운명은 한계가 있는 법이야.


아들아! 옳은 일을 하거라. 조국의 잘못을 용서함으로써 너는 물론 조국에 어울리는 사람이 되거라. 조국은 후회하고 있어. 너에게 용서를 구하면서 네가 잃어버린 모든 걸 다 돌려주려고 해.


만약 조국과 화해할 생각이 없다면 최소한 너를 태어나게 해준 어미에게 호의라도 베풀어다오. 너는 어미 덕분에 가치가 적지 않은데다, 아무나 누릴 수 없으며 네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을 얻게 해준 소중하고 엄청난 혜택을 얻을 수 있었지. 육체와 정신이란다.


너는 나에게서 이걸 빌려간 것이야. 시간과 장소가 나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는 없어. 볼스키뿐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의 후의도 마찬가지지. 그들의 후의가 너무 대단해서 하늘에까지 이르고 자연의 권리를 지우거나 넘어설 수 있을지라도 너는 영원히 나의 것이란다.


너는 무엇보다 생명이라는 빚을 졌어. 변명하려 들지 말고 내가 부탁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주어야 하는 것이야. 이것은 자연의 법칙이 인식과 논리를 가진 사람에게 규정한 천부의 권리이기 때문이야.


나는 이 법을 믿는단다. 그러하니 아들아, 조국을 상대로 전쟁을 하지 말라고 간구하고 싶구나. 네가 굳이 폭력을 휘두르려 한다면 너를 막아설 것이야. 앞을 막아서는 이 어미를 네 손으로 분노의 신에게 첫 제물로 바치거라. 그 이후에 조국을 상대로 전쟁을 시작하거라. 어미를 죽이는 게 꺼림칙하다면 양보해서 기꺼이 호의를 베풀도록 하거라.


시간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이 법이 때로는 나의 잘못을 질타하고 때로는 나의 동지가 되기도 하지. 자연이 나에게 준 이 영예를 나만 빼앗기고 싶지는 않구나. 굳이 이 법을 따지지 않더라도 내가 너에게 준, 네가 나로부터 받은 것들을 생각해보렴. 그것이 얼마나 많고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네 아버지가 너만 남기고 세상을 떠났을 때 나는 재혼하지 않았어. 너를 키우는 고역을 혼자 다 감당했어. 너에게 나는 어머니였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였고, 보모였고, 누이였고, 가장 소중한 모든 것이었지.


네가 성인이 됐을 때 나는 재혼함으로써 모든 고역에서 벗어날 권리를 갖고 있었어. 다른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늙었을 때 부양받을 희망을 키울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어. 이전 그대로 살기로 했어. 똑같은 삶의 방식을 참고 받아들였어. 나의 즐거움이나 이익보다 너를 먼저 생각했기 때문이었어.


너는 이 모든 것에 대해 나를 실망시켰지. 때로는 너의 뜻에 반해서였지만 어떤 때에는 네가 스스로 선택한 결과였어. 그리고 나를 세상의 모든 어머니 중에서 가장 비참한 여인이 되게 했지.


네가 성인이 된 이후 내가 고통이나 두려움 없이 지낸 세월이 하루라도 있었더냐? 내가 언제 네 덕분에 즐거운 영혼을 가질 수 있었더냐? 너는 끊임없이 전쟁터에 나갔고 끊임없이 전투에 참가해서 늘 상처만 얻어왔지 않았느냐? 네가 정치인이 되어 국가 업무에 관여하기 시작한 이후 내가 네 덕분에 어떤 기쁨이라도 누린 적이 있었더냐?


나는 언제나 가장 불행했지. 네가 갈등의 중심에 서 있는 걸 항상 지켜봐야 했어. 네가 귀족을 위해 평민에 맞선 덕분에 인기를 누릴 때 나는 항상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지. 나는 늘 남자의 인생이 어떠한 것인지, 어떻게 하면 균형을 잘 이룰 수 있는지 생각했단다. 그리고 내가 듣고 경험한 많은 사례를 통해 신은 두각을 나타내는 인간을 싫어하든지 아니면 인간의 질투심이 전쟁을 일으킨다는 걸 알게 됐어.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는 진정한 예언자가 되고 말았어. 신이여! 저는 그것을 원하지 않았나이다!


결국 너는 동료 시민 중에서 가장 사악한 자들 때문에 몰리게 됐어. 그들의 나쁜 마음이 너를 폭력적으로 밀어붙였고, 결국 조국에서 내몰고 말았어. 네가 나와 손자들을 떠난 이후를 인생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내 인생은 이렇게 추한 몰골로 떨어져버렸고, 다 찢어진 상복 속에서 썩어가게 됐어.


이 모든 일 때문에 너에게 단 한 번도 짐이 된 적이 없었고 살아 있는 한 그럴 생각이 없었던 나는 지금 여기에 와서 너에게 ‘제발 동료 시민들과 화해하고 조국에 대한 분노를 그만 두세요’라고 애원하는 꼴이 되고 말았구나.


내가 이러는 것은 나에게만이 아니라 우리 둘 다에게 도움이 되는 길을 찾자는 것이야.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너는 자유롭고 하늘이 보낸 분노와 불안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갖게 될 거야. 나는 로마의 모든 사람이 보내는 감사 인사를 받고, 살아 있는 동안 그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여생을 행복하게 살게 되겠지. 죽은 뒤에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덕분에 영원한 명예를 얻게 될 거야. 나는 그렇게 기대하고 있단다.


만약 몸에서 해방된 인간의 영혼을 받아들이는 곳이 정말 있다면 나를 받아들이는 곳은 불행한 사람들이 사는 지하의 음침한 곳은 아닐 거야. 또 레테의 평원이라고 불리는 곳도 아니고, 신의 거처에서 나온 사람들이 행복하고 축복받은 삶을 즐기는 하늘 높은 곳의 천국이 되겠지. 그들은 나의 영혼을 보고 네가 조국에 보여준 경건하고 친절한 행동을 이야기하겠지. 그리고 너에게 영광스러운 보상을 내려주라고 신에게 요청하겠지.


어미를 무례하게 대하거나 불명예스럽게 돌려보낸다면 어떤 처분을 받을지 내 입으로 말할 수 없구나. 다만 행복하지 않다는 것만 미리 이야기할 수 있어.


다른 모든 면에서 운이 좋을지라도 나와 나의 고통 때문에 일어날 죄책감은 너를 괴롭히면서 영혼에 휴식을 주지 않게 되겠지. 그리고 인생에서 즐거움과 축복을 모두 빼앗아 가겠지. 나는 그걸 잘 알고 있단다.


이렇게 많은 목격자 앞에서 이렇게 잔인하고 돌이킬 수 없는 불명예를 받는다면 나는 조금이라도 더 살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야. 그러니 너와 네 친구, 적의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게 낫겠구나. 너에게 비참한 저주를 남기고, 분노의 여신에게 나의 복수를 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해주려무나. 오, 로마 제국을 지키시는 신이여! 제 아들에게 경건한 영혼과 명예로운 정신을 불어넣어주시옵소서.


방금 전 제가 다가왔을 때 아들이 도끼를 치우고 몽둥이를 내리고 사령관의 의자를 재판정에서 땅으로 내리라고 지시한 것처럼, 최고 행정관의 명예를 나타내는 의식 중 일부는 생략하고 일부는 완전히 무시한 것처럼, 그가 다른 사람을 통치하는 게 당연한데도 마치 어머니에게 통치 받는 것처럼 보이기를 바랐던 것처럼, 제 들이 저를 명예롭고 눈에 띄게 받아들이도록 해 주시옵소서.


저에게 로마를 돌려주게 하셔서 저를 가장 불운한 여인이 아니라 가장 행운이 넘치는 여인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옵소서.


어미가 아들 발 앞에서 굽신거리는 게 정의로운 일이라면 조국을 구하기 위해 제가 어떤 굴욕적인 자세로 어떤 굴욕적인 일이라고 하게 해 주시옵소서.”


벤투리아는 말을 마치자마자 땅에 엎드려 두 손으로 아들의 발을 붙잡고 입을 맞추었다. 그녀의 뒤를 따라 다른 여인들도 함께 울면서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자리에 있었던 모든 볼스키 사람들은 그 놀라운 모습을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어 고개를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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