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카시우스의 죽음(1) 로마의 반격

by leo



며칠 뒤 로마는 대군을 이끌고 출정했다. 두 집정관이 사령관을 맡았다. 그들은 로마 영토의 끝까지 진군해 두 언덕에 진영을 꾸렸다. 각각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그들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성과 없이 귀향할 수밖에 없었다.


두 집정관이 출정하기 전에 이미 볼스키와 아이퀴는 대군을 이끌고 로마 영토로 향했다. 그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고 작심했다. 로마가 공포에 떨고 있는 사이 공격할 작정이었다. 이렇게 하면 로마는 자발적으로 항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볼스키와 아이퀴 사이에 지휘권을 두고 갈등이 생겼다. 그들은 무기를 들고 서로 달려들었다. 대오를 지키지도 않고 명령을 따르지도 않고 서로 싸웠다. 그래서 양측에서 많은 병사가 죽었다. 해가 지지 않았다면 양측 군대는 큰 피해를 봤을 것이다. 밤이 찾아오는 바람에 그들은 갈라져 진지로 돌아갔다. 새벽에 고향으로 철군했다.


두 집정관은 싸움이 벌어지는 동안 달아난 탈영병과 포로들에게서 그들의 갈등에 대해 정보를 얻었다. 멀지 않은 곳에 주둔하고 있었지만 두 집정관 중 누구도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철군할 때 뒤쫓지도 않았다. 로마군은 젊은데다 군기가 좋았기 때문에 지치고 다친 적군을 손쉽게 물리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두 집정관은 진지를 걷고 로마로 돌아갔다. 그들은 포르투나 여신이 준 행운에 만족할 뿐이었다. 아니면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군대에 자신감을 갖지 못했을 수도 있다. 이도저도 아니라면 로마병사 중 일부라도 잃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들이 귀환했을 때 엄청난 불명예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겁쟁이라는 낙인을 견뎌야 했다. 더 이상 전투에 나서지 못하고 두 사람은 후임자에게 행정관 자리를 넘겨주어야 했다.


이듬해 전쟁 경험이 풍부한 가이우스 아퀼리우스와 티투스 시키우스가 집정관에 취임했다. 두 집정관이 전쟁을 고려하고 있을 때 원로원은 먼저 헤르니키에 관례에 따른 보상을 요구하기 위해 사절을 보내기로 했다.


볼스키와 아이퀴가 로마를 공격하고 있을 때 헤르니키가 저지른 잘못 때문에 로마가 고통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헤르키니가 도적떼를 보내는가 하면 로마 영토로 침범해 들어왔다는 것이었다.


원로원은 헤르니키의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두 집정관에게 모든 병력을 동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사절을 보내 동맹국을 모으고 전쟁에 필요한 곡식, 무기, 자금 등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하라고 촉구했다.


헤르니키에 다녀온 사절은 그곳에서 받아온 답변을 원로원에 보고했다. 그 내용은 이러했다.


“우리는 두 나라 사이에 조약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타르퀴니우스와 맺은 조약은 그의 퇴출 및 사망을 계기로 해소됐습니다. 일부 약탈이 벌어졌을 수도 있고, 도적떼가 로마 영토로 쳐들어갔을 수도 있지만 정부의 동의를 받아 이뤄진 일은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사적 욕심을 추구하던 개인들의 악행이었습니다. 이들이 똑같은 피해를 입었다면서 똑같은 하소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심지어 이들조차도 처벌할 수 없습니다. 전쟁을 원한다면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원로원은 군에 등록한 젊은이들을 세 부류로 나누게 했다. 이 중 하나는 가이우스 아퀼리우스가 맡아 헤르니키로 쳐들어가고, 다른 하나는 티투스 시키우스가 맡아 볼스키를 상대하고, 나머지 하나는 스푸리우스 라르키우스가 맡아 로마 성 주변 지역 방어에 대비하라고 결정했다.


나이는 들었지만 무기를 들 수 있는 사람들은 군장을 갖추고 성채와 성벽 방어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젊은이들이 야전에 나가 있는 동안 적이 기습하는 경우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전직 집정관인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가 이들을 지휘하기로 했다.


아퀼리우스는 프라에네스티 지역에서 기다리고 있던 헤르니키 군을 만났다. 양측 군대는 아주 가까운 거리에 진영을 꾸렸다. 로마에서 15㎞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다음날 헤르니키가 먼저 진지 밖으로 나와 전투 지시를 내렸다. 아퀼리우스도 군대를 끌고 나왔다. 그는 적절한 계획을 세운 뒤 여러 지점에 나눠 병력을 배치했다.


가까이 다가간 양측 군대는 구호를 외친 다음 달려갔다. 먼저 경무장 보병끼리 격돌했다. 서로 창을 던지고 활을 쏘고 소총으로 돌을 던졌다. 서로 부상자가 속출했다. 이어 기병들이 맞대결했다. 그리고 중무장 보병이 부대끼리 싸우기 시작했다. 양측 군대는 격렬하게 싸웠다. 영광스러운 전투가 벌어졌다. 오랫동안 양측은 굳건하게 버텼다. 어느 쪽도 서 있는 장소에서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결국 로마군이 밀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랫동안 전투에 나서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퀼리우스는 예비부대에 출격하라고 명령했다. 밀리고 있는 전선에 들어가 다치고 지쳐서 뒤로 물러나야 하는 병사들을 지원하라고 했다. 로마군이 이동하는 모습을 본 헤르니키는 그들이 달아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대열을 좁힌 뒤 이제 막 투입된 적군을 공격했다. 로마군 예비부대는 그들의 공격을 받았다. 양측은 다시 치열하게 싸웠다. 헤르니키 군은 끊임없이 새 병력을 보강했다.


결국 아퀼리우스는 기병에게 말을 버리고 보병으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병력을 이끌고 적의 우익을 공격했다. 적은 잠시 저항하더니 무너지고 말았다. 대학살이 이어졌다. 헤르니키의 우익은 큰 어려움에 처했고 더 이상을 대열을 유지할 수 없었다. 좌익은 로마 우익보다 우세했지만 잠시 후 무너지고 말았다.


아퀼리우스는 최정예 병사들을 이끌고 로마 우익을 도와주러 달려갔다. 그는 병사들을 독려하고, 이전 전투에서 무용을 떨쳤던 병사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가면서, 최선을 다해 싸우는 것 같지 않은 백인대의 기수에게서 깃발을 빼앗아 적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었다. 깃발을 되찾지 못하면 법에 따라 처벌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한 병사들이 용기를 내라고 독려한 것이었다. 아퀼리우스는 끊임없이 밀리고 있는 전선을 도와주러 달려갔다.


헤르니키의 양 측면이 노출되고 말았다. 중앙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헤르니키는 달아나기 시작했다. 무질서하게 혼란을 일으키며 진지로 도주했다.


로마군은 그들을 뒤쫓았다. 로마군에는 열정이 흘러넘쳐 일부 병사는 적의 진지를 점령할 생각으로 성채에 기어 올라가려고 했다.


아퀼리우스는 이런 열정은 위험하다고 보고 차분하게 철수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적과 주먹을 주고받던 병사들은 의지에 반해 물러나야 했다. 아퀼리우스는 위에서 쏟아지는 투창 때문에 큰 피해를 입고 퇴각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방금 얻은 승리에 큰 흠집을 남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잠시 후 해가 졌다. 로마군은 승리의 노래를 부르면서 기쁜 마음으로 캠프로 귀환했다.


그날 밤 헤르니키 진지에서는 소란이 벌어졌다. 고함소리가 들렸고 불길이 치솟기도 했다. 적은 다음 전투에서 버틸 수 없다고 절망하면서 진지를 걷기로 결정했다. 이것이 무질서와 고함의 이유였다. 다치거나 병에 걸려 뒤에 남은 동료의 간청과 한탄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서로 이름을 부르고 들으면서 온힘을 다해 달아났다.


로마군은 처음에는 이런 사정을 알지 못했다. 헤르니키 포로에게서 지원병이 몰려온다는 정보를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에 고함 소리를 지원병이 도착한 것으로 생각했다. 이에 따라 로마군은 무장을 풀지 않고 참호에서 원을 이루고 전투에 대비하고 있었다. 밤에 적이 기습을 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동시에 무기를 부딪쳐 소음을 내고, 더 싸울 자신이 있는 것처럼 연거푸 구호를 외쳤다.


헤르니키는 로마군의 행동에 겁을 먹고, 적이 추격해온다고 두려워한 나머지 이리저리 흩어져 달아났다. 일부는 도로로, 나머지는 다른 곳을 통해 도망쳤다.


날이 밝아 순찰 기병이 파견됐다. 그들은 헤르니키에 지원병이 오지 않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날 전투에 나섰던 적병도 모두 달아났다고 보고했다.


아퀼리우스는 군대를 이끌고 진군해 적의 진지를 차지했다. 그곳에는 짐을 싣는 동물, 각종 보급품, 무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부상자들을 포로로 붙잡았다. 달아난 적병만큼이나 많았다. 그는 기병을 보내 도로나 숲으로 달아난 적병을 추격하라고 했다. 상당수를 붙잡을 수 있었다.


아퀼리우스는 헤르니키 영토로 쳐들어가 노략질했다. 더 이상 누구도 로마군에 맞서려고 하지 않았다.


티투스 시키우스는 정예병을 이끌고 (볼스키 족 도시인)벨리트라이 영토에 침입했다. 볼스키 장군 툴루스 아티우스는 가장 용감한 병사들과 함께 그곳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코리올라누스가 전쟁을 시작할 때 했던 것처럼 로마 동맹을 괴롭힐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이렇게 하면 로마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감히 지원병을 보내지 못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두 군대는 만나자 마자 주저하지 않고 격돌했다.


전투가 벌어진 곳은 바위 언덕이었다. 이곳에서는 기병을 활용할 수 없었다. 로마 기병은 다른 병사를 돕지 않고 자리만 지키는 걸 수치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시키우스에게 말을 버리고 보병으로 참전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그들의 요구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시키우스는 기병을 직접 데리고 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전선에 지원병으로 달려가게 했다. 그들은 이날 로마군이 얻은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었다. 양측 보병은 수나 무장, 그리고 전술 대형과 경험에서 대동소이했다. 볼스키는 코리올라누스를 사령관으로 받아들인 뒤 모든 군사전략을 버리고 로마의 전략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에 따라 양측 보병은 하루 종일 비슷하게 전투를 이어갔다. 지형의 차이가 양측에 득이 되고 실이 됐다. 로마 기병은 두 부대로 나눴다. 하나는 적 우익을 측면에서 공격했다. 다른 하나는 언덕을 돌아가 적의 배후를 공격했다.


일부는 적에게 창을 던졌고, 일부는 기병 칼을 휘둘렀다. 이 칼은 보병의 칼보다 길었다. 그래서 적을 만날 경우 팔꿈치나 팔목을 베고 무릎, 발목에 깊은 상처를 남길 수 있었다. 그들이 아무리 단호하게 버티더라도 집어던져서 반쯤 죽일 수 있었다.


이제 로마는 모든 측면에서 볼스키를 에워쌌다. 보병은 적면에서 적을 압박했고, 기병은 측면과 배후에서 공격했다. 그들은 능력 이상의 용기를 발휘해 적의 우익을 무너뜨렸다. 로마 기병은 이번에는 똑같은 방법으로 적의 좌익과 중앙을 공격했다. 볼스키는 후퇴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천천히 진지로 돌아갔다. 로마 기병은 대열을 지키면서 그들을 추격했다.


양측이 볼스키 진지 근처에 갔을 때 다시 전투가 벌어졌다. 로마 기병은 여러 지점에서 적의 진지를 넘어가려고 애썼다. 이날의 행운을 결정지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전투였다.


로마군이 심하게 압박을 받고 있을 때 시키우스는 보병에게 나무를 가져와 해자를 매우라고 했다. 그리고 직접 용감한 기병의 선두에 서서 진지의 문을 향해 전진했다. 그곳에서 적 방어병을 물리친 뒤 쇠창살문을 박살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다른 보병이 그의 뒤를 따라 밀고 들어갔다.


아티우스는 볼스키 최정예병을 이끌고 맞섰다. 그는 훌륭한 장군은 아니었지만 빼어난 전사였기 때문에 용감하게 싸웠다. 하지만 피로에 지친데다 부상이 심해 결국 죽고 말았다. 진지가 함락됐을 때 병사들 가운데 일부는 싸우다 죽었다. 다른 일부는 항복했다. 몰래 도망가 집에 무사히 도착한 병사들도 있었다.


두 집정관이 보낸 전령이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인은 엄청난 기쁨에 사로잡혔다. 그들은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희생제례를 치르기로 했다. 그리고 두 집정관에게 개선식의 영광을 주기로 했다.


시키우스는 볼스키를 파멸시키고 장군을 죽임으로써 로마를 엄청난 두려움에서 구했기 때문에 가장 큰 개선식을 허용하기로 했다. 그는 전리품, 포로를 이끌고 군대와 함께 로마로 마차를몰 몰았다. 그는 왕의 복식을 갖춘 채 황금색 굴레를 찬 말들이 이끄는 전차에 탑승했다.


아퀼리우스에게는 그보다 조금 급이 낮은 오베이션 개선식을 허용했다. 그는 로마에 걸어서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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