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독일에 아이를 열둘이나 둔 가난한 사내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이들을 먹이기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 했습니다.
힘들어 죽을 지경인데 열세 번째 아이가 또 태어났습니다. 사내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마음이 답답해진 그는 집 밖으로 나갔습니다.
누군가 어둠 속에서 다가왔습니다. ‘죽음’이라는 존재였습니다.
“내가 저 아이의 대부가 되겠습니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는 죽음입니다.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만들어주는 존재이지요.”
가난한 사내는 밝게 웃으며 말했습니다.
“당신이 딱 알맞은 사람이군요. 차별을 두지 않고 가난한 사람이나 부자나 모두 붙잡아가니까. 내 아이의 대부가 돼 주십시오.”
죽음은 차분하게 이야기했습니다.
“아이를 부자로 만들 겁니다. 뿐만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으로 만들 겁니다. 아이에게 부족한 건 아무 것도 없을 것입니다.”
가난한 사내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다음 일요일에 세례를 할 겁니다. 제 시간에 와 주시기를 바랍니다.”
죽음은 약속한 날 약속한 시간에 교회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열세 번째 아이의 대부가 됐습니다.
열세 번째 아이는 무럭무럭 자랐습니다.
어느 날 죽음은 소년을 숲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너를 가장 유명한 의사로 만들어주마. 환자가 올 때마다 내가 도와줄 거야. 내가 침대의 발쪽에 서 있으면 ‘당신을 곧 낫게 해주겠소’라고 말하거라. 그리고 내가 주는 작은 약초를 먹여라. 그러면 환자는 바로 병에서 나을 것이다. 내가 침대의 머리 쪽에 서 있으면 ‘어떤 도움도 소용이 없겠군요. 당신은 곧 죽을 거요’라고 말하면 돼.”
죽음은 소년에게 작은 약초를 보여주었습니다.
“조심하거라. 약초를 네 마음대로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돼.”
죽음의 말대로 소년은 오래지 않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의사가 됐습니다.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야기했습니다.
“그 분은 환자를 보면 죽을지 살지를 금세 아시더군요.”
의사에게는 환자가 몰려들었습니다. 멀리서도 치료를 받으러 찾아왔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놓을 것이니 목숨만 살려달라고 했습니다. 의사는 금세 부자가 됐습니다.
어느 날 왕이 병에 걸렸습니다. 의사는 궁에 들어가 왕의 상태를 살펴보게 됐습니다. 그가 침대로 다가갔을 때 죽음은 왕의 머리맡에 서 있었습니다. 왕이 곧 죽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의사는 왕을 살리고 싶었습니다. 딱 한 번만 죽음을 속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죽음이 화를 내지는 않을 거야. 나의 대부잖아!’
의사는 왕을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리고 머리를 발이 있던 쪽으로 한 바퀴 돌렸습니다. 죽음은 왕의 발쪽에 서 있게 됐습니다.
죽음은 아무 말 없이 의사에게 약초를 건넸습니다. 왕은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날 저녁 죽음은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화난 얼굴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꽤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이번 한 번만 용서해주지. 어쨌든 나는 너의 대부니까 말이야. 하지만 한 번만 더 나를 속이면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이번에는 왕의 딸이 병에 걸렸습니다. 아무도 공주를 치료하지 못했습니다. 늙은 왕은 자신을 살려준 의사를 불렀습니다.
“내 딸도 구해주게나. 그러면 이 아이와 결혼을 시키고 왕 자리도 물려주겠네.”
의사는 공주의 미모에 반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죽음은 공주의 머리맡에 서 있었습니다. 공주가 죽는다는 뜻이었습니다.
의사는 공주를 살리기로 했습니다. 죽음이 한 경고를 잊어버린 것이었습니다. 공주와 결혼시켜 준다는 왕의 약속만 머리에 맴돌았습니다.
의사는 지난번 왕에게 그랬던 것처럼 공주를 한 바퀴 돌렸습니다. 이를 본 죽음은 지난 번과 달리 인상을 매우 찌푸렸습니다. 그래도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약초를 의사에게 주었습니다. 공주는 다시 살아났습니다.
죽음은 그날 저녁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얼굴은 매우 어두웠습니다. 그는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를 따라오너라.”
죽음은 의사를 데리고 땅속 동굴로 내려갔습니다. 그곳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초가 타고 있었습니다.
일부는 절반만 탄 상태였고, 일부는 의 다 타서 이제 곧 꺼질 것 같았습니다.
신기하게도 초 하나가 다 타서 꺼지면 다음 초가 저절로 커졌습니다.
“잘 보도록 해라. 이것은 인간이 가진 생명의 촛불이지. 큰 촛불은 어린이, 반쯤 탄 촛불은 중년, 작은 촛불은 노년의 인간이야. 촛불이 다 타면 세상에 살고 있는 인간의 생명은 끝나는 거야. 그러면 그 사람은 나의 것이 되는 것이지.”
의사는 죽음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저의 초는 어디 있나요?”
죽음은 아주 희미하게 꺼져가는 작은 촛불을 가리켰습니다.
“저것이 바로 너의 초란다.”
“저는 아직 젊습니다. 그런데 왜 저의 초는 다 꺼져가는 건가요"”
“네가 마음대로 왕과 공주를 살려줬기 때문이야. 세상 모든 사람의 수명은 운명으로 정해져 있어. 그걸 어기고 남의 생명을 연장시키면 그만큼 나의 생명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거야. 욕심이 네 초의 수명을 줄인 거지.”
의사는 죽음의 팔을 붙잡고 울부짖었습니다.
“대부님, 제 초를 다시 밝혀 주십시오. 제가 왕이 되고 아름다운 공주의 남편이 돼 인생을 즐길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죽음은 차가운 목소리로 거부했습니다.
“그럴 수는 없어. 네 초를 살리려면 다른 초 하나를 꺼야 해. 하지만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이미 정해진 운명의 원칙이기 때문이지.”
두려움에 사로잡힌 의사는 꺼지기 직전인 자신의 초를 들어올렸습니다. 그리고 아직 불이 붙지 않은 다른 초를 향해 달려갔습니다. 자신의 초를 새 초에 포개어 둘이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게 그의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면 다시 한 번 더 인생을 살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급하게 달려가던 의사는 새 초 앞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그가 들고 있던 초는 바닥에 떨어져 꺼지고 말았습니다. 넘어진 의사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죽음은 바닥에 떨어진 초를 집어 들었습니다. 동굴 맨 안쪽에 큰 화로가 있었습니다. 화로에는 불이 꺼진 초들이 녹고 있었습니다. 죽음은 그곳에 의사의 초를 집어넣었습니다. 그는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어느 누구도 세상의 원칙을 깰 수는 없어.”
1. 악마와의 약속은 유효한 것일까요?
2. 여러분에게 기회가 찾아온다면 악마와 거래를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