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카시우스의 죽음(3) 독재자가 되려한 자의 최후

by leo



갈등이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귀족은 두려워하게 됐다. 법이 제안될 경우 투표 도둑, 폭력은 물론 모든 물리적 수단이 다 동원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들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회의를 소집했다.


아피우스가 가장 먼저 발언권을 얻었다. 그는 땅을 평민에게 나눠주는 것에 반대했다.


“게으른 군중이 공공재산을 먹어치우는 데 익숙해지면 문제만 일으키고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시민으로 전락할 것입니다. 땅이든 돈이든 공공 재산이라는 걸 전혀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로원이 사악하고 도움이 안 되는 정책을 도입한다고, 민중을 오염시킨다고 카시우스를 비난하면서 그의 조치를 정당하고 이익이 되는 것인 양 재가해준다면 부끄러운 일이 될 것입니다.


공공재산을 나눠준다 하더라도 가난한 자들은 여기에 동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보이지 않을 거라는 걸 명심하십시오. 법을 제안하고 원로원에게 법을 재가하라고 강요한 카시우스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명심하십시오.


원로원 의원 10명을 골라 공공용지를 살펴서 경계를 설정하게 하십시오. 속임수나 무력으로 땅을 경작하거나 방목하는 사람이 있다면 땅을 국가에 돌려주게 하십시오. 그들이 범위를 정한 땅이 결정되면 기둥으로 표시를 하고 일부를 팔아야 합니다. 나머지는 5년간 임대하면 됩니다. 임대수입은 군대비용 그리고 전쟁에 필요한 물품 구입비용으로 쓰면 됩니다.


공공재산을 불법 점유하고 있는 부자에 대한 빈민의 질투는 합당합니다. 일부, 특히 부끄러움을 모르는 사람들이 점유하는 것보다는 모든 시민에게 나눠주는 게 낫다고 요구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공공 토지를 이용하는 사람이 그걸 포기하고 공용으로 내놓는다면 질투를 중단하고 토지를 개인에게 나눠줘야 한다는 주장도 포기해야 합니다. 모든 시민의 공동 소유가 각 개인의 소규모 보유보다 더 큰 이익이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토지를 나눠받는 사람이 우연히 골치 아픈 이웃을 만난다면 땅을 경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웃 말고는 소작을 맡길 사람을 구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반면 대형할당제를 도입해서 국가가 농부에게 땅을 세놓는다면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을 하러 나갈 때 개인 땅에서 나오는 수입으로 세금을 내서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살이가 더 빠듯해지는 것보다는 국고에서 월급이나 배당을 받는 게 훨씬 이득이 될 것입니다.”


아피우스의 제안은 대다수의 동의를 얻을 것처럼 보였다.


아울루스 셈프로니우스 아트라티누스가 연설하기 위해 일어섰다.


“아피우스가 사태를 미리 멀리 내다보는 능력을 가진 데 대해 높은 평가를 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항상 뛰어나고 유용한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으로서, 또 단호하고 흔들리지 않는 판단을 가진 사람으로서 그는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호의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그가 보여준 빈틈없는 생각과 고귀한 정신을 감탄하거나 칭찬하는 걸 멈춰본 적도 없습니다. 내가 제안하려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가 빼먹은 몇 가지를 보태고자 할 뿐입니다.


최근 시민권을 부여한 헤르니키, 라틴과 관련해서 토지를 분배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땅을 차지한 것은 그들과 우호관계를 맺은 이후가 아니라 훨씬 이전이었습니다.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위험한 노력을 통해 땅을 적에게서 빼앗았습니다.


그들에게 이런 답을 주도록 합시다.


‘우호조약을 맺을 때 각자 갖고 있었던 소유물은 각자의 재산으로 남아 있어야 한다. 다만 함께 출정해 전쟁을 벌여 소유하게 된 재산의 경우에는 각자가 몫을 받아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을 해결하더라도 동맹은 화를 낼 이유가 없습니다. 평민이 그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것처럼 보인다고 걱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피우스가 제안한 것처럼 공공토지의 범위를 정할 사람을 임명하자는 제안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평민은 지금 두 가지 사항에 불만을 갖고 있습니다. 먼저 토지의 공공 소유로부터 전혀 혜택을 보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중 일부만 부당하게 이익을 취한다는 겁니다.


토지가 공공에 귀속되고 수입이 로마에 필요한 일에 쓰이는 걸 알게 되면 그들은 분배받는 게 땅이든 그 생산품이든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물론 가난한 사람 중 일부는 그들의 이익보다는 남의 손해를 더 좋아할 것이라는 말은 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나는 법안에 이 두 가지 조항을 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다고 판단하지 않습니다. 다른 온건한 조치를 통해 민중의 선의를 얻고 그들을 달래야 한다는 게 나의 생각입니다. 지금 그걸 제안하고자 합니다. 먼저 그 이유, 아니 필요성을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은 민회에서 호민관이 한 말을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는 집정관 베르기니우스에게 토지 분배와 관련해서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지를 물었습니다. 토지를 시민들에게만 분배하고 동맹에게는 주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지, 아니면 모든 토지를 나누는 것에 동의하지 않은지를 물었습니다.


베르기니우스는 로마인에게 한정된다면 토지 분배를 막을 뜻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양보는 호민관으로 하여금 우리를 편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평민을 좀 더 합리적으로 진정시켰습니다.


우리가 양보해놓고 마음을 바꿔버린다면 무슨 일이 닥치겠습니까? 정부를 따르는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한다면 고귀하고 탁월한 정부의 원칙, 우리에게 패권을 유지할 가치를 주는 원칙을 어겨서 얻는 이익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평민을 설득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 중 어느 누구도 이를 모르지 않을 겁니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희망을 배신당하고 약속받았던 걸 받지 못할 경우 최악의 분노를 느끼게 될 겁니다. 그들을 만족시켜야 할 정치인은 다시 그들과 맞서게 될 겁니다. 심지어 호민관 중 어느 누구도 우리를 지지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제안하려는 것을, 그리고 아피우스의 제안에 덧붙이는 걸 잘 들으십시오. 내가 말하는 걸 다 듣기 전에는 일어나서 소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원로원이 땅을 조사하고 경계를 확정지을 조사관을 임명한다면 그들이 10명이든 얼마가 됐든 그들에게 아무리 넓은 땅이라도 공동용지를 결정할 권한을 줘야 합니다. 5년 동안 세를 놓음으로써 국고의 수입을 늘리게 하십시오. 그리고 얼마나 많은 땅을, 어떤 땅을 평민에게 나눠줘야 할지를 결정하게 맡겨야 합니다.


그들이 땅을 나눠주기로 결정한다면 원로원은 모든 시민에게 골고루 나눠줄지, 아니면 땅이 없는 사람에게만 나눠줄지, 그것도 아니면 토지 보유 비율이 가장 낮은 사람에게 나눠줄지를 결정하고 땅을 나눠야 합니다.


현재 집정관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땅의 경계를 결정할 사람들이나 땅의 분배 및 모든 필요한 사항을 담을 법안 발표와 관련해서는 다음 차례 집정관들이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방식에 따라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에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립니다. 게다가 두 집정관은 갈등을 빚고 있습니다. 다음 집정관들이 조화를 이룬다면 그들보다 더 훌륭한 통찰력을 보여주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지연 전략은 유용하지만 위험합니다. 시간은 하루 만에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국가 업무를 관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없다는 것은 국가에 축복을 불러올 수 있는 행운입니다. 내 생각은 여기까지입니다. 나보다 더 좋은 생각이 있으면 말씀하십시오.”


셈프로니우스가 말을 마치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의원들 중에서 그와 다른 견해를 밝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원로원은 최종 결론을 내렸다.


‘공공용지의 경계를 결정하고 세를 놓을 땅과 평민에게 나눠줄 땅을 결정하기 위해 전직 집정관 10명을 데켐비르(위원)로 임명한다. 시민권을 가진 사람과 전쟁에 동참해 토지 획득에 힘을 보탠 동맹은 조약에 따라 토지 분배에 참여할 권리를 갖는다. 데켐비르 임명, 토지 분배, 그밖에 필요한 모든 사항은 다음 집정관이 실행한다.’


원로원의 결정은 평민들에게 통고됐다. 카시우스의 선동은 끝났다. 그는 더 이상 폭동을 부채질할 수 없게 돼 버렸다.


다음 해에는 퀸투스 파비우스와 세르비우스 코르넬리우스가 집정관 자리에 올랐다. 둘 다 젊고 조상들의 명망 덕분에 매우 유명했다. 지지자와 재산이 많아 영향력이 매우 컸다. 젊은 사람들이었지만 공공업무를 처리하는 능력이 남들보다 처지지 않았다.


파비우스의 형제인 카이소 파비우스와 왕정을 뒤엎은 푸블리콜라의 동생인 루키우스 발레리우스 푸블리콜라는 당시 법무관이었다. 두 사람은 민회를 소집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 그들은 스푸리우스 카시우스를 맹비난했다. 그에게 독재를 노린 혐의를 뒤집어씌우고 민회에서 해명할 기회를 주기로 했다.


민회가 열린 날 많은 사람이 모였다. 두 법무관은 그들의 행동을 설명하면서 좋지 않은 의도를 가진 건 아니라고 주장했다.


“라틴인은 공동 시민처럼 여겨지는 것에 만족하면서 그만큼이라도 얻은 걸 행운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집정관으로서 그들에게 아예 로마 시민권을 부여했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공동 출정할 경우 전리품 중에서 3분의 1을 그들에게 주는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했습니다.


헤르니키인의 경우 전쟁에서 패했기 때문에 영토 일부를 잃은 대신 처벌받지 않은 것에 만족하는 게 마땅합니다. 그런데 카시우스는 그들을 속주민이 아니라 친구로 삼았으며 시민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어떤 경로든 로마인이 얻는 전리품과 땅 중에서 3분의 1을 그들에게 주는 법안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되면 전리품은 세 조각으로 나눠지게 됩니다. 로마의 속주민과 동맹이 3분의 2를 가져가고 로마 원주민은 고작 3분의 1만 차지하게 됩니다. 앞으로 로마를 도와줄 다른 나라에게 어떤 보답을 할지 판단할 때 라틴인은 물론 전쟁에서 아무런 도움도 주지 않은 헤르니키인에게 준 것과 똑같은 혜택을 고려해야 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3분의 1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방에게 아무 것도 주지 않든지, 아니면 우리가 아무 것도 갖지 않아야 합니다.


카시우스는 국가 공동재산을 나눠주는 법안을 원로원 의결이나 동료의 동의 없이 처리하려 했습니다. 그는 정당하지 않고 부당한 법을 통과시키려 했습니다. 원로원이 먼저 그 조치를 검토해서 승인할 경우, 모든 기관이 공동회의를 거쳐 최종 결정해야 하지만 카시우스는 오직 모든 과정을 한 사람의 호의로 만들려고 했습니다.


게다가 명목상으로는 공공 토지를 시민에게 나눠준다는 것이지만 사실은 박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 하면 전혀 권리를 갖고 있지 않은 라틴인과 헤르니키인이 3분의 2를 가져가버리고 로마인은 고작 3분의 1만 차지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호민관도 그의 생각에 반대했습니다. 외국인에게 똑같은 몫을 허용하는 법안 내용을 철회하라고 요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호민관, 동료, 원로원, 로마에게 최고의 이익이 되도록 논의하자는 모든 사람의 요구와 전혀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우리의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시민 여러분이 다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가 독재를 노렸다는 비밀 증거도 있습니다. 라틴인과 헤르니키인이 그에게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무기도 제공했습니다. 또 두 곳에서 가장 무모한 젊은이들이 그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비밀 계획을 세우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를 지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의 진실성을 입증하기 위해 로마는 물론 다른 동맹 도시들의 주민을 증인으로 내세우겠습니다. 다들 수준이 낮거나 신분이 불확실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로마인들은 두 법무관의 말을 믿었다. 카시우스가 매우 세심하게 준비한 해명 연설을 했지만 전혀 흔들리지 않았다. 그의 세 아들이 동정을 호소했고, 다른 친척들과 친구들이 그의 운명을 한탄하는 대열에 합류했다. 그가 전쟁에서 얼마나 맹활약했고 얼마나 많은 영광을 안았는지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그는 유죄 선고를 받았다.


로마인들은 독재자라는 용어에 매우 분노했다. 그의 처벌 수위를 결정할 때에도 분노를 조절할 수 없었다. 그들은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로마인들은 가장 뛰어난 장군이 조국에서 쫓겨나 망명을 가게 되면 나라를 분열시키고 적을 통일시켜 조국을 전화에 빠뜨린 코리올라누스의 전례를 따를지도 모른다고 걱정한 것이었다.


두 법무관은 그를 포룸을 내려다보는 언덕(카피톨리노 언덕의 타르페이아 바위) 위로 데려갔다. 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언덕 아래로 집어던졌다. 당시에는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을 처벌하는 관습이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은 카시우스와 관련해서 전해 내려오는 설명 중에서 가장 개연성 있는 내용이다.


나는 다른 주장도 빼먹지 않을 작정이다. 일부에서는 다르게 주장한다.


카시우스가 독재자 자리에 오르려는 계획은 은밀하게 진행됐다. 가장 먼저 의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였다. 이 문제를 상세히 조사한 그는 원로원에 찾아갔다. 그리고 아들에게 그곳에 오라고 했다. 아버지는 제보자이면서 기소자였다. 원로원이 유죄 판결을 내리자 카시우스는 집에 가서 자살했다.


잘못을 저지른 아들에 대한 가혹하고 용서 없는 아버지의 분노는 당시 로마인 사이에서는 흔했다. 이런 사실은 다른 주장도 뿌리칠 수 없게 만든다. 왕정을 폐지한 브루투스는 법에 따라 두 아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렸다. 쫓겨난 왕 타르퀴니우스의 복귀를 도왔다는 이유 때문에 참수했다.


나중에 벌어지게 될 갈리아 전쟁에서 사령관이었던 만리우스는 전투에서 맹활약했던 아들에게 상을 내렸다. 탁월한 용기를 과시한 병사에게 주는 풀잎관이었다. 하지만 그는 동시에 불복종 죄로 아들을 처벌했다. 진지에 남아 있으라는 명령을 어기고 전투에 나섰기 때문이었다. 만리우스는 아들에게 탈주병 혐의를 적용해 사형선고를 내렸다.


다른 아버지들도 때로는 큰 잘못 때문에, 다른 경우에는 사소한 실수 때문이었지만 아들에게 자비나 연민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카시우스의 죽음에 대한 설명이 엉터리라고 단정 해서는 안 된다고 본다.


무엇보다 카시우스가 죽은 뒤 그의 집은 잿더미로 변했다. 그 자리는 오늘날까지도 비어 있다. 나중에 나라가 텔루스 신전을 지은 곳만 예외다. 이 신전은 지금은 카리나이로 이어지는 거리에 서 있다. 그의 재산은 국가에 몰수됐다. 재산은 다양한 신전에 제물로 바쳐졌다. 특히 케레스 신에게 바치는 청동상 여러 개를 만들었다. 청동상에 새겨진 문구를 보면 누구의 재산으로 제물을 바쳤는지를 알 수 있다.


아버지가 제보자이면서 기소자이고 처형 집행자였다면 집은 잿더미가 되지 않고 재산도 몰수되지 않는 게 합리적이다. 아버지가 살아 있을 때에는 자식에게는 재산이 없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식이 가진 재산이나 자식의 노예 등 사람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었다.


아들이 독재를 노린다는 정보를 준 아버지의 재산을 아들의 범죄를 이유로 몰수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 이런 이유 때문에 나는 두 주장 가운데 전자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


카시우스의 두 아들도 사형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원로원은 이 같은 과거의 관습을 너무 잔인하고 유해한 처사라고 판단했다. 그들은 투표를 통해 두 소년에게 면죄부를 주기로 결정했다. 추방하거나 시민권을 박탈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은 늘 관찰대상이 돼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때부터 로마에서는 아버지가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아들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관습을 정립했다. 독재자, 존속살인범, 반역자의 아들이라 하더라도 마찬가지다. 반역은 로마에서는 최악의 범죄로 간주됐다. 이 관습은 지금까지 이어져온다.


동맹 전쟁과 내란이 끝난 이후 자식을 처벌하지 않는 관습을 폐지하려고 했던 사람들, 그리고 술라 시대에 탄압을 당했던 아들들에게서 아버지가 보유했던 행정관직에 출마할 권리와 원로원 의원이 될 권리를 빼앗은 사람들은 인간의 분노와 신의 복수를 받아 마땅한 짓을 저지른 것으로 간주됐다.


당연히 시간이 흐른 뒤 합당한 응징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가해자들은 한때 누렸던 최고의 영광을 놓치고 최악의 상황에 빠져버렸다. 그들의 후손들, 심지어 모계 쪽까지도 살아남지 못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2. 카시우스의 죽음(2) 평민을 향한 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