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또다시 분열-전쟁으로 내몰리는 평민

by leo


카시우스가 처형당한 이후 귀족의 권력을 확대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더 대담해졌고 평민을 더 경멸했다.


지위가 낮고 재산도 적은 사람들은 더 초라해졌고 더 비하 당했다. 그들은 평민의 수호자를 잃었다고 생각하면서 카시우스를 죽인 그들을 최고의 멍청이라고 자책했다.


두 집정관은 토지 분배와 관련한 원로원 칙령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토지 경계를 확정하고 누구에게 어떻게 나눠줄지 방안을 마련할 데켐비르를 임명해야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두 집정관의 표리부동한 태도를 논의하고, 조국을 비난했다면서 전직 호민관들을 비난했다. 당시의 호민관들은 수시로 평민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약속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두 집정관은 전쟁을 핑계 삼아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요인을 억누르기로 결심했다. 마침 국경 지역이 도적들의 습격과 이웃 도시들의 공격 때문에 시달리고 있었다.


두 집정관은 전쟁 깃발을 세우 고 군대 등록을 받기 시작했다. 평민이 등록하러 나오지 않자 두 집정관은 불복종하는 사람들에게 법을 강제 적용할 수 없게 됐다. 호민관들이 평민을 옹호하면서 평민을 체포하려는 시도를 모두 방해할 준비를 했기 때문이었다.


두 집정관은 대중을 혼란케 하는 사람들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독재관을 임명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남겼다. 독재관은 다른 행정관들을 따돌리고 혼자 독재적이면서 무한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다.


가혹하고 냉정한 아피우스가 지명될 수 있다고 두려워한 평민은 그것만 아니라면 무엇이라도 받아들이기로 했다.


군대가 소집되자 두 집정관은 지휘권을 나눠 적을 향해 행진했다. 코르넬리우스는 베이이 국경을 침범했고 그곳에서 발견한 모든 전리품을 챙겼다. 베이이가 사절을 보내자 그는 몸값을 받고 포로를 석방했다. 그리고 1년 휴전협정을 맺었다.


다른 군대를 이끈 파비우스는 아이퀴 국경으로 쳐들어갔다. 그곳에서 볼스키 영토로 넘어갔다.


볼스키는 처음에는 영토가 약탈당하고 황폐화되는 걸 두고 보았다. 한참 뒤에야 무기를 들고 영토를 지키기 위해 안티아테스의 국경에서 출격했다. 로마군이 흩어져 있는 사이 갑자기 나타나 기습공격을 감행했다면 볼스키는 로마군에게 큰 패배를 안겨줄 수도 있었다.


집정관은 정찰병으로부터 정보를 받아 그들의 접근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는 약탈하느라 흩어져 있던 병사들을 서둘러 소집했다. 그리고 전투를 벌이기에 적당한 대열로 되돌려놓았다.


볼스키 병사들이 거만하고 자신만만하게 전진하고 있을 때 로마군이 예기치 않게 질서정연한 대열을 갖춰 나타났다. 볼스키는 예상하지 않았던 장면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더 이상 공동의 안전에 대한 생각은 남아 있지 않았다. 끼리끼리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등을 돌려 전속력으로 달아났다.


볼스키 병사들 중 일부는 여전히 대열을 이룬 채 언덕 위로 올라갔다. 그들은 무기에 의지한 채 그날 밤을 그곳에서 보냈다. 다음날 로마군이 언덕 주변을 포위하고 모든 출구를 봉쇄하자 굶주림에 시달리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파비우스는 법무관들에게 전리품과 포로를 팔라고 지시했다. 그는 돈을 로마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군대를 적의 영토에서 철수했다.


다음 행정관 선거일이 다가왔다. 귀족들은 평민이 분노했고, 카시우스를 죽게 만든 걸 후회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집정관급의 위엄을 가지고 있으면서 선동술에 뛰어난 사람이 뇌물을 주거나 토지를 나눠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가질 경우 평민이 새로운 소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면서 조심하기로 했다.


평민에 동정적이면서 민주적인 사람이 집정관에 선출되지 않는다면 평민의 꿈이 실현되는 걸 쉽게 막을 수 있다고 귀족은 생각했다.


원로원은 카시우스를 기소한 두 사람 중 한 명이면서 당시 집정관인 퀸투스의 형제 카이소 파비우스, 그리고 귀족당의 일원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에게 집정관직에 출마하라고 했다. 평민은 그들의 당선을 막을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는 포룸을 떠났다.


당시 켄투리아 민회에서 투표권의 힘은 재산 등급이 가장 높은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중간 정도의 재산을 가진 사람들이 문제를 결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수가 가장 많고 가장 가난한 켄투리온은 고작 한 표만 갖고 있었다. 그리고 늘 마지막에 투표했다.


마메르쿠스의 아들인 루키우스 아이밀리우스와 카이소의 아들인 카이소 파비우스가 집정관으로 선출됐다. 그해에는 어떤 소란도 일어나지 않았다. 외국과의 전쟁에 시달렸기 때문이었다.


두 집정관에게는 천만다행으로 속주 도시들의 반란이 일어났다. 언제나 로마의 내부 혼란에 의존하던 볼스키는 평민이 정부와 전쟁 상태에 빠져들 것이라고 믿었든지, 아니면 싸워보지도 않고 패한 과거가 부끄러웠던 것인지, 그것도 아니면 병력이 많았던 그들의 힘을 믿었던 것인지,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다른 동기 때문이었던 것인지 어쨌든 로마와 전쟁하기로 결정했다.


각 도시에서 젊은이들을 모은 볼스키는 헤르니키와 라틴의 도시들을 향해 일부 병사들을 출정시켰다. 수가 많고 매우 강력한 다른 병사들은 그들의 도시로 쳐들어올 적군을 기다리게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로마는 군대를 둘로 나누기로 했다. 하나는 헤르니키 국경을 지키게 했고, 나머지는 볼스키 국경을 넘어가게 했다.


두 집정관은 관례에 따라 추첨을 통해 군대를 나눴다. 동맹도시를 도우러 갈 군대는 카이소 파비우스에게 맡겨졌다.


루키우스는 나머지 병력을 이끌고 안티움으로 쳐들어가게 됐다. 그가 국경 근처에 갔을 때 적군이 나타났다. 그는 적군 맞은편 언덕에 진지를 차렸다.


며칠 동안 적군은 평원에 수시로 나타나 루키우스에게 싸우자고 재촉했다. 그는 적당한 기회가 됐다고 생각했을 때 군대를 이끌고 나갔다. 그는 병사들을 독촉하고 격려했다. 그리고 나팔수에게 진격 나팔을 불라고 했다. 병사들은 부대별로, 백인대별로 밀접한 대열을 이뤄 전투구호를 외치면서 적을 공격했다.


양측은 창은 물론 온갖 투척 무기를 다 쏟아 부은 다음 칼을 꺼내들고 격돌했다. 양측은 비슷한 용기와 열정을 보였다. 그들의 전투 자세는 비슷했다. 늘 승리를 안겨주었던 로마군의 기술이나 경험, 많은 전투를 통해 얻은 끈질김과 인내심은 이번에는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적군도 코리올라누스의 지휘를 받으며 익힌 덕분에 비슷한 장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측은 굳건하게 버텼다. 어느 누구도 먼저 밟은 땅에서 물러서지 않았다.


한참 뒤 볼스키 병사들이 조금씩 물러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질서정연하게 대열을 지키면서, 로마군의 공격을 받으면서 후퇴했다. 로마군의 대열을 흔들려는 책략이었다.


로마군은 적이 도망치기 시작한다고 생각하면서 그들을 천천히 따라갔다. 그들도 대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볼스키 병사들이 진지로 뛰어가는 걸 보고는 무질서하게 뒤를 추격했다. 맨 뒤에 있던 여러 백인대는 마치 적을 물리치기라도 한 것처럼 사망한 적병의 몸을 뒤지고 영토를 약탈하러 달려갔다.


달아나는 척 하던 볼스키 병사들은 로마군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진지 근처에서 방향을 틀어 다시 제자리에 버티고 섰다. 진지 안에 숨어 있던 많은 병사들은 문을 열고 여러 곳에서 튀어나왔다. 이제 행운의 추는 뒤바뀌었다. 추격자는 도망갔고, 도망자는 추격했다. 용감한 로마 병사들은 목숨을 잃었다. 다른 병사들은 언덕 아래로 내몰렸고 포위당했다.


죽은 병사를 약탈하고 있던 병사들은 질서 있게 후퇴할 기회를 빼앗겼음을 알게 됐다. 일부는 살해당했고 일부는 포로가 됐다. 많은 병사는 안전하게 달아났다. 언덕에서 밀려난 병사들은 오후 늦게 기병이 지원하러 달려온 덕분에 겨우 진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로마군이 완전 궤멸을 모면한 것은 폭풍이 몰아친 덕분도 있었다. 짙은 먼지 때문에 생긴 어둠 덕분에 멀리 볼 수 없었던 적군은 추격을 꺼렸다.


다음날 루키우스는 진지를 걷고 조용히 질서 있게 적이 눈치 채지 못하게 군대를 물렸다. 그는 오후 늦게 롱굴라 마을 근처에 새로 진을 쳤다. 적군을 물리치기에 충분할 만큼 위치가 좋은 언덕을 골랐다.


루키우스는 그곳에서 부상당한 병사들을 치료하는 한편 갑작스러운 패배로 기가 꺾인 병사들의 사기를 높여주려고 애썼다.


볼스키는 적이 참호를 버리고 새 진지를 만드는 것을 날이 밝아서야 뒤늦게 알게 됐다. 볼스키는 죽은 자들의 옷을 벗기고, 반쯤 죽은 상태에서 살 희망을 가진 자들은 죽였다. 그리고 볼스키의 사망자를 묻은 다음 안티움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승리를 축하는 개선의 노래를 불렀고 신전에 희생제물을 바쳤다. 그리고 며칠 동안 오락을 즐기며 놀았다.


만약 볼스키가 승리에 만족하고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영광스럽게 끝났을 것이다. 로마인은 감히 진지에서 벗어나 전투를 할 생각을 갖지 못한 채 적의 영토에서 철수할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확실한 죽음보다는 불명예스러운 패주가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볼스키는 더 많은 것을 노리면서 승리의 영광을 스스로 걷어차 버렸다.


볼스키는 척후병과 로마 탈주병으로부터 살아남은 로마군은 소수이며, 그나마 대부분은 부상자라는 정보를 들었다. 그들은 로마군을 우습게 여기면서 다시 무기를 들고 재차 공격에 나섰다. 많은 비무장 병사들이 전투를 구경하는 동시에 전리품을 챙기려고 도시에서 나와 그들을 따라갔다.


언덕을 공격하면서 진지를 에워싼 볼스키군은 철책을 치우느라 고생했다.


지형상 로마군 기병대도 말에서 내려 보병으로 싸워야했다. 그들이 먼저 공격의 선봉에 섰다. 뒤에는 ‘트리아리이’라고 부르는 부대가 나섰다. 전투 중에는 대개 진지를 지키는 일을 맡는 늙은 병사들이었다. 젊은 병사들이 대량 학살당했고 지원병도 모자랐다. 로마군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을 이들에게 걸 수밖에 없었다.


볼스키는 처음에는 좋게 출발했고 상당기간 강인하게 계속 싸웠다. 하지만 지형 때문에 불리해진 그들은 무너지기 시작했다. 로마군에게는 아주 적은 피해만 입힌 반면 스스로는 큰 피해를 입은 채 평원으로 물러났다. 볼스키는 그곳에 진을 치고 다음 여러 날 동안 연이어 전투대형을 갖추고 출정해 로마군에게 나와서 싸우자고 도전했다. 하지만 로마군은 야전에 나설 생각이 없었다.


볼스키는 로마군을 경멸했다. 여러 도시에서 지원병을 모아 우세한 병력을 활용해 로마군 진지를 점령할 준비를 갖췄다. 진지에는 더 이상 식량이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에 볼스키는 항복을 받든지 아니면 강제로 로마군을 몰아냄으로써 큰 성과를 거둘 수도 있었다.


그때 로마 지원군이 몰려와 볼스키는 영광스럽게 전쟁을 마칠 수 없게 만들었다.


다른 집정관 카이소 파비우스는 볼스키와 맞선 로마군이 큰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을 알고 전군을 이끌고 전속력으로 진군해 진지를 포위한 적군을 공격할 생각이었다. 희생제례를 열어 조점을 보았을 때 조짐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로마에 남고 대신 동료에게 최고의 지원군을 보내기로 했다.


로마 지원군은 은밀하게 주로 밤에 산을 넘어 진군했다. 그 덕분에 적에게 들키지 않고 갇힌 로마군 진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아이밀리우스는 지원군 도착 덕분에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볼스키는 병력에서 우세한데다 로마군이 싸우러 나오지 않는 것에 자만해 치밀한 대열을 꾸려 언덕으로 진군했다.


로마군은 적이 마음대로 올라와서 철책 앞에서 힘을 다 쓰도록 내버려두었다. 전투 신호가 나오자 병사들은 참호 여러 곳에서 일시에 튀어나가 적을 공격했다. 일부는 밀집대형을 이뤄 칼을 휘두르며 싸웠다. 다른 병사들은 진지에서 돌이나 창 등을 던졌다. 아주 제한된 장소에 많은 병사들이 밀집해 있어 어떤 투척 무기도 실패하지 않았다.


볼스키는 많은 병사를 잃고 언덕에서 밀려났다. 황급히 달아난 그들은 진지로 돌아와서야 겨우 안전을 챙길 수 있었다.


로마군은 마침내 안전을 확보했다고 생각하고 적이 주둔한 들판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식량은 물론 진지에서 부족했던 모든 것을 확보할 수 있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22. 카시우스의 죽음(3) 독재자가 되려한 자의 최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