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에는 에스꼬라는 큰 강이 있습니다. 프랑스 북중부 지역에서 발원해 벨기에, 네덜란드의 120개 마을을 가로질러 북해 남쪽에 이르기까지 360km를 달리는 구불구불한 하천입니다.
네덜란드어로 스헬트라고 불리는 에스꼬 강은 옛날부터 깊고 넓은 강이었습니다. 선장들은 이 강에서 항해하는 걸 무척 좋아했습니다. 바위에 부딪칠 위험이 없는데다 주변 풍경은 무척 아름답기 때문이었습니다.
매일 하얀 돛을 단 배 수백 척이 에스꼬 강을 통해 바다로 나가거나, 거꾸로 바다에서 강으로 올라왔습니다. 소년, 소녀 들은 나막신을 신고 강둑에 가서 배가 오가는 걸 구경하며 하루를 보내곤 했습니다.
에스꼬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에는 목재, 아마, 철, 치즈, 생선, 빵, 리넨 등 내륙에서 생산한 제품들이 가득 실렸습니다. 많은 상인들이 큰돈을 번 것은 이 배들을 이용해 무역을 활발히 산 덕분이었습니다.
에스꼬 강으로 들어오는 배에는 설탕, 와인, 오렌지, 레몬, 올리브 등 먹을거리가 가득 실려 있었습니다. 따뜻한 옷을 만들 양털도 있었습니다.
가끔 남쪽의 훌륭한 나라에서 온 기술자가 배를 타고 와서 외국 이야기를 해 주거나 아주 멋진 집과 아름다운 교회, 웅장한 시청을 짓는 걸 도와주기도 했습니다. 강 주변 사람들은 강 덕분에 아주 풍요롭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먼 옛날에는 세상에 거인이 참 많았습니다. 다들 곳곳에 흩어져 살았기 때문에 많은 것처럼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 중에 안티고누스라는 무서운 거인이 있었습니다. 안티고누스라는 이름은 태어났을 때 얻은 게 아니었습니다. 친구로부터 흥미로운 말을 들은 뒤 이름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에 안티고누스라는 유명한 장군이 있었대. 아주 용감해서 많은 전쟁에서 엄청난 성과를 거둬 사람들로부터 영원히 잊히지 않는 명예를 얻었다는 거야.”
“그럼 오늘부터 내 이름을 안티고누스라고 할 거야.”
다른 나라에서 살던 안티고누스는 어느 날 에스꼬 강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는 강 인근에 엄청난 규모의 성을 지어 살았습니다. 정사각형이었고 높은 벽으로 둘러싸인 성이었습니다. 지하에는 아주 깊고 어두운 감옥이 있었습니다. 횃불을 들고 한참이나 땅 속으로 내려가야 하는 무서운 곳이었습니다.
성에서 살던 안티고누스는 에스꼬 강에 배가 많이 오가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는 강을 이용하는 배의 선장들에게 세금을 걷으면 큰돈을 벌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안티고누스는 참나무로 만든 큰 몽둥이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마을에 내려가 몽둥이로 집을 마구 부쉈습니다. 겁을 먹은 주민들에게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모두 광장에 모이도록 해. 하나라도 빠지거나 늦게 모이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거인의 위협에 놀란 마을 사람들은 서둘러 모였습니다. 커다란 몽둥이를 어깨에 멘 안티고누스는 눈을 부라리며 협박을 쏟아냈습니다.
“오늘부터 내 허락 없이는 어떤 배도 강을 지나갈 수 없어. 강에서 바다로 나가는 배든, 바다에서 강으로 들어오는 배든 마찬가지야. 모든 선장은 통과세를 내야 해. 돈이든 물건이든 관계없어. 거부하는 자는 손을 잘라서 바다에 던져버릴 거야.”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덜덜 떨었습니다.
안티고누스는 속으로 그들을 비웃으며 말을 이어갔습니다.
“통과세를 내지 않고 지나는 배를 돕다가 들키는 놈도 가만 두지 않겠어. 그 자리에서 손을 잘라버릴 거야. 그리고 한 달 동안 지하감옥에 가둘 거야. 모두 명심하도록 해.”
안티고누스는 몽둥이를 휘둘러 가난한 농부의 집을 산산조각 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거인의 힘이 얼마나 센지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달려들어도 물리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날부터 에스꼬 강을 오가는 모든 배는 안티고누스의 성 입구에서 통행세를 내야 했습니다. 가난한 배든 부유한 배든 돈을 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안티고누스는 통행세를 거부한 선장을 붙잡아 강변 마을로 끌고갔습니다. 선장의 무릎을 꿇린 다음 두 손을 도끼로 내리쳤습니다. 자른 손은 강에 던져버렸습니다. 선장이 당장 통행세로 낼 돈을 갖고 있지 않을 경우 친구가 몸값을 갖고 올 때까지 지하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안티고누스의 부하들은 성의 탑에서 한밤중에도 올빼미처럼 눈을 부릅뜨고 에스꼬 강을 살폈습니다. 통행세를 내지 않으려고 어둠을 틈타 몰래 배를 모는 선장을 붙잡으려는 것이었습니다.
안티고누스가 행패를 부린다는 소문이 퍼지자 외국 상인들은 에스꼬 강에 배를 보내는 걸 꺼리게 됐습니다. 배들의 통행이 줄어들고 무역도 감소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생활은 나날이 어려워졌습니다.
에스꼬 강 주변의 마을은 안티고누스 때문에 나쁜 별명을 갖게 됐습니다. ‘손을 던지다’라는 독일어 ‘핸드 베르펜’이었습니다. 네덜란드어로는 안트베르펜(앤트워프)이었습니다. 핸드 베르펜과 똑같은 뜻이었습니다.
안티고누스의 만행을 참다못한 브르반트의 공작이 성에 달려갔습니다. 그는 통행세를 거두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람들의 손을 자르는 만행을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거부한다면 성을 공격해서 불태워버릴 거요.”
화가 난 거인은 공작의 손가락을 부러뜨렸습니다. 그는 고통스러워하는 공작을 보면서 비웃었습니다.
“손을 자르지 않은 것만 해도 고마운 줄 알라고.”
안티고누스는 공작을 내쫓은 다음 성벽을 더 높이고 문도 튼튼하게 보강했습니다. 통행세 징수는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내지 않는 선장의 손을 잘라 강에 버리는 것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브라반트 공작을 매우 잘 따르던 용감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실비우스 브라보였습니다. 그는 여러 날 동안 성을 둘러보며 빈틈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성 뒤편에 큰 창이 하나 달려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저곳을 통해서 거인의 방에 침입할 수 있겠군.’
브라보는 곧바로 브라반트 공작을 찾아갔습니다.
“거인을 몰아낼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공작께서는 병사들을 동원해 거인의 성문을 공격하십시오. 그 사이 저는 성에 들어가 거인을 해치우도록 하겠습니다. 명심하십시오. 거인은 안티고누스가 아니라 단순한 허풍장이에 불과합니다.”
공작은 브라보의 말대로 다음날 병사 수백 명을 동원해 거인의 성으로 쳐들어갔습니다. 처음에는 북을 치거나 나팔을 불지 않았습니다. 근처에 갈 때까지 성의 파수꾼이 눈치 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공작과 병사들은 성 근처의 숲에 숨어 자정이 될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인근 마을에 있던 개들은 짖지 못하게 입을 막아 헛간에 가둬버렸습니다.
자정을 알리는 성당의 종소리가 울리자 병사들은 거인의 성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들은 뾰족한 통나무를 매단 수레인 당거를 이용해 쇠처럼 단단하던 성문을 부수어 버렸습니다.
병사들은 성안으로 쳐들어가 순식간에 거인의 부하들을 모두 제압했습니다. 횃불을 들고 지하감옥으로 내려가 갇힌 사람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공작은 병사들로부터 성 안을 점거했다는 연락을 받자마자 헛간에 가둬두었던 개들을 모두 풀어주었습니다. 개들은 거인의 성 앞으로 달려가 일제히 크게 짖기 시작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재미있는 일이 벌어질 걸 기대하는 것 같았습니다.
안티고누스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병사들 중에서 어느 누구도 그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그가 어디 숨었는지 아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브라보는 안티고누스가 용감하지 않고 사실은 겁쟁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를 만나도 전혀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병사들이 성문을 부술 때 그는 사다리를 타고 성벽을 기어 올라가 창으로 들어갔습니다. 안티고누스의 부하들은 공작의 병사들과 싸우려고 달려가 한 명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브라보는 안티고누스의 방에 들어갔습니다. 그를 본 거인은 커다란 몽둥이를 집어 들어 힘껏 휘둘렀습니다. 브라보는 허리를 숙여 몽둥이를 피했습니다. 이어 위로 껑충 뛰어오르면서 칼을 휘둘러 거인의 머리를 베어버렸습니다. 많은 사람을 혹독하게 괴롭혔던 안티고누스는 너무 간단하게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브라보는 성의 마당으로 안티고누스의 머리를 집어던졌습니다. 머리가 땅에 닿기도 전에 개들이 짖기 시작했습니다. 병사들은 개들이 왜 짖는지 의아해 달려가 보았습니다. 커다란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거인의 머리다. 안티고누스가 죽었다!”
공작은 거인의 방에서 시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습니다.
“안티고누스의 팔을 잘라 성에서 가장 높은 탑에 걸어놓도록 해라. 모든 사람이 이걸 보고 환호할 수 있도록 해라.”
안티고누스의 팔이 탑에 내걸린 걸 보고서야 마을 사람들은 일이 잘 풀렸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엄청난 일을 완수한 브라보의 용기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마을의 모든 집에는 축하의 촛불이 켜졌습니다.
많은 소녀가 흰 옷을 입고 몰려나왔습니다. 그 중 한 명은 노란색, 빨간색, 검은색으로 꾸며진 옷을 입었습니다. 소녀들은 입을 모아 영웅 브라보를 찬양하는 노래를 합창했습니다.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성에 걸린 안티고누스의 잘린 팔을 보면서 말했습니다.
“마을의 불명예를 씻으려면 안트베르펜이라는 치욕스러운 이름을 버려야 합니다.”
시장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아닙니다. 어두운 과거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름을 계속 갖고 있어야 합니다. 대신 이름을 조금 다르게 부르면 됩니다. ‘안-트-베르프(an-t-werf)’, 즉 ‘부두에서(at the wharf)’라고 부릅시다. 공식 문장은 성 위에 빨간 손 두 개가 걸린 걸로 합시다.”
마을 사람들은 시장의 말에 입을 모아 찬성했습니다.
“그것이 좋겠네요. 과거의 악몽을 상징하는 이름과 문장이 될 수 있겠어요.”
공작은 시장과 마을 사람들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브라보의 용기를 격려하는 뜻에서 마을에 새로운 특혜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후 여러 나라에서 많은 배가 다시 몰려와 부두에서 짐을 싣거나 내렸습니다. 안트베르펜은 유럽의 모든 항구 도시를 능가하는 훌륭한 항구로 이름을 날렸고 부유한 도시가 됐습니다. 안트베르펜 사람들은 그들의 도시를 이렇게 자랑합니다.
“세상은 반지입니다. 안트베르펜은 반지 한가운데 박힌 진주이고요.”
안트베르펜의 역사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야 도시 창건 과정이나 이름의 유래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은 고대 로마 시대 비쿠스에서 시작한 도시입니다. 비쿠스는 게르마니아 족의 침공을 막기 위해 쌓은 방어벽인 리메스의 주변에 만든 작은 마을입니다. 엄청나게 크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정도로 작은 곳도 아니었습니다.
1952~61년 고고학적 발굴조사를 실시한 결과 에스꼬 강 주변의 스헬드 지역이 안트베르펜의 기원인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안트베르펜 왕립미술관 근처의 스헬드 부두 일대입니다. 이곳에서는 2~3세기에 만든 유리 파편과 도자기 조각이 발굴됐습니다.
4세기 무렵부터 이곳에는 프랑크 족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지역은 나중에는 프랑크 왕국의 일부분이 됐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안트베르펜은 그다지 중요한 장소는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변방의 작은 마을에 불과했습니다.
안트베르펜은 처음에는 무역 항구가 아니었습니다. 그런 일에 종사하게 된 것은 한참 뒤의 일이었습니다.
프랑크 왕국 시대에 에스꼬 강에 안드 후네르보라는 나무 성채가 만들어졌습니다. 강을 함부로 통행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만든 시설이었습니다. 해적 같은 약탈자가 설치는 것을 막거나, 아니면 외국 상인들이 영주에게 통행세를 내지 않고 지나가는 걸 막기 위해 만든 것이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오토 1세(재임 962~73년)는 이곳에 봉지를 설정하고 후작령으로 편입한 다음 성을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나무 성이었지만 12~13세기에 돌 성으로 바뀌었습니다. 바로 헤트 스테인 성이었습니다. 지금 안트베르펜 시청 앞의 에스꼬 강변에 이 성이 남아 있습니다.
봉지를 다스린 후작 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부이용의 고드프리(재임 1089~96년)입니다. 제1차 십자군 전쟁을 주도한 인물이었으며 예루살렘 왕국의 초대 왕으로 앉은 사람입니다.
안트베르펜이 상업 도시로 발전한 것은 무역 도시로 이름을 날리던 브뤼허가 12세기 무렵부터 항구에 토사가 쌓이는 바람에 몰락한 데 따른 반사이익 덕분이었습니다. 수심이 얕아져 배가 다가갈 수 없게 되자 무역상들은 브뤼허를 멀리하고 뱃머리를 안트베르펜으로 돌렸습니다.
15세기 들어 안트베르펜은 상업적으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됐습니다. 1덕분에 도시는 매우 부유해졌습니다. 1450년에는 메이어 광장을 돌로 포장했습니다. 100년 전에 착공했던 대성당도 사실상 완공했습니다. 드디어 전성기의 막이 오른 것입니다.
안트베르펜의 이름과 관련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존재합니다.
먼저 안트베르펜 시내 중심가에서 발견된 고대 로마 동전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여기에 ‘안도 베르피아(Ando Verpia)’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것이 안트베르펜의 기원이라는 것입니다.
안트베르펜에 처음 생겼던 촌락의 이름이 안도 베르파(Anda Verpa)였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개간한 땅’이라는 뜻입니다.
8세기 무렵 프랑크 왕국의 주교 다도가 쓴 『성 엘리기우스의 인생』이라는 책에 켈트 족으로 보이는 안도베르피스(Andoverpis)라는 부족 이름이 나옵니다. 이것이 나중에 새 라틴어에서는 안트베르피아(Antverpia)로 바뀝니다. 이게 안트베르펜의 기원이라는 주당도 있습니다.
바이킹 침략설도 있습니다. 863년 바이킹 해적이 마을에 쳐들어왔습니다. 기존의 마을은 해적의 분탕질 탓에 완전히 파괴돼 버렸습니다. 살아남은 주민들은 인근에 있던 높은 충적토 언덕에 피신했습니다. 충적토 언덕을 옛 네덜란드어로 ‘안베르프(aanwerp)’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전설의 내용과 유사한 주장도 있습니다. 에스꼬 강에 안드 후네르보 성이 있을 때였습니다. 당시 유럽에서 절도범의 처벌은 오른손을 자르는 것이었습니다. 행정당국은 자른 손을 성에서 강 아래로 버리곤 했습니다. 이것 때문에 중세 라틴어로 안드 후네르보, 플레미시어로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바로 ‘손을 던진 곳’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주장도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은 플레미시어로 ‘부두에서’를 뜻하는 ‘an-t-werf’라는 것입니다. 전설에서 시장이 바꾸자고 한 것과 같은 이름입니다. 이곳이 무역도시로 성장하다보니 부두가 발전했을 것이고, 그래서 ‘부두’라는 이름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입니다.
어쨌든 안트베르펜은 현재 유럽에서 로테르담에 이어 두 번째로 큰 항구도시입니다. 석유화학산업이 가장 발전했으며, 세계 다이아몬드산업의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안트베르펜 시청 앞 광장 한가운데에는 ‘브라보 분수’가 세워져 있습니다. 실비우스 브라보의 전설을 형상화한 분수입니다. 여기에는 브라보가 거인 안티고누스의 손을 던지는 모습의 조각상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트베르펜이라는 이름이 생긴 실제 이유가 어떻든 이곳 사람들은 전설을 더 믿는 모양입니다. 하긴 딱딱한 객관적 진실보다는 때로는 허무맹랑한 전설이 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