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 한 마리와 두 어부
대부분의 세계적 도시는 긴 세월 동안 발전을 거듭한 끝에 엄청난 도시로 자리 잡았습니다. 그들의 역사를 잘 들여다보면 대부분 아주 초라하고 볼품없는 마을에서 출발해 오늘날의 위대한 도시로 성장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입니다.
암스테르담은 공식적인 기록에 따르면 1275년 건설된 도시입니다. 하지만 현지에서는 두 어부가 그 이전에 세운 어촌 마을이라는 전설을 믿고 있습니다.
두 어부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자위더지 즉 남해에 고기잡이를 하러 나갔다가 밤중에 폭풍을 만났습니다. 두 사람은 목숨을 건질 수 있게 해달라고 하느님에게 빌었습니다.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기고 내일 아침을 맞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살려만 주신다면 저희가 발을 디디는 땅에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하느님께 바치겠습니다.”
밤새 폭풍에 시달리다 지쳐 잠든 두 어부는 갑자기 눈이 부시는 햇살을 느꼈습니다. 깜짝 놀라 눈을 떴을 때 하늘은 맑고 푸르게 개어 있었습니다. 폭풍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두 어부는 하늘이 다시 변심할까 두려워 서둘러 배를 저어 육지로 향했습니다. 데리고 간 개가 먼저 배에서 뛰어내렸습니다. 두 어부는 하느님에게 약속한 대로 배가 닿은 곳에 어촌을 건설했습니다. 그리고 가족을 데려가 그곳에 정착해 살았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이것이 바로 암스테르담의 시작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이라는 이름은 ‘강을 따라 댐에 정착한 사람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암스테르담 시의 옛 문장을 보면 두 어부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배를 젓고 있는 그림이 담겨 있습니다.
2. 습지에 수로, 제방을 만들다
이제부터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암스테르담의 이야기를 풀어보겠습니다.
두 어부가 고기잡이를 하러갔다는 바다인 자위더지는 지금은 에이설 호로 바뀌었습니다. 원래 바다였지만 인공적으로 호수로 만든 것입니다.
자위더지는 12세기 무렵 현재의 암스테르담 서부 지역을 수시로 덮친 홍수 때문에 면적이 계속 넓어졌습니다. 홍수 때문에 자위더지에 ‘아이(Y)’라는 작은 수로가 생겼습니다. 지금은 ‘IJ’라고 표기하고 아이라고 부르는 만입니다. 아이로 연결되는 강 중에서 하나가 바로 암스텔 강입니다. 강어귀는 삼각주로 형성돼 있습니다. 강물은 아이 만으로 흐른 다음 자위더지로 들어갑니다.
암스테르담의 역사는 11세기 무렵부터 시작합니다.
당시 이곳은 암스텔레라고 불린 습지였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살 수 없었습니다. 우트레흐트에 살던 농민들이 이곳에 몰려들었습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 데 필요한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도랑을 팠습니다. 이때부터 땅을 개척하는 농업 공동체가 형성됐습니다.
암스텔 강에서는 홍수가 자주 발생했습니다. 농민들은 홍수를 막기 위해 해마다 이리저리 모양을 바꿔가며 마음대로 흐르던 암스텔 강에 제방을 쌓았습니다. 처음에는 자위더지와 아이 수로 등 인근 지역에만 쌓았습니다.
나중에는 아이 외에 다른 곳으로도 제방을 연결했습니다. 제방은 오늘날 암스테르담 서쪽인 상푸어지에서 동쪽인 비스프까지 이어졌습니다.
제방은 남쪽으로도 이어져 오늘날 니우벤다이크까지 갔습니다. ‘새 제방’이라는 뜻입니다. 제방은 여기를 지나 칼버스트라트까지 더 달렸습니다. 가축시장이라는 뜻인데, 옛날 여기에 가축시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고고학자들이 발굴 작업을 실시한 결과 니우벤다이크 일대에서 1225년 무렵의 저택 유적을 발견했습니다. 현재 거리보다 6m 아래에 묻혀 있었습니다.
13세기에는 인근 어민들이 이 지역에 들어가 살게 됐습니다. 아마 전설에 나오는 두 어부는 이들 중의 일부였을지도 모릅니다.
어민들은 바닷가에 염전을 갖고 있었습니다. 마을에서 염전으로 오가는 게 어지간히 불편한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어민들은 아이 수로 근처를 건너가는 다리를 건설했습니다. 다리 아래에는 수문이 있었습니다. 다리와 수문은 아이 만이 넘치는 걸 방지하는 댐 역할을 했습니다.
제방과 다리, 댐 공사가 모두 끝났을 때 이 마을은 ‘댐’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습니다. ‘Dam’은 글자 그대로 댐, 또는 제방입니다.
이 이름은 나중에는 암스테르담으로 바뀌었습니다. 옛 프리시아어로 ‘Aem’ 또는 ‘aeme’은 ‘강’ 또는 ‘강의 삼각주’를 뜻합니다. ‘Stelle’는 ‘머물기 좋은 장소’ 또는 ‘거주지’라는 의미입니다. ‘ster’은 이런 장소에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3. 항구도시로 발전한 암스테르담
원래 암스텔 강의 삼각주가 아이로 흘러든 곳을 ‘아머락’이라고 불렀습니다. ‘락’은 유럽 북서부 프리지아 지방의 고어인 프리지아어로 ‘큰 물’을 뜻합니다. 락은 또 옛 네덜란드어로는 ‘길게 뻗은 물길’이라는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인공적으로 만든 강이나 운하에 만든 수로라는 의미입니다. 일부 여행책자에는 ‘아머락이 암스텔 강의 마지막 부분’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댐이 생겨 물을 조절할 수 있게 된 덕분에 아머락 일대는 항구가 됐습니다. 환적항으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상인들은 대형 선박에 물건을 싣고 와 이곳에서 작은 배에 나눠 실었습니다. 그리고 강을 따라 내륙 깊숙한 곳까지 물건을 날랐습니다. 이 항구를 나중에 담락으로 부르게 됐습니다. 지금 담락은 댐 광장과 중앙역 사이의 거리입니다. 중앙역 부근 담락 거리가 시작하는 지점에 물이 고여 있는 걸 볼 수 있습니다.
암스텔 강의 내륙에는 과거 ‘암스텔레’라고 불린 작은 지역이 있습니다. 지금은 아우더케어 단 데 암스텔이라는 곳입니다. ‘암스텔의 옛 교회’라는 뜻입니다. 이곳은 오래 전부터 중요한 무역 지점이었습니다.
암스텔레 마을은 여러 무역로의 교차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었습니다. 동쪽으로는 위트레흐트, 서쪽으로는 케네머란드 사이였습니다. 또 발트 해와 내륙지역의 중간지대였습니다.
암스텔 강을 배경으로 무역이 성행하게 되자 많은 무역상이 이 마을을 찾았습니다. 주변에 작은 공동체도 연이어 생겼습니다. 암스텔레는 나중에는 작은 성 하나 지을 정도의 마을로 성장했습니다. 이곳에는 반 암스텔 왕조에 복종하는 영주의 아들이 살기도 했습니다.
반 암스텔 왕조는 중세 네덜란드에서는 중요한 왕조였습니다. 이들은 위트레흐트 주교와 홀랜드 공작의 이름을 앞세워 암스텔 주변을 다스렸습니다.
암스테르담이 아무도 눈길을 주지 않던 조그마한 어촌마을에서 통치자들의 관심을 끌 만큼 큰 마을로 성장했고, 중요한 무역 거점이 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사실입니다.
암스테르담에 대한 첫 공식 기록은 1275년 10월 27일이라는 날짜가 적힌 문서에 나옵니다. 여기에 ‘암스텔 강의 댐’이라는 표현이 기록돼 있습니다. 또 ‘이 마을 사람들은 홀랜드 공작 플로리스 5세로부터 다리 통행세를 면제받았다’고 돼 있습니다.
14세기 들어 암스테르담은 유럽에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도시로 발전했습니다. 이 무렵에 암스테르담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잘 보여주는 전설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암스테르담의 기적’이라는 것입니다.
1345년 3월 16일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한 노인이 병에 들어 죽을 처지가 됐습니다. 인근 교회의 신부가 그를 찾아가 병자성사를 거행했습니다. 신부는 성사 막바지에 노인에게 성체인 빵을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그런데 노인은 갑자기 안색이 노래지더니 화로로 달려가 성체를 토해버렸습니다. 신부는 물론이거니와 방에 있던 가족은 모두 깜짝 놀랐습니다. 얼굴이 새파래진 신부는 화로에 가서 노인이 내뱉은 성체를 살펴보았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조그마한 빵조각인 성체는 불에 타기는커녕 입에 넣어주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게 아닙니까? 이 일은 교회에 보고됐고, 다음날 고위 성직자들이 노인의 집에 가서 직접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성체는 여전히 화로의 불속에서 타지 않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성체를 ‘암스테르담의 기적’이라고 부르기로 했습니다. 교회는 또 기적이 일어난 그 집을 허물고 예배당을 새로 짓고 ‘성스러운 장소’라는 뜻인 ‘헤일리즈 스테이드(Heilige Stede)’라는 이름을 붙여주었습니다. 이후 헤일리즈 스테이드에는 해마다 유럽 곳곳에서 순례자가 찾아옵니다.
어떻게 보면 대수롭지 않은 전설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학자들은 암스테르담에서 갑자기 신비한 기적이 일어나고 순례자가 몰리게 된 것을 단순한 해프닝으로 보지 않습니다. 도시의 경제력 향상에 따라 사회적, 종교적 위상이 높아진 것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손꼽습니다.
암스테르담은 중세의 파도에 갇혀 있던 조그마한 바닷가 마을에서 마침내 역사가 숨쉬는 환한 세상으로 튀어나오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