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초가을인데도 날씨는 매우 쌀쌀했다. 춥다고 할 수는 없었지만 밖에 오래 서 있으면 한기를 느끼기 충분했다. 1648년 10월의 늦은 밤이었다. 파리 루브르 궁전 정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몸을 웅크린 채 모닥불을 쬐었다. 추위에 시달리는 그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병사들을 이끌던 장교는 문을 잠시 열고 거리를 내다보았다.
“저기 몰려온다. 문을 다시 잠그도록 해라. 그리고 모두 칼을 들어라.”
시내 쪽에서 사람들이 몰려왔다. 폭도로 돌변한 시민들이었다. 그들은 각기 손에 몽둥이나 쟁기, 쇠스랑 같은 것을 들었다. 폭도는 왕궁 문을 두들겼다.
“왕을 만나게 해 주시오.”
“이 늦은 시간에 전하를 알현할 수는 없소. 벌써 침소에 드셨기 때문이오. 아직 어린 분이셔서 일찍 주무셔야 하오.”
장교의 대답에도 폭도는 물러서려 하지 않았다.
“왕이 파리에서 달아났다는 소문이 있소. 그게 사실인지 아닌지 우리 눈으로 확인이라도 하게 해 주시오.”
“정 그렇게 우긴다면 할 수 없군. 대신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올 수는 없소. 대표로 10명만 들어오게 해 주겠소.”
폭도는 장교의 제안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다. 대표들이 들어가서 살펴보고 왕이 달아났다면 그 이후에라도 왕궁에 쳐들어갈 수 있었다. 만약 어린 왕이 정말 자고 있다면 괜히 소란을 떨 이유는 없었다. 그들은 대표 10명을 뽑아 왕궁 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루이 14세는 창문을 통해 그 모습을 다 지켜보았다. 곁에는 어머니 앤 태왕후가 서 있었다.
“어서 침대에 눕도록 해라. 그리고 깊이 잠든 척하려무나. 폭도가 들어와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모른 척하고 계속 자는 시늉을 해야 한다. 그래야 오늘 밤을 무사히 넘길 수 있어.”
“어머니는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는 방 한쪽에 있는 비밀의 공간에 숨어 있도록 하마.”
루이 14세는 어머니의 이야기대로 침대에 올라가 이불을 목까지 뒤집어쓴 채 눈을 감았다. 잠시 후 침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여러 사람이 들어오는 소리도 이어졌다.
“다들 조용히 하시오. 전하께서는 저기 누워계시오.”
“정말 왕인지 확인해야겠소.”
폭도 대표 중 한 명이 침대로 다가갔다. 장교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칼의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그의 가슴은 콩콩 뛰었다.
“왕이 맞네. 정말 자고 있어.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깊이 잠들었어. 우리가 괜히 걱정했군. 돌아가세.”
침대에 누운 루이 14세의 얼굴을 확인한 폭도 대표들은 다시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갔다. 잠시 후 삐걱~ 하며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루이 14세는 침대에 누운 채 눈만 떴다. 어두워서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의 얼굴은 벌게졌다.
‘오늘의 수모를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2.
루이 14세는 1643년 세상을 떠난 아버지 루이 13세의 뒤를 이어 불과 다섯 살의 나이에 왕 자리에 올랐다. 어머니 앤 태왕후가 섭정을 맡아 국정을 다스렸는데, 그녀는 철저한 왕권신수설 신봉자였다.
“프랑스 왕의 권한은 신으로부터 받은 것이오. 어느 누구도 저항하거나 반박할 수 없소.”
태왕후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귀족이나 의회 의원을 모두 감옥에 가뒀다. 아들이 나중에 어른이 돼 직접 통치에 나섰을 때 절대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려는 게 그녀의 뜻이었다. 이 탓에 봉건세력인 귀족의 불만은 나날이 커져갔다.
“왕권 강화는 결국 중앙 집권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전통적인 봉건 특권을 희생시키게 될 거야.”
귀족은 적당한 시기를 기다렸다. 언젠가는 그들이 불만을 터뜨리고, 백성으로부터 지지를 받을 시기가 오리라고 믿었다. 그들이 바라던 ‘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루이 14세 취임 당시 프랑스는 30년 전쟁을 수행하느라 재정난에 시달렸다. 총리인 마자랭 추기경은 전통적 징세로는 이를 해결할 수 없다고 봤다. 그는 세금을 늘려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재정 칙령 7가지를 발표했다. 그중 여섯 개가 세금을 올린다는 내용이었다.
“세금을 올릴 것이오. 지금까지는 면세 혜택을 받던 고등법원 판사들도 세금을 내야 하오.”
고등법원은 납세를 거부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정부 조치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왕의 권한을 제약하려고 했다. 당시 고등법원에는 관습에 어긋나는 법령을 거부함으로써 왕의 권한을 제약할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마자랭은 고등법원 판사들을 체포함으로써 반항을 억누르려 했다.
소식을 들은 귀족들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국민의회 소집을 요구했다. 여기에 발맞춰 파리 시민들은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평민인 이들이 폭도로 돌변해 한밤중에 루이 14세가 누워있던 왕궁으로 쳐들어간 것은 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세율이 높아지면 먹고 살기 어려워진다고 걱정했다. 또 고등법원의 권한을 축소할 경우 평민의 권리도 제약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마자랭이 지역 대표 체제를 축소한 것에도 불만을 가졌다.
후세 역사학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프롱드의 난’이라고 불렀다. 프롱드는 ‘돌팔매’라는 뜻이었다. 반란에 가담한 군중이 돌을 던져 궁의 창문을 깨뜨린 데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프롱드의 난은 1648~53년 5년간이나 이어졌다.
어린 루이 14세는 모든 사건의 발생과 전개 과정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는 시민 봉기를 피해 두 차례나 파리에서 달아나야 했고 한 번은 루브르 궁전에 연금당하기도 했다. 그가 나중에 파리 평민은 물론 귀족을 불신하게 된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다. 군인이자 외교관이었고 작가였던 루이 드 루브루아 생시몽 등 많은 동시대인은 그의 심정을 적은 기록을 남겼다.
‘루이 14세는 혼란기의 여러 사건을 결코 잊지 않았다. 그가 파리에서 달아나야 했을 때 살았던 집은 사실상 감옥이나 다를 바 없었다. 다른 성으로 마음 편한 외출을 떠난 게 아니라 모욕적인 탈출이었기 때문이었다.’
3.
“아버지가 사냥을 즐길 때 묵었던 곳이 바로 이 성이라는 말이지요?”
“그러하옵니다. 전하.”
“대단한 곳이군요. 성도 멋지고, 정원도 훌륭합니다. 이곳을 넓혀 프랑스의 궁정을 옮기고 싶군요.”
“전하, 그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왕이 파리를 떠나는 일은 있을 수 없습니다.”
1651년 여름 열세 살이 된 루이 14세는 마자랭 추기경과 함께 베르사유로 사냥을 하러 갔다. 아버지 루이 13세가 곤디 가문으로부터 땅을 사들여 성을 짓고 정원을 넓힌 곳이었다. 그는 처음 가본 베르사유에 매혹됐다.
루이 14세는 파리 생활에 싫증을 느꼈다. 루브르 궁전에서 사는 게 답답해서 탈출구를 찾고 싶었다. 그는 파리로 돌아가면서 언젠가는 베르사유에 화려한 궁전을 지어 이사를 오겠다고 다짐했다. 그가 기다리던 기회는 불과 6년 뒤에 찾아왔다. 그의 여러 가지 행동을 제어하던 마자랭 총리가 세상을 떠난 것이었다.
“베르사유 성을 궁전으로 재건축하도록 하겠소. 성을 넓혀서 대규모 행사를 치를 수 있게 만드시오. ‘태양왕’인 짐의 영광을 돋보이게 할 수 있는 궁으로 건설하는 거요.”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 공사를 시작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유럽에서 가장 화려한 궁을 만들어 왕의 신권통치와 프랑스의 세계 지배를 정당화하려고 했다. 궁전의 성과 정원 등에 많은 조각과 그림을 배치해 왕의 삶에 담긴 도덕적 교훈과 서사적 장면을 보여주려고 했다.
‘파리에서 벗어난 아름다운 궁전과 정원에서는 내 마음대로 정치를 할 수 있게 될 거야. 이를 통해 권력을 더 키울 수 있어. 국제사회의 정점에 자리 잡은 프랑스의 지위를 더 강화시킬 수 있는 거야.’
루이 14세는 건축가, 조각가, 엔지니어, 화가를 대거 고용해 사냥용 오두막과 정원을 절대주의를 반영하는 건축물로 바꾸게 했다. 왕권의 신비스러움을 가시적으로 드러낼 수 있는 건축물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프랑스의 군주를 초자연적인 신화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게 자네들의 목표일세.”
베르사유 궁전의 건물이나 정원, 장식 중에서 우연히 또는 아무 목표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모든 게 루이 14세의 인생을 둘러싼 모든 이야기를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복잡한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졌다.
궁전 확장공사가 어느 정도 진행되자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에서 보내는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많은 조신은 물론 법원 판사, 귀족, 시종 등 수천 명이 왕을 따라가서 여러 날을 보내곤 했다. 왕은 귀족, 신하들에게 반드시 베르사유 궁전 행사에 참가하라고 강요했다. 특혜와 사회적 계급에 집착한 귀족과 관료는 왕의 지시대로 베르사유 궁전에서 살게 됐다.
이들은 새 궁전에 머무는 동안 궁전과 정원을 장식한 많은 그림과 조각을 끊임없이 보아야 했다. 프랑스와 왕권의 우월성을 노골적으로 나타내는 작품들이었다. 그들의 머리에는 루이 14세의 왕권신수설이 서서히 스며들어갔다.
4.
루이 13세가 처음에 만든 사냥용 성 앞에는 둥근 연못이 하나 있었다.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을 만들면서 연못을 궁 안으로 끌어넣었다. 그는 당시 유명한 형제 조각가 가스파드 마르시와 발타자르 마르시에게 연못에 분수를 만드는 일을 맡겼다.
두 사람은 개구리 등 여러 동물 조각을 만들어 분수에 설치했다. 연못 주변에 스무 개나 되는 물 분출구에는 납으로 만든 개구리 스무 마리를 설치했다. 개구리 입에서는 수조를 향해 물이 나오게 했다. 주변의 작은 연못 두 개에는 거북이와 도마뱀 24마리를 장식했다. 그래서 이 분수에 ‘개구리 연못’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루이 14세는 연못의 개구리 조각을 보고는 라토나 신화를 떠올렸다. 그래서 형제를 다시 불러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아폴로(아폴론)와 다이애나(아르테미스)의 어머니인 라토나(레토)의 신화를 연못에 덧씌우라고 지시했다. 신화는 대충 이런 것이었다.
‘라토나는 거인족인 코에우스와 페베의 딸이었는데 유피테르와 동침하는 바람에 쌍둥이를 임신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유피테르의 부인 유노는 분노해 그녀를 신의 세계에서 쫓아냈다. 그리고 세상의 어떤 땅도 그녀를 받아들이지 말라고 지시했다.
영원한 방랑의 저주에 묶인 라토나는 세상을 끝없이 돌아다녀야 했다. 그녀는 델로스 섬에 도착해서야 겨우 아폴로와 다이애나를 낳을 수 있었다. 하지만 섬에 정착할 수는 없어 다시 달아나다 리키아 국경 지역에 도착했다.
지쳐서 목이 말랐던 라토나는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마침 계곡에 연못이 보였는데 물이 매우 맑아 보였다. 그런데 주변에서 골풀이나 해초를 뜯던 농부들이 앞을 가로막더니 물을 마시지 못하게 했다. 라토나는 간절히 애원했다.
“왜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는 건가요? 물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답니다. 신과 자연은 모든 인간에게 공기와 빛과 물을 사용할 권리를 주었지요. 나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이용하려는 것뿐이에요. 그런데도 나는 당신들에게 마치 자비를 베풀라는 것처럼 구걸해야 하는군요. 나는 지친 몸을 씻으려는 게 아니에요. 단지 목을 축이려는 것뿐이랍니다. 입이 말라붙어 말하기도 힘들 정도예요. 이 물은 내게는 신이 마시는 넥타르 같은 것이지요. 제발 물을 마시게 해 주세요. 그렇게 하면 여러분은 나의 생명을 구해주시는 게 됩니다. 가슴에 매달려 연약한 팔을 뻗고 있는 두 아이를 위해서라도 물을 마시게 해 주세요.”
아무리 하소연해도 농부들의 굳은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그들은 끝까지 물을 마시지 못하게 하면서 즉시 떠나라고 했다.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연못을 마구 짓밟고는 손으로 물을 휘저어 도저히 마실 수 없게 만들었다. 목마름마저 잊어버릴 정도로 분노한 라토나는 두 손을 하늘 높이 들고 저주를 퍼부었다.
“앞으로 당신들은 영원히 연못의 흙탕물 속에서 살게 될 것이오.”
라토나가 말을 마치자마자 농부들은 갑자기 개구리로 변했다. 일부는 깜짝 놀라 연못으로 뛰어들었다. 목은 부풀어 올랐고 입은 넓어졌다. 머리는 어깨 쪽으로 쪼그라들었고 등은 녹색으로 변했다. 배는 둥글게 바뀌었다. 개구리가 된 리키아의 농부들은 영원히 연못의 진흙탕에서 살아야 했다.’
루이 14세가 개구리 연못을 라토나의 분수로 바꾸라고 한 것에는 목적이 있었다. 그는 라토나와 아폴로, 다이애나가 겪었던 고난을 어릴 때 그와 어머니가 경험했던 고초와 동일시했다. 아폴로의 어머니 라토나는 그의 어머니 앤 태왕후였다. 농부들이 개구리로 변신한 것은 왕권에 맞서 반란을 일으킨 자들에게 주어진 처벌을 상징했다. 여기에 한 가지 더. 루이 14세가 라토나의 분수를 만든 결정적인 목적이 있었다. 바로 아폴로였다. 라토나를 앤 태왕후와 동일시한다면 아폴로는 바로 루이 14세가 되는 셈이었다. 그의 목적은 바로 이것이었다.
“아폴로는 태양의 신이었다. 따라서 짐은 ‘태양왕’이다.”
루이 14세는 갈릴레이 갈릴레오와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태양을 중심으로 돌아가듯이 프랑스는 물론 세상의 모든 신민은 태양왕인 그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라토나 분수 주변에는 거북이들이 입을 벌리고 있다. 첫 번째 단에는 변신을 겪는 농부와 개구리가, 다음 두 단에는 개구리만 설치돼 있다. 분수 꼭대기에는 하얀 대리석 조각상이 있는데, 아폴로와 다이애나가 팔을 뻗어 농부들에게 구걸하는 모습이다. 라토나는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서 입을 열어 저주를 내뱉는다.
라토나 분수를 지나 정원 맨 끝에 가면 아폴로 분수가 있다. 분수 한가운데에서는 대양 끝에서 솟아오르는 태양처럼 아폴로의 전차가 솟아오른다. 바로 태양왕 시대의 개막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베르사유 궁전-라토나 분수-아폴로 분수를 차례로 배치한 것은 루이 14세의 치밀한 의도였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