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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Mar 22. 2024

성 주느비에브와 팡테옹


쥬느비에브는 샘물을 뜨러 가기 위해 여느 날처럼 동네 친구들과 함께 물동이를 지고 숲속을 걷고 있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성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천사나 하나님으로부터 들었던 말씀도 전해주었다. 


주느비에브에게는 천사가 나타났다거나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하는 등의 기적이 자주 일어났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지 못하겠다면서 그녀를 마녀라고 몰아세우며 화형시켜야 한다고 요란을 떨었다. 그러나 나중에는 모두 그녀의 깊은 신앙심을 이해하게 됐고, 마을 처녀들을 신앙으로 이끄는 역할을 맡기기도 했다.


주느비에브와 친구들은 샘물을 뜨고 돌아오는 길에 로마 병사를 만났다. 그의 몸은 흙투성이였으며, 몹시 지친 듯 힘들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름다운 아가씨, 바쁘지 않으시면 저에게 물을 한 잔 건네는 은혜를 베풀어 주시겠소?”


젊은 병사는 주느비에브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입술은 바짝 말라 있었다. 얼굴은 핼쑥한 게 며칠째 음식을 먹지 못한 것처럼 보였다. 주느비에브는 물동이를 바닥에 내려놓고 물을 떠서 가져다주었다. 병사는 물이 옆으로 새는 것도 모른 채 허겁지겁 물을 마셨다. 


“실례지만 어디서 오신 병사이신지 여쭈어도 될까요?”


물을 마시던 병사는 고개를 들어 주느비에브를 쳐다봤다. 


“여기가 파리인가요?”

“그렇습니다. 여기는 파리 근교이지요. 저기 위로 조금만 더 가면 아우렐리아눔(현재 오를레앙)이고요.”

“바로 근처가 아우렐리아눔이라고요?. 드디어 목적지까지 다 왔군.”


병사는 주느비에브의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딴 소리만 했다. 늘 집에서 바른 예의범절을 배웠던 그녀는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 대답을 재촉할 수도 없어 두 손을 모은 채 조용히 서 있었다.


“나는 두로코토룸에서 온 아우구스타요.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이 침입해 오는 바람에 그곳을 지키던 로마군은 거의 전멸했다오. 나는 로마군이 궤멸되기 직전에 사령관의 명령을 받고 혼자 탈출했소. 훈족의 다음 목표는 파리요. 그곳을 점령한 뒤 아우렐리아눔으로 가서 로마군과 맞서려고 하지요. 나는 미리 가서 전쟁을 준비하라고 알리라는 명령을 받았소.”

“무서운 훈족이 파리로 쳐들어온다고요?”

“그렇다오. 이제 이르면 한 달, 늦어도 두 달 뒤면 훈족이 파리 근처까지 올 거요.”


병사와 헤어져 집에 돌아간 주느비에브는 대모에게 병사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전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잃어 파리에서 대모와 함께 살았다. 대모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도 그럴 것이 아틸라가 이끄는 훈족은 전쟁을 벌일 때마다 승리해서 로마도 무서워하는 강적이라는 소문이 파다했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주느비에브의 집에만 퍼진 게 아니었다. 다른 처녀들의 입을 통해 파리 곳곳에 잔인한 훈족이 쳐들어온다는 이야기가 번졌다. 소문을 들은 파리 사람들은 피난을 가려고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짐을 다 버려두고 가족만 데리고 벌써 도망간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피난을 떠나려는 사람들로 시내는 온통 엉망진창이었다. 


주느비에브는 이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사람들이 모두 고향인 파리를 버리고 피난을 간다고 해서 일이 해결될 게 아니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녀는 두 팔을 벌리고 피난 가는 마차 행렬을 막아섰다. 그리고 간절한 심정으로 사람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렇게 도망간다고 해서 뭐가 달라지나요? 훈족은 파리를 점령한 뒤에는 우리가 도망간 곳까지 쫓아와서 모두 학살할 거예요. 그러면 시간은 조금 늦춰지겠지만 결국 죽는 것은 마찬가지예요.”

“도망가지 않으면 어떻게 하라는 거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겠소? 로마군이 훈족을 물리친다고 확신할 수 없지 않소? 지금 피난가지 않으면 모두 몰살당할 텐데.”

“우리에게는 하느님이 계시잖아요. 도망가는 대신 모두 성당에 모여 매일 하느님께 기도를 드려요. 그러면 생드니를 보내 은혜를 베푸신 하느님께서 반드시 우리를 구해주실 거예요. 저는 지금 바로 성당으로 갈 겁니다. 저와 뜻이 같은 사람들은 따라오시기를 바라요.”


주느비에브는 말을 마친 뒤 성당으로 걸어갔다. 그녀의 얼굴에는 신앙심이 충만해보였다. 하느님이 절대 파리 사람들을 버리지 않고 훈족의 침략에서 구해주실 것이라는 신념이 확실해 보였다. 차분하면서도 힘차게 성당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모습은 피난을 가려던 다른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짐을 다시 집에 갖다놓은 뒤 뒤를 따라 갔다. 그녀와 파리 시민들은 그곳에서 매일 기도를 드렸다.


훈족은 한 달쯤 뒤 파리 근처까지 접근했다. 소문에는 훈족 병사가 10만 명을 넘는다고 했다. 멀리 밭일을 하러 나갔다가 그들을 보고 깜짝 놀라 곧바로 파리로 도망쳐 온 농부는 덜덜 떨었다.


“온 산과 들이 훈족 병사들로 새까맣게 덮였어.” 


이야기가 전해지자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던 파리 사람들은 술렁였다. 그대로 까무러치거나 눈물을 펑펑 쏟는 여자들도 있었다. 주느비에브는 제단 앞에 나서 조용히 말했다.


“여러분, 저들이 온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던 일이 아니었던가요? 지금 새삼 놀랄 이유가 없어요. 하느님은 훈족 군대의 모습을 보여주신 뒤 우리가 신앙심을 굽히지 않고 지킬 수 있는지를 시험하고 계신 겁니다. 우리가 할 일은 계속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흔들리지 말고 다시 자리에 앉아 기도를 드립시다.”


주느비에브의 말이 끝나자 성당에 있던 사람들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머리를 앞 의자 허리 받침대에 숙인 채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올렸고, 다른 사람들은 두 눈을 감은 채 알 수 없는 말을 웅얼거리기도 했다. 기도가 한 달이 넘게 이어지던 어느 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밭에 일을 하러 나갔던 농부가 성당에 뛰어 들어오더니 고함을 외쳤다.


“훈족 병사들이 모두 사라졌어요!”


깜짝 놀란 사람들은 성당에서 나와 훈족 병사들이 주둔했던 들판으로 달려갔다. 실제 그 많던 야만인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알려진 바에 따르면, 훈족은 파리 공격을 포기한 뒤 바로 로마군이 주둔해 있던 아우렐리아눔으로 갔다. 그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어쨌든 훈족과 로마군은 치열한 전투를 벌여 양측 합쳐 모두 16만여 명이 전사했다고 전해진다. 훈족은 고향 땅으로 되돌아갔고, 파리는 다시 평화를 되찾을 수 있었다.  


주느비에브는 512년 세상을 떠난 뒤 국왕 클로비스 1세가 만든 성당에 안치됐다. 그곳의 이름은 성 주느비에브 성당으로 정해졌다. 그녀는 죽은 뒤 성인이 됐으며, 지금까지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모셔지고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성 주느비에브 성당은 돌보는 사람이 없어 매우 황폐해졌다. 1758년 중병에 걸렸던 루이 15세는 병에서 회복되자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린다며 옛 성당을 허물고 그 자리에 새 성당을 지었다. 


성 주느비에브의 유해는 이전처럼 새 성당에 모셔졌지만 프랑스대혁명 때 혁명의회는 성 주느비에브 성당을 영웅 무덤인 팡테옹으로 바꿔버렸다. 혁명의회는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성 쥬느비브에게 ‘과거 왕, 귀족 같은 권력과 공모한 반혁명분자’라는 혐의를 뒤집어씌워 그녀의 유해를 재판에 회부하는 웃지 못할 만행을 저질렀다. 혁명의회는 그녀에게 유죄를 선고한 뒤 유해를 센강에 던져버렸다. 그래서 지금 팡테옹은 더 이상 성 주느비에브의 성소가 아니며 그곳에 가더라도 파리의 수호성인인 그녀의 유해를 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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