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렌툼과 식탁을 먹는 신탁
아이네아스 일행이 시칠리아에 갔을 때 그들이 원래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티레티아 해에 흔한 폭풍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밀려났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행은 드레파나라고 하는 섬에 도착했다.
이들은 시칠리아에서 엘리모스, 아이게스토스와 함께 트로이에서 탈출한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행운과 바람 덕분에, 또 무거운 짐에 시달리지 않았기 때문에 재빨리 시칠리아로 피신했다가 시카니 족의 영토인 크리미소스 강 인근에 자리를 잡은 사람들이었다. 시카니 족은 원래 시칠리아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게스토스와 친척이었기 때문에 그의 일행에게 땅을 떼어줘 살게 했다.
아이게스토스의 조상 중 한 명은 트로이에서 태어난 유명한 사람이었다. 라오메돈 왕은 여러 가지 이유를 붙여 사이가 나빴던 그를 죽여 버렸다. 나중에 불행한 일을 겪지 않으려고 그가 낳은 모든 사내아이도 다 살해해 버렸다. 아직 결혼도 하지 않은 그의 딸들을 죽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했는지, 그렇지만 트로이에서 함께 사는 것은 안전하지 못하다고 여겼는지 왕은 그의 딸들을 상인에게 넘겨버렸다. 가능하면 트로이에서 가장 먼 곳으로 데려가라는 게 그의 지시였다.
딸들은 아주 유명한 가문의 청년과 함께 항해에 나섰다. 그 청년은 딸 중 한 명과 사랑에 빠져 항해에 동참한 것이었다. 그는 시칠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와 결혼했다. 그들은 시쿨리 족 사이에서 사는 동안 아들을 하나 낳아 아이게스토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아이게스토스는 원주민의 언어와 생활방식을 배웠다. 나중에 부모가 죽고 프리아모스가 트로이 왕이 됐을 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허가를 얻었다. 그는 그리스와의 전쟁에서 프리아모스 왕을 지원했지만 나중에 트로이가 함락될 무렵 도시를 탈출해 다시 시칠리아로 돌아왔다. 그는 탈출할 때 배 세 척에 엘리모스 등을 동승시켰다. 배는 원래 아킬레스의 것이었지만, 그가 도시를 약탈하는 사이 아이게스토스와 엘리모스가 숨어 있다 빼앗은 것이었다.
아이네아스는 이들을 친절하게 맞아들이고 두 도시, 아이게스타와 엘리메를 건설해 주었다. 또 병사 중 일부를 두 사람에게 넘겨주기도 했다. 이것은 나의 추측인데, 아이네아스는 바다에서 힘든 여정을 보내느라 지친 동료들에게 휴식과 안신처를 주기 위해 일부러 이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부 역사학자는 다르게 주장한다.
‘아이네아스는 오랜 여정에 지친 일부 여자의 방화 때문에 선단 중 일부를 잃어버렸다. 할 수 없이 불탄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을 시칠리아에 남겨둘 수밖에 없었다.’
아이네아스와 트로이 인이 시칠리아에 갔다는 증거는 많다. 가장 유명한 것으로는 엘리메 정상에 세워진 아프로디테 아이네이아스 제단이 있다. 아이게스타에는 아이네아스 신전도 있다. 아프로디테 아이네이아스 제단은 어머니를 기념하며 아이네아스가 직접 지었다. 반면 아이네아스 신전은 시칠리아에 남기로 한 사람들이 아이네아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건설해 바친 것이다.
엘리모스와 아이게스투스가 이끈 트로이 인은 시칠리아에 계속 남아 있었다. 이들은 나중에는 엘리모이라고 불렸다. 엘리모스가 왕족 출신이어서 가장 품위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시칠리아를 떠나 티레니아 해를 건너 이탈리아의 팔리누로스 항구에 도착했다. 아이네아스는 데려간 선원 중 한 명이 항구에서 눈을 감자 그의 이름을 항구에 붙여주었다. 그들은 로이코시아 섬에 기항했다. 아이네아스는 섬에서 사망한 아이네아스의 여자사촌을 위해 섬을 로이코시아라고 부르기로 했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좀 더 깊숙한 곳에 있는 오스키 족의 항구로 들어갔다. 이곳에서 미세누스라는 저명한 사내가 세상을 떠났다. 이 항구에는 그의 이름을 붙여 미세눔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일행은 이어 우연히 포르키타 섬과 카이에타 곶에도 기항했다. 두 곳에도 마찬가지로 그곳에서 숨을 거둔 아이네아스의 사촌과 유모를 기념해 이름을 달았다. 마침내 아이네아스 일행은 이탈리아의 라우렌툼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방랑을 끝내기 위해 참호로 둘러싼 숙영지를 만들었다. 그들은 이곳을 트로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바다에서 1㎞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이었다.
일부 역사학자는 이런 역사를 부인한다. 그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아이네아스는 이탈리아에 가지 않았다.’
다른 역사학자는 약간 다르게 주장한다.
‘이탈리아로 간 사람은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이 아니라 다른 아이네아스다.’
또 다른 역사학자는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오스가 이탈리아에 도착한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전혀 다른 사람 이름을 들먹이는 이도 있다.
‘아프로디테의 아들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에 동료들을 정착하게 한 뒤 고향으로 돌아가 트로이를 다스리다가 눈을 감았다. 그는 왕국을 아들 아스카니오스에게 넘겨주었는데 그의 후손이 오랫동안 나라를 다스렸다’.고
이 역사학자들은 호메로스의 시를 오해해서 착각한 것 같다. 호메로스는 『일리어드』에서 포세이돈이 아이네아스와 후손의 눈부신 미래를 예언하는 장면을 묘사한다.
‘위대한 아이네아스에게 통치권이 돌아가리라
대를 이어 영원한 계승이 이어지리라’
일부 역사학자는 ‘호메로스는 아이네아스의 가문이 프리기아에서 통치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라고 생각하고는 아이네아스가 트로이로 돌아갔다는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가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으면서 트로이를 통치하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네아스가 다른 나라에서 살면서도 트로이를 통치하는 게 꼭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다. 이런 오해를 풀어줄 다른 근거가 주어질지도 모른다.
‘아이네아스의 무덤은 여러 장소에 있다. 한 사람이 여러 곳에 묻히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역사학자가 있다. ‘이런 어려움은 많은 다른 사람, 특히 놀라운 운명을 살았고, 오랜 떠돌이 인생을 경험한 사람에게 흔히 일어난다’는 점을 생각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또 아이네아스는 한 곳에 묻혔지만 그로부터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감사하면서 여러 곳에 기념물을 세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 특히 그 영웅의 후손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거나, 어떤 도시가 그 후손들에 의해 세워졌거나, 많은 사람 사이에서 그 후손들이 오랫동안 위대한 인간성 덕분에 명성을 얻었다면, 이런 일들은 우리가 알기로 그 영웅과 관련된 것이다.
아이네아스는 일리움이 함락됐을 때 도시를 완전한 파괴로부터 보호했다. 그리고 중요한 동맹들을 안전하게 베브리키아로 보냈다. 아들 아스카니오스는 프리기아의 왕으로 보냈다. 팔레네에는 그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딸은 아르카디아에서 시집보냈다. 시칠리아에는 군대 일부를 남겨두었다. 그리고 다른 여러 곳에 사는 동안에도 위대한 인간성을 발휘해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그는 사람들로부터 자발적인 사랑을 얻었고, 당연히 세상을 떠난 뒤 곳곳에 영웅 성소와 기념물이 세워지는 영광을 얻었던 것이다.
만약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의 이 지역에서 통치하지 않았거나 살지 않았다면, 그리고 주민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면 그의 여러 기념물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나의 주장은 가끔 더 명확한 설명을 필요로 한다는 점에서 이 점은 앞으로 더 많이 논의돼야 할 것이다.
트로이 선단이 유럽 안쪽으로 더 이상 항해하지 않은 것은 이곳에서 일을 마무리하라는 신탁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나타난 신의 힘 때문이었다. 선단이 라우렌툼에 정박해서 해안에 천막을 세웠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갈증에 시달렸지만 인근에서 물을 찾을 수 없었을 때-이 이야기는 지역 주민들에게서 들었다-갑자기 달콤한 샘물이 땅에서 솟아나기 시작했다. 모든 병사는 물을 마셨고, 물이 개울을 이뤄 바다로 흘러가기까지 했다.
오늘날 그 샘은 더 이상 흘러넘치지 않는다. 하지만 움푹 꺼진 곳에 적당히 고인 물이 아직도 남아 있다. 주민들은 그 샘물을 아폴로 신에게 헌정한 뒤 근처에 제단 두 개를 세웠다. 하나는 동쪽을, 다른 하나는 서쪽을 향하고 있다. 둘 다 트로이 식 건축물이다. 이곳에서 아이네아스는 물을 준 신에게 감사를 드리는 봉헌의식을 열고 희생물을 바쳤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봉헌의식을 치른 뒤 땅에 앉아 식사를 하게 됐다. 대부분은 파슬리를 식탁 삼아 바닥에 깐 뒤 그 위에 음식을 놓고 먹었다. 일부 역사학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그들은 음식을 깨끗하게 먹으려고 밀떡 위에 음식을 놓았다.’
일행이 모든 음식을 다 먹었을 때 일부는 밑에 있던 파슬리와 떡을 먹었다. 그때 아이네아스의 아들 중 한 명, 또는 그의 식사 동료가 이렇게 소리쳤다.
“다들 보세요. 마침내 우리는 식탁을 먹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듣자마자 즐거움에 모두 함성을 질렀다.
“드디어 신탁이 실현됐군요.”
아이네아스 일행은 도도나에서 신탁을 받은 게 있었다. 또 이다 산의 에리트라이에 있을 때 거기에 있던 시빌 무녀가 내놓은 신탁도 있었다. 이런 내용이었다.
‘당신들은 식탁을 먹을 때까지 서쪽으로 항해할 것이다. 이런 일이 마침내 발생한 뒤에는 발 넷 달린 짐승을 안내인 삼아 따라가게 될 것이다. 그 짐승이 지치는 곳에 새로운 도시를 세우리라는 것이다.’
이 신탁을 떠올린 아이네아스 일행 중 일부는 아이네아스의 지시에 따라 배에서 신의 형상을 꺼내와 세웠다. 다른 일행은 신의 형상을 모실 받침대와 제단을 준비했다. 여자들은 소리를 지르며 춤을 추면서 신의 형상을 모셨다.
희생제례 준비를 마친 뒤 아이네아스 일행은 머리에 화관을 쓰고 제단 주변에 빙 둘러섰다. 아이네아스 일행은 신에게 기도를 올렸다. 희생물로는 아주 젊고 큰 암퇘지를 준비했다. 그런데 사제들이 의례를 준비하는 사이 암퇘지가 줄을 풀고는 내륙 쪽으로 달아나버렸다. 아이네아스는 이렇게 생각했다.
‘이 암퇘지는 신탁이 설명하는 네 발 달린 짐승이로구나.’
아이네이스는 동료 몇 명을 데리고 적당한 거리를 두고 암퇘지를 따라갔다. 그는 암퇘지가 뒤따라오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서 운명이 일러준 경로에서 벗어나지 않게 최대한 조심했다. 암퇘지는 바다에서 7㎞ 정도 떨어진 곳까지 달린 뒤 언덕 위로 올라갔다. 지친 암퇘지는 거기에 주저앉아버렸다.
신탁이 실현되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아이네아스는 그 언덕이 주변 땅 중에서도 가장 빈약한 곳인데다 바다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배를 안전하게 정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여기 정착해서 신탁을 따라야 하나? 아니면 더 나은 곳을 찾아 더 깊이 들어가야 하나? 여기는 좋은 점이라고는 없구나. 영원히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야.’
아이네아스가 고민하면서 원망하고 있을 때 갑자기 숲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말하는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목소리는 아이네아스에게 이렇게 말했다.
“여기에 머물도록 해라. 그리고 도시를 세우도록 하라. 단지 메마른 땅에 정착하게 됐다고 해서 감정 때문에 어려움에 굴복함으로써 미래에 다가올 아름다운 운명을 거부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
처음에는 작은 도시로 시작해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넓고 비옥한 나라를 얻고, 후손은 긴 세월이 지나면서 더 넓어지는 대제국을 세우게 되는 것이 그들의 운명이었다. 지금 당장은 이 거주지가 피난처에 불과하지만 많은 세월이 지난 뒤에는 암퇘지가 여러 새끼를 낳듯이, 더 크고 번영하는 다른 도시가 후손에 의해 세워지리라는 게 그들의 운명이었다.
아이네아스는 목소리를 신이 보낸 신탁이라고 생각하고는 신의 명령을 그대로 따랐다고 한다. 다른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실망해서 슬픔에 잠겼다. 너무 낙심한 나머지 일행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지도 않고 음식을 먹지도 않았고, 그 자리에서 밤을 보냈다. 그때 위대하고 아름다운 꿈이 고향 신의 모습으로 아이네아스에게 나타났다. 그리고 신은 조언을 했다.’
어느 주장이 사실인지는 신만이 알 수 있다. 신화에 따르면 다음날 암퇘지는 새끼 30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신탁에 따라 여러 해 뒤 트로이 인은 다른 도시를 건설했다. 상세한 이야기는 다른 장에서 설명할 생각이다.
아이네아스는 암퇘지를 새끼 한 마리와 함께 집안의 신에게 희생물로 바쳤다. 지금 라비니아 인들이 신성한 곳으로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은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성소가 서 있는 곳이다.
아이네아스는 일행에게 천막을 걷어 언덕으로 옮기게 한 뒤 언덕에서 가장 위치가 좋은 곳에 신의 형상을 세웠다. 그리고 엄청난 열정으로 도시를 세우는 일에 매진했다. 그는 부근에 있는 지역으로 부하들을 보내 건설을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주인에게는 가장 통탄할 만한 손해가 되는 철, 목재, 농업 도구 같은 물건들을 가져오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