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그 지역의 왕이던 라티누스는 루툴리 족이라고 불리던 이웃 부족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여러 차례 전투를 벌였지만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그때 새로운 정보가 들어왔다.
“외국 군대가 해안 지역 영토를 황폐화시키는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의 약탈을 즉각 중단시키지 않는다면 루툴리 족과의 전쟁은 상대적으로 즐거운 일로 보일 겁니다.”
라티누스는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는 즉시 루툴리 족과의 전쟁을 중단한 뒤 대군을 이끌고 트로이 인에 맞서 싸우기 위해 행진했다.
라티누스는 외국 군대가 그리스인처럼 무장한데다 질서정연하게 무리를 이뤄 결연하게 전투를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는 즉각 공격에 나서겠다는 생각을 접었다. 고향에서 군대를 이끌고 나섰을 때 기대했던 것처럼 첫 대결에서 그들을 누를 수 있다고 자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언덕에 진지를 구축한 라티누스는 병사들에게 최근에 쌓인 피로를 풀 시간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행진 구간이 너무 길었고 추격의 열정이 정말 뜨거웠기 때문에 병사들의 피로는 극심했다.
라티누스는 하룻밤을 진지에서 보낸 뒤 날이 새면 적군과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가 이렇게 마음을 먹은 뒤 잠을 잘 때 그 지역의 신이 꿈에 나타났다. 신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 인을 받아들여 함께 살게 하라. 그들이 온 것은 너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니 그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지역에 정착지를 만들게 허락해주고 그리스 군을 적이 아니라 동료로 생각하라.”
이 꿈은 라티누스와 아이네아스가 전쟁을 벌이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했다. 날이 밝자마자 양쪽 군대는 전투를 위해 대열을 이뤘다. 그때 양측 사절이 협상을 위해 만나자는 똑같은 내용의 제안을 들고 두 사령관 사이를 오갔다.
라티누스는 그리스 인이 사전 선언도 없이 그의 백성에게 강요한 갑작스러운 전쟁에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당신의 신분을 밝히시오. 공격을 받은 모든 사람은 침략자에 맞서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소이다. 그러니 아무런 이유도 없이 나의 영토를 약탈한 경위를 밝히시오. 당신은 우호적으로 우리의 동의를 받아 원하는 것을 합리적으로 얻을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정의 대신 나로서는 불명예스럽게도 무력으로 빼앗아 갔군요.”
라티누스가 말을 마치자 아이네아스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는 트로이 사람이라오. 그리스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이지요. 우리의 고향이 10년간의 전쟁 끝에 아카이아 인에게 함락됐기 때문에 우리는 영구히 살 수 있는 도시나 나라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방랑자가 됐다오. 그리고 신의 명령에 따라 여기까지 왔소. 신탁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지요. 이 땅은 우리를 위해 남겨진 것이라고. 우리의 방랑을 위한 보호처라고.
우리는 당신의 땅에서 필요한 물건들을 가져왔지요. 예의보다는 불행한 현실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오. 최근까지만 해도 어떤 일이 있어도 하지 않던 짓이지요. 대신 많은 선행으로 그런 피해를 보상하겠소. 당신에게 위험에 맞서도록 잘 단련된 우리의 몸과 마음을 모두 바치리다. 당신이 생각하기에 당신 조국을 적의 약탈에서 지키기에 필요하다고 하는 일에, 당신이 적의 땅을 정복하는 것을 열정적으로 돕는 일에 뛰어들겠소이다.
우리가 저지른 일에 분노하지 말라고 간청 드리오. 우리가 이유도 없이 그런 게 아니라 필요 때문에 할 수 없이 그랬다는 걸 이해해주기를 바라오. 비자발적인 모든 일은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가 내민 손에 대해 어떤 적대적 마음을 갖지 않기를 기대하오.
만약 당신이 용서해주지 못한다면, 우리는 먼저 이 땅의 주인인 신에게 필요 때문에 할 수 없이 저지른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빈 뒤에 당신에 맞서 우리를 지킬 것이외다. 우리는 전쟁을 한두 번 해 본 것도 아니고 큰 전쟁을 겪지 않은 것도 아니라오.”
라티누스는 아이네아스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아니오. 나는 모든 그리스 인에게 매우 친절한 감정을 갖고 있다오. 그리고 인간의 불가피한 불행을 매우 안타깝게 생각하지요. 당신이 살 곳을 찾아 왔다는 게 분명해진다면, 우리가 당신에게 선물한 적당한 몫의 땅에 만족하고 우호 정신을 즐긴다면, 나로부터 주권을 빼앗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약속이 진실이라면 나는 당신의 안전을 세심하게 배려할 것이오. 나는 우리의 약속이 깨지지 않고 잘 지켜지도록 맹세를 주고받았으면 좋겠군요.”
아이네아스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두 민족 사이에 맹세에 따라 조약이 만들어졌다. 이런 내용이었다.
‘원주민은 트로이 인에게 원하는 만큼 땅을 준다. 언덕에서 사방으로 11㎞ 되는 면적이었다. 트로이 인은 원주민을 도와 전쟁에 나선다. 소환될 때마다 모든 경우에 무력을 총동원해 원주민에게 합류한다. 두 민족은 힘이 닿는 데까지 무력과 조언으로 서로 돕는다.’
아이네아스와 라티누스는 이런 조약에 합의한 뒤 자녀들을 인질로 주고받음으로써 조약 준수를 맹세했다. 그들은 연합군을 꾸려 루툴리 족 도시로 쳐들어갔다. 모든 저항을 물리친 뒤에는 아직 절반밖에 완성되지 않은 트로이 도시로 갔다.
두 군대는 공통의 열정으로 힘을 모아 도시 주변에 성벽을 쌓았다. 아이네아스는 이 도시를 라비니움이라고 불렀다. 로마인의 설명에 따르면 라티누스의 딸 라비니아의 이름에서 따온 명칭이었다.
일부 그리스 신화학자는 델로스 왕 아니오스의 딸 이름을 딴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이름도 라비니아였다. 그녀는 도시가 완성될 무렵에 병으로 눈을 감았는데, 죽은 곳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이 도시는 그녀를 위한 기념물이었던 셈이다.
라비니아는 예언자로서 현명한 여자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아이네아스에게 시집간 뒤 트로이 인과 함께 이탈리아에 정착했다. 라비니움이 건설되는 동안 트로이 인에게 이런 내용의 조짐이 발생했다고 전해진다.
숲에서 자연적으로 불이 났다. 늑대 한 마리가 잎에 마른 나무를 문 뒤 불 속으로 던졌다. 또 독수리 한 마리가 그 위를 날더니 힘차게 날갯짓을 해 불길을 거세게 만들었다. 이와는 반대로 여우 한 마리는 강에서 꼬리에 물을 묻힌 뒤 불을 끌려고 했다. 결국 늑대와 독수리가 우위를 차지했고, 여우는 더 이상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사라져 버렸다.
아이네아스는 이 이야기를 듣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식민지는 번성해서 경탄의 대상이 될 것이오. 세상에서 가장 큰 명성을 얻을 것이오.”
소문이 퍼져 나가자 이웃 부족은 질시하게 됐다. 이것은 트로이 인에게 안타까운 일이 되고 말았다. 트로이 인은 이런 적들을 극복했다. 하늘로부터 받은 행운이 그들에게 맞선 적들의 분노보다 더 강력했기 때문이었다. 동물들의 이야기는 그 도시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알려주는 분명한 조짐이었다고 전해진다. 지금도 라비니움의 포룸에는 오랫동안 보존돼온 청동 동물 조각상 형태로 이런 사실을 알려주는 기념물이 서 있다.
트로이 인의 도시가 완성된 뒤 모든 사람은 새로운 동맹에서 생기는 상호 이익을 즐기고 싶어 했다. 두 왕은 결혼을 통해 두 부족, 즉 토착민과 외국인의 우수성을 합침으로써 모범을 보였다. 라티누스가 딸 라비니아를 아이네아스에게 준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도 두 왕과 똑같은 바람을 갖게 됐다. 그래서 아주 짧은 시간에 관습, 법, 종교 의식을 통합했고, 통혼을 유대감을 높였고, 함께 출전한 전쟁에서 서로 힘을 합쳤다. 두 부족은 원주민 왕의 이름을 따 스스로를 라틴 인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래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서로에게서 떼어낼 수 없는 유대감을 확실하게 만들게 됐다.
이런 역사를 통해 서로 한 덩어리가 돼 공통의 삶을 누리게 됐으며, 로마인이 지금 사는 도시를 건설하기에 앞서 그들의 기원이라고 생각하는 부족은 다음과 같다.
먼저 시쿨리 족을 몰아냈지만 원래는 그리스 펠로폰네소스에서 건너왔으며, 내 생각에는 아르카디아에서 오이노트로스와 함께 쫓겨난 그리스 인과 같은 종족인 원주민.
두 번째, 지금은 테살리 지역인 하이모니아에서 건너온 펠라스기 인.
세 번째, 에반드로스와 함께 팔란티움에서 이탈리아로 넘어온 사람들.
네 번째, 헤라클레스가 지휘한 펠로폰네소스 병사들 중 일부이면서 트로이 성격이 섞인 엘리스 인과 페네우스 인.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네아스의 영도 아래 일리움과 다르다노스 및 여러 트로이 도시에서 달아난 트로이 인이다.
트로이 인은 이전에 펠로폰네소스에서 온 다른 어떤 사람들보다 진실하게 그리스 민족이었다고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은 평가했다. 나도 또한 그렇게 본다. 그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아틀라스는 아르카디아로 불리는 지역의 첫 왕이었다. 그는 타우미사오스 산 인근에 살았다. 그에게는 딸이 일곱 명 있다. 지금은 플레이아데스라는 이름을 가진 성운 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제우스는 그 중에서 엘렉트라와 결혼해 두 아들, 이아소스와 다르다노스를 낳았다. 이아소스는 미혼으로 지냈지만 다르다노스는 팔라스의 딸 크리세와 결혼해 두 아들 이다이오스와 다이마스를 낳았다. 이들은 아틀라스의 뒤를 이어 한동안 왕국을 다스렸다.
나중에 아르카디아 전역에 큰 홍수가 나서 평원이 물에 잠기는 바람에 오랫동안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산에 살던 주민들은 힘든 하루하루를 이어갔다. 그들은 홍수에 잠기지 않은 땅으로는 모든 사람이 먹을 만큼 곡식을 수확하기 어렵다고 보고 두 그룹으로 나눴다.
한 무리는 다이마스를 왕으로 삼아 아르카디아에 남고 나머지는 큰 배를 타고 펠로폰네소스를 떠나기로 했다. 유럽 해안을 따라 항해하던 그들은 멜라스 만에 도착했고, 우연히 트라키아의 섬에 정박했다. 이곳에 사람이 살았는지 안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들은 그 섬을 사모트라케라고 불렀다. 사람의 이름과 지역의 이름이 혼합돼 만들어진 지명이다. 지역적으로는 트라키아에 속하고, 이곳에 처음 발을 내디딘 사람은 헤라클레스와 님프 르네의 아들인 사몬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섬에 잠시 머물렀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사는 게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척박한 토양은 물론 거친 바다와 싸워야 했다. 이들은 섬에 일부만 남겨둔 채 다르다노스의 지도 아래 다시 항해에 나서 아시아 쪽으로 나아갔다. 이아소스는 데메테르 여신과 관계를 갖고 싶어 하다가 섬에서 벼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지금은 헬레스폰토스라고 불리는 해협에 들어선 그들은 나중에 프리기아라고 불리게 되는 지역에 이르렀다. 다르다노스의 아들 이다이오스는 일행 중 일부와 함께 산악지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나중에 그의 이름을 따 이다 산이라고 불리게 됐다. 그는 그곳에 신들의 어머니 레아에게 마치는 신전을 건설했고, 프리기아에서 오늘날까지도 거행되는 비교의식과 다른 일반 의례를 창안했다.
다르다노스는 도시 하나를 건설해 그의 이름을 붙여 트로아드라고 불렀다. 이 땅은 테우크리스라고 불리던 지역의 왕 테우크로스(텔라몬의 아들이며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아스의 이복형제)로부터 부여받은 것이었다. 여러 역사학자, 특히 고대 아티카의 구전설화 책을 쓴 파노데모스는 이렇게 주장한다.
‘테우크로스는 아티카에서 아시아로 왔다. 그는 아티카에서 키페테라고 불린 지역의 족장이었다.’
테우크로스가 차지한 땅은 넓고 비옥했지만 인구가 너무 적었다. 그래서 그는 다르다노스는 물론 그가 데리고 온 그리스 인을 환영했던 것이다. 그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야만족과 전쟁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그 땅이 더 이상 빈 상태로 버려지기를 바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다보면 아이네아스까지 어떻게 가문이 이어졌는지 설명해야 한다. 간단히 이야기를 해 보자. 부인인 팔라스의 딸 크리세가 죽은 뒤 다르다노스는 테우크로스의 딸 바이테이아와 다시 결혼했다. 그녀와의 사이에 아들 에리크토니오스를 낳았다. 그는 나중에 모든 인간 중에서 가장 행운아였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 아버지의 나라와 외할아버지의 나라를 동시에 물려받았기 때문이었다.
에리크토니오스와 사크만드로스의 딸 칼리로에 사이에서 아들 트로스가 태어났다. 트로이라는 명칭은 그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다.
트로스와 에우메데스의 딸 알칼라리스에게서 아사라코스가 태어났다. 아사라코스와 라오메돈의 딸 클리토라 사이에서 아들 카피스가 태어났다.
카피스와 님프 히에롬네메 사이에서 안키세스가, 안키세스와 여신 아프로디테 사이에서 아이네아스가 태어났다. 따라서 트로이의 족보는 원래 그리스 계열이었던 것이다.
라비니움이 건설됐던 시기와 관련해서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내가 보기에 가장 타당한 주장은 트로이 인이 트로이에서 탈출한 뒤 2년째라는 것이다.
일리움은 하지가 되기 17일 전, 타르게리온 달(아테네 달력으로는 5~6월 사이)의 마지막 날로부터 8일째 되던 날, 그러니까 봄 막바지에 함락됐다. 그 해가 끝나려면 하지로부터 20일이 남아 있었다. 항복한 도시에서 온 사절을 만나고, 그들과 조약을 체결하느라 바빴다.
그 다음 해 아이네아스가 인솔한 트로이 인은 추분 무렵 항해에 나섰다. 그들은 헬로스폰토스 해협을 지나 트라키아에 상륙해 겨울을 보냈다. 그동안 트로이에서 탈출해 온 난민을 모으고 본격 항해를 준비했다. 초봄에 트라키아를 떠난 아이네아스 일행은 시칠리아로 건너갔다. 그들이 그곳에 도착했을 때는 그 해의 막바지였기 때문에 엘리모스가 도시를 세우는 것을 도와주면서 그곳에서 두 번째 겨울을 보냈다.
항해하기에 좋은 날씨가 이어지자 아이네아스 일행은 섬을 떠났다. 그들은 티레니아 해를 건너 한여름에 원주민의 해안에 있던 라렌툼에 도착했다. 원주민으로부터 땅을 나눠받아 라비니움이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은 결국 트로이 함락 이후 두 번째 해의 일이었다.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에서 떠난 지 3년째 되던 해에 지금까지도 남아 있는 신전과 여러 공공건축물로 도시를 꾸몄을 때까지만 해도 트로이 인만 다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에 라티누스가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이 됐다. 부인인 라비니아가 라티누스의 후계자였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가 이웃 부족의 전쟁에서 장군으로 맹활약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루툴리 족은 라티누스의 부인인 아마타의 사촌 티레누스를 지도자로 삼아 라티누스에 맞서 다시 반란을 일으켰다. 티레누스는 라비니아의 결혼을 맹비난했다. 라티누스가 친척을 무시하고 가족을 외부인과 연결시켰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마타로부터 자극을 받고 다른 사람들로부터 용기를 얻어 자신을 따르는 병사를 이끌고 루툴리 족에게 달아났다.
전쟁은 이런 불만 때문에 일어났다. 전투에서 라티누스가 죽은 뒤 티레누스와 다른 많은 사람도 목숨을 잃었다. 아이네아스와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승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아이네아스는 장인의 나라를 물려받게 된 것이었다.
라티누스가 죽고 3년 동안 나라를 다스린 그는 4년째 되던 해 전투에서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루툴리 족은 티레노이 족 왕인 메젠티오스의 도움을 받아 모든 병력을 이끌고 쳐들어왔다. 메젠티오스는 그리스의 세력이 너무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어 그의 나라마저 위험해졌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라비니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고, 양측에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밤이 돼 양측 군대가 물러났을 때 아이네아스가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일부 사람은 그가 신이 돼 승천했다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전투가 치열할 때 강에서 죽었다고 말했다.
라틴 인은 영웅 성소를 만들어 그에게 바쳤다. 성소에는 이런 명문을 새겼다.
‘누미키오스 강의 물을 다스린 이곳의 아버지이자 신에게.’
하지만 일부는 ‘이 성소는 전쟁이 일어나기 한 해 전에 세상을 떠난 안키세스를 기리기 위해 아이네아스가 세운 것이다’라고 주장한다. 성소는 작은 언덕이다. 주변에는 규칙적으로 나무가 심어져 있어 볼 만한 장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