샬롯데의 새집 버킹엄 궁전

아주 화창한 날씨였다. 기온은 적당하게 따뜻했고 잔잔한 미풍이 불어 적당히 시원하기도 했다. 들판에서는 농부들이 일을 했고, 주변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놀았다. 들판을 가로지르는 좁은 길에서 먼지가 일었다. 마차 10여 대가 줄을 지어 어디론가 향했다.

“이런 시골마을에 웬 마차가 저렇게 많이 나타난 거지?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1761년 7월 독일 사람들도 어딘지 잘 모르는 시골마을 미로프에 갑자기 소동이 일었다. 오가는 사람조차 드물어 늘 조용하던 이곳에 갑자기 화려한 마차 여러 대가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마차 행렬은 시골길을 한참이나 달리더니 한 저택 앞에 멈춰 섰다. 대도시에 비하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집이지만, 주변에서는 가장 크고 아름다운 저택이었다. 이곳은 엘리자베트 알베르틴 부인 가족이 사는 집이었다. 남편은 카를레스 루이스 프리드리히 백작이었지만, 벌써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처지였다. 부인은 혼자 여러 자식을 힘들게 키우며 살았다.

“알베르틴 부인, 저는 영국 국왕께서 보내신 사절단 단장인 하코트 자작입니다.”

갑자기 나타난 마차들을 보러 알베르티나 부인과 큰아들 아돌프 프리드리히 백작이 나왔다. 마차에서 내린 한 신사가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이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영국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아는 사람도 없었다. 물론 영국 이야기를 꺼낼 일도 없었다.

“영국 국왕께서 보내셨다고요? 혹시 엉뚱한 집을 찾아오신 건 아닌지?”

“아닙니다. 이 집이 고 프리드히리 백작과 알베르티나 부인의 따님인 샬롯데 양이 사는 집이 아니던가요?”

알베르티나 부인은 다시 깜짝 놀랐다. 영국 왕실에서 보내서 왔다는 사람들이 어떻게 딸의 이름을 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저의 막내딸이긴 합니다. 그런데 영국 왕실에서 그 아이에게 무슨 볼일이라도 있으신가요?”

“대영제국의 국왕이신 조지 3세 전하께서 샬롯데 양을 왕비로 간택하셨습니다. 알베르틴 부인께서 반대하시지 않는다면 지금 런던으로 모셔갈 생각입니다.”

알베르티나 부인은 깜짝 놀랐다. 영국이 막내딸을 왕비로 데려간다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이야기인 것인지…?

하코트 자작은 알베르티나 부인이 시녀에게 시켜 가져온 차를 마시면서 그동안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조지 3세는 1760년 10월 즉위했다. 부친이자 선왕이 조지 2세가 77세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졸지에 왕이 된 것이었다. 22세였던 그는 즉위 당시 미혼이었다.

조지 3세에게는 사실 왕이 되기 전에 결혼할 기회가 있었다. 그는 리치몬드 백작의 여동생인 사라 레녹스에 홀딱 반해 결혼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주변에서 결혼에 반대해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은 찰스 백작의 장녀 소피 캐롤라인과 결혼하라고 권유했다. 이번에는 조지 3세와 아우구스타 모후가 싫어했다. 귀족들이 소피를 추천한 것은 정치권력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조지 3세는 정치나 권력과 관련 없는 여성을 왕비로 받아들이고 싶어 했다. 그는 군인 출신 외교관 데이비드 그래미를 독일로 보내 적당한 인물을 찾아보라고 했다. 나이는 10대 후반이어야 하고 영국에 연고도 없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여성이어야 했다. 미모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평범한 얼굴이면 된다고 그는 생각했다.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귀족 집안을 살펴보던 그래미다 적당한 여성을 찾아냈다. 바로 샬롯데였다. 나이는 어리고 머리가 영리했으며 미모도 그렇게 처지는 편이 아니었다.

아버지 프리드리히 백작은 샬롯데가 8세 때 세상을 떠났다. 미로프에 있는 집 한 채 외에는 남긴 재산도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샬롯데를 포함해 10남매는 여유롭게 살지 못했다. 교육도 다른 귀족가문 자제만큼 받지 못했다. 그래미는 보고서를 왕에게 보냈다.

‘교육은 기초적 수준만 받았습니다. 영국 시골에 사는 젠틀맨 집안의 딸이 받는 정도입니다. 수준 높지 않은 식물학, 역사학, 언어 수업을 받았습니다. 가사 관리, 종교 교육은 제대로 받았습니다. 눈에서는 생기가 넘쳐나고 매우 영리합니다. 입은 큽니다. 치아는 하얗습니다. 금발은 아름답습니다.’

그래미의 보고서를 받은 조지 3세는 고민을 거듭했다. 어머니와 상의도 했다.

“독일 시골 귀족 딸이라니 영국 정치에 관여할 일은 없겠구나. 교육을 많이 받지는 못했지만 영리한 데다 가사는 배웠다니 오히려 금상첨화이겠고….”

조지 3세는 어머니의 승낙을 얻어 샬롯데에게 청혼하기로 했다. 그래서 하코트 자작 등 사절단을 미로프로 보낸 것이었다.

“어떠하십니까? 부인, 그리고 프레데릭 백작. 영국 국왕과 사돈지간이 되는 게 손해를 보는 일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하코트 자작의 제안을 받은 알베르티나 부인과 아돌프 프리드리히 백작은 기꺼이 청혼을 받아들였다. 결혼 계약서에는 법적으로 프리드리히 집안의 상속자인 샬롯데의 큰오빠 아돌프 프리드리히 백작과 하코트 자작이 서명했다.

며칠 뒤 샬롯데는 하코트 자작 일행을 따라 런던을 향해 떠났다. 어머니와 다른 가족은 따라가지 못하고 큰오빠만 동행했다. 원래 배로 사흘이면 가는 거리였지만 폭풍이 심하게 부는 바람에 아흐레나 걸렸다고 한다.

샬롯데는 9월 7일 영국에 도착했다. 그녀는 첫날은 위텀에 있는 한 귀족 저택에서 밤을 보내고 다음날 오후 런던의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 들어갔다.

“어서 오시오. 샬롯데. 내가 당신 남편이 될 조지라오.”

샬롯데가 궁전에 도착했을 때 조지 3세와 다른 왕실 가족이 정문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샬롯데가 무릎을 굽혀 인사하자 조지 3세는 그녀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면서 밝은 미소로 인사했다. 뜻밖에 왕은 처음 만난 샬롯데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다. 그날 처음 보았지만 사랑에 빠진 것이었다.

조지 3세와 샬롯데는 그날 저녁 9시 세인트 제임스 궁전의 왕실 예배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에는 왕실 가족과 샬롯데의 큰오빠만 참석했다.

영국에서는 영어 발음에 따라 샬럿으로 불린 샬롯데는 남편 조지 3세와 금슬이 좋았다. 자식을 열다섯 명이나 낳았다. 아들이 9명이었고 딸은 6명이었다. 조지 3세는 아버지와는 달리 후궁을 두지 않았다. 샬럿은 조지 3세와의 약속대로 절대 정치에 관여하는 일이 없었다고 한다.

조지 3세 때 영국은 국내외적으로 큰 혼란에 휩싸였다. 미국독립전쟁이 일어났고, 프랑스대혁명도 발생했다. 나폴레옹이 영국을 침공하려다 트라팔가에서 넬슨 제독에게 대패한 것도 이 때였다.

샬럿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와 친했다. 나이는 샬럿이 열 살 이상 많았고 둘이 만난 적은 없었지만 서로 편지를 주고받으며 친해진 것이었다.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대혁명의 여파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몰리자 샬럿은 그녀를 구해내기 위해 주택을 한 채 구하기도 했다. 앙투아네트가 결국 처형당하자 샬럿은 프랑스대혁명의 여파가 영국 왕실에도 미칠지 모른다며 걱정했다.

불행하게도 샬럿은 시어머니와의 관계가 좋지 못했다.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싫어한 것은 외모 때문이었다. 샬럿의 생김새는 매우 독특했다. 피부가 까무잡잡해서 일부에서는 아프리카계가 아니냐고 의심할 정도였다. 귀족 부인들이 모이면 “못생겼다”며 킥킥거리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돌보는 시종, 시녀를 직접 골라서 보냈다. 며느리의 일거수일투족을 매일 보고하라는 뜻이었다. 며느리가 독일계 영국인을 궁으로 초청해 차를 마시기라도 하면 난리가 났다. 궁전 밖에서 사교 모임을 가지려 해도 시어머니는 좀체 허락을 하지 않았다.

“독일에서 도대체 무엇을 배운 것이냐? 가정교육은 제대로 받았는지 모르겠군. 그 얼굴을 하고 어디로 나가겠다는 거냐? 며느리라고 하나 있는 게 부끄러워서 어디 내놓을 수가 없군.”

시어머니의 잔소리와 간섭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샬럿은 시어머니에게 대들 수가 없었다. 나이가 어린 데다 조지 3세가 꾹 참아달라고 신신당부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스트레스는 점점 악화돼 치료를 받아야 할 지경이 됐다.

조지 3세는 사랑하는 왕비를 위해 대책을 세워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별장을 하나 만들자는 것이었다. 어머니를 떠나 국왕 부부만 살 수 있는 집을 짓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2만 1000파운드를 주고 다른 귀족이 사냥터 휴식처로 활용하던 집을 샀다. 현재 가치로 따지면 300만 파운드 정도라고 한다. 왕은 그곳의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궁전을 지었다.

“왕비, 이제 더 이상 어머니 눈치를 보지 말고 우리끼리 편안하게 삽시다. 당장 이곳으로 이사하도록 합시다.”

조지 3세와 샬럿은 결혼하고 1년 만인 1762년 새 궁전으로 이사했다. 사실 조시 3세에게는 왕비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것 외에 나름대로 다른 생각이 있었다. 그도 아주 엄격하고 딱딱한 궁전의 예절을 싫어했고, 비공식적이면서 자유로운 생활을 원했던 것이었다. 어머니가 있는 세인트 제임스 궁전에서 나오면 눈치를 덜 보고 상대적으로 마음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샬럿은 새로 옮겨간 궁전을 매우 좋아했다. 다른 무엇보다 시어머니가 없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 아이 15명 중 대부분도 여기서 태어났다. 사람들은 새 궁을 ‘여왕의 집’이라고 불렀다. 세월이 흐르면서 궁은 확장됐고,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바로 버킹엄 궁이었다. 런던 여행을 가면 반드시 둘러보는 바로 그곳이다.

버킹엄 궁전 부지는 원래 버킹엄 백작인 존 셰필드의 땅이었다. 버킹엄 궁전이라는 이름은 백작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었다. 버킹엄 궁전은 19세기에 대대적으로 확장됐으며, 1837년 빅토리아 여왕이 들어가 살면서 공식적인 국왕 거주지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