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에밀리!”
“예, 여왕전하.”
“이상해. 왜 내 속옷이 몇 개 안 보이는 거지?”
“무슨 말씀이신가요? 전하의 속옷이 없다뇨.”
“내가 좋아하는 색깔의 속옷 몇 개가 안 보이네.”
“"제가 다시 찾아볼게요.”
1838년 12월 빅토리아 여왕은 아침에 옷을 갈아입다 이상한 일을 겪었다. 늘 옷장의 그 자리에 넣어뒀던 속옷이 사라진 것이었다. 다른 옷들보다 더 좋아했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서 관리하던 옷이었다. 분명히 며칠 전에 시녀가 세탁을 했던 것을 기억하는데 입으려고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도둑이야!”
그때였다. 빅토리아 여왕과 시녀 에밀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 밖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저놈 잡아라. 궁전에 도둑이 들었다.”
“에밀리, 이게 무슨 소리냐? 궁전에 도둑이라니…. 네가 나가서 보고 오렴. 나는 너무 무서워서 문을 잠그고 있어야겠다.”
“예, 여왕전하.”
에밀리는 문을 굳게 닫고 방 밖으로 나갔다. 버킹엄 궁전 안에는 온통 난리가 났다. 하녀들과 시종들은 물론이고 경찰관들까지 허둥지둥하면서 소란을 떨었다. 한 소년이 이리 달리고 저리 달리며 궁전을 휘젓고 다녔다. 얼마나 빠른지 다른 사람들이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는 결국 궁전을 빠져나가고 말았다.
“저놈 잡아라. 놓치지 마라."
“어서 경찰에 연락해.”
버킹엄 궁전에서 빠져나간 도둑은 웨스트민스터 궁전으로 이어지는 세인트 제임스 거리 쪽으로 달아났다. 궁에서 따라 나간 시종들과 경찰관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하지만 도둑이 얼마나 잘 달리고 체력이 좋은지 시종들과 경찰관들은 이내 지치고 말았다. 도둑은 달아나다 뒤를 돌아보며 히죽 히죽 비웃기까지 했다.
“잡았다. 욘석.”
“앗. 놓아주세요. 난 잘못한 게 없어요.”
뒤처진 시종, 경찰관들을 놀리던 도둑은 마침 근처를 지나던 다른 젊은 경찰관에게 잡히고 말았다. 그는 도둑의 뒷덜미를 꼭 붙든 채 다른 시종과 경찰관들이 오기를 기다렸다. 그들은 범인을 버킹엄 궁전으로 데려갔다.
“누구야? 대영제국 여왕전하의 궁전에 침입한 녀석이?”
“아니, 이 녀석은...”
“어린애잖아.”
빅토리아 여왕은 경찰관들과 시종들이 데려온 범인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녀를 놀라게 하고 왕궁을 혼란에 빠뜨렸던 사람은 바로 어린 소년이었다. 하녀와 시종들은 아이를 둘러쌌다. 얼굴이 벌겋게 상기된 빅토리아 여왕이 천천히 아이에게 다가갔다.
“넌 누구니?”
“….”
“말 안할 거야? 그러면 경찰서에 보내 혼을 낼 거야.”
“용서해주세요. 잘못했어요.”
“누군지 어서 말해봐.”
“저는 웨스트민스터 출신의 에드워드 존스라고 해요.”
“몇 살이야?”
“열네 살이오.”
“뭐라고 열네 살?”
존스라고 신분을 밝힌 소년이 나이를 말하자 사람들은 기가 막힌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계속 질문을 던졌다.
“여기에는 도대체 어떻게 들어온 거냐?”
“어젯밤에 청소부인척 했더니 그냥 들어오게 해줬어요.”
“뭐라고. 그럼 밤새 내 방에 있었단 말이냐.”
“아뇨. 여왕님 방에만 있었던 건 아니고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마지막에 여왕님 방에 들어갔던 거예요.”
“그럼 네가 내 속옷을 훔쳤니?”
“네.”
빅토리아 여왕은 말문이 막혔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대영제국을 다스리는 왕의 궁전에 열네 살짜리 좀도둑이 설치고 다녀도 아무도 모르다니…. 여왕은 할 말이 없었다.
경찰관들은 존스를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그리고 간단하게 조사를 하고 며칠 뒤 간이법정에 세웠다. 하지만 판사는 너무 어리다는 이유로 존스를 무죄 석방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났다. 1840년 11월 30일. 빅토리아 여왕은 침대에 기대어 앉았다. 그녀 옆에서는 남편 앨버트 공이 아흐레 전에 태어난 첫 딸 빅토리아 공주를 안았다.
“앨버트. 빅토리아가 누굴 닮았나요?”
“내가 볼 땐 당신을 쏙 빼닮은 것 같아요.”
“그런데 갓 태어난 어린애들은 왜 이렇게 못 생겼을까요?”
“처음에는 그러다 자라면서 점점 예뻐진대요.”
“그런데 앨버트. 누가 우리를 숨어서 지켜보는 것 같지 않나요?”
“이 방에는 우리 셋뿐인데 누가 지켜보겠소.”
“어쨌든 저는 기분이 약간 찜찜해요.”
다음날 저녁. 빅토리아 여왕은 간호사 린제이를 불렀다. 아이를 낳은 뒤 여왕을 돌보기 위해 항상 여왕의 지척에서 대기하 간호사였다. 아주 상냥하고 밝은 미소가 보기 좋은 젊은 여성이었다. 여왕은 그의 미소를 보면 항상 기분이 상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린제이, 아기 옷을 내가 한 번 갈아입혀 보고 싶어요. 옆방에 옷장이 있거든요. 거기 가서 예쁜 아기 옷 한 벌만 갖다 줄래요?”
“예, 여왕님. 어떤 색깔의 옷을 가져올까요?”
“오늘은 우리 아기 기분이 좋은 것 같으니 밝은 색이 좋지 않을까?”
“정말 좋은 생각이십니다.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린제이는 여왕의 침실에서 나갔다. 옷장은 여왕의 침실 바로 옆방에 있었다. 원래는 침실 밖으로 나가지 않고도 드레싱룸으로 바로 갈 수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보안 문제로 문을 잠가 놓았기 때문에 드레싱룸으로 가려면 침실에서 나가야 했다.
린제이는 드레싱룸 문을 열었다. 실내는 어두웠다. 그녀는 방안의 곳곳에 세워진 초에 불을 붙였다. 갓 태어난 공주의 옷을 넣은 옷장은 한쪽 구석에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옷장으로 걸어갔다. 벌써 열흘 가까이 여왕의 산후 조리를 도았기 때문에 아기 옷이 어디에 있는지는 눈을 감고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흰색 옷을 하나 꺼내 곱게 품에 안았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문 쪽으로 돌렸다.
그때였다. 린제이는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소파 밑에서 무엇인가 움직이면서 부스럭하는 소리를 냈던 것이었다. 여왕의 드레싱룸에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다. 그녀는 도대체 무엇일까 하고 생각했다. 혹시 외부 침입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해 전에 어린 소년이 버킹엄 궁전에 들어와 난리를 피웠다는 신문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린제이는 모르는 척 하며 초를 끄고는 방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차분히 걸음을 옮겼다. 그녀는 여왕 방이 아니라 반대쪽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곳에는 여왕의 시종들이 대기하는 방이 있는 곳이었다.
“시종장 어르신. 여왕전하의 드레싱룸 소파 밑에 뭔가 있는 것 같아요?”
“무슨 말이에요? 린제이.”
“여왕전하께서 공주님 옷을 가져오라고 하셔서 갔더니 부스럭 하면서 인기척이 나더라고요.”
“그래요? 내가 살펴보리다.”
시종장은 다른 시종 몇몇을 앞세워 린제이와 함께 드레싱룸으로 갔다. 그는 문을 열고 불부터 켰다.
“소파 밑에 뭐가 있는지 가서 보도록 해라.”
“예, 시종장님.”
젊은 시종들은 우르르 소파로 달려갔다. 그리고는 소파를 들어 옆으로 옮겼다. 그때였다. 후다닥 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이 하나 뛰쳐나왔다. 시종 중의 하나가 재빨리 다리를 거는 바람에 그는 꽈당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이 녀석, 어딜 도망가려고.”
“시종장님. 여기 이상한 녀석이 숨어 있었네요.”
“여기로 데려 오거라. 얼굴을 한 번 보자.”
시종들은 소파 밑에서 붙잡은 사람의 양쪽 팔을 붙든 채 시종장에게 데려갔다. 그는 팔을 놓으라는 듯 몸부림을 쳤지만 건장한 시종들의 힘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아니, 이 녀석은….”
“시종장님, 아는 놈이에요.”
“이 녀석, 몇 년 전에도 한 번 궁전에 몰래 들어왔던 녀석이잖아!”"
“헤헤, 잘 계셨어요?”
소파 밑에 숨었던 사람은 바로 다름 아닌 에드워드 존스였다. 그는 그날 밤 버킹엄 궁전 벽을 타고 침입해 유리창 문을 열고 드레싱룸에 들어간 뒤 소파 밑에 숨어 있었다. 궁전 안의 사람들이 모두 잠들기를 기다렸던 것이었다.
시종장은 경찰을 불러 존스를 인계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존스는 그 전날, 그러니까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공이 어린 공주를 안고 있었을 때도 궁전에 몰래 침입했다는 것이었다. 여왕이 ‘누가 보는 것 같다’고 한 게 단순한 착각은 아니었다. 법원은 존스에게 3개월 징역형을 선고했다.
존스의 ‘범행’은 거기에 머물지 않았다. 이듬해인 1841년 3월 15일이었다.
“총리님. 큰일 났습니다.”
“왜? 또 무슨 일이야?”
“그게 저, 에드워드 존스가….”
“그 녀석이 왜? 다시 버킹엄 궁전에 침입했나?”
“예, 총리님.”
“뭐라고. 또 들어갔다고?”
영국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그날 아침 에드워드 존스가 버킹엄 궁전의 여왕 의자에 앉아 음식을 먹다 궁 경비원에게 붙잡혔던 것이었다. 3월 2일 교도소에서 출소했던 그는 보름도 되지 않아 다시 아무도 모르게 궁에 침입했다.
존스가 세 번째 궁에서 붙잡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국 국민 사이에서는 난리가 났다. 도대체 국왕이 사는 궁전의 치안이 평범한 서민 집보다 더 허술한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었다. 각 신문은 연일 기사를 쏟아내 허술한 버킹엄 궁전 치안에 대해 런던경시청과 근위대를 비난했다. 외부 인사가 저렇게 쉽게 들락날락할 수 있다면 테러리스트가 마음만 먹을 경우 여왕이나 가족에게 해코지를 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었다.
불똥은 영국 정부에 떨어졌다. 버킹엄 궁전 치안을 강화할 대책을 마련하고, 존스가 다시는 궁에 들어갈 생각을 못할 방책을 만들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총리 멜번 경은 긴급히 각의를 소집했다.
“여러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목이 열 개는 아니잖아요. 분노한 여왕전하와 국민들을 어떻게 달랠 수 있겠어요? 요새는 존스 생각만 하면 밤에 자다가도 벌떡 깬다니까. 도대체 대책을 내놔 봐요.”
“존스가 3개월 강제 노역형을 마치고 나오면 월급이 괜찮은 일자리를 구해주면 되지 않을까요?”
“지난번에 한 번 이야기를 했는데 그 녀석이 거부했잖아요.”
“그럼 강제로 외국에 보내버리면 어떨까요?”
“인권 유린이라고 반발이 심하지 않을까?”
“아무도 모르게 해야죠.”
“다른 방법이 없으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결국 정부는 존스를 몰래 납치해 브라질행 배에 태워버렸다. 하지만 존스는 먼 브라질에서 다시 영국으로 돌아와 버킹엄 궁전 주변을 배회하다 얼굴을 알아본 경찰에 붙잡혔다. 정부는 그를 다시 납치해 죄수 수송선에 태워버렸다. 그는 배에서 6년이나 갇혀 살았다.
존스는 끝내 영국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아무도 그를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 바람에 알코올 중독자에 강도로 전락했다. 정부는 잘됐다 싶어 그를 호주로 추방해버렸다. 존스는 그곳에서도 도망쳐 다시 귀국했다. 그러나 영국에는 그의 자리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스로 호주로 돌아가 버렸다. 그는 1893년 호주의 베언스데일에서 세상을 등졌다.
존스가 죽은 뒤 여러 작가들이 그의 버킹엄 궁전 침입 이야기를 다룬 소설을 쓰기도 했다. 1950년에는 20세기폭스사에서 존스의 이야기를 담은 ‘머드락(부랑아)’이라는 영화를 제작하기도 했다.
2.
1982년 7월 9일 아침 7시 15분 무렵. 버킹엄 궁전의 침대에서 곤히 잠들었던 엘리자베스 여왕은 이상한 소리에 잠을 깼다.
‘이른 아침부터 누구지?’
여왕은 졸린 눈을 겨우 떴다. 어두운 방안을 둘러보니 누군가 유리창을 깨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궁전에서 일하는 시종이 아닌 것만은 분명했다.
‘강도인가? 어떻게 들어왔을까?’
두려움을 느낀 여왕은 바로 침대 옆의 비상전화기를 들었다. 교환이 전화에 응답했다.
“여보세요. 나 여왕인데, 왕궁 경찰 좀 연결해줘요.”
하지만 여왕의 전화에 경찰은 응답하지 않았다. 벨이 여러 번이나 울렸지만 받는 사람은 없었다. 여왕은 다시 교환에게 전화를 걸었다.
“교환 아가씨. 나 여왕인데, 경찰이 전화를 안 받네. 다시 연결해줄래요.”
이번에도 경찰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경찰이 근무 교대를 하느라 다른 경찰이 오기 전에 잠시 자리를 비웠던 것이었다. 여왕의 불안감은 커져갔다.
‘어떻게 이런 일이…! 저 사람이 해코지를 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왕님. 주무시나요? 잠시 일어나셔서 저와 이야기를 조금만 나누면 안 될까요?”
여왕의 방에 침입한 사람은 남자였다. 약간 마른 얼굴에 머리카락은 곱슬곱슬했고, 앞머리는 약간 벗겨졌다. 유리창을 깨다 그랬는지 손에서는 피가 흘렀다. 대충 살펴보니 표정이 그렇게 나쁜 사람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여왕은 용기를 내기로 했다.
“자네는 누군가? 나를 해치러 온 게 아니라면 여기 와서 앉지.”
“여왕님. 저는 나쁜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경계하지 마세요. 그냥 뵙고 이야기를 좀 나눴으면 해서요.”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나? 경비 시스템이 있을 텐데….”
“담장이 좀 높기는 했지만 저한테 문제가 안 되죠. 담장 위에 있던 뾰족한 못과 가시철조망도 저를 막을 수는 없답니다.”
“경보 센서가 울리지 않던가?”
“여왕님 방 근처에 우표를 모아둔 방이 있더군요. 모르고 들어갔더니 경보벨이 울리더라고요. 직원이 한 명 오기에 숨어 있었더니 ‘오작동이네’ 하면서 그냥 가더군요.”
“엉망이군. 그 방에 있는 우표 값만 해도 2천만 달러가 넘는데….”
“글쎄 말입니다. 저도 몰래 들어왔지만, 이래서야 여왕님 안전을 어떻게 책임지나요?”
사내는 여왕의 침대 곁에 있는 조그마한 의자에 앉았다. 여왕은 침입자가 자신을 해치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그런데 이름은 어떻게 되지?”
“마이클 페이건이라고 합니다.”
“나이는?”
“올해 33세입니다.”
“무슨 일을 하는 젊은이인가?”
“원래 장식업계에서 일했지만 요즘은 실직 상태랍니다. 애가 넷인데, 집사람은 가난한 게 지긋지긋하다며 저를 버리고 떠나버렸답니다.”
“저런, 안 됐군. 왜 일자리를 구하지 그랬어?”
“요즘 경제가 엉망이에요.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네요. 페인트공으로도 일했지만 요즘은 날품팔이 자리도 없답니다.”
“미안하네. 국민을 챙겨야 할 여왕이 경제를 제대로 못 살려서….”
“아이고, 아닙니다. 여왕님. 그런 뜻이 아니에요. 저는 여왕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요. 여왕님을 탓하려던 게 아니에요.”
엘리자베스 여왕은 페이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틈틈이 침대 머리맡에 설치된 비상벨을 계속 눌렀다. 하지만 아무도 달려오지 않았다.
“여왕님. 그런데 제가 담배를 좀 피고 싶은데요. 혹시 갖고 계신 담배가 있으신가요?”
“나는 담배가 없는데, 갖고 오라고 할까?”
“그래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다시 벨을 눌렀다. 이번에는 하녀가 달려왔다. 이상한 남자가 여왕의 침대 옆에 앉은 모습을 본 하녀는 깜짝 놀랐다. 여왕은 하녀에게 담배를 가져오라고 시켰다. 하녀는 떨리는 마음으로 달려 나가 다른 방에서 담배를 가져갔다. 페이건은 느긋하게 불을 붙여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시종장님, 큰 일 났어요.”
“여왕전하가 아직 주무실 텐데 아침부터 어인 소란이냐?”
“여왕전하 방에 괴한이 침입했어요.”
“뭐라고. 그…그게 정말이냐?”
“제가 아침부터 왜 헛소리를 하겠어요. 어서 가 보세요.”
시종장 폴 와이브루는 하녀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서둘러 엘리자베스 여왕의 방으로 달려갔다. 닫혔어야 할 문은 활짝 열린 상태였다.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와이브루는 열린 문틈으로 머리를 약간 들이밀었다. 혹시 하녀가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엉터리로 보고했을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그는 방안 이곳저곳을 살폈다. 아무도 없었다.
‘어디에 괴한이 있단 말이지?’
시종장은 고개를 여왕의 침대 쪽으로 돌렸다. 평소 같으면 이런 짓을 했다가는 당장 잘릴 판이었다. 하지만 하녀가 워낙 급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여왕의 침대 옆에 한 남자가 앉아 여왕과 이야기를 나누는 게 아닌가! 시종장은 뒤늦게 노크를 했다.
“여…여왕전하. 괘…괜찮으신가요?”
“아, 폴. 어서 들어와요.”
시종장은 고개를 조아리며 여왕의 방으로 들어갔다. 여왕은 잠옷 차림으로 침대에 앉았다. 생각 밖으로 표정은 안정적이었다.
“폴, 인사하세요. 이 분은 페이건 씨예요. 나를 만나려고 저 유리창으로 넘어왔답니다.”
“안녕하세요. 시종장님. 처음 뵙겠습니다.”
“누…누구신지…?”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여왕님은 아무 이상이 없으십니다. 저는 그냥 이야기나 좀 나누려고….”
“폴. 페이건 씨가 손을 다쳤어요. 모시고 가서 치료를 좀 해드리세요.”
“여왕님, 저는 괜찮습니다. 피야 곧 멎겠죠.”
“그래도 내 방을 찾아온 손님이 손을 다쳐 피를 흘려서야 되겠나? 폴. 어서 모시고 가도록 하세요.”
“예, 여왕전하. 그렇게 하겠습니다. 페이건 씨. 이쪽으로 가시죠.”
“그럼, 여왕님. 손을 치료하고 다시 오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세요.”
“그러게. 자네랑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눠서 정말 좋았어.”
시종장은 페이건을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곧바로 경찰에 연락했다. 달려온 경찰관들의 얼굴에는 당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들은 시종장의 팔에서 페이건을 낚아채 냉큼 수갑을 채웠다. 그리고 바로 경찰서로 데리고 갔다.
며칠 뒤 영국의 주요 신문에는 ‘여왕 침실에 괴한 침입’이라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페이건은 무단침입 혐의 대신 절도(화이트 와인) 혐의로 기소됐다. 그러나 정신이상일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신 여섯 달 동안 정신병원 신세를 졌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이 더 밝혀졌다. 그가 버킹엄 궁전에 침입한 게 처음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이전에도 버킹엄 궁전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지붕의 열린 창문을 통해 궁전 안으로 침입해 30분 동안 치즈와 크래커 등을 먹으며 돌아다녔다고 했다. 경보 센서는 늘 고장이 나 있었다고 한다. 페이건은 역대 국왕의 초상화를 구경하고 왕좌에 앉아 쉬다가 고 다이애나 왕세자비가 첫 아들의 생일 때 줄 선물을 숨겨놓은 방에 들어가기도 했다. 그는 포도주를 반 병 마신 뒤 피곤해서 왕궁을 빠져나왔다며 웃었다.
페이건이 버킹엄 궁전에 침입할 때까지만 해도 영국 법률상 궁전 침입은 형법상 범죄가 아니었다. 고민하던 영국 정부는 2007년 버킹엄 궁전을 ‘보호 건물’로 지정했고, 이때부터 궁전 침입을 형사상 범죄로 간주해 중벌을 내릴 수 있게 했다.
버킹엄 궁전의 여왕 침실에서 엘리자베스 2세 여왕과 대화를 나눴던 페이건은 이후 각종 사소한 범죄에 휘말려 여러 차례 감옥을 들락거렸다. 그는 정말 여왕을 존경하고 사랑했던 것인지 2022년 여왕이 세상을 떠나자 교회에 가서 촛불을 켜놓고 며칠 동안 밤낮으로 눈물만 흘렸다고 전해진다.
Two years after entering Buckingham Palace, Fagan attacked a policeman at a café in Fishguard, Wales, and was given a three-month suspended sentence.[12] In 1983, Fagan recorded a cover version of the Sex Pistols song "God Save the Queen" with punk band the Bollock Brothers.[13] In 1997, he was imprisoned for four years after he, his wife and their 20-year-old son Arran were charged with conspiring to supply heroin.[1]
Fagan made an appearance in Channel 4's The Antics Roadshow,[14] an hour-long 2011 TV documentary directed by the artist Banksy and Jaimie D'Cruz charting the history of people behaving oddly in public.
After the death of the Queen on 8 September 2022, Fagan told reporters that he had lit a candle in her memory at a local church.[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