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엘리자베스 공주님. 어디가 편찮으시다는 건가요?”
“요즘 마음이 쇠약해져 기절을 자주 해요. 몸도 약해서 먼 길을 여행하기는 힘들어요.”
“공주님. 무슨 말씀인지 잘 알겠습니다. 심정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저희는 공주님의 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여왕님께 아뢸 수밖에 없습니다.”
“의사 선생님들. 제발 언니에게 제가 건강하다고 이야기하지 말아주세요. 저는 런던에 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답니다.”
“공주님, 저희들을 용서해주시기 바랍니다.”
엘리자베스 공주는 애절한 표정으로 의사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의사들은 이복언니인 메리 여왕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엘리자베스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무리한 부탁을 하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의사들이 돌아가는 뒷모습을 창밖으로 내다보았다. 마치 지옥 같았던 지난 한 달간의 일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1개월 전인 1554년 2월, 런던에서 프로테스탄트인 토머스 와이어트 경이 반란을 일으킨 게 일의 시작이었다. 그는 가톨릭을 신봉하는 메리 여왕을 몰아내고 같은 프로테스탄트인 엘리자베스를 여왕 자리에 앉히려 했다.
반란을 진압한 뒤 이 사실을 알게 된 메리 여왕은 핫필드에 살던 동생을 불러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려고 했다. 런던에 가면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다고 생각한 엘리자베스는 몸이 약해 가기 힘들다는 답을 보냈다. 여왕은 의사들을 보내 동생의 건강 상태를 살펴보라고 했다.
메리 여왕과 엘리자베스 공주는 친자매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헨리 8세로 같지만, 여왕의 어머니는 캐서린인 반면 엘리자베스의 어머니는 앤 불린이었다. 불린은 딸이 3세 때 간통죄로 몰려 참수형을 당했다.
메리는 이후 동생을 괴롭히면서 사소한 잘못도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에드워드 6세가 왕이 됐지만 곧 죽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로서는 불행하게도 메리가 여왕 자리에 앉았다. 언니의 학대는 더욱 심해졌다. 그러던 차에 엘리자베스를 왕으로 앉히려는 반란이 일어났으니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고 말았다.
의사들이 건강에 이상이 없다고 여왕에게 보고하는 바람에 엘리자베스는 런던에 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런던에 도착하자마자 화이트홀 궁전의 조사실로 끌려갔다. 그녀를 맞이한 사람은 윈체스터의 주교인 스티븐 가디너였다. 메리 여왕의 심복 중 심복으로 심문과 고문에 능한 사람이었다. 야심이 넘치고 교활하며, 잔인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었다.
“공주님, 솔직히 털어놓으세요. 그래야 언니인 국왕 전하의 자비를 조금이라도 구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주교님.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아무것도 모르는데 무엇을 실토하나요? 하나님께 맹세코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답니다.”
“증거가 다 있는데 부인만 한다고 될 일인가요? 여기 이 편지를 보세요. 와이어트 경이 공주님에게 보낸 겁니다. 읽어보세요. 뭐라고 돼 있나요? 메리 여왕을 몰아내고 공주님을 국왕 자리에 앉히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도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실 건가요? 다른 사람들은 혐의를 인정하고 죗값을 치르겠다고 하는데, 공주님만 고집을 피우네요.”
엘리자베스는 난감했다. 편지를 읽어보니 정말 가디너 주교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는 덫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다.
“주교님. 여왕 전하를 한 번 만나게 해주세요. 제 진심과 전하에 대한 충성심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전하께서 얼마나 바쁘신 분인데, 지금 공주님을 만나실 수 있겠어요? 게다가 그렇게 각별히 돌봐준 공주님에게 배신을 당한 전하께서 공주님을 보고 싶어 하시겠어요?”
가디너 주교는 메리 여왕에게 엘리자베스가 반란 공모 혐의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여왕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동생의 목을 당장 베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백성들의 눈이 있기 때문이었다. 어머니를 일찍 잃은 탓에 백성들로부터 ‘불쌍한 공주님’이라며 동정을 받는 동생을 사형시키면 좋은 소리를 듣기 힘들었다.
메리 여왕은 일단 엘리자베스를 런던 타워에 가두기로 했다. 그곳에 감금시켜 놓고 유죄를 명백하게 입증할 증거를 천천히 찾거나 자백을 받아내기로 했다. 런던 타워를 고른 데에는 다른 이유도 있었다. 바로 엘리자베스의 어머니 불린이었다. 런던 타워는 23년 전 불린이 참수당한 장소였다. 어머니가 최후를 맞았던 곳에 엘리자베스를 보내면 정신적 고통이 더 극심해져 모든 걸 포기하리라는 게 그녀의 계산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런던 타워에 가던 날 엄청난 비가 내렸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듯이 장대비가 쏟아져 내렸다. 그녀는 비를 온 몸으로 맞으며 템스 강을 건너는 작은 배에 올랐다. 강 위쪽으로 런던 타워가 희미하게 보였다. 사공은 무심한 표정으로 천천히 노를 저었다. 삐걱삐걱 하는 노 소리와 함께 배는 런던 타워를 향해 조금씩 올라갔다.
‘아, 저기가 어머니가 돌아가신 곳이구나. 나는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까? 저기에 수감된 사람들 중에서 목숨을 건진 경우는 거의 없다고 들었는데….’
배는 런던 타워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10여 명의 병사들이 도열한 채 엘리자베스의 도착을 기다렸다. 그녀는 무거운 몸으로 천천히 배에서 내렸다. 어머니가 오지 말라고 만류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공주님. 저쪽 문으로 돌아서 들어가셔야 합니다.”
“바로 여기 앞에 문이 있는데 왜 저기로 돌아가나요?”
“저 문의 이름은 ‘반역자의 문’입니다. 여왕 전하께서 공주님을 저 문으로 들어가게 하라고 특별히 지시하셨습니다.”
“저는 반역자가 아니에요. 죄를 인정한 적도 없어요. 저 문으로는 가지 않겠어요.”
“공주님, 저희들은 명령을 따를 뿐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저희들이 공주님 몸에 억지로 손을 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십시오.”
엘리자베스는 병사들의 난처한 표정을 봤다. 그녀는 할 수 없이 그들을 따라 반역자의 문으로 갔다. 문을 지나는 순간 다시 폭우가 쏟아졌다. 엘리자베스는 하늘을 쳐다보며 기도를 했다.
“오, 신이시여. 제 옆에는 친구도 하나 없답니다. 오직 외로운 몸뚱이뿐이에요. 기도를 드리오니 모든 사람이 알게 해 주십시오. 저는 반역자가 아니라는 것을….”
엘리자베스가 런던 타워에 갇힌 것을 영어로는 '타워에 보내지다(sent to the tower)'라고 합니다. 이 표현은 이후 '처벌받다', 또는 '불명예를 당하다'라는 뜻의 대명사가 됐다.
2.
엘리자베스는 벨 타워 1층의 조그마한 방에 갇혔다. 한쪽 벽에는 적당한 크기의 벽난로가 있었고, 유리창은 모두 3개인 곳이었다.
수감 생활 중 그녀의 유일한 취미는 산책이었다. 산책 도중 가끔 어린이들과 이야기도 나누곤 했다. 일부 병사들은 가족들과 함께 런던 타워 안에서 살기도 했는데 아이들도 몇 명 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그녀를 무척 따랐다. 그들과는 신분이 너무 다른 공주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게 정말 신기했던 것이었다.
“저는 공주님과 이야기를 나눈 추억을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
“아빠에게 들었는데, 밖의 사람들이 공주님을 풀어주라고 난리래요.”
“혹시 내가 풀려나더라도 너희들을 만나러 가끔 놀러올게. 그때 반갑게 맞아줘야 해.”
“네, 그럼요. 당연하죠. 히힛.”
한 꼬마가 저기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이마에는 땀이 흘러내렸다.
“제임스, 어디를 그렇게 열심히 다녀오니?”
“헤헤. 공주님. 이거요.”
“이건…. 꽃이잖아. 야, 정말 예쁘네. 어디서 꺾어온 거야?”
“성 밖 들판에 꽃이 피어있는 걸 며칠 전에 봤거든요. 아빠에게 부탁해서 밖에 나가 꺾어왔어요.”
“고마워. 제임스. 절대 잊을 수 없는 선물이 될 거야.”
엘리자베스는 제임스라 불린 꼬마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제임스의 양 볼은 순식간에 빨개졌다. 다른 아이들은 그 모습을 보고 모두 깔깔 웃었다.
모두가 그 장면에 웃음을 터뜨린 것은 아니었다. 엘리자베스를 심각한 표정으로 지켜보는 병사가 있었다. 그는 메리 여왕이 보낸 첩자였다. 첩자는 여왕에게 꼬마들의 이야기를 전달했다. 메리 여왕은 런던 타워 경비대장인 존 케이지에게 엘리자베스의 산책을 금지시키고 독방에 하루 종일 가둬놓으라고 명령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런던 타워의 새 대장으로 부임한 존 브릿지스 경에게 의회에서 문서가 하나 전해졌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엘리자베스의 사형을 의회가 승인했으니 어서 집행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그는 문서의 정체에 대해 의문을 품었다. 그는 문서를 꼼꼼히 살폈다.
“이건 가짜 문서야. 위조라고.”
“예, 위조라고요? 그럴 리가. 의회 직원이 직접 가져온 건데요.”
“잘 봐. 국왕의 서명이 없잖아. 그것이 없으면 문서의 효력은 없는 거야. 엘리자베스를 살해하려는 사람들이 가짜 문서를 보내 우리로 하여금 공주를 죽이게 하려는 거야. 우리가 거기에 말려들 수는 없지.”
브릿지스 경은 문서를 책상 서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부하를 의회에 보내 진상을 알아보도록 했다. 다음날 돌아온 부하가 전해준 내용은 브릿지스 경의 생각대로였다. 의회의 가톨릭파 의원들이 엘리자베스를 없애려고 엉터리 문서를 만들어 보낸 것이었다. 브릿지스 경이 그녀의 목숨을 구한 셈이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의 친구들은 목숨을 건지지 못했다. 와이어트 경은 물론이거니와 그녀와 친하게 지냈던 더들리 가문의 자녀들도 모두 목숨을 잃었다. 친구들이 차례로 비극을 당했다는 소식을 하녀들로부터 전해들은 엘리자베스의 가슴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3.
엘리자베스는 극적으로 런던 타워에서 빠져나갔다. 그녀가 석방된 것은 스페인의 펠리페 2세 국왕 덕분이었다. 그는 메리 여왕과 결혼하기로 한 사람이었는데, 뒤늦게 엘리자베스의 감금 소식을 전해 들었다. 그가 보낸 첩자들은 백성들의 감정이 매우 악화됐다고 보고했다. 펠리페는 여왕에게 동생을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여왕은 마지못해 동생을 풀어줬다. 대신 우드스톡의 저택에 연금시키기로 했다. 런던 타워에 가둔 지 두 달 만이었다.
엘리자베스가 런던 타워를 나와 우드스톡까지 가는 데에는 나흘이 걸렸다. 도중에 만난 사람들은 엘리자베스를 불쌍히 여겼다. 초췌한 그녀의 얼굴을 보고 “불쌍한 우리 공주님” 하며 눈물을 흘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도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꽃다발이나 사탕을 선물로 주기도 했다. 우드스톡에 가는 도중에 그녀의 건강이 매우 악화됐다.
“나는 오늘밤에 죽을 거야. 몸이 너무 안 좋은 것 같아. 마차를 타고 가지만 정말 힘이 드는구나.”
“공주님. 제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세요. 너무 무섭고 슬퍼요. 공주님은 꼭 살아서 좋은 날을 보셔야 해요.”
“그런 날이 오기는 하겠니? 괜히 나를 위로하려고 그러지 않아도 돼. 이미 나는 모든 것을 포기했으니까.”
엘리자베스는 우드스톡으로 가는 마차를 세우게 한 뒤 시녀들을 몇 명 불렀다. 그리고 같이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자고 했다. 건강이 너무 나빠 그날 밤을 넘기기 힘들 것 같다는 게 그녀의 눈물 섞인 하소연이었다. 시녀들은 공주의 팔을 붙잡고 엉엉 울기만 했다.
엘리자베스는 우여곡절 끝에 우드스톡에 도착했다. 그녀의 숙소는 수백 년 동안 왕족들이 사용했던 왕립장원이었다. 당시에는 방치된 지 오래 됐기 때문에 공주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집이었다. 그녀를 따라간 사람들은 대부분 돌아갔고, 시녀 일부만 남아 있었다. 메리 여왕이 그렇게 시켰기 때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글쓰기를 좋아했지만 종이가 없었다. 여왕이 종이를 주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대신 유리창을 긁어 글을 남겼다. 공주를 암살할 것이라는 소문은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녀의 건강은 나날이 악화되어 갔다.
그런데….
운명은 인간이 예상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게 동서고금의 진리였다. 1558년 메리 여왕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엘리자베스는 얼떨결에 왕위를 물려받아 엘리자베스 1세가 되었다. 동인도회사를 세우고 신대륙에 버지니아 식민지를 구축한 그 여왕이었다. 그녀의 재위 기간 중에 셰익스피어, 베이컨, 스펜서 같은 대문호들이 탄생하기도 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영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손꼽힌다. 그녀가 런던 타워에서 죽었더라면 ‘해가 지지 않는 나라’ 대영제국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