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물리우스는 정당한 계승권자인 형 누미토르를 강제로 쫓아내고 알바의 왕 자리를 빼앗은 뒤 모든 면에서 정의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누미토르의 가족이 후손을 낳지 못하게 책략을 꾸몄다. 한편으로는 그의 찬탈 행위에 처벌을 받을 게 두려웠던데다 다른 한편으로는 절대 권력을 빼앗기고 싶지 않는 욕망 때문이었다.
오랫동안 이런 생각에만 빠져 있던 아물리우스는 먼저 주변을 살피다 누미토르의 아들 아이게스투스가 사냥을 즐기는 취미가 있는 것을 알게 됐다. 그는 아주 은밀한 곳에 병사를 매복시킨 뒤 사냥하러 나오는 아이게스투스를 암살해 버렸다. 그는 이런 짓을 저질러 놓고는 알바 인에게는 헛소문을 퍼뜨렸다.
“나의 조카 아이게스투스는 강도에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지어낸 소문이 진실을 가릴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위험한 일이기는 하지만 용기를 내어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곳곳에 알렸다. 누미토르도 범죄의 진상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냉철한 이성으로 슬픔을 잠재운 그는 아무 것도 모르는 첫 했다. 분노를 조금 덜 위험한 미래로 미루려는 생각에서였다.
아물리우스는 일의 진실이 완벽히 가려졌다고 생각하고는 두 번째 계획에 착수했다. 그는 결혼할 연령에 이른 일리아, 일부에서는 레아 실비아라고 부르는 누미토르의 딸을 베스타의 여사제로 만들어버렸다. 이런 걱정 때문이었다.
‘일리아가 결혼하면 가족을 위해 복수를 할 자식을 낳을지도 몰라.’
베스타 여사제는 신성한 불을 지켜야 하며 공동체를 위해 여러 가지 의례를 거행해야 하기 때문에 신에게 불경스럽지 않은 순결한 몸을 지키기 위해 5년 이상(실제로는 30년 이상) 결혼을 할 수 없게 돼 있었다. 그는 형에게는 이런 핑계를 댔다.
“형 가족에게 명예와 품위를 제공하려는 거야. 형도 알다시피 알바에서 가장 뛰어난 가문의 딸이 베스타를 모시는 여사제가 되는 것은 일반적 관습이며 매우 명예로운 일이잖아?”
누미토르는 동생이 선의로 이런 일을 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번에도 분노를 참아야 했다. 자칫 실수했다가는 알바 인의 분노를 일으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4년 후 일리아는 마르스 신에게 바쳐진 숲을 걷고 있었다. 희생제례에 사용할 맑은 물을 길으러 가던 길이었다. 그녀는 신성한 구역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습격을 받았다. 어떤 사람은 평소 일리아를 짝사랑하던 사람이 이런 짓을 저질렀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은 아물리우스가 성욕을 채우는 동시에 조카를 망치기 위해 이런 일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그는 신분을 감추기 위해 아주 끔찍해 보이는 갑옷을 입고 있었다고 한다. 대부분 작가는 이 일과 관련해서 우화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리아를 덮친 것은 그 장소의 주인인 신이었다. 일리아가 일을 당하기 직전에 태양이 갑자기 사라지고, 어둠이 하늘을 뒤덮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발생했다. 신의 모습은 체구나 미모에서 인간보다 월등이 탁월했다. 신은 일리아를 위로하기 위해 슬퍼하지 말라고 했다. 이 결혼으로 우리 둘은 하나가 됐으며, 당신은 나중에 용기와 전쟁의 업적에서 누구에 뒤지지 않는 두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예언했다. 신은 말을 마친 뒤 구름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이런 우화와 관련해서 어떤 견해를 내놓아야 할지 고민하는 것은 여기에서 적절하지 않다. 신은 무오류라는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지 않는데도 책임을 신에게 전가하는 인간의 나약함을 보여주는 사례라며 그 작가들을 비난할 수도 있다. 아니면 우주의 모든 물질은 서로 섞여 있으며, 신과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악마가 때로는 인간과 결합하고 때로는 신과 결합해 전설적인 영웅을 낳는다고 생각하면서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받아들 수도 있다.
아물리우스는 사건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정확한 개요를 파악하기 위해 왜 일리아가 희생제례에 장기간 빠졌는지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는 평소 믿던 의사들을 일리아에게 계속 보냈다. 의사들은 이렇게 말했다.
“일리아의 질병은 다른 사람들이 모르게 비밀로 지켜져야 합니다.”
아물리우스는 이번에는 아내를 보내 일리아를 지켜보게 했다. 그의 아내는 여자의 느낌으로 비밀이라는 게 무엇인지 알아낸 뒤 남편에게 소상히 알렸다. 아물리우스는 출산일이 다가왔다는 사실을 알고는 비밀리에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려고 병사를 보내 철통같이 지키게 했다. 또 형을 원로원에 불러 이렇게 따졌다.
“아무도 모르던 일리아의 임신 소식을 형은 물론 원로원 의원들에게 알리고는 형 부부가 공모한 게 아니오? 죄인을 숨기지 말고 내놓으시오.”
누미토르는 처음 듣는 이야기라며 깜짝 놀라는 척 했다.
“저는 모든 주장에 결백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시간을 주십시오.”
힘들게 결론을 유보시킨 그는 아내로부터 딸에게 일어난 일을 상세히 들었다. 딸은 머니에게는 처음부터 솔직히 털어놓았던 것이었다. 누미토르는 다시 원로원에 들어가 대답했다.
“딸을 임신시킨 것은 사람이 아니라 마르스 신이었다고 합니다. 신은 딸에게서 쌍둥이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딸의 출산 결과가 신이 이야기한 대로라면 저의 말을 믿어야 합니다. 딸이 출산할 시간이 다가왔기 때문에 제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입니다. 원로원이 딸을 돌보고 있는 여인을 불러 조사를 해보십시오. 저는 이미 모든 요구사항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원로원 의원 대부분은 누미토르의 말을 납득했다. 하지만 아물리우스는 형의 주장을 믿을 수 없다고 밀어 붙이면서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카를 파멸시키려고 했다.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 때 일리아의 출산을 지켜보라고 보낸 병사가 달려왔다.
“쌍둥이가 태어났습니다.”
누미토르는 방금 했던 주장을 다시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이 일은 신의 뜻으로 벌어진 것입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딸에게 어떤 불법적 행동도 해서는 안 됩니다.”
아물리우스는 형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일리아의 출산과 관련해 인간의 속임수가 있거나, 여인들이 병사들에게 엉뚱한 아기를 여인들이 보여주었을 수도 있소.”
원로원 의원들은 왕의 생각은 분노 때문에 생긴 것이라고 보고는 투표를 실시해 법이 지켜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법에 따르면 남자를 알게 된 베스탈은 작대기로 두들겨 맞은 뒤 사형을 당하고, 아기는 강물에 던져버려야 했다. 오늘날에는 성스러운 법에 따르면 그런 잘못을 저지른 여 사제는 산채로 묻는다고 한다.
이 점과 관련해 대다수 역사학자는 비슷하거나 거의 차이가 없는 견해를 내놓는다. 일부는 전설에 따라, 다른 일부는 좀 더 타당한 논리에 따라 견해를 밝힌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점에서는 다른 이야기를 한다.
일부 역사학자는 일리아가 즉시 사형 당했다고 주장한다. 반면 비밀감옥에 갇혔다고 주장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일리아는 감옥에서 비밀리에 사형 당했다고 사람들은 믿기도 했다. 일리아가 감옥에 갇혔다고 주장하는 학자는 이렇게 말한다.
“아물리우스의 딸은 아버지에게 사촌을 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의 딸은 일리아와 동갑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 둘은 서로 친자매처럼 사이좋게 지냈다. 아물리우스에게는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딸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일리아의 목숨을 살려주고 비밀감옥에 가뒀다. 나중에 아물리우스가 죽었을 때 일리아는 자유를 얻었다.”
일리아가 낳은 아기와 관련해서 픽토르라고 불리는 퀸투스 파비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루키우스 킨키우스, 포르키우스 카토, 칼푸르니우스 피소 등 많은 역사학자는 그의 견해를 받아들인다.
‘아물리우스의 지시에 따라 시종들은 아기를 궤에 넣어 강으로 데리고 갔다. 알바롱가에서 5㎞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궤를 강물에 띄워 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들이 가까이 갔을 때 연일 내린 비로 크게 불어난 강물이 둑을 넘어 인근 평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들은 팔라티노 언덕에서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가 언덕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서 궤를 물 위에 던져버렸다. 이미 테베레 강물은 팔라티노 언덕 기슭까지 넘쳐 있었다. 궤는 잠시 물 위를 떠다녔다. 물이 조금씩 빠지는 바람에 궤는 돌에 부딪혀 뒤집어졌고, 그 속에 들어 있던 쌍둥이는 밖으로 빠져나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쌍둥이는 진흙탕을 기어 다니면서 놀았다.
이때 막 새끼를 낳은 암늑대 한 마리가 다가왔다. 늑대의 젖은 우유로 가득 차 불어 있었다. 늑대는 두 아기에게 젖을 물려 빨게 했다. 그리고 혀로 쌍둥이 몸에 묻은 진흙을 모두 닦아주었다.
멀리서 목동들이 가축을 몰고 목초지로 가고 있었다. 이들 중 하나가 쌍둥이를 돌보는 늑대를 보게 됐다. 그는 처음에는 깜짝 놀라 말도 못할 정도였다. 지금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동료들에게 방금 강변에서 본 모습을 설명했다. 다들 믿으려 하지 앟았다. 그는 그들을 데리고 가 직접 그 광경을 보게 했다.
목동들은 실제로 암늑대가 두 아기를 돌보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됐다. 마치 늑대는 쌍둥이를 새끼로 생각하는 것 같았고, 쌍둥이는 늑대를 엄마로 여기며 꼭 매달려 있었다. 목동들은 초자연적인 현상을 보고 있다면서 무리를 지어 소리를 지르며 달려갔다. 늑대를 놀라게 해 쫓아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늑대는 다가오는 사람들을 보고 놀라 달아나기는커녕 마치 길들인 개처럼 천천히 쌍둥이에게서 떨어지더니 천천히 언덕으로 사라졌다. 어중이떠중이 같은 목동들에게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팔라티노 언덕에 신성한 장소가 한 곳 있었다. 짙은 숲이 마치 아치처럼 서 있는 곳이었다. 샘물이 솟아나는 움푹한 동굴도 있었다. 숲은 판 신에게 봉헌됐다고 알려져 있는 곳이었다. 그곳에는 판 신에게 바치는 제단도 있었다. 늑대는 바로 이곳에 숨어 살고 있었다. 숲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샘이 흘러나오는 동굴은 아직도 보인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로 이어지는 길의 반대쪽 언덕에 있는 곳이다.
이 근처에는 늑대의 등장을 기념하는 동상이 세워져 있는 성소가 있다. 고대의 장인이 청동으로 만든 이 동상은 두 아이에게 젖을 물린 암늑대를 형상화한 것이다. 동상이 서 있는 곳은 에반드로스와 함께 이곳에 정착한 아르카디아 인에게는 성스러운 장소였다.
늑대가 사라지자 목동들은 쌍둥이를 들어올렸다. 그들은 신이 쌍둥이를 살렸다고 믿으면서 두 아기를 키우기를 갈망했다. 그들 중에 왕의 돼지 떼를 지키는 관리가 있었다. 아주 강직한 성격의 파우스툴루스였다.
그는 일리아의 출산 소식이 공개적으로 알려졌을 무렵 일 때문에 알바롱가에 가 있었다. 이후 쌍둥이가 강에 버려졌을 때 그는 우연히 팔라티노 언덕으로 가는 도중이었고, 쌍둥이를 데리고 가는 목동들을 만났다. 파우스툴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두 아기를 나에게 넘겨주게.”
목동들로부터 동의를 구한 뒤 그는 쌍둥이를 집으로 데리고 갔다. 마침 파우스툴루스의 아내는 안타깝게도 사산을 해 슬퍼하고 있었다. 그는 아내에게 쌍둥이를 건네주면서 그들의 운명을 이야기해주었다.
쌍둥이가 조금씩 자라자 파우스툴루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성인이 된 쌍둥이는 행동의 존엄성이나 심성의 품격에서 돼지나 소를 치는 목동과 비교할 수도 없는 탁월성을 보여주었다. 왕족이나 신의 후손에게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로마 인은 아직도 여러 가지 노래로 그들의 이야기를 칭송하고 있다.
쌍둥이는 목동의 삶을 살았다. 나무 작대기와 갈대로 팔라티노 언덕에 지은 오두막에 거주하면서 직접 막일을 하며 살았다. 키르쿠스 막시무스를 바라보는 팔라티노 언덕의 측면에는 지금도 로물루스의 오두막으로 불리는 집이 남아 있다. 오두막은 이런 문제를 관리하는 사람들에 의해 신성하게 보존되고 있다. 집에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은 덕에 더욱 우아하게 보인다. 만약 폭풍우나 세월 때문에 집이 손상되면 바로 부서진 부분을 가능한 한 원래 형태로 복원한다.
로물루스와 레무스가 열여덟 살이 됐을 때 목초지를 둘러싸고 누미토르의 목동들과 갈등을 빚게 됐다. 그들은 원래 팔라티노 언덕 인근에 있는 아벤티노 언덕을 이용했다. 양측은 서로를 비난했다.
“너희들은 이용 권리가 없는 목초지에서 가축들에게 풀을 뜯게 한 거야.”
“모든 목동에게 공통으로 사용권이 있는 지역을 너희가 독점하려는 거구나.”
이렇게 싸우는 도중에 가끔 주먹을 주고받거나 때로는 무기를 사용하기도 했다. 어느 날 누미토르의 목동들은 로물루스 형제의 무리 때문에 큰 상처를 입고, 여럿은 목숨을 잃은 뒤에 분쟁을 빚고 있던 지역에서 강제로 쫓겨나게 됐다.
이들은 로물루스 형제 무리를 상대로 속임수를 쓰기로 했다. 협곡에 일부를 매복시킨 뒤 나머지로 하여금 밤에 상대 무리를 기습 공격하기로 한 것이었다.
그때 로물루스는 마을의 어르신들과 함께 마을의 오랜 관습대로 희생제례를 치르기 위해 카이니나라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반면 레무스는 적의 공격 이야기를 듣고는 서둘러 무장해 마을 사람 몇몇만 데리고는 적에 맞서 싸우러 달려갔다.
누미토르의 목동들은 레무스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매복이 숨어 있는 곳으로 유인하기 위해 달아나는 척했다. 그들의 술책을 모르고 있던 레무스는 한참동안이나 뒤쫓아 가다 매복이 있는 곳을 지나게 됐다.
그때 숨어 있던 누미토르의 목동들이 갑자기 일어나고, 달아나던 사람들도 등을 돌려 레무스를 공격했다. 그들은 레무스와 동료들을 포위한 뒤 돌을 집어던지면서 위협해 포로로 붙잡아 끌고 갔다. 주인으로부터 젊은이들을 죽이지 말고 생포해서 데려오라는 명령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해서 레무스는 알바롱가로 끌려가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