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약속 안 지킨 양치기의 곤욕

by leo



체코 어느 지방에 바차라는 목동이 살았습니다. 그는 여름에는 양떼를 몰고 산에 올라가 지냈습니다. 그곳에는 그가 관리하는 작은 오두막과 목초지가 있었습니다.


어느 해 여름의 일이었습니다. 바차는 평소처럼 양을 풀어놓고 나무 그늘 아래 누워 피리를 불었습니다. 그는 우연히 누워 있는 나무 인근의 절벽을 보게 됐습니다.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뱀 수백 마리가 천천히 절벽으로 기어가고 있었습니다.


뱀들은 절벽 가장자리에 이르자 그곳에서 자라고 있던 나무에서 잎을 하나씩 뜯어 입에 물었습니다. 뱀들이 잎을 바위에 대자 바위가 쩍 하면서 갈라졌습니다. 뱀들은 갈라진 바위 사이로 하나씩 사라졌습니다. 바차는 깜짝 놀라며 눈을 깜짝거렸습니다.


“아니! 저게 무슨 일이야? 바위가 갈라지다니! 뱀들이 어디로 간 거지? 저기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직접 살펴봐야겠어. 내가 잎을 갖다 대도 바위가 갈라질지 모르잖아.”


바차는 양치기 개 더니에게 양을 맡겨놓고 절벽으로 갔습니다. 그는 신비의 나무를 꼼꼼히 살폈습니다. 이전에 본 적이 없는 나무였습니다. 그는 나뭇잎을 뜯어 뱀들처럼 절벽에 갖다 댔습니다. 그러자 곧바로 바위가 벌어졌습니다.


바차는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벽이 금과 은,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빛나고 있는 큰 동굴이 나타났습니다. 한가운데에는 황금 식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 위에 뱀들의 왕인 초대형 뱀이 똬리를 틀고 앉아 잠들어 있었습니다. 다른 뱀들은 식탁 주변 바닥에 앉아 자고 있었습니다. 바차는 뱀들을 건드리지 않고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정말 놀랍고 신기한 일이군. 어쨌든 자러 갈 시간이니 돌아가야지.’


하지만 돌아가는 건 쉽지 않았습니다. 바차가 아무리 힘을 써도 바위는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할 수 없이 뱀들 사이에 꼼짝없이 갇히게 됐습니다.


‘할 수 없군. 여기서 오늘 밤을 보내는 수밖에.’


바차는 망토를 두르고는 바닥에 누워 그대로 잠들었습니다. 한참 뒤 그는 쉭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습니다. 그는 일어나 앉아 눈을 비볐습니다. 뱀의 왕은 여전히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지만 잠에서 깬 상태였습니다. 그는 아주 느리게 똬리를 풀고 움직였습니다. 다른 뱀들도 그를 따라갔습니다.


“이제 시간이 된 건가? 이제 시간이 된 거로군.”


뱀의 왕은 머리를 들고는 천천히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이제 시간이 된 거야.”


뱀의 왕은 긴 몸을 쭉 펼치고는 황금식탁에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동굴 벽을 따라 기어갔습니다. 다른 뱀들은 그 뒤를 따라갔습니다. 바차도 그들을 따라갔습니다.


‘이제 나갈 수 있겠군.’


뱀의 왕은 혀로 바위 벽을 핥았습니다. 그러자 바위가 열렸습니다. 그는 그 사이로 빠져나갔습니다. 다른 뱀들도 하나씩 차례대로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지막 뱀마저 동굴에서 나가자 바차도 뒤를 따라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바위가 그의 눈앞에서 쿵 하고는 닫혀버렸습니다. 그는 그대로 안에 갇혀버렸습니다. 뱀의 왕이 아주 깊은 목소리로 비웃었습니다.


“어리석은 인간아! 너는 나올 수 없어. 너는 그곳에 머물러 있어야 해.”


“안 돼요. 나는 여기서 나가야 해요. 여기서 내가 무슨 일을 해요? 영원히 잠들 수는 없어요. 돌아가서 양들도 돌보고 집에서 기다리는 아내에게 돌아가야 해요. 내가 늦었다고 잔소리를 할 거란 말이에요.”


바차는 애원하고 또 애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은 뱀의 왕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아, 그곳에서 꺼내주지. 대신 3가지 맹세를 해야 해. 어떻게 여기 들어왔는지 아무에게도 말해서는 안 돼.”


바차는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는 세 번이나 맹세를 했습니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여기 어떻게 들어왔는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겠습니다.”


뱀의 왕은 바차의 맹세를 들은 뒤 한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자네에게 경고하겠네. 만약 맹세를 어기면 끔찍한 운명이 자네를 찾아갈 거야.”


바차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둘러 입구로 빠져나갔습니다. 그는 동굴에서 나가자마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게 변해 있었습니다. 그가 동굴에 들어갈 때는 가을이었는데 지금은 봄이었던 것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이지? 아! 나는 정말 불행한 사람이로구나! 내가 겨울잠을 잤던 것인가? 양떼는 어디 갔을까? 아내는 어떻게 됐을까? 그녀가 뭐라고 할까?’


바차는 서둘러 집으로 달려갔습니다. 아내는 집 안에서 바쁘게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열림 문의 틈으로 아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뭐라고 말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몰래 양들을 가둔 우리에 갔습니다. 그곳에서 무슨 말을 할지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바차가 양 우리에 머물러 있는 동안 옷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신사가 오두막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남편이 어디 가셨나요?”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남편은 지난해 가을 양을 치러 언덕에 갔는데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어요. 개가 양들을 몰고 집에 돌아왔답니다. 그날부터 남편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어요. 늑대가 잡아먹은 건지, 마녀가 잡아간 건지. 저는 혼자 남겨져 불쌍한 과부가 돼 버렸어요.”


아내의 울음소리는 너무 구슬퍼서 바차는 저도 모르게 양 우리에서 뛰어나갔습니다.


“여보, 울지 말아요. 내가 돌아왔어요. 죽지 않고 살아왔어요. 늑대가 나를 잡아먹은 것도 아니고, 마녀가 잡아간 것도 아니라오. 나는 양 우리에 숨어 있었어요. 겨울 내내 그곳에서 잠을 잤답니다.”


갑자기 나타난 남편을 보고 놀란 아내는 울음을 멈췄습니다. 그녀의 슬픔은 처음에는 놀라움으로, 그리고 나중에는 분노로 변했습니다.


“나쁜 사람 같으니라고! 아무 것도 안 하면서 빵만 축내는 게으름뱅이 같으니! 양을 돌보기는커녕 뱀처럼 양 우리에 숨어서 겨울을 보냈다고? 대단한 변명이군요. 내가 그걸 믿을 정도로 바보로 보이나요? 도대체 그동안 어디에서 무얼 하며 지냈는지 사실대로 말해요?”


이때 낯선 신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습니다.


“자! 자! 흥분해봐야 좋을 게 뭐가 있나요? 남편이 양 우리에서 겨울을 보냈을 리는 없지요. 문제는 어디에 있었느냐 하는 거네요. 자, 여기 돈이 조금 있어요. 이걸 갖고 오두막에 가도록 하세요. 제가 남편과 이야기를 해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알아보도록 하지요.”


아내는 곧바로 가지 않고 남편에서 한참이나 잔소리를 퍼부었습니다. 그리고 돈을 집어들고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아내가 나가자마자 낯선 신사는 아주 끔찍해 보이는 마법사로 변했습니다. 이마에는 눈이 세 개 달린 사람이었습니다. 바차는 두려움에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런! 당신은 산에 산다는 그 마법사로군요. 아! 이제 내게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려나!”


바차는 어릴 때부터 마법사에 대한 끔찍한 이야기를 자주 들었습니다. 그가 사람이 됐다 양이 됐다 하면서 모습을 어떻게 바꾸는지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마법사는 바차를 보며 낄낄 웃었습니다.


“아! 내가 누군지를 아는군. 자, 그렇다면 더 이상 거짓말하지 말게. 말해보게. 지난 겨울에 어디 있었나?”


바차는 뱀 왕에게 했던 세 번의 맹세를 기억했습니다. 그 걸 깰 수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마법사는 두 번 세 번 같은 질문을 하면서 더 무서운 모습으로 변했습니다. 결국 바차는 두려움에 떨면서 모든 걸 털어놓았습니다.


“이제 나와 함께 가세. 그 절벽에 가서 마법의 나무를 보여주게나.”


바차는 그 말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법사를 절벽으로 데리고 가서 마법의 나무에서 잎을 하나 뜯었습니다.


“바위를 열게.”


바차는 마법사의 지시대로 잎을 절벽에 가져다 댔습니다. 순식간에 바위가 쩍 하고 갈라졌습니다.


“함께 들어가지.”


마법사가 그의 손을 끌어당겼습니다. 바차는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마법사는 옷소매에서 책은 한 권 꺼내더니 주문을 외었습니다. 감자기 땅이 흔들리고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렸습니다. 그리고 엄청난 소리가 나더니 괴물 같은 용 한 마리가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용은 뱀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7년 동안 그곳에서 살다가 마침내 하늘을 나는 용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의 큰 입에서는 화염과 연기가 나왔습니다. 용은 긴 꼬리를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며 숲 사이를 날아다녔습니다. 마법사는 책을 보고 다시 주문을 외더니 바차에게 굴레를 하나 건넸습니다.


“이 굴레를 용의 목 주변으로 던지게.”


바차는 굴레를 잡았지만 너무 무서워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마법사는 다시 소리를 질렀습니다. 바차는 할 수 없이 용을 향해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그는 팔을 들어 올려 용의 머리 쪽을 향해 굴레를 던졌습니다.


용은 갑자기 방향을 바꿔 바차 쪽으로 날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를 들어 올리더니 등에 태웠습니다. 용은 하늘 높이 날아갔습니다. 하늘은 너무 어두워서 용의 눈과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화염이 길을 비추었습니다.


용은 거칠게 날아갔습니다. 엄청나게 화를 내면서 펄펄 끓는 물을 쏟아냈습니다. 고함을 질렀고 험악한 콧소리도 내뿜었습니다. 바차는 그의 등에 꼭 매달린 채 기절해버렸습니다. 마침내 용의 분노는 식었습니다. 그는 끓는 물을 내뿜지 않았습니다. 화염도 내뿜지 않았습니다. 콧소리는 이전보다 덜 거칠었습니다. 바차는 덜덜 떨면서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용이 땅속으로 들어가서 저를 파묻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용이 맹세를 어긴 바차에게 벌을 다 준 건 아니었습니다. 그는 하늘로 올라갔습니다. 마치 큰 산이 작은 개미 언덕처럼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의 별 사이로 사라져버렸습니다. 한참 뒤에야 용은 비행을 멈추고 하늘 한가운데 멈췄습니다. 바차의 처지에서는 움직이는 것보다 가만히 서 있는 게 더 무서웠습니다.


‘아!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땅으로 뛰어내리면 그대로 죽어버릴 거야. 그렇다고 하늘 끝까지 날아갈 수도 없잖아? 아! 용이시여. 자비를 베푸소서. 다시 땅으로 내려가고 저를 내려주세요. 다시는 당신을 배신하지 않겠다고 신 앞에 맹세할게요.’


바차의 간절한 기도는 가만히 있는 돌도 움직일 정도로 간절했습니다. 하지만 용에게는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전히 분노하면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은 오히려 더 딱딱해졌습니다. 그때 바차는 하늘에서 들리는 종다리의 달콤한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종다리야! 사랑스러운 종다리야! 너는 하나님이 사랑하는 새란다. 제발 나를 도와주렴. 하늘로 날아가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목동 바차가 용의 등에 매달려 하늘에 붙잡혀 있다고 전해주렴. 그분에게 ‘바차는 늘 하느님을 찬양한다’고 이야기해주렴.”


종다리는 하늘 높이 날아갔습니다. 그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에게 불쌍한 목동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자작나무 잎을 여러 장 뜯었습니다. 그리고 황금색 글씨를 써내려갔습니다. 종다리는 잎을 부리로 물고 날아가 용의 머리에 떨어뜨렸습니다. 용은 갑자기 땅으로 내려갔습니다. 얼마나 빨랐던지 바차는 정신을 잃고 말았습니다.


바차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오두막 앞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용의 절벽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것은 모두 똑같았습니다. 시간은 늦은 오후였습니다. 그가 아끼는 개 더니가 양들을 몰고 집에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가 서 있는 게 보였습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더니가 짖는 소리를 듣는 게 이렇게 좋은 줄 몰랐구나. 저기 아내도 보이고. 하느님, 제 아내가 절대 제게 잔소리를 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하지만 설사 그럴지라도 아내를 다시 보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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