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성 미훌카 탑의 연금술 실험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루돌프 2세는 마른 침을 꼴깍 삼키고 실험 비커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황제 뒤에서는 호기심이 잔뜩 담긴 눈을 둥그렇게 뜬 신하들이 목을 빼꼼히 내밀었다. 1604년 봄 성 비타(비투스) 대성당 바로 앞의 둥근 미훌카 탑에서는 놀라운 실험이 진행됐다. 수은을 끓여 금을 만드는 연금술 실험이었다. 실험을 진행한 사람은 폴란드 출신의 연금술사 미하우 센지보이였다.
“폐하, 이제 끓는 수은에 철학자의 돌가루를 넣겠습니다.”
센지보이는 루돌프 2세에게 작은 봉지에 든 빨간 가루를 보여 주었다. 루돌프 2세는 그에게서 봉지를 받아 가루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손가락에 가루를 묻혀 냄새를 맡아 보고 입으로 맛도 보았다. 가루에서는 아무런 냄새도,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센지보이는 황제에게서 봉지를 돌려받아 작은 숟가락으로 빨간 가루를 약간 떴다. 그리고 수은이 끓는 비커에 가루를 천천히 부었다. 가루가 섞인 수은은 보글보글 끓더니 빨갛게 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황제를 포함해 모든 사람은 입을 굳게 다문 채 비커 안만 쳐다보았다. 잠시 후 충격적인 일이 벌어졌다. 은빛인 수은이 처음에는 빨갛게 변하더니 나중에는 주황색으로, 마지막에는 황금색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루돌프 2세는 너무 놀라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비커 앞으로 다가갔다.
“지…지금, 그…금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냐?”
“그런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될 것입니다.”
센지보이는 수은이 완벽한 황금색으로 변할 때까지 조금 더 기다렸다. 불과 1~2분 뒤 비커 안에서는 수은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황금색 액체만 남았다. 그는 액체를 식혀 굳히기 위해 불을 껐다. 약 10분 뒤 액체는 조금씩 굳어 덩어리지기 시작했다. 1시간 뒤에는 완벽히 고체로 탈바꿈했다. 센지보이는 두꺼운 천으로 만든 장갑을 끼고 아직 뜨거운 고체를 끄집어 내 루돌프 2세에게 건네주었다. 그의 입에서는 밝은 웃음이 퍼졌다.
“폐하, 연금술로 완성한 황금입니다.”
루돌프 2세는 센지보이에게서 고체를 받아 만져보았다. 아직 약간 말랑했지만 거의 굳은 상태였고, 색깔은 완벽한 황금색이었다. 그는 옆의 금 세공사에게 센지보이의 금을 건네주었다.
“확인해 보거라. 정말 금이 맞는지.”
프라하 성 황금소로에 사는 금 세공사는 루돌프 2세에게서 받은 금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입으로 깨물어 보기도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노래졌다.
“폐하, 100% 순금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입니다.”
금 세공사에게서 순금이라는 말을 들은 루돌프 2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는 금을 든 오른손을 위로 번쩍 들어올렸다. 얼굴에는 약간 발그스레한 화색이 감돌았다. 입가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이것이 금이란 말이지? 연금술로 금을 만들 수 있다는 증거란 말이지?”
루돌프 2세는 뒤에 선 신하들을 돌아보았다.
“다들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겠지? 센지보이가 수은을 황금으로 만드는 장면을. 내가 늘 강조했던 연금술이 엉터리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걸 이제는 알 수 있겠지? 핫핫!”
루돌프 2세는 밝은 표정으로 웃는 센지보이를 깊숙이 포옹했다. 그리고 그의 등을 거칠게 두들겨 주었다. 센지보이는 감히 황제의 등에 손을 댈 생각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서 있을 뿐이었다. 루돌프 2세는 포옹을 풀고 센지보이를 쳐다보았다.
“황금을 대량생산할 수 있겠느냐?”
“황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성분은 철학자의 돌입니다. 아까 넣은 빨간 가루입니다. 철학자의 돌을 대량생산할 수 있다면 황금도 대량생산할 수 있습니다.”
루돌프 2세는 센지보이의 손에 들린 봉지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옆에 선 신하에게 큰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센지보이가 만든 이 금으로 메달을 만들어라. 거기에 라틴어로 글자를 새겨라. ‘센지보이가 이룬 것을 다른 사람도 시도해 보라.’ 메달을 보관함에 넣어 왕궁 연회장 한가운데에 비치해 두어라.”
센지보이는 폴란드의 가난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연금술사였다. 그는 라이프치히, 빈, 알트도르프의 대학교에서 화학을 배웠고 나중에는 연금술을 연구했다. 평생 연구한 결과를 묶어 <새로운 화학의 빛>이라는 연금술, 화학 관련 서적을 발간했는데, 후세대 과학자인 아이삭 뉴튼에게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폴란드에서 연금술로 명성을 얻은 센지보이는 1590년 무렵 프라하에 갔다. 연금술에 돈을 아끼지 않는 루돌프 2세를 만나 지원을 받겠다는 게 목적이었다. 그는 황제를 만나기 위해 기다리던 도중 프라하에서 연금술에 관심을 가진 여러 귀족을 만나 큰 도움을 받았다. 그중 한 명은 프라하에서 손꼽히는 부자인 루드비크 코랄렉이었다.
코랄렉은 하벨 시장 인근인 우헬니 트르흐(거리)에 있던 ‘깃털 세 개의 집’이라는 뜻을 가진 ‘우 트리 페르’라는 저택을 연금술 실험실로 쓰라면서 센지보이에게 빌려주었다. 지금도 우헬니 트르흐에는 그의 집이 남아 있다.
센지보이는 ‘우 트리 페르’에서 여러 가지 연금술 실험을 진행했다. 못과 옷걸이를 뜨거운 숯덩이에 올린 뒤 특수약물을 넣어 은으로 바꿔 코랄렉을 놀라게 했다. 여러 가지 약을 이용해 코랄렉 가족의 병을 치료하기도 했다.
전설에 따르면 센지보이는 루돌프 2세가 지켜보는 가운데 수은을 금으로 바꾸는 실험에 성공했다. 19세기 폴란드의 민족주의 화가 얀 마테이코는 센지보이의 황금 제조 장면을 담은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센지보이가 막 만든 황금을 루돌프 2세의 눈앞에 보여 주는 그림이었다.
센지보이가 황금을 제조할 때 사용한 결정적인 요소는 ‘철학자의 돌’이었다. 그는 이 돌을 스코틀랜드 출신의 연금술사 알렉산더 세톤에게서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세톤은 센지보이에 앞서 평범한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데 성공한 사람으로 알려졌다. 그는 작센의 선제후 크리스티안 2세에게서 비밀을 공개하라는 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하는 바람에 1603년 쾨니히스타인 성에 갇혔다. 그곳에서 모진 고문을 당했지만 끝내 비밀을 털어놓지 않았다.
센지보이는 신비로운 비밀을 배우는 대가로 탈출을 도와주었다. 그는 간수에게 엄청난 뇌물을 제공해 세톤을 석방시켰다. 하지만 세톤은 약속을 어기고 비밀을 절대 알려주지 않았다.
“연금술의 비밀 때문에 너무 큰 대가를 치렀어. 자네도 비밀을 알게 되면 그렇게 될 거야. 모르는 게 나아. 대신 이 빨간 가루를 선물하지. 다들 철학자의 돌이라고 부르는 거야. 수은에 이 돌가루를 넣으면 황금으로 변해.”
센지보이가 수은을 황금으로 만드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루돌프 2세는 그를 황실 공식 자문관으로 임명했다. 그가 각종 연금술 연구 활동을 이어가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센지보이가 황제 앞에서 황금을 만들었다는 소문은 유럽 곳곳에 퍼져 나갔다. 많은 사람이 그가 가진 비밀을 알고 싶어 했다. 센지보이는 곳곳에서 초청을 받았지만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벨기에 외텐부르크의 영주는 병사들을 보내 그를 납치하려고 했다. 그는 옷을 잘라 밧줄을 만들어 창을 타고 내려가 겨우 달아났다. 독일의 연금술사인 요한 뮐러도 그를 납치해서 빨간 가루를 빼앗으려고 했다. 그는 그때도 겨우 달아날 수 있었다.
센지보이가 나중에 다시 황금을 만들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 내용을 알려 주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빨간 가루가 있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실험에 성공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루돌프 2세가 그에게 크라바세 성을 선물하고, 페르디난드 2세 황제가 1620년 연금을 지급한 걸 보면 나중에도 황금을 만들었을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다.
센지보이는 인생의 마지막을 크라바세에서 보냈다. 빨간 가루가 떨어진 탓인지 이때부터는 연금술 연구를 포기하고 여생을 탄광 개발과 주물 기술 개발에 바쳤다. 그는 연금술 연구 과정에서 여러 가지 과학적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공기가 단일 물질이 아니라 다양한 가스로 이뤄져 있다는 걸 발견했다. 초석과 질산칼륨을 태움으로써 그 가스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카를 빌헬름 슐리와 요셉 프리스틀리가 산소를 발견하기 170년 전이었다.
중세 사람들은 연금술을 마법이나 신비주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연금술사는 실제로는 당대의 과학자였다. 그들은 증류, 승화 같은 과학기술을 개발했다. 이런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초기의 연금술사는 유황, 아연, 비소 같은 물질을 발견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큰돈이 되는 상품인 도자기의 원리를 알아내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화학(chemistry)’의 상당 부분은 연금술(alchemy)에서 나온 것이다. 센지보이도 그런 과학자 중의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