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슈테판대성당 종이 열세 번 울리면

by leo

16세기 중엽 오스트리아 빈의 한 선술집에서 일어난 해프닝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음악의 도시답게 선술집에는 매일 밤 젊은 음악가들이 모여 술을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중에서 가장 시끄럽게 큰 목소리로 떠드는 청년이 보였다. 당시 유망한 작곡가로 떠오른 아놀드 폰 브룩이었다.


젊은이들이 떠들고 노는 사이 시간은 흐르고 흘러 자정에 가까워졌다. 허리가 구부러진 집시 노파가 선술집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는 손바닥을 보고 운세를 봐주는 점쟁이였다.


“젊은이들. 오늘 운세는 어떤지, 올해 팔자는 어떤지 한번 점을 보시게. 나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엉터리 점괘를 내놓지도 않는다네. 혹시 모르지, 젊은이들의 운명이 내 점괘 때문에 바뀔지….”


노파는 각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젊은 음악가들에게 점을 보라고 했다. 하지만 아무도 그녀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약간 취한 상태인 브룩은 그런 노파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점을 보면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점괘를 듣고 순 엉터리라고 생각되면 장난을 쳐서 친구들을 즐겁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노파에게 오라고 손짓을 했다.


“어이, 할멈. 이리 와 보게나. 그렇게 용하다면 내 운세나 봐주게.”


브룩은 테이블 앞자리에 앉은 노파에게 오른손을 내밀어 보였다. 노파는 브룩의 손바닥을 아주 세밀하게 살펴보았다.


“젊은이 손바닥은 아주 재미있는 형상을 갖고 있구먼. 온갖 해프닝이 가득 찬 인생이 보여. 고관대작들이 둘러싼 성공의 길이 느껴지는군. 심지어 자네 인생에서 황제의 길도 보여.”


“내 인생길에서 황제의 운세가 보인다고? 하하하.”


브룩은 노파의 말을 듣고는 큰 웃음을 터뜨렸다. 태어나서 이렇게 기막힌 거짓말은 처음 듣는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는 주변을 둘러싼 친구들에게 들으라는 듯이 더 큰소리로 웃었다.


“젊은이, 거기서 끝이 아닐세. 조금 더 들어보도록 하게. 자네 심장의 선은 매우 강하고 거칠 게 없구먼. 그리고 자네 생명선은…. 음, 보자. 왜 이렇지?”


노파는 갑자기 여기에서 말을 멈췄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브룩의 얼굴을 한번 올려다보더니 아무 말도 없이 문 쪽으로 걸어갔다. 브룩은 깜짝 놀랐다. 그는 거짓말이든 허풍이든 노파가 기분 좋은 말을 해줘 신이 났다. 그런데 노파가 결말을 내지 않고 나가려 하니 신경질이 났다.


“어이, 할멈, 할멈. 거기 서시오. 왜 이야기를 하다 말고 그냥 가는 거지? 내 생명선 이야기는 왜 결말을 내지 않는 거지?”


노파는 브룩의 고함을 듣더니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뒤로 약간 돌리고 이렇게 말했다.


“자네 생명선에서 죽음의 기운이 느껴지는군.”


“죽음이라고? 그게 언제라는 말이지?”


“젊은이, 언제 죽는지는 모르는 게 더 낫다네.”


노파의 입에서 브룩이 곧 죽는다는 말이 터져 나오자 선술집은 돌연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술을 마시던 젊은이들은 잔을 놓고 브룩과 노파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빈에서 최고 젊은 음악가로 칭송받는 브룩이 곧 죽는다고? 재미있고 놀라운 이야기로군! 모두 흥미진진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싶은데….”


“굳이 그렇다면….”


노파는 다시 테이블로 돌아갔다. 그녀는 브룩의 손을 들어 올려 바닥을 한 번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브룩의 얼굴에는 호기심과 두려움이 교차했다. 아무리 호탕한 젊은이라도 곧 죽는다는데 놀라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젊은이는 이 선술집에서 나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죽게 되겠군. 조만간…. 성슈테판대성당 종이 열세 번 울릴 때가 자네의 종말이라네.”


선술집에는 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소맷자락 날리는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선술집 밖에서 부는 바람만 덜거컬 덜커덕 하며 창문을 두들겼다.


“하하하, 성슈테판대성당 종이 열세 번 땡땡 하면 내가 죽는다고…?”


갑자기 벼락같은 웃음소리가 터져 나와 선술집의 침묵을 깨뜨렸다. 바로 브룩의 웃음이었다. 그는 노파의 얼굴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이것 봐 할멈! 성슈테판대성당 종은 인간이 만든 거야. 낮 12시, 밤 12시에 가장 종을 많이 치는데, 열두 번만 치게 돼 있어. 열세 번은 절대 칠 수 없는 거야. 할멈 말대로라면 나는 불멸의 존재가 되겠군. 할멈, 거짓말을 하려면 끝까지 들통 나지 않게 제대로 하란 말이야!”


브룩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죽음 이야기가 나와서 잠시 긴장했던 게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는 원래 선한 사람이었다. 노파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했지만, 어쨌든 점을 봤으니 복채는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지갑에서 동전을 하나 꺼내 노파에게 던져줬다.


노파는 바닥에 떨어진 동전을 줍더니 아주 슬픈 표정으로 브룩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하더니 한마디만 남기고는 곧바로 선술집을 나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노파가 남긴 말은 이런 것이었다.


“젊은이, 기분이 나쁠 텐데 복채를 주다니 착한 사람이구먼. 내가 거기에 보답을 하나 하지. 명심하게. 오래 살려면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성슈테판대성당 첨탑에 올라가지 말게.”


브룩은 노파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다음날 새벽 무렵에야 선술집에서 나왔다. 술에 취한 그는 엉터리 점쟁이였어, 라고 중얼거리며 집으로 비틀비틀 걸어 돌아갔다.


브룩이 점쟁이 노파를 만난 지 두 주가 지났다. 그는 노파에게서 점괘를 들은 이야기를 다 잊어버렸다. 하늘은 아주 맑았다. 가끔 지나가는 하얀 구름과 짙푸른 하늘이 어울려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만들었다.


브룩은 높은 곳에서 멋진 광경을 보고 싶어졌다. 그는 성슈테판대성당의 종이 있는 첨탑 위로 올라가게 됐다. 브룩이 첨탑 위로 올라가자마자 종이 땡~땡~ 하고 울리기 시작했다. 낮 12시여서 사람들에게 점심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종은 열두 번을 치게 돼 있었다.


브룩은 바로 옆의 종에서 울려 퍼지는 큰소리 때문에 귀가 터질 지경이었다. 그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종이 열두 번을 다 쳤을 때 브룩은 근처에 있던 친구가 등 뒤를 가리키며 무엇이라고 소리를 지르는 모습을 보았다. 브룩은 몸을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그때 브룩이 허리에 찬 무거운 칼이 종을 치고 말았다. 비엔나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정오의 열세 번째 종이 울린 것이다.


“때~앵~~”


브룩은 그제야 집시 노파의 예언을 떠올렸다. 깜짝 놀란 그는 긴 여운을 이어가는 종을 잡으려고 했다. 그러다 발을 잘못 디뎌 넘어져 첨탑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늘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추락하는 그의 두 눈에 저 멀리 구름 뒤에서 측은한 표정을 짓는 노파의 얼굴이 보였다. 며칠 뒤 성슈테판대성당에서 브룩의 장례 미사가 열렸다. 그는 빈 공동묘지에 묻혔다.


성슈테판대성당에는 탑이 4개 있다. 남쪽 탑의 이름은 성당 이름 약자와 똑같은 슈테플이다. 이 탑은 높이가 136.44m라서 대성당 네 탑 중에서 가장 높은 데다 빈 어디서나 볼 수 있어 빈 스카이라인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탑 4개에는 종 22개가 있다. 그중에서 20개는 종교적 용도로 사용됐고 2개만 시계 용도로 이용됐다. 68.3m인 북쪽 탑에 설치된 푸메린이라는 별명을 가진 종도 시계였다. 성모 마리아의 형상이 새겨져 원래 이름이 ‘성모 마리아’인 푸메린의 무게는 2만 1천283kg이어서 오스트리아의 모든 성당, 교회에 있는 종 중에서 가장 무겁다. 지금은 시계 역할을 할 종이 필요 없기 때문에 푸메린은 새해 1월 1일 0시, 연방대통령 서거, 새 교황 선출 등 국가적, 종교적으로 중요한 일이 있을 때에만 소리를 낸다.


전설에 따르면 빈에서 살던 베토벤은 푸메린 종소리에 놀란 새들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사실을 알게 됐다고 한다. 새들과는 달리 그의 귀에는 종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며 사실인지 아닌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아놀드 폰 브룩은 1500년에 태어나 1554년에 세상을 떠난 실존인물이었다. 그는 합스부르크 궁정 오케스트라에서 악장으로 활동한 작곡가 겸 연주자이자 성직자였다. 종교개혁이 뜨겁게 달아오르던 당시에는 독일어권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가였다. 브룩은 성슈테판대성당에서 사제로 일하면서 오케스트라 악장도 맡아 많은 합창곡을 썼다.


브룩은 빈을 떠나 린츠에서 인생의 마지막을 보내다 눈을 감았고 그곳에 묻혔다. 그가 성슈테판대성당에서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은 그야말로 전설에 불과하다. 왜 이런 전설이 만들어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대성당 종이 얼마나 신성한지를 알려줄 전설을 만들어내다 보니 여기에 걸맞은 유명 인사가 필요했고 그래서 당시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인물이었던 브룩의 이름이 거론된 것이라는 추정만 나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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