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술꾼과 치통을 앓는 예수

by leo


오스트리아 빈 성슈테판대성당 정면에는 예수의 모습을 담은 작은 석상이 있다. 별명이 아주 이색적인데, ‘치통을 앓는 예수’이다. 석상에 이런 별명이 붙은 이유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18세기 빈에 즐겁게 세상을 사는 세 남자가 있었다. 그들은 종종 함께 앉아 밤새 술을 마시다가 새벽에 코가 비뚤어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 귀가하는 도중에 만나는 사람들을 놀리거나 괴롭히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세 사람은 늘 가던 단골술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미 밤이 많이 깊어 통행금지가 내려진 상태였다. 그들은 늘 하던 대로 통행금지도 아랑곳 않고 빈 시내를 비틀거리며 걸어갔다. 도중에 성슈테판대성당을 지나게 됐다.


세 사람은 우연히 희미한 등불 아래의 예수 석상을 보게 됐다. 누가 놓아둔 것인지 예수 석상의 가시관에 신선한 꽃이 장식돼 있었다. 헝겊 조각으로 아주 단단하게 묶어 놓았기 때문에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가시관에서 꽃을 떨어뜨릴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세 사람이 보기에는 묶어놓은 모양이 조금 우스꽝스러웠다. 마치 치아가 아픈 환자처럼 머리에서 시작해 턱을 한 바퀴 돌아 묶어 놓은 것이었다.


세 명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융커 디폴트가 꽃을 보더니 킥킥 하며 웃었다.


“얘들아, 저것 좀 봐. 마치 예수님이 치통을 앓으시는 것 같잖아. 예수님은 바람이 심하게 부는 곳에 서 계시네! 그러면 이가 더 아프실 텐데~~”


“예수님을 치과의사에게 데려가야겠네요. 형님!”


세 사람은 한참이나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들은 배꼽이 떨어질 정도로 가가대소하다 집으로 가던 걸음을 다시 옮겼다.


어찌 된 일인지 집으로 돌아가 침대에 누운 디폴트는 한숨도 잘 수 없었다. 뺨이 갑자기 불타는 듯하더니 지금껏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치통이 찾아온 것이었다. 그는 뺨을 부드럽게 문지르다가 주먹으로 세게 치기도 했다. 손톱 끝으로 톡톡 두들기기도 했다. 독한 술을 입에 가득 머금고 보글보글 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아침이 밝자마자 그는 치과의사를 찾아갔다. 의사도 아무런 치료법을 내놓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가 썩은 것도 아니고, 잇몸이 상한 것도 아니었다.


“디폴트 씨, 이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왜 이가 아픈 것인지 도무지 이유를 찾아낼 수가 없군요.”


의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는 다시 한 번 디폴트의 입 안을 살펴보았다. 이번에도 특별한 이상을 찾아낼 수 없었다.


“역시 아무런 문제가 없군요. 그런데 이상한 건 디폴트 씨와 똑같은 증세로 찾아온 사람이 두 명 더 있었다는 겁니다. 도대체 무슨 일인 것인지….”


의사의 말을 듣자마자 디폴트의 머리를 때리는 생각이 있었다.


‘어젯밤 나와 동생들이 예수님 머리를 싸고 있는 헝겊 조각을 보고 놀리는 바람에 벌을 받고 있는 것이구나!’


디폴트는 두 동생을 찾아갔다. 의사 말대로 그들도 역시 평생 처음 겪는 치통 때문에 침대에서 구르는 중이었다. 디폴트는 두 동생에게 예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성슈테판대성당에 가서 예수에게 사죄하자고 했다.


세 사람은 통증을 조금이라도 낮추기 위해 헝겊 조각으로 머리를 묶은 채 성 슈테판 대성당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 석상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간절히 기도했다.


“주님, 저희가 술에 취해 주님을 모독하는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어리석은 세 양의 잘못을 용서해 주십시오.”


세 사람은 진심으로 후회하고 뉘우치면서 기도했다. 예수 석상이 그들의 목소리를 들은 것일까? 기도를 마치자마자 세 사람의 치통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들은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세 사람은 이후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빈의 주정뱅이 셋이 새 사람이 됐다는 소문은 금세 시내에 퍼졌다. 그들의 술버릇을 고친 게 예수 석상이라는 이야기도 알려졌다. 이후 예수 석상에게는 ‘치통을 앓는 예수’, 독일어로는 ‘잔베헤곳(Zahnwehherrgott)’이라는 별명이 붙여졌고, 극심한 치통에 시달리는 많은 신도가 석상을 찾아가 구원의 기도를 드리는 게 유행하게 됐다.


사실 ‘치통을 앓는 예수’의 원래 이름은 ‘슬픔의 예수’인데, 1420년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조각가가 만든 것이라고 한다. 조각상을 만든 석재는 체코 프라하 외곽의 빌라 호라(백산‧白山)에서 가져온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에는 손에 못이 박히고 옆구리에 창을 찌른 상처인 ‘성흔(聖痕)’을 새긴 슬픈 표정의 예수의 상반신 조각상을 만들어 교회나 가정에 모셔두고 예수의 고통을 처절하게 함께 느끼면서 숭배하는 게 유행이었다. 조각의 가시관에는 늘 꽃을 장식해두는 게 일반적이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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