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에 반한 쇤브룬궁전

by leo


1762년 10월 9일 저녁이었다. 모차르트 가족은 오스트리아 빈 성슈테판대성당 뒤편의 플라이시마르크트에 있는 ‘줌 바이센 옥센(하얀 황소의 집)’에 머물고 있었다. 그들이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빈에 간 것은 가장인 레오폴트 모차르트의 원대한 계획 때문이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인 아들 모차르트가 음악의 천재라는 사실을 발견한 레오폴트는 잘츠부르크에 머물지 않고 유럽 전역을 돌면서 모차르트의 탁월한 음악성을 자랑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먼저 1762년 1월 바이에른 공국의 수도 뮌헨에 갔다. 막시밀리안 3세 요제프 선제후 가족을 모신 가운데 님펜부르크궁전에서 연주회를 펼쳐 큰 박수를 받았다. 물론 돈도 적지않게 벌 수 있었다.


큰 성공에 고무된 레오폴트는 당시 유럽의 중심 국가였던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에 가서 신성로마제국 황제 가족 앞에서 연주회를 열 계획을 세웠다. 그가 ‘하얀 황소의 집’에 방을 잡은 것은 이 때문이었다.


모차르트 가족은 빈에 도착하자마자 토마스 빈치게라 콜랄토 백작의 초청을 받아 암호프광장에 있는 콜랄토 저택에서 빈 귀족을 모시고 연주회를 거행했다. 이 연주회가 얼마나 성공적이었던지 다음날부터 빈의 여러 귀족이 그들을 먼저 초청하려고 난리가 났다. 소문은 귀족 사이에만 퍼진 게 아니라 왕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가장인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이날 낮에 부르크극장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고 돌아와 숙소에서 마음 편하게 쉬는 중이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난데없이 방으로 허겁지겁 올라왔다.


“1층으로 내려가 보셔야 하겠는데요.”


레오폴트는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눈만 껌벅거렸다.


“왜 그러십니까? 무슨 일입니까?”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손님이 오셨으면 제 방으로 안내하면 될 일이 아닙니까?”

“그게…, 그냥 손님이 아니라서.”


레오폴트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주인의 태도를 볼 때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지체 높은 손님이 찾아온 모양이었다. 그는 옷을 차려입고 주인을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는 황실에서 온 시종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네가 잘츠부르크에서 온 레오폴트 모차르트인가?”


빈의 궁정에서 일하는 시종은 지체 낮은 평민이 아니었다. 음식을 만들고 청소를 하고 정원을 관리하는 따위의 잡일을 담당하는 사람만 평민이었다. 황제의 일상생활을 거들고 수행하는 일을 하는 시종은 귀족이었다. 지금 레오폴트 앞에 서 있는 시종도 빈에서 내로라하는 집안의 귀족이었다.


“예, 제가 레오폴트입니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와 프란츠 슈테판 황제 폐하의 전갈을 들고 왔네.”


레오폴트는 황제라는 말을 듣고 너무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이미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저도 모르게 부동자세로 굳어 버렸다.


“잘츠부르크의 레오폴츠 모차르트는 11일 오후 딸 난네를과 아들 볼프강 아마데우스를 데리고 쇤브룬궁전으로 입궐하라.”


레오폴트는 여전히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엉거주춤하게 대답만 할 뿐이었다.


“아! 예, 예.”


쇤브룬궁전에서 나왔다는 시종은 레오폴트를 한심하다는 눈초리로 쏘아보더니 마차를 타고 돌아가 버렸다.


“휴웃!”


레오폴트는 시종이 돌아가고도 한참 뒤에나 겨우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얼어붙은 그의 얼굴 뒤에는 이제 출세하고 돈 벌 일만 남았다는 기쁨의 표정이 숨어 있었다.


다음 날 밤 9시였다. 레오폴트가 자려고 막 누웠을 때였다. 집 주인이 다시 객실 문을 두드렸다. 어제 온 손님이 또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일어났다.


‘뭐가 잘못 됐나? 어제 초청장을 받았는데 오늘 왜 다시 온 것이지?’


레오폴트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로비로 내려갔다. 그곳에는 어제 온 시종이 엄격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와 프란츠 슈테판 황제 폐하께 긴급한 일정이 생겼네. 내일 쇤브룬궁전에는 들어올 필요가 없게 됐어. 대신 모레 오후에 들어오도록 하게.”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레오폴트는 시종이 돌아가고 나서야 걱정을 덜 수 있었다. 궁정에서는 워낙 긴급한 일이 수시로 발생하는데다 지체 높은 손님이 찾아오는 경우도 많아 일정이 바뀌거나 취소되는 경우가 잦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시종장은 다음날에 또 찾아왔다. 이번에 온 이유도 똑같았다. 사정이 생겨 입궐 날짜가 하루 더 미뤄졌다는 것이었다. 레오폴트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러다 쇤브룬궁전에 못 가는 거 아냐? 그러면 안 되는데…’


다행히 레오폴트가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가슴을 졸이며 다음날 밤새도록 문 앞을 지켰지만 시종은 더 이상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일정이 예정대로 진행된다는 뜻이었다.


레오폴트는 마차 한 대를 빌려 13일 오후 두 아이를 데리고 쇤브룬궁전으로 들어갔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와 프란츠 슈테판 황제는 ‘거울의 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레오폴트와 두 아이는 황제 부부 앞에서 무릎을 꿇어 인사를 드렸다.


“어서 오시게. 잘 오셨네.”


황제 부부는 진심으로 레오폴트와 두 아이를 환영했다.


“저 남자 아이가 볼프강이고 이 소녀는 난네를인 모양이군.”


프란츠 슈테판 황제는 사람 좋은 웃음을 띠며 두 아이를 손가락으로 일일이 가리켰다. 레오폴트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걸 느꼈다. 그는 쇤브룬궁전에 들어가면 사람 취급도 못 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잘츠부르크 궁정에서 하인처럼 대접을 받는 것에 익숙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그에게 황제의 따뜻한 말 한마디는 예상을 뛰어넘는 충격적인 환대였다. 그는 잘츠부르크에 사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내 이날 받은 감동을 상세히 적었다.


‘우리는 오후 3시 쇤브룬궁전에 들어가 6시에 나왔다네. 두 황제 폐하로부터 정말 놀라운 환대를 받았어. 이런 말을 하면 지어냈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군. 볼프강은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의 무릎에 뛰어올라 팔로 목을 감싸더니 뺨에 입을 맞췄다네. 프란츠 슈테판 황제는 나를 다른 방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인판타(황제의 아들 요제프 2세 대공의 첫 아내 마리아 이사벨라)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걸 들어보게’라고 하시더군.’


쇤브룬궁전 ‘거울의 방’에는 마리아 테레지아, 프란츠 슈테판 황제 부부 외에 두 사람의 자녀인 황자, 황녀 12명도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나중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가 되는 요제프 2세와 프랑스의 왕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되는 마리아 안토니아도 있었다.


프란츠 슈테판은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부탁하듯이 모차르트와 난네를에게 아주 부드러운 어투로 말했다.


“얘들아! 이제 우리를 위해 아름다운 음악을 한 번 들려주려무나.”


모차르트가 먼저 연주한 악기는 바이올린이었다. 고급 제품은 아니어서 쇤브룬궁전의 품격에 비하면 초라해 보이는 악기였다. 그러나 명장 목수가 연장을 탓하지 않고, 세계적 축구 스타가 운동화를 탓하지 않는 것처럼 모차르트는 싸구려 바이올린이라고 변명하지 않았다. 음악을 처음 배울 때부터 사용한 덕에 그에게는 손에 착 달라붙어 호흡이 잘 맞는 악기였다.


모차르트는 빈 궁정 작곡가 바겐세일이 만든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환상적으로 연주했다. 난네를은 클레비어를 완벽하게 소화했다.


황실 가족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눈과 귀를 믿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이제 겨우 여섯 살인 모차르트와 열한 살인 난네를의 연주는 어린이의 실력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눈을 감고 듣는다면 어린이가 연주하는지 어른이 연주하는지 구별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프란츠 슈테판 황제는 두 아이, 특히 모차르트의 연주에 매혹당하고 말았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모차르트의 손을 잡더니 피아노로 데려갔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피아노 건반을 덮었다.


“얘야! 한 손에 하나씩 손가락 두 개만으로 연주해 볼 수 있겠니?”


모차르트는 방긋 웃은 다음 황제가 시키는 대로 건반을 눌렀다. 마치 두 손을 사용하는 것처럼 인상적인 연주였다. 황제는 껄껄 웃으며 모차르트의 머리를 힘차게 쓰다듬어 주었다.


“사람들이 너를 보고 음악의 신동이라고 하는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이날 연주회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진다. 모차르트는 연주를 마치고 걸어가다 미끄러져 넘어졌다. 이때 마리아 안토니아가 쪼르르 달려가 그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었다. 모차르트는 마리아 안토니아의 얼굴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의 입에서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 튀어나왔다.


“너, 나중에 나랑 결혼하면 어떨까?”

“와하하!”


거울의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은 모차르트의 말을 듣고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웃음 대신 얼굴만 벌겋게 붉힌 사람은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트와 이제 열한 살이어서 세상 물정을 조금씩 알아 가던 누나 난네를뿐이었다.


이 일화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랬다더라’라면서 전해지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래도 당시 쇤브룬궁전에서 열린 연주회 분위기가 얼마나 화기애애했으며, 모차르트 가족이 황실로부터 얼마나 환대받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일화임에는 분명하다.


황실이 모차르트를 얼마나 아꼈는지를 잘 보여주는 분명한 일화도 있다. 모차르트보다 다섯 살 많았던 공주 마리아 요제파는 연주를 마친 모차르트의 손을 잡고 궁전을 돌아다니며 여러 방을 구경시켜 주었다.


쇤브룬궁전 연주회를 거행하고 이틀 뒤 궁전의 시종이 모차르트 가족이 묵고 있던 숙소로 다시 찾아갔다. 등 뒤에는 선물 꾸러미가 잔뜩 쌓여 있었다. 그는 장황하게 연설을 늘어놓았다.


“자네는 정말 복이 많은 사람이군. 저렇게 훌륭한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느니 말일세. 두 분 폐하께서도 부럽다고 하실 정도야. 두 분은 자네 가족의 연주가 정말 아름다웠다면서 많은 선물을 보내셨네. 이런 일도 드문 경우일세. 두 분 폐하께 정말 감사해야 하네.”


레오폴트는 허리를 깊이 숙여 시종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두 분 폐하께서는 자네 가족을 조만간 다시 부를 거라고 하셨네.”


시종은 여기까지 말한 뒤 레오폴트에게 다가가 귓속말로 조용히 속삭였다.


“그리고, 혹시 우리 집에도 남매를 데리고 찾아와 줄 수 있겠나? 부모님께서 두 아이의 소문을 들으시고 자네 가족을 초청할 수 있도록 주선해 보라고 신신당부하셨네.”


레오폴트는 다시 허리를 굽혔다.


“원하시는 날짜를 잡도록 하겠습니다.”


모차르트 가족은 객실에서 곧바로 선물 꾸러미를 풀어 보았다. 두 아이가 받은 선물은 옷이었다. 모차르트의 옷은 대공 막시밀리안 프란츠가 입던 실크 드레스였다. 마리아 테레지아의 막내아들인 막시밀리안은 모차르트와 동갑이었다. 그는 쇤브룬궁전 연주회에서 깊은 감동을 받아 평생 모차르트의 지지자가 됐다. 난네를은 공주 중 한 명이 입던 화려한 드레스를 선물로 받았다. 레오폴트는 금화 500굴덴을 챙겼다. 그가 잘츠부르크에서 받던 연봉의 1.5배나 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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