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우강의 여신을 사랑한 어부

by leo


아주 오래전의 일이었다. 오스트리아 빈 도나우강 변의 오두막에 늙은 어부와 젊은 아들 어부가 살았다. 두 사람은 매일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다. 출어하기 전에는 도나우강의 신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고기잡이를 마치면 저녁에 집에 돌아와 오두막의 낡은 식탁에 나란히 앉아 저녁을 먹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도나우강이 여느 겨울처럼 꽁꽁 얼어붙은 탓에 두 사람은 고기잡이를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안에 갇혀 있었다. 아버지는 저녁을 먹으면서 할아버지에게서 들은 이야기라며 아들 어부에게 놀라운 이야기를 해 주었다.


“도나우강 바닥에는 유리로 만든 궁전이 있단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여신이 ‘도나우강의 왕’인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지. 그녀는 강 위의 땅에 사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단다. 따뜻한 봄날 저녁이 되면 아름다운 여신은 도나우강에서 땅으로 올라와 사람을 위해 노래를 불러.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 아름답고 맑아서 노래를 듣는 사람은 누구나 매혹되고 말지. 하지만 조심하거라. 아들아. 그녀의 미모와 목소리에 반하는 바람에 영원히 도나우강 속으로 사라진 젊은이가 한둘이 아니라는 것을….”


아버지가 진지한 표정으로 충고하자 아들은 빙긋이 웃으며 대꾸했다.


“아버지, 그건 다 지어낸 이야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설사 도나우강의 여신을 만나더라도 절대 따라가지는 않을 테니까요.”


두 사람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 나누고 있을 때 갑자기 신비스러운 빛 한 줄기가 창문 틈으로 스며들어 왔다. 밤하늘에 빛나는 달빛은 아니었고, 그렇다고 사람이 들고 다니는 등불 빛도 아니었다.


아버지 어부가 문을 열고 나가자 집 앞에 낯선 여인이 서 있었다. 몸매는 가늘고 작았으며, 길고 하얀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검은 머리카락에는 하얀 수련 한 송이가 꽂혀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 어부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쳐다보았다.


여인은 어리둥절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두려워하지 마세요. 저는 두 분을 해치려는 게 아니에요. 다만 경고를 해 주러 온 거랍니다. 아주 강한 남풍이 도나우강의 얼음을 매우 빠른 속도로 녹이고 있답니다.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지요. 며칠 안으로 큰 홍수가 날 거예요. 두 분의 오두막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다른 어부의 오두막도 휩쓸어버릴 거예요. 내일 아침 서둘러 피신하도록 하세요.”


여인은 이 말을 남긴 채 되돌아서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부자의 오두막 창으로 스며들어 오던 한 줄기 빛도 함께 없어졌다.


“아들아, 저 여인은 방금 내가 말했던 도나우강의 여신인 모양이다. 그렇지 않다면 도나우강의 얼음이 녹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겠느냐? 내일 아침에 서둘러 사람들에게 피신하라고 전해야겠다.”


부자는 이튿날 아침 일찍부터 도나우강 변을 돌아다니면서 이웃에게 강의 얼음이 녹아 홍수가 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에게는 전날 밤 도나우강의 여신이 집에 찾아와 말해 줬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평소 성실하고 진실하다고 소문난 아버지 어부의 이야기를 믿고 안전한 장소로 모두 피신했다.


아니나 다를까 며칠 뒤 도나우 여신이 경고한 대로 홍수가 일어났다. 강물이 하루 만에 엄청나게 불어나 강둑을 넘더니 주변의 모든 마을을 휩쓸어 버렸다. 다행히 사람들은 부자의 충고에 따라 피신한 덕에 생명을 잃는 불상사는 겪지 않았다.


몇 주 뒤 도나우강은 다시 원래 수위대로 낮아졌다. 부자 어부는 물론 모든 사람은 다시 마을로 돌아갔다. 대부분 집은 강물에 떠내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나마 남은 집은 거의 허물어져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이었다.


사람들은 서로 힘을 합쳐 오두막을 하나씩 새로 지었다. 옆집 사람 집을 먼저 지어준 뒤 내 집을 지었다. 이웃집 사람 가구를 먼저 고쳐준 뒤 내 가구도 마련했다. 비록 힘들고 고단한 일이었지만, 사람들은 목숨을 건진 것을 행복하게 생각했고 감사하게 여겼다. 피곤한 하루를 보내면서도 매일 도나우강의 여신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단 한 명은 예외였다. 그의 얼굴에는 항상 슬픈 기색이 역력했다. 마을이 다시 원래 모습을 찾아가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오두막 재건 작업을 마치면 늘 도나우강 둑에 혼자 앉아 강물을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다.


바로 아들 어부였다. 그는 홍수가 나기 전날 밤에 집을 찾아왔던 아름다운 도나우강의 여신을 짝사랑하게 된 것이었다. 아버지 어부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아들을 설득했다.


“아들아, 그날 밤 내가 한 말을 잊었느냐? 도나우 여신의 미모와 목소리에 반해 도나우강으로 끌려 들어가 돌아오지 않는 청년이 한둘이 아니라는 말을….”


아들의 귀에는 아버지의 충고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도나우강의 여신 생각뿐이었다. 그는 밥도 먹지 않았고, 잠도 자지 않았다. 봄이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고기잡이를 나갔지만, 일은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아들의 가슴에 깊은 상처만 남긴 채 따뜻한 봄은 그렇게 지나갔다. 무더운 여름이 다가왔다. 어느 날 밤 아들은 깊이 잠이 든 아버지 몰래 오두막집을 빠져나갔다. 그는 강변에 묶어 둔 작은 배에 올라 노를 저어 도나우강 한가운데로 갔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아들의 빈 침대를 보고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그는 강변에 매어 둔 작은 배가 없어진 것을 보고는 다른 배를 타고 강으로 나갔다. 아들이 타고 나간 작은 배는 강 한가운데에서 떠다니고 있었다. 아들은 보이지 않았다. 배에는 수련 한 송이가 떨어져 있고, 강물에는 수련으로 만든 왕관이 떠다니고 있었다. 아버지는 이제 다시는 아들을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지금도 겨울이 되면 부자 어부가 살 때처럼 도나우강은 꽁꽁 얼어붙는다. 어부들은 고기를 잡으러 나갈 수 없다. 그럴 때면 오두막집의 따뜻한 난롯가에 모여 앉아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눈다. 그들은 도나우강의 여신과 사라진 젊은 어부 이야기를 가장 좋아한다. 그들도 여신을 만나면 젊은 어부처럼 강으로 뛰어들 거라며 껄껄 웃는다.


젊은 어부가 빈 쪽배에 아버지의 슬픔만 남긴 채 사라진 이후 도나우강의 여신은 다시는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한다. 도나우강에는 잔잔한 강물만 천천히 흘러갈 뿐이다. 하지만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오스트리아 빈에 여행하러 갔다가 도나우강 유람선을 탄 여행객 앞에 여신이 나타나 어떤 경고를 하고 사라질지 말이었다. 그때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 절대 그녀를 짝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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