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의 연주대결 로브코비츠궁전

by leo


19세기 초 프랑스 파리와 영국 런던에서 주로 활동하던 다니엘 고틀리에브 스타일벨트라는 이름의 독일 출신 유명 피아니스트가 있었다.


스타일벨트는 군인이 되라는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파리로 달아나 음악에 전념한 덕분에 피아노 소나타 작곡과 연주에 탁월한 비르투오소(대가)라는 평가를 받게 됐다.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왕후인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라 코켓’이라는 곡을 작곡해 바쳤고, 오페라 ‘로미오와 줄리엣’을 작곡해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와 영국에서의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스타일벨트는 당시 음악의 본무대라고 불리던 독일과 오스트리아로 음악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그는 독일 함부르크, 베를린, 드레스덴과 체코 프라하를 거쳐 1800년 3월 마침내 오스트리아 빈에 도착했다.


당시 서른다섯 살이던 스타일벨트는 빈에서 가장 잘나가는 작곡가 겸 피아니스트는 루드비히 판 베토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파리에 머물 때부터 베토벤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빈에서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그의 인기는 훨씬 더 대단했다.


당시 베토벤의 나이는 스타일벨트보다 다섯 살 젊은 서른 살이었다. 독일 본 출신인 그는 이미 8년 전 고향을 떠나 빈에서 머물렀는데, 이미 피아노 실력만큼은 빈에서 최고라는 평가를 들었다. 그는 1791년 세상을 떠난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의 음악을 공부했고, 당대 최고 음악가로 손꼽히던 요제프 하이든과 빈 궁정 오케스트라 악장인 안토니오 살리에리에게서 많은 도움을 받으며 역량을 키웠다.


스타일벨트는 유럽에서 최고의 피아니스트라는 명성을 누리기 위해서는 베토벤을 눌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방법은 딱 한 가지뿐이었다. 베토벤과 음악대결을 벌여 콧대를 납작하게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스타일벨트는 늘 자신의 음악성에 자신감을 가졌고, 세상에 자신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없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당연히 빈에서 내로라하는 베토벤이라도 그의 발 앞에서 무릎을 꿇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빈에서 사람을 만날 때마다 늘 큰소리를 쳤다.


“베토벤이라는 젊은이가 훌륭한 피아니스트라는 이야기를 들었지요. 하지만 제 앞에서는 숨도 제대로 못 쉴 겁니다. 누가 더 피아노를 잘 치는지 한 번 대결해보고 싶지만 그의 자존심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제가 대결하자고 제안하는 건 잔인한 일이겠지요.”


스타일벨트가 빈 곳곳에 소문을 퍼뜨리고 다닌다는 이야기는 베토벤의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스타일벨트의 호언장담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고 음악 대결을 할 필요조차 느끼지 않았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그의 음악 후원자 역할을 하던 사람들은 애를 태웠다. 그들이 가장 아끼는 베토벤이 파리에서 건너온 ‘무례한 악당’에게 본때를 보여주기를 바랐다.


빈의 음악 애호가들은 베토벤의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자기들끼리 베토벤과 스타일벨트의 음악 대결을 거행하자는 데에 합의했다. 당시 빈에서 음악을 좋아하던 귀족들은 유명 피아니스트끼리 대결시키는 행사를 무척 좋아했다.


형식은 즉흥 연주였다. 한 사람이 먼저 즉흥곡을 연주하면 다른 한 사람이 그 곡을 재해석해서 또 다른 즉흥곡을 연주하는 방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어느 한쪽이 떨어져나갈 때까지 즉흥곡 연주를 주고받는 것이었다.


빈의 음악 애호가들은 서로 편을 갈랐다. 로브코비츠 공작이 스타일벨트를 후원하고, 리히노브스키 공작은 베토벤을 후원하기로 했다. 행사는 호프부르크왕궁 인근의 로브코비츠궁전에서 열기로 했다.


리히노브스키 공작은 귀족끼리 일방적으로 결정한 내용을 들고 베토벤을 찾아가 설명했다. 베토벤은 싫다 좋다 말도 하지 않았다. 단순히 그날 로브코비츠궁전에 가겠다고만 말했다.


로브코비츠궁전에서 만난 베토벤과 스타일벨트는 인사를 주고받은 뒤 추첨을 통해 연주 순서를 정했는데, 스타일벨트가 먼저 연주하게 됐다. 그는 피아노로 걸어가더니 주저하지 않고 연주를 시작했다. 그는 광풍을 몰아치는 것처럼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연주는 궁전을 가득 메운 귀족 사이에서 좋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연주를 마친 스타일벨트는 큰 박수를 받으며 일어섰다. 그는 흡족한 표정을 지으며 베토벤을 한 번 노려보고 자리로 돌아갔다. 이제 모든 시선은 베토벤을 향했다.


베토벤은 숨을 길게 들이마시더니 잠시 후 천천히 내뱉었다. 그리고 마뜩하지 않은 표정으로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꼭 이렇게 해야 하느냐는 표정이었다.


베토벤은 억지로 끌려가듯 힘겨운 걸음을 피아노로 옮겼다. 그를 후원하는 많은 귀족의 표정에는 근심이 서렸다.


베토벤은 마침내 피아노 앞에 앉아 스타일벨트가 연주했던 음악의 첫 부분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는 다양하고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그의 음악을 변화무쌍하게 바꿨고, 화려하고 아름답게 장식했으며, 깊이 있고 생동감 넘치는 소리를 집어넣었다. 스타일벨트의 연주를 모방하는 듯하다 패러디하고, 완전히 다르게 연주하는 듯하다 어느 새 비슷하면서도 새로운 형식으로 연주했다.


스타일벨트의 얼굴은 서서히 노래졌다. 입술은 바싹 말랐고 맞잡은 두 손은 조금씩 떨렸다. 그는 불과 2~3분 만에 모든 진실을 완전히 이해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베토벤의 발끝에도 못 미치는구나!’


눈에 띌 정도로 온 몸을 덜덜 떨던 스타일벨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궁전 밖으로 나가버렸다. 로브코비츠 공작이 그의 뒤를 따라가더니 잠시 후 돌아왔다. 공작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리히노브스키 공작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베토벤이 살아 있는 한 다시는 빈에 발도 들이지 않겠다고 하는군.”


베토벤은 1827년에, 스타일벨트는 그보다 4년 앞선 1823년에 세상을 떠났다. 스타일벨트는 로브코비츠 공작에게 말했던 것처럼 죽을 때까지 다시는 빈에 가지 않았다.


빈 귀족들은 이후 다시는 베토벤에게 음악 대결을 벌이라고 하지 않았다. 이 대결을 기회로 빈에서 피아노 비르투오소로서 그의 지위는 너무나 확고해진 것이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