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지아와 도너브루넨

by leo


1.


오스트리아 빈에는 ‘누드’가 참 많다. ‘벌거벗은’ 누드 조각상은 물론 누드 그림도 있으며 심지어 누드박물관도 있다. 2012~2013년 레오폴트박물관에서 누드전시회가 열렸는데, 이후 사람들은 이 박물관을 누드박물관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황에서 볼 수 있듯이 대체로 빈 사람들은 누드에 대해서는 관대한 편이다. 하지만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특히 18세기 오스트리아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 시대는 지금과는 많이 달랐다. 다음은 그때 그 시절의 그런 분위기를 담은 ‘사실’ 같은 ‘전설’이다.


가정과 정절을 매우 소중하게 여겼던 마리아 테레지아는 누드를 매우 싫어했다. 아마 바람둥이였던 남편 때문에 더 그랬을 수도 있다. 그녀는 누드는 물론 비도덕적 행동까지 단속하라고 정부에 지시했다. 이 때문에 1752년 ‘정절법’이라는 매우 이상한 법이 만들어졌다. 이 법은 매매춘, 혼외 불륜을 단속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했다. 남녀가 공공장소에서 데이트하는 것도 ‘잠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범죄’로 규정했다.


정절법의 적용 대상은 빈 시민, 즉 사람만이 아니었다. 생명이 없는 조각상 등 예술작품도 마찬가지였다. 가장 눈에 띈 사례는 케른트너 거리 인근 노이어마르크트 거리에 있는 도너브루넨 분수였다.


도너브루넨의 원래 이름은 프로비덴차 브루넨이었다. 프로비덴차는 고대 로마의 여신이었는데, 빈 사람들은 이 단어를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분수를 건설한 건축가 게오르그 라파엘 도너의 이름을 붙여 분수를 도너브루넨으로 부르게 됐다. ‘브루넨’은 분수라는 뜻이다.


도너는 도너브루넨 중앙에 프로비덴차 여신을 상징하는 반 누드 조각상을 세웠다. 주변에는 오스트리아의 4대강과 4계절을 상징하는 누드 조각상 4개를 만들었다. 분수 바닥에는 물을 내뿜는 물고기 4마리가 달린 4개의 가죽 각반을 깔았다. 네 물고기는 창꼬치, 잉어, 메기, 연어인데 도나우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빈 시내를 둘러보다 우연히 도너브루넨의 조각상을 발견하게 됐다. 그녀는 시내 한복판에 누드 조각상이 한 개도 아니고 여러 개가 서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정절법을 만든 그녀에게 도너브루넨의 누드 조각상은 ‘황제를 무시하는 처사’이자 ‘국가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무례한 모욕’이었다.


마리아 테레지아는 도너브루넨의 누드 조각상 다섯 개를 모두 녹여 없애라고 명령했다. 황제의 지시를 받은 빈 시청은 조각상을 파괴하기 위해 조각가 요한 마틴 피셔를 고용했다.


그런데 피셔는 도너브루넨의 조각상을 보더니 깜짝 놀라고 말았다. 단순히 황제의 기분을 맞추려고 파괴하기에는 예술적 가치가 너무 크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섯 조각상을 파괴하지 않고 몰래 빼돌려 숨긴 뒤 빈 시청에는 녹여 없앴다고 거짓 보고를 했다. 그가 조각상을 숨긴 비밀장소는 마리아 테레지아가 살던 호프부르크왕궁 인근 건물의 지하실이었다. 황제 입장에서는 등잔 밑이 어두웠던 셈이었다. 다섯 조각상은 마리아 테레지아가 숨진 이후인 1801년에야 원래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2.


사실 건축가 게오르그 라파엘 도너가 분수를 만든 것은 빈 시청의 요청 때문이었다. 당시 빈을 포함해 오스트리아 주요 도시의 건축물, 기념물은 대부분 왕실이나 귀족의 손으로 만들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시청이 수도의 분수를 직접 제작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빈 시청이 도너브루넨을 건설한 것은 빈이 오스트리아제국의 수도이면서 자치도시라는 자신감을 표현하고자 한 것이었다. 빈 시청은 오래 전에 자치권을 잃어버렸다가 마리아 테레지아의 아버지인 카를 6세 시대에 조금이나마 회복한 상태였다.


프로비덴차는 ‘훌륭한 통치’를 상징하는 고대 로마의 여신이었다. 빈 시청이 이런 의미를 가진 프로비덴차를 분수의 중심 조각으로 설치한 것은 한마디로 ‘빈 시청은 훌륭한 행정단체’라는 것을 과시하려는 뜻이었다. 빈 시내에 분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안전한 물을 마음껏 공급하게 됐으니 ‘훌륭한 행정’이라고 할 만하다는 것이었다.


또 프로비덴차 조각상 왼손에는 ‘지혜’를 상징하는 뱀이 있다. 오른손에는 고대 로마의 신 야누스의 머리가 새겨진 방패가 보인다. 야누스는 미래와 과거를 동시에 본다는 걸 뜻한다. 빈 시청의 행정이 심모원려하다는 게 여기에 담긴 의미였다.


도너브루넨이 완공된 것은 카를 6세가 황제로 재임하던 1739년이었다. 도너브루넨의 다섯 조각상은 당시 사회적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외설적인 작품이었기 때문에 빈 각계각층에서 많은 논란이 일었다. 논란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도너브루넨 완공 1년 후에 즉위한 마리아 테레지아가 분노해 다섯 조각상을 없애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소문이 퍼질 정도였다.


하지만 마리아 테레지아의 분노는 단순히 전설일 뿐 역사적 사실은 아니었다. 마리아 테레지아 황제가 누드에 거부감을 갖고 철거를 지시해 다섯 조각상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 조각상이 크게 손상돼 보기에 흉했기 때문에 빈 시청이 원본을 없애고 새 조각상을 만들려고 했던 것이었다.


조각가 피셔가 다섯 조각상을 녹이는 일을 맡았던 것은 사실이었다. 그는 조각상의 예술적 가치를 한눈에 알아보았는데, 조각상을 녹이는 대신 ‘창고에 숨긴’ 게 아니라 ‘단순히 보관’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조각상은 수리를 거쳐 1801년 원래 자리에 돌아갈 수 있었다. 일부 ‘팩트’가 ‘소설’과 합쳐져 ‘마리아 테레지아의 분노’와 ‘심미안을 가진 조각가의 기지’라는 그럴싸한 전설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피셔가 예술적 가치를 인정해 당대 최고 권력자의 눈을 속여 숨겼다는 전설까지 생긴 조각상이었지만, 당시 빈 시민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물론 지금도 썩 유명한 관광지가 아닌 걸 보면 여전히 인기가 없는 게 분명하다. 다섯 조각상은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1873년 다시 분수에서 철거돼 벨베데레궁전 미술관으로 옮겨졌다. 지금 도너브루넨에 설치된 조각상은 복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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