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는 이탈리아 서부 테베레 강 인근에 자리 잡고 있다. 테베레 강은 해안을 따라 중간지점에서 티레니아 해로 흘러든다. 로마는 바다에서 33㎞ 정도 거리다.
로마의 첫 거주자는 시쿨리 족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토착민인 야만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이탈리아의 여러 곳에 흩어져 살았다. 그 중에서 적지 않은 자료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시쿨리로 불리는 지명이 있다. 이 부족이 이전부터 이 땅에 살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시쿨리 족은 나중에 그 지역을 차지한 사람들에게 쫓겨났다. 이들은 타렌툼에서 포세도니아에 이르기까지 연안 지역에 살았던 오이노트리아 인의 후손이었다. 이들은 고향의 관습에 따라 신에게 봉헌한 신성한 젊은이들의 무리였다. 신이 점지해준 땅에 살기 위하여 부모의 뜻에 따라 고향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오이노트리아 인은 더 좋은 땅을 찾아 리카온의 아들인 오이노트루스를 따라 스스로 고향을 떠난 아르카디아 인이었다. 그들의 고향은 당시에는 리카오니아, 지금은 아르키다아로 불리던 곳이었다.
오이노트리아 인이 이 지역을 차지하고 살고 있을 때 그들의 거주지에 합류한 이들은 펠라스기 인이었다. 과거에는 하이모니아 지금은 테살리로 불리는 곳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이모니아에서 한 동안 살았다.
펠라스기 인에 이어 팔란티움 출신의 아르카디아 인이 들어왔다. 헤르메스 신과 님프 테미스의 아들인 에반드로스를 지도자로 선택해 이주한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지금 로마 한가운데 서 있는 일곱 언덕 중 하나의 주변에 마을을 조성해 아르카디아에 있는 고향의 이름을 따 팔란티움이라고 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헤라클레스가 에리트리아에 갔다가 군대와 함께 귀향하는 길에 이탈리아에 들렀을 때 주로 그리스 인 병사 중 일부가 뒤에 남아 팔란티움 인근에 있는 다른 언덕 중 하나에 정착했다. 당시 주민들은 이곳을 사투르누스 언덕이라고 불렀다. 이들 중 대다수는 고향 엘리스가 헤라클레스와의 전쟁에서 황폐해진 뒤 그곳을 떠난 엘리스 인이었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열여섯 세대가 지난 후 알바 인은 두 장소를 합쳐 하나의 거주지로 만들었다. 주변에 성벽을 쌓고 해자를 파기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곳에는 단지 소나 양을 키우는 협곡이나 다른 목동들이 이용하는 구역만 있었다. 그 주변 땅에서는 여름에는 물론 겨울에도 많은 풀이 자랐다. 여러 강이 그곳을 적셔준 덕분이었다.
알바 인은 펠라스기 인, 아르카디아 인, 엘리스 인은 물론 안키세스와 아프로디테의 아들인 아이네아스를 따라 트로이 함락 이후 이탈리아로 건너온 트로이 인 등으로 구성된 혼합 부족이었다. 이웃 부족 중에서 또는 그 지역에 살던 옛 거주민에게서 야만적 요소가 그리스 인과 섞였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들은 과거의 이름을 모두 버리고 하나의 공통된 이름인 라틴 인으로 불리게 됐다. 당시 그 지역을 다스리던 왕 라티누스의 이름에서 따온 부족 이름이었다.
로마는 트로이 함락으로부터 432년째 되던 해에 이런 여러 부족에 의해 건설됐다. 이 식민지단의 지도자는 왕족의 쌍둥이였다. 하나는 로물루스, 하나는 레무스였다. 어머니 쪽으로 보면 아이네아스의 후손이었고, 다르다노이(트로이의 두 왕족 가문 중 하나) 계열이었다. 아버지가 누구였는지는 말하기 어렵다. 로마 인은 마르스의 아들이라고 생각했다.
둘 다 식민지단의 지도자로 남을 수는 없었다. 지휘권을 놓고 둘이 싸움을 벌여 하나가 살해됐기 때문이었다. 살아남은 로물루스는 로마의 창건자가 됐고, 이 도시에 자신의 이름을 붙였다. 알바롱가에서 식민지단으로 파견된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전쟁에서 죽어 살아남은 사람은 소수에 그쳤다. 그 수는 겨우 3천 명에 그쳤다. 말은 200마리 정도였다.
배수로를 완성하고, 성벽을 다 짓고, 가옥 공사도 마무리했을 때 로마 인은 어떤 정부 형태를 고를지를 결정해야 했다. 로물루스는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주민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할아버지는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를 미리 일러두었던 것이다. 로물루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도시는 새로 건설했습니다. 공공건물과 개인건물이 충분히 장식돼 있습니다. 하지만 도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아셔야 합니다. 외국과의 전쟁이 일어났을 때 깊은 해자와 높은 성벽이 주민들에게 방해받지 않는 안전을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한 가지는 보장하겠지요. 적이 기습 공격을 해오더라도 피해를 입지 않을 수는 있다는 것 말입니다. 내부 갈등이 국가를 괴롭힐 때 개인 저택이나 거주지는 안전한 피신처가 될 수 없습니다.
건물은 여가를 즐기고 삶의 안락함을 추구하기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는 우리를 상대로 책략을 꾸미는 이웃의 적들이 해를 끼치는 걸 막을 수는 없습니다. 책략의 대상이 된 사람이 위험으로부터 안전하다는 확신을 가질 수도 없습니다. 이런 장식 덕분에 명성을 얻은 어떤 도시도 오랫동안 번성하거나 위대하지는 못했습니다. 반대로 공공건물이나 개인건물이 부족했던 도시가 위대해지거나 번성하지 못했던 것은 아닙니다.
시작은 미미하지만 도시를 보존해서 번성하게 만드는 비결은 다른 데 있습니다. 아주 사려 깊고 올바른 시민 개개인의 삶만이 공동체를 위해 외국과의 전쟁에서는 용기와 훈련으로 얻은 무기의 힘을, 내부의 갈등에서는 시민 사이의 일치단결을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전사처럼 훈련하고 열정을 지배하는 사람이야말로 도시에 가장 훌륭한 장식입니다. 이런 사람들이야말로 공동체에 넘볼 수 없는 벽을 제공하고 개인의 삶에 안전한 피난처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용기와 정의감, 다른 모든 미덕을 가진 사람은 현명하게 고른 정부 형태의 결과입니다. 반면 비겁하고 탐욕스럽고 저열한 야심의 노예가 된 사람은 나쁜 제도의 결과물입니다.
나이가 많아 아주 풍요로운 지역에 정착한 많은 대형 식민지의 역사를 잘 아는 분에게서 ‘어떤 도시는 분열에 빠져 즉시 멸망했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또 다른 도시는 아주 짧은 기간 동안 번성한 뒤 이웃 도시의 속국이 됐다거나 풍요로운 땅을 최악의 불운과 바꿨다거나, 자유로운 시민 대신 노예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반면 인구는 적고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한 땅에 정착했지만 처음에는 계속 자유롭게 살다가 나중에는 다른 도시를 정복한 도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이처럼 작은 식민지의 성공이나 큰 식민지의 불운은 다름 아니라 정부 형태가 가져온 결과일 뿐입니다.
만약 모든 인간에게 도시를 번성하게 하는 한 가지 형태의 삶만 있다면 그것을 고르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리스는 물론 야만족에게도 다양한 형태의 정부가 있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여러 가지 정부 형태 아래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추천하는 게 세 가지 정부 형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물론 어느 것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제각각 치명적 단점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 중에서 고르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여유를 가지고 검토해 주십시오. 그리고 우리는 한 사람에 의해서, 또는 여러 사람에 의해서 통치 받아야 하는지, 아니면 법을 만들어 주민 전체에 공공이익의 보호를 맡겨야 하는지를 말씀해 주십시오.
여러분이 어떤 정부 형태를 선택하더라도 저는 여러분의 희망에 따를 준비가 돼 있습니다. 저 자신이 명령하거나 거부할 가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명예에 관한 한 저는 여러 분이 지금까지 저에게 준 것만으로도 만족합니다. 여러분은 저를 식민지단의 지도자로 지명했고, 나중에는 저의 이름을 도시에 부여했습니다. 외국과의 전쟁, 시민 갈등, 모든 것의 파괴자인 시간은 물론 어떤 종류의 불운도 저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명예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앞으로 다가올 영원한 시간 동안 제가 즐길 수 있는 명예입니다.”
로물루스가 할아버지의 조언에 따라 한 연설은 이런 내용이었다. 주민들은 서로 논의한 끝에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정부 형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조상이 최고라고 생각했고 우리에게 물려준 제도를 바꿀 생각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탁월한 지혜를 보여준 어르신들의 판단에 존경을 표시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현재 상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러 왕 아래에서 자유와 다른 민족의 지배라는 최고의 인간적 축복을 선사한 정부 형태에 불만이 없습니다.
정부 형태와 관련해서 우리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왕족 출신이라는 혈통이나 당신의 장점이라는 관점에서 어느 누구도 이 영예를 받기에 당신만큼 좋은 조건을 가진 사람은 없습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당신을 식민지 지도자로 모셔봤고, 여러 행동과 말에 나타난 당신의 탁월한 능력과 지혜를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로물루스는 이렇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여러분이 저를 왕 자리에 앉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 판단해줘서 매우 만족스럽습니다. 하지만 하늘이 우호적인 조짐을 보여주기 전에는 그 영예를 받을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동의하자 로물루스는 왕권과 관련해서 조점을 본 뒤 하루 날을 골랐다. 운명의 날 아침이 밝아오자 그는 가장 먼저 일어나 오두막에서 나갔다. 그는 맑은 하늘 아래 너른 공터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전통에 따라 희생물을 여러 신에게 차례로 바쳤다. 이어 유피테르 신에게 기도를 드린 뒤 마르스 신 등 로마의 수호신으로 선택한 다른 신에게도 기도를 드렸다. 그는 이렇게 외쳤다.
“제가 이 도시의 왕이 되는 게 신들의 즐거움이라면 하늘에 그 뜻을 나타내는 상서로운 조짐을 보여주소서.”
로물루스가 기도를 마치자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번개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번쩍 하고 내리쳤다. 그는 물론 모든 로마인은 옛날 티레니아 인과 조상들에게서 배운 대로 번개를 유피테르 신의 뜻이라고 생각했다.
조점을 보는 사람이 차지하는 자리와 최고의 자리는 동쪽을 향하는 곳이었다. 태양과 달이 행성과 항성처럼 떠오르고, 하늘의 공전이 원 운동을 시작하는 방향이기도 했다. 하늘의 공전 때문에 하늘 안에 담긴 모든 물체는 때로는 땅 아래에 때로는 땅 위에 자리를 잡게 되는 것이다.
동쪽을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북쪽을 마주하는 쪽은 왼쪽이고, 남쪽을 마주하는 쪽은 오른쪽이 된다. 북쪽은 당연히 남쪽보다 더 명예로운 방향이다. 하늘이 회전할 때 축의 기둥은 북쪽으로 솟아있고, 이른바 지구를 둘러싼 다섯 구역 중에서 북극지방이라고 불리는 곳은 항상 이곳에서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남쪽에서는 남극이라고 불리는 다른 구역이 억눌려 있고 잘 보이지 않는다.
하늘과 대기 중에 있는 이러한 표식들은 최고의 방향에 있을 때 가장 잘 보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 하면 동쪽으로 방향을 바꾼 부분들은 서쪽에 비해 우월하기 때문이다. 동쪽 부분 중에서 북쪽은 남쪽보다 더 높다. 그래서 북쪽이 최고처럼 보이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이 시대 로마 인의 조상은 티레니아 인에게서 이런 사실을 배우기도 전에 왼쪽에서 날아오는 번개를 우호적인 조짐이라고 봤다고 주장한다.
“아이네아스의 아들 아스카니우스가 메젠티우스 왕이 이끄는 티레니아 인의 경고를 받고 나중에 포위당했을 때, 그리고 도시에서 마지막 기습공격을 준비하고 있을 때 매우 곤궁한 처지에 몰려있었다. 그는 유피테르 신에게 한탄조로 기도를 드렸다. 다른 신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좋은 조짐을 내려 보내줌으로써 이번 기습공격에 용기를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맑은 하늘이었는데도 왼쪽d서 번개가 번쩍 하고 쳤다. 전투에서 성공적인 결과가 나왔을 때 후손은 이 조짐을 우호적인 것이었다고 해석했다.”
로물루스는 이런 경로를 통해 신의 재가를 받게 되자 서둘러 민회를 소집했다. 그리고 방금 나타난 조짐을 설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저는 방금 유피테르 등 여러 신의 뜻에 따라 왕으로 선택됐습니다. 앞으로 로마의 모든 왕은 이런 방식으로 뽑게 될 것입니다. 누구도 신이 재가하기 전에는 왕 자리나 행정관 자리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로마 인은 조점과 관련한 이 관습을 이후 오랫동안 지켰다. 도시가 왕에 의해 다스려질 때만이 아니라 왕정을 몰아내고 집정관, 법무관 등 다른 행정관을 선거로 뽑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이런 관습은 형식만 남아있을 뿐 그다지 존중받지 못한다.
행정관 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은 문 밖에서 밤을 보낸다. 새벽이 되면 열린 하늘 아래에서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는 조점관이 참석한 가운데 기도를 드린다. 그는 또 왼쪽에서 번쩍이는 번개를 신의 재가라고 선포한다. 때로는 아무런 번개가 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선포한다.
어떤 행정관은 보고를 통해 조짐을 확인한 뒤 이전 행정관으로부터 권력을 인수받으러 간다. 이들 중 일부는 그들의 행동을 금지하거나 반대하는 것으로 보이는 조짐이 없으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행정관은 때로는 신의 뜻을 거스르면서까지 임의로 행동한다. 그들은 폭력에 의존해서 행정권을 인수받기보다는 빼앗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많은 로마 병사가 육지에서 목숨을 잃었고, 많은 군함이 바다에서 병사들을 태운 채 바다에 가라앉았다. 그리고 다른 엄청나게 두려운 정반대의 일이 로마에 떨어지기도 했다. 때로는 외국과의 전쟁을 통해, 때로는 국내의 갈등을 통해서였다. 가장 분명하고 큰 사례는 최근 같은 나이의 어떤 장군에게도 뒤지지 않는 리키니우스 크라수스가 하늘의 뜻을 어기고 수많은 조짐을 무시하면서까지 군대를 이끌고 파르타이아와 전쟁에 나섰다가 원정을 망치고 만 일이었다. 요즘 사람들 사이에 횡행하는 신을 모욕하는 풍토를 다 밝히자면 너무 긴 이야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