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지구 핀카스 시나고그 인근에는 너른 광장이 보인다. 이름부터 미리 밝히면 얀팔라흐광장이다. 우리나라 관광객 중에서 얀 팔라흐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옛소련이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좌절시키려고 체코를 침공했을 때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분신자살한 대학생이었다. 겨우 스물한 살이던 팔라흐는 바츨라프광장에서 몸에 기름을 끼얹고 스스로 불을 질러 총칼이 무서워 침묵하던 체코인의 양심에 깊은 울림을 전했다. 그의 분신은 20년 뒤 벨벳혁명의 토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곳이 얀팔라흐광장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것은 그가 다녔던 대학교가 바로 이곳이 있기 때문이다. 핀카스 시나고그에서 광장에 들어가기 직전 왼쪽에 중후한 회색 건물이 보인다. 얀 팔라흐가 죽기 전까지 다녔던 카를대학교 예술대 건물이다. 그가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걸 기념하기 위해 학교 건물 정면 한쪽 벽에는 데스마스크가 붙어 있다.
카를대학교 예술대는 체코 역사에 큰 흔적을 남긴 여러 위인이 강의한 곳이다. 15세기에 종교개혁을 설파한 얀 후스, 1918년 제1체코슬로바키아 공화국 초대 대통령 얀 마사릭, 상대성이론을 주창한 이론물리학자 알버트 아인슈타인 같은 사람이 여기에서 강의했다. 세 사람의 공통점은 명성을 얻기 전에 대학교수였다는 사실이다.
얀팔라흐광장은 원래는 마구간이라는 뜻인 레쥬시테광장으로 불리다가 나중에는 지타광장, 스메타나광장, 모차르트플라츠 등으로 불렸다. 1989년 벨벳혁명으로 체코에 민주정부가 들어선 이후 얀팔라흐광장으로 바뀌었다. 대학교 측은 예술대 도서관에도 그의 이름을 붙여 얀팔라흐도서관이라고 부른다.
얀팔르흐광장 북쪽 방향에는 아주 예쁘장한 네오르네상스 건축물인 루돌피넘이 서 있다. 음악과 미술 관련 시설인 루돌피넘은 체코에 민족주의 바람이 불던 19세기 말에 완성됐다. 문화예술계에서 독일풍을 몰아내고 체코의 정신과 영혼을 담은 예술을 하자는 게 당시 시대 분위기였다. 이 시대에 만들어진 건물은 음악 공연장인 루돌피넘 외에 오페라를 공연하는 국립극장, 그리고 국립박물관이었다. 한마디로 ‘3대 민족주의 건물’이라고 부를 수 있다.
루돌피넘이라는 이름은 ‘루돌프의 집’이라는 뜻이다. 여기서 루돌프는 당시 체코를 지배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황제 프란츠 요제프와 시씨로 유명한 황후 엘리자베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었다. 민족주의를 상징하는 건물을 지으면서 제국 황태자의 이름을 붙였다는 걸 이해하기 쉽지 않지만, 지금이 아니라 당시 상황에서 일을 살펴봐야 한다.
루돌피넘을 건설하려면 황제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 체코인들이 독단적으로 추진할 수는 없었고 한마디로 제국의 눈치를 봐야 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건물이 완성됐을 때 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루돌프의 이름을 붙이는 정도의 양보는 할 수밖에 없었다. 체코가 제국으로부터 독립하고도 100년이 넘은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루돌피넘이라고 불리는 걸 보면 체코인들은 루돌피넘의 이름을 굳이 바꿀 생각은 없는 모양이다.
루돌피넘 앞에는 교향곡 ‘신세계로부터’로 유명한 작곡가 안토닌 드보르작의 동상이 서 있다. 프라하 출신인 베드르지흐 스메타나와 함께 19세기 민족주의 작곡가로 손꼽히는 드보르작은 오른손을 가슴에 올린 채 루돌피넘을 바라본다.
드보르작 동상이 루돌피넘을 바라보는 위치에 선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1896년 1월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창단 기념 음악회가 이곳에서 열렸는데, 드보르작이 1893년 미국에서 작곡해 초연했던 ‘신세계로부터’를 이날 체코 땅에서는 처음 연주했다. 지휘는 당연히 드보르작이 맡았다. 이날 행사를 기념하는 뜻에서 루돌피넘의 메인 공연장은 드보르작홀이라고 부른다.
국립극장이 ‘나의 조국’을 작곡했고 국리극장 개관 연주회를 연 스메타나의 본거지라면, 루돌피넘은 드보르작의 홈그라운드라고 볼 수 있다. 프라하는 1832년 3월 2일에 태어난 스메타나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봄인 5월에 프라하국제음악축제를 연다. 가을인 9월에는 드보르작을 기념하기 위해 드보르작 프라하 페스티벌을 개최한다.
드보르작은 프라하 북동쪽 외곽인 트르제보라디체에서 정육점 주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음악에 소질을 보인 그는 열여섯 살이던 1857년 프라하로 갔고, 스메타나가 지휘자로 활동하던 국립오케스트라에 비올라 연주자로 취직했다.
드보르작은 급기야 체코에서 모든 분야를 통틀어 가장 존경받는 인물이 됐고, 1901년 그의 환갑잔치는 국가적 행사로 치러졌다. 나중에는 프란츠 요제프 황제로부터 귀족 작위를 하사받아 리터 폰 드보르작이 됐다.
드보르작은 1904년 봄에 열릴 예정이던 제1회 체코국제음악제를 앞두고 병에 걸려 침대에 드러누웠다. 그가 투병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체코 전역에서 모인 76개 합창단 단원 1만 2천 명이 국제음악제에서 드보르작의 오라토리오 ‘성 루드밀라’를 함께 불러 그의 쾌유를 빌었다.
드보르작은 병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5월 1일 눈을 감았다. 그의 장례식은 카를로바 거리에 있는 옛 예수회 수도원인 클레멘티눔에서 거행됐는데, 정원에 놓인 그의 관에 작별 인사를 건네기 위해 수천 명이 방문했다.
루돌피넘 정면은 엄청나게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고 아기자기하고 예쁜 인상을 준다.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단정하게 갈라 묶은 소녀 같다는 느낌이다. 여러 사정 때문에 내부를 둘러보지 않았는데, 내부는 외관과 꽤 다르다고 한다. 하루에 한 차례 내부 가이드투어를 진행하지만 영어나 체코어를 사용하는 데다 시간이 정해져 있고 예약이 필수여서 불편할 수밖에 없다. 말을 못 알아들어도 단순히 내부 분위기를 살펴보려면 참가해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루돌피넘은 전문 음악당이지만 이곳에는 연주 홀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94년에는 쿤스탈레라는 이름의 미술관도 생겨 연중 기획전을 진행한다. 또 커피를 마시거나 식사를 하면서 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는 예쁜 식당인 ‘카페 루돌피넘’도 있다.
어느 덧 시간은 11시를 앞두고 있다. 꽤 걸은 탓에 지친 데다 목도 말라 루돌피넘 앞 계단에 앉아 가방에서 물과 빵을 꺼낸다. 전날 슈퍼마켓에서 미리 사 둔 음식이다. 다행히 햇살이 좋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아 따뜻해서 계단에 앉아 쉬어도 전혀 춥지 않다. 외국에 혼자 여행 가서 중요한 건물 계단이나 난간에 앉아 행인을 구경하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이럴 때면 내가 낯선 외국인인 게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이방인인 것처럼 보일 때도 있다.
30분 정도 충분하게 휴식하고 다시 엉덩이를 든다. 이번에는 마네스 다리 쪽으로 간다. 다리 주변과 아래에는 푸른 숲이 꾸며졌다. 미니 카페도 보인다. 강 건너편도 숲과 주택뿐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어렵고 대부분 한가로이 산책을 즐기는 현지인이다. 강을 바라보는 벤치에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과자, 빵을 먹으면서 ‘멍 때리기’에 열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작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사서 벤치에 앉아 본다. 뜻밖에 주변의 경치가 꽤 아름답고 정갈하다는 걸 깨닫는다. 멀리 보이는 페트린 언덕을 배경으로 푸른 고목 사이에 자리를 잡은 빨간 지붕의 고택은 상당히 운치가 넘친다.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성 풍경과 마네스 다리 앞의 강변 벤치에서 올려다보는 프라하성 전경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을 준다. 이곳 경치가 조금 더 편하고 부담이 덜 하다는 게 나의 생각이다. 이런 장소라면 ‘많은 명소를 돌아다녀야 한다’는 여행의 강박에서 벗어나 편안하게 하루를 보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 더 보는 게 무어 그리 중요하고, 하나 덜 보는 게 무어 그리 아까우랴? 여행은 고생하러 가는 게 아니라 내가 사는 곳과는 다른 문화, 풍경, 생활을 맛보고 즐기러 가는 것이 아닐까?
마네스 다리 앞의 벤치에서 한참이나 강과 사람 구경을 즐기다 다리를 건너간다. 다른 길로 빠지지 않고 계속 가면 빨간 트램이 달리는 레텐스카 거리로 들어간다. 다음 행선지는 이 거리를 따라 100m 정도 걷다 왼쪽으로 굽어지는 지점에 있는 곳이다. 높은 미색 담장이 보이고 담장 너머로 웅장한 프라하성이 나타난다. 미색 담장 아래에 조그마한 반원형 나무문이 달려 있다. 이곳은 발트슈타인궁전이다. 영어로는 발렌슈타인 팰리스, 체코어로는 발트슈타인스키 팔락이다.
이곳은 보헤미아의 프로테스탄트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출세를 위해 가톨릭으로 개종한 알브레흐트 발트슈타인이 건설한 저택이었다. 그는 보헤미아의 프로테스탄트와 오스트리아제국의 가톨릭이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 1621년 백산전투에서 조국을 버리고 오스트리아제국 편에 섰다. 오스트리아제국이 승리하자 공로를 인정받아 막대한 토지와 돈을 하사받았는데, 그 재산으로 지은 궁전이 바로 이곳이었다. 한마디로 발트슈타인궁전은 보헤미아인의 피와 눈물로 지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발트슈타인궁전에는 외국인 관광객이 꽤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 한국인을 찾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 한국인 단체관광객은 이곳을 들르지 않는다. 나중에 이곳이 어떤 곳인지를 알게 된다면 분명히 후회할 텐데 말이다.
발트슈타인궁전에서 가장 인상적인 공간은 멋진 분수를 가진 대형 연못이 있는 발트슈타인정원과 대형 회랑인 ‘살라 테레나’다. 프라하성을 올려다보며 사진을 찍으면 그야말로 ‘인생 샷’을 건질 수 있는 ‘헤라클레스 분수’는 아름다운 장소다.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다양한 신과 인간의 조각상을 정원에 배치한 살라 테레나는 그야말로 그리스 신전 같은 느낌을 준다. 큼지막한 세 개의 아치 모양 기둥 뒤에서 신들이 모여 신의 음식 암브로시아와 신의 음료수 넥타르를 즐기며 깔깔거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발트슈타인이 프라하성이 바로 보이는 이곳에 대형 궁전을 지은 것은 권력과 재산을 과시하기 위해서였다. 프라하성에서 살았던 역대 왕, 황제 못지않게 그의 권력도 대단하다는 걸 프라하 사람들에게 보여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정원에서 프라하성을 바라보면서 마치 왕이나 황제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국을 배반해 동포로부터 반역자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는 안타깝게도(?) 나중에는 오스트리아 제국 황제에게서 반역자라는 죄명을 뒤집어쓰고 암살당하고 말았다. 이것을 인과응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토사구팽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슬픈 역사를 담았지만 정말 아름다운 발트슈타인궁전에서 나와 클라로프거리의 말로스트란스카 정류장에서 32번 트램을 탄다. 이제 귀여운 교통수단을 이용해 교외로 나갈 작정이다. 우리나라 관광객은 물론 외국인 관광객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미리 행선지를 밝히자면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맥주양조장이 있는 브르제브노프수도원이다.
22번 트램을 타고 달리는 코스는 제법 재미있다. 굳이 행선지를 정하지 않더라도 이 트램을 타면 프라하의 중산층이 사는 주거지역의 분위기를 제대로 느껴 볼 수 있다.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가는 도중에 내려 현지인이 찾는 허름한 식당이나 카페에 들어가 음식을 먹거나 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관광지가 아니니 가격이 그렇게 비싸지도 않다. 당연히 맛은 전통의 맛 그대로다.
말로스트란스카 정류장에서 브르제브노프수도원 정류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상황에 따라 15~20분 정도다. 정류장에서 내리면 한쪽에는 주택들이 줄을 섰고, 반대쪽에는 숲이 우거졌다. 목적지를 찾으려면 숲으로 가야 한다. 이곳에는 아담한 크기의 호수는 물론 잔디밭과 넓은 숲이 있어 가족끼리 나들이하기에 좋은 장소다. 아이들은 마음껏 공놀이를 할 수 있고, 어른들은 편안하게 낮잠을 자거나 책을 읽을 수 있다. 그래서 추운 겨울만 빼고 봄, 여름, 가을에는 많은 사람이 이곳에 소풍을 간다.
브르제브노프수도원은 10세기 프라하의 제2대 주교였던 성 보이테쉬가 보헤미아 국왕 볼레슬라프 2세의 도움을 받아 만든 수도원이다. 993년에 만든 것이라고 하니 역사가 1천 년을 넘는 곳이다. 성 보이테쉬는 수도원을 차릴 때 수도사들이 음료수로 이용할 수 있도록 맥주 양조장도 같이 만들었다. 기록으로 볼 경우 보헤미아에서 가장 오래된 양조장이었다.
브르제브노프수도원 양조장은 15세기 후스전쟁 때 파괴돼 버렸다. 양조장이 되살아난 것은 21세기 들어서였다. ‘브르제브노프수도원 양조장’이라는 회사가 생겨 맥주를 다시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지금 이곳에서는 다양한 제품의 맥주를 판매한다. 부산 수영구 망미동에 ‘F1963’이라는 이색적인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2016년 이곳에 이색적인 맥줏집이 문을 열었다. 전통 체코 맥주를 직접 만들어 파는 ‘프라하 993’이었다. 눈치를 챘겠지만 993이라는 숫자는 브르제브노프수도원과 양조장 개설연도다. 부산의 맥줏집은 프라하의 양조장이 개설한 곳이다.
정류장에서 길을 건너 산책로 같은 숲길을 따라 걷는다. 오른쪽에는 녹조인지, 이끼인지 알 수 없는 녹색으로 덮인 보테즈카 연못이 나타난다. 수도원 양조장은 보테즈카에서 가져간 물로 맥주를 만들었을 거라는 게 역사학자들의 추정이다. 지금 연못 주변은 단정하게 산책로로 정비됐고 벤치가 곳곳에 설치돼 산책을 즐기거나 느긋하게 휴식하기에 딱 좋아 보인다.
연못을 지나 수도원 정문으로 들어가자마자 나타난 눈부신 풍경에 “와!” 하는 감탄이 터져 나온다. 정면에 우뚝 선 성당으로 이어지는 길 양쪽으로 늘어선 은행나무는 노랗게 물들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성당 앞 정원을 뒤덮은 푸른 잔디밭 곳곳에 은행잎이 수북이 쌓여 절묘한 색의 조화를 이룬다. 물론 가을이라서 절정의 색감을 과시하는 것이겠지만 봄이나 여름에 오더라도 아름다운 풍경은 변함이 없을 것 같다.
은행나무 가로수 뒤에는 양쪽으로 양조장과 맥줏집이 세워져 있다. 정말 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수도원, 성당과 나란히 선 맥줏집이라니! 날씨가 좋을 경우 바깥에서 술을 마시거나 음식을 들 수 있도록 잔디밭에는 나무 테이블이 설치됐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양조장과 맥줏집은 문을 열지 않았다. 아직 열두 시도 되지 않았는데 문을 여는 술집은 없는 게 당연한 일이다.
성당 안에서 음악 소리가 흘러나온다. 문이 열려 있기에 들어가 본다. 안에서 조용한 미사가 진행된다. 가만히 듣다 보니 분위기가 침울하고 슬프게 느껴진다. 알고 보니 이날 진행된 미사는 장례미사다. 어떻게 하다 보니 체코 프라하에 가서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의 장례미사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도중에 나가는 게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자리를 끝까지 지켰다. 그리고 리무진에 실려 나가는 망자의 관에 애도를 표하면서 잠시 묵념했다. 낯선 동양인의 얼굴을 힐끔 쳐다보는 성당 관계자와 망자 친척들의 시선에서 다양한 감정이 느껴진다.
브르제브노프수도원 주변에는 공원과 정원이 많다. 잔디밭 한쪽에서 재잘거리거나 깔깔대는 어린이들의 웃음소리가 크게 들린다. 가을을 맞아 인근 유치원에서 나들이를 나온 모양이다. 아이들의 목소리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기분 좋게 만들어 준다.
성 보이테쉬가 살았다는 작은 집인 파빌론 보이테쉬를 중심으로 주변은 모두 공원, 정원이다. 어린이들은 파빌로 보이테쉬 맞은편의 마르케스트카 정원에 앉아 도시락과 간식을 꺼내 놓고 먹는 중이다. 돗자리 옆에 놓은 바구니에는 빨갛게 잘 익은 가을사과가 보인다. 어릴 때 시골에 살던 이모 댁 근처에 사과 과수원이 있었는데, 가을에 그곳을 지날 때면 몰래 하나씩 따먹곤 했다. 덜 익었을 때 미리 따지 않고 나무에 매달려 완숙한 가을사과는 얼마나 맛있던가!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아니 벌어졌다기보다는 눈앞에 나타났다. 마르케스트카정원 곳곳에 사과나무가 즐비했다. 곳곳에 빨간 잎 같은 게 달린 나무가 수없이 보이는데 자세히 보니 빨갛게 익은 열매가 달린 사과나무다. 나무 아래에는 떨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햇사과가 수북했다. 새 같은 동물이 베어 먹었는지 한쪽이 잘려 나간 사과도 있지만 오늘 아침에 떨어진 것처럼 깨끗한 사과도 있다.
다시 가만히 보니 어린이들이 놀던 곳의 바구니에 든 사과는 여기에서 주운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도 사과나무 아래에 떨어진 빨간 사과 하나를 줍는다. 그리고 휴지를 꺼내 깨끗이 닦은 뒤 입으로 깨문다. 이야! 기막힌 맛이다. 달콤하고 새콤한 데다 즙이 넘쳐난다. 사과를 수확하려고 전문적으로 키우는 게 아닌지 사과 알은 작고 모양도 엉망이다. 하지만 맛 하나만큼은 대단하다.
귤만 한 크기가 너무 작아 한 알로는 아쉬워 하나를 더 줍는다. 역시 입안에서 즙이 넘쳐 나는 게 정말 맛있다. 다른 곳을 돌아다니다 배가 고파지면 먹을 요량으로 세 개를 더 주워 배낭에 넣는다. 혹시 수도원 관계자가 보는 것은 아닌지 슬그머니 눈치를 살피지만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수도원 주변 정원에는 유치원 어린이들 말고는 아무도 없다. 나도 어린이들처럼 배낭을 풀고 따뜻한 햇볕을 쬐면서 잔디에 드러눕는다. ‘봄볕에는 며느리를 내 놓고 가을볕에는 딸을 내 놓는다’더니 가을 햇살은 정말 따사하고 고소하다. 얼굴은 조금 타겠지만 그게 어디 대수이랴! 여행 나와서 얼굴이 약간 그을면 오히려 더 좋지 않겠는가?
프라하 외곽인 데다 도로에서 꽤 떨어진 깊은 숲속의 정원이라서 주변은 정말 조용하다. 가끔 들리는 교회 종소리와 어린이들의 웃음소리 그리고 숲에서 흘러나오는 새소리 말고는 어떤 인위적인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몸과 마음은 동시에 편안하게 풀어진다. 한국에서 매일 아침에 일어나 회사에 갈 생각에 스트레스를 받을 때에는 절대 경험할 수 없는 마음의 평화이며 몸의 안식이다. 유럽 여행을 자주 다녔지만 10월 가을여행은 드물었다. 우리나라에서 단풍놀이를 가는 게 가을여행의 전부인 줄 알았는데 유럽의 가을여행도 이렇게 낭만적이고 안온할 줄은 미처 몰랐다.
30분 가까이 잔디에 누워 따스한 햇살을 즐기다 천천히 일어난다. 이제 수도원을 조금 더 둘러보고 프라하 시내로 돌아갈 작정이다. 정원 가운데에는 미술관이 보이고 한쪽 끝에는 ‘겟세마네 동산’이라는 제목의 목제 조각상이 서 있다. 겟세마네 동산은 예수가 제자를 데리고 가서 기도한 곳이다. 그는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날 밤에도 이곳에서 피땀을 흘리며 최후의 기도를 드렸다. 그런 장면을 묘사해서 그런 것인지 조각상은 매우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예수의 고뇌와 열두 사도의 고통을 극적으로 느낄 수 있다고 말하면 너무 ‘잘난 척하는’ 것일까?
정원을 둘러보다 샛길을 통해 내려간다. 수종을 알 수 없는 나무가 숲 터널을 이룬 산책로가 보인다. 한쪽 끝에는 건물로 들어가는 문이 달렸고, 반대쪽 끝은 산책로로 이어진다. 산책로 쪽에서 이제 겨우 네댓 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이 두 명이 사과를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걸어온다. 처음에는 씩씩하게 걸어오더니 4~5m 앞에서 내 얼굴을 유심히 살펴보다 무서웠는지 바구니를 내팽개치고 등을 돌려 달아난다. 아마 외국인을 자주 보지 못한 주변 지역 어린이인 모양이다. 한 어린이의 머리에 귀여운 고깔모자가 달렸는데 얼마나 급히 달아났던지 모자가 떨어진 걸 주워 갈 생각도 하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