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성모마리아교회’에서 나와 길을 건너 골목으로 들어간다. 교회 근처에는 우리나라에도 유명한 ‘레넌벽’이 있다. 이곳은 오늘은 그냥 지나칠 작정이다. 지금 가려는 곳은 캄파섬과 스트르젤레츠키섬이다.
두 섬으로 가는 길이 처음 가는 사람에게는 다소 복잡하지만 알고 나면 어렵지 않다. 모르더라도 가다 보면 어떻게든 캄파로 갈 수 있다. 교회 맞은편 하란토바거리로 들어가 노스티초바거리를 따라 쭉 가면 도랑처럼 생긴 하천이 나온다. 사실 이곳은 하천이 아니라 운하다. 운하를 건너면 곧바로 캄파가 나온다.
우리나라 관광객은 캄파섬과 스트르젤레츠키섬이 어떤 곳인지 잘 모른다. 단체관광객은 이곳을 들르는 일이 없고, 개인 관광객도 여기를 잘 찾지 않는다. 하지만 두 곳은 프라하에 가면 꼭 방문할 가치가 있는 곳이다.
유럽 여러 나라의 수도들과는 달리 프라하 시내에는 숲을 갖춘 현대식 공원이 드물다. 근세와 현대 들어 개발사업의 광풍에 휘말리지 않고 중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시에 사는 주민들로서는 공원이 많은 게 좋겠지만 현대식 공원을 만들려고 옛 건축물을 억지로 뜯어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블타바강에 섬이 많다는 것은 프라하로서는 그나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섬에 숲이 우거져 공원 역할을 맡아 주기 때문이다. 섬은 한 두 개가 아니다. ‘고요한 오아시스’, ‘프라하의 베니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캄파, 왕의 말을 키우던 목초지였으며 19세기까지만 해도 금이 나왔다는 치사르스카 로우카, 과거 유대인 공동체의 땅이었던 데츠키, 14세기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렐 4세 시대에 궁사들이 활쏘기 연습을 했던 스트르젤레츠키, 한때 온천이 있었다는 슬로반스키.
섬들은 모두 기본적으로는 공원이지만 세세한 역할은 조금씩 다르다. 스트르젤레츠키에는 숲과 식당, 카페가 즐비하다. 데츠키는 공원과 축구장 등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슬로반스키에는 공원과 문화센터가 있다. 베드르지흐 스메타나가 작곡한 교향시 ‘나의 조국’을 처음 공연한 곳은 슬로반스키의 조핀궁전이었다.
블타바강의 여러 섬 중에서 프라하 사람에게서 가장 사랑을 받는 곳은 바로 캄파와 스트르젤레츠키다. 이곳에서는 프라하성, 성비투스대성당, 카를교를 모두 볼 수 있다. 국립극장도 한눈에 들어온다. 프라하에서 가장 중요한 명소를 두 곳에서는 다 볼 수 있는 셈이다. 프라하 어디에도 이렇게 전망이 빼어난 장소는 없다.
캄파와 스트르젤레츠키가 자랑하는 것은 프라하 최고의 전망만이 아니다. 이곳은 일상에서 지친 심신을 어루만지는 데에도 최적의 장소다. 책 한 권, 물 한 병만 들고 가면 섬의 작은 공원에 드러누워 따뜻한 햇살을 즐길 수 있다. 잠시 고개를 들면 블타바강 건너편에서 실루엣처럼 아름다운 구시가지의 탑이 섬에서 누가 일광욕을 즐기는지 알아보려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걸 느끼게 된다.
캄파섬은 대충 잡아서 카를교와 레기온다리 사이에 있는 곳이다. 두 다리 사이는 정말 짧아서, 다른 말로 하자면 캄파는 너무 좁아서 10분이면 끝에서 끝까지 걸을 수 있다. 그러나 재미있는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넘쳐나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루 종일 머무르며 즐겨도 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놀랄 만큼 환상적인 곳이다.
캄파는 원래 지대가 낮은 황무지였다. 처음에는 들판과 포도밭, 그리고 물레방아뿐이었다. 게다가 이곳은 처음에는 섬이 아니었다. 이곳이 섬으로 바뀐 것은 캄파와 레서 타운 사이에 작은 운하를 판 이후부터였다. ‘악마의 개울’이라는 별명을 가진 체르토브카 운하였다. 운하는 12세기 무렵 캄파를 소유했던 몰타 기사단이 물레방아를 돌릴 물을 끌어들이기 위해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운하 때문에 원래 섬이 아니었던 캄파는 섬으로 변하게 됐다.
캄파에 가면 먼저 작은 광장인 나 캄페를 만나게 된다. 광장 가운데에는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여름에는 더위에 지친 관광객을 위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는 공간이다. 광장 주변은 호텔, 식당 등의 여러 건물이 에워싸고 있다. 건물 벽은 아주 귀엽고 아기자기한 색으로 칠해져 있다. 어떻게 보면 영화 촬영장 같기도 하고, 달리 보면 중세 마을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프랑스 파리와 달리 프라하 시내에서는 야외에 테이블을 설치할 수 있는 식당이 매우 드물다. 하지만 나 캄페의 식당과 카페, 술집은 다르다. 여름이 되면 테이블을 야외에 펼쳐 놓고 손님들을 유혹한다. 광장 가운데의 나무들은 기다렸다는 듯 시원하게 그늘을 드리워 준다. 작은 카페나 식당의 창가에 앉아 갓 내린 향긋한 커피와 금방 구운 따뜻한 빵 냄새에 흠뻑 취하다 보면 어느 새 300~500년 전의 고풍스러운 중세 마을에 앉아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나 캄파를 지나면 너른 숲 공원이 나타난다. 왼쪽으로는 블타바강이 흐르고 오른쪽으로는 나무가 우거진 숲이다. 숲 너머는 주택이 즐비한 말라 스트라나 지역이다. 많은 현지인이 이곳에서 산책이나 조깅을 즐긴다. 외국인 관광객은 그렇게 많지 않다.
공원 한가운데에는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장소인 캄파박물관이 있다. 원래는 프라하에서 처음 세워진 물레방아가 있던 곳이었다. 캄파박물관은 공산정권 시절에 외국으로 망명을 갔던 체코 출신의 미술품 수집가 메다 믈라드코바가 남편과 함께 평생 수집한 미술품을 체코 정부에 기증해 만들었다.
캄파박물관은 주로 20세기 체코 출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한다. 화가 프란티섹 쿠프카와 조각가 오토 구트코론트의 작품이 주류를 이룬다. 미술관 정원에는 거대한 빨간 개, 초대형 의자 등 눈길을 끄는 이색 조형물이 설치돼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정원에는 주로 규모가 큰 조형물이, 실내에는 그림이나 작은 조형물이 전시돼 있다.
캄파박물관에서 빼먹을 수 없는 작품은 쿠프카의 추상화 ‘성’이다. 국제통화기금(IMF) 간부이던 남편을 따라 미국 워싱턴에 간 메다는 이 작품을 사려고 집을 팔기도 했다.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하는 이 작품 가격은 무려 100억 원이었다.
캄파 박물관에서 가장 흥미롭고 인상적인 조각상은 박물관 바깥에 설치된 ‘아기들’이다. 21세기 체코 최고의 조각가로 손꼽히는 다빗 체르니가 제작한 작품이다. 그는 ‘매달린 사람’, ‘죽은 말을 탄 성 바츨라프’, ‘오줌 싸는 사람들’ 등의 많은 화제작을 만들어 유명해진 예술가다.
‘아기들’은 바닥을 기어 다니는 초대형 유아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캄파박물관에 설치된 것과 비슷한 작품이 세계 여러 도시에도 설치돼 있다. 어린이들은 ‘아기들’에 올라가 장난을 치거나 사진을 찍는다. 얼마나 많은 어린이가 올라갔는지 등이 벗겨져 노랗게 변했다. 하지만 아무도 어린이들을 말리지 않는다. 박물관 측도 마찬가지다.
캄파박물관 뒤편 강변에도 아주 귀엽고 이색적인 조각상이 있다. ‘프라하의 노란 펭귄들’이다. 이탈리아의 ‘크래킹아트그룹’이라는 예술단체가 설치한 것이다. 펭귄 조각 34마리는 재활용한 플라스틱으로 만들었다. 인간이 버리는 플라스틱 쓰레기 때문에 고통을 겪는 야생동물의 수난을 상징하는 조각이다. 밤에는 경관조명으로 빛을 내기 때문에 낮에 보는 것과는 꽤 다른 분위기를 연출한다.
‘아기들’과 ‘프라하의 노란 펭귄들’ 외에도 캄파 곳곳에서 조각상을 볼 수 있다. 1891년에 만든 요제프 도보르브스키 기념상, 1960년에 만든 ‘포도를 든 소녀’, 1965년 제작한 ‘앉아 있는 소녀’, 2009년에 제작한 ‘화합의 동상’ 등이다.
캄파에 있는 시민문화회관 외벽은 온통 그라피티로 덮였다. 젊은이들이 레넌벽에서 스트레이 페인트로 장난을 칠 수 없게 되자 이곳으로 옮겨 온 모양이다. 그런데 그라피티는 지저분하게 느껴지지 않고 주변 분위기와 잘 어울려 신비한 분위기를 풍긴다. 회관 맞은편의 블타바강 변에 늘어선 은행나무,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 이곳이 인간세상이 아니라 묘한 요정세상이라도 되는 느낌을 풍긴다.
캄파섬 끝의 레기온다리로 올라간다. 이 다리를 건너면 보헤미아 민족주의 예술의 산실인 나로드니 디발도, 즉 국립극장이 나온다. 19세기 체코에 민족주의 바람이 불 때 전국에서 모금 운동을 실시해 모은 돈으로 만든 공연장이다. 여러 노선의 트램이 다리를 건너다닌다. 빨간색 외관을 가진 트램이 국립극장을 배경으로 다리를 건너는 모습은 꽤 깊은 인상을 남긴다.
레기온 다리 가운데쯤 되는 곳에는 승강기가 설치돼 있다. 승강기를 타고 아래로 내려가면 프라하 현지인의 조용한 휴식처인 스트르젤레츠키섬이다. 섬은 레기온다리를 중간지점으로 삼아 아래와 위로 나뉘어 있다. 섬의 끝에서 끝까지 한 바퀴 걷는 데 20분 정도 걸리니 그렇게 큰 섬은 아니다. 다리 위나 다른 곳에서 섬을 보면 시시하게 여겨질지 모르지만 실제로 섬에 내려가 보면 뜻밖에 흥미로운 곳이라는 걸 알게 된다.
스트르젤레츠키섬에서 바라보는 캄파섬과 주변 풍경도 상당히 멋지다. 캄파섬은 블타바강 변에 있지만 이 섬은 강 가운데에 있어 캄파섬과는 다른 분위기를 풍긴다. 섬 남쪽 부분에는 카페와 스포츠 시설이 마련됐다. 북쪽은 단순한 공원이다. 북쪽 부분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잔디에 드러눕거나 벤치에 앉아 쉬고 있다.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나들이 나온 젊은 엄마도 보인다.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 혼자 조깅에 심취한 청년, 섬의 끝부분 강변에 앉아 대화를 나누는 모녀도 있다.
섬의 구시가지 광장 쪽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 무슨 일인가 싶어 가본다.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 할아버지가 벤치에 앉았는데 주변에 수달이 모였다. 체코어로 물어볼 수 없어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아마 할아버지가 늘 이곳에 와서 수달에게 먹이를 주는 것 같다. 그래서 수달이 할아버지를 보고 먹이를 얻어먹기 위해 할아버지 주변에 온 것인 모양이다.
‘간이 커진’ 수달들은 할아버지 곁을 떠나 섬을 둘러보는 산책객들을 졸졸 따라다닌다. 먹을거리를 달라고 조르는 모양새다. 여기에 오면 수달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미리 먹을거리를 챙겨 와 수달에게 나눠 준다. 그 사람 주변으로 수달이 우르르 몰리는 건 인지상정이 아니라 ‘수달지상정’이다. 수달은 사람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다. 간이 더 큰 녀석은 아예 섬 한가운데로 올라가 배를 가고 벌러덩 드러눕는다. 사진을 찍으려고 사람이 다가가도 달아나거나 두려움을 느끼기는커녕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고개를 돌리기까지 한다. 블타바강에 수달이 산다는 것은 그만큼 수질이 좋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섬 주변으로 블타바강에는 크고 작은 배가 돌아다닌다. 사람이 페달을 밟아 움직이는 패들보트도 보이고, 수십 명이 탄 요트도 여러 채다. 배에서 섬을 내려다보는 풍경도 이색적이겠지만 섬에서 올려다보는 배와 주변 풍경도 평온하고 아름답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