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광장 한가운데에 서면 인상적인 풍경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건물 사이에서 하늘로 뾰족하게 솟아나온 교회의 두 종탑이다. 너무 확실하고 선명하게 도드라지기 때문에 하루 종일 바닥만 보고 걷는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사람들은 두 종탑을 두고 ‘빨간 지붕의 백탑(百塔) 도시인 프라하의 분위기를 가장 잘 보여 준다’고 평가한다. 일부 관광객은 두 종탑을 보면서 ‘마법의 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생각을 염두에 두고 다시 종탑을 바라보니 마법사가 두 탑의 유리창 사이로 머리를 쑥 내밀고 광장을 가득 메운 관광객을 노려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든다.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 디즈니랜드의 성을 지을 때 두 종탑을 참고로 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신비하고 비밀스러운 분위기가 풍기는 곳이라는 뜻일 것이다.
두 종탑은 이름까지 매우 특이하다. 이름을 알고 나면 깜짝 놀랄지도 모른다. 왼쪽 종탑은 아담, 오른쪽 종탑은 이브다.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에서 이름을 딴 것이다. 아담은 남성을, 이브는 여성을 상징한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으로 이뤄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뜻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두 탑의 높이는 80m다. 정확하게는 아담이 이브보다 1m 더 높다. 다만 멀리서 보면 똑같이 느껴질 뿐이다. 일행에게 이름 이야기를 해 주니 모두 깜짝 놀란다.
종탑이 설치된 곳은 틴성모마리아교회다. 이름 그대로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한 성소다. 줄여서 그냥 틴 교회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교회는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이라고 평가받는 건축물이다. 같은 고딕 양식이라 하더라도 프라하성에 있는 성비투스대성당의 웅장한 모습과는 꽤 달라 보인다.
틴성모마리아교회는 11세기 초에 처음 만들어졌다. 원래는 운겔트에 장사를 하러 온 외국 상인들을 위해 만든 병원 교회였다. 13세기에 낡은 교회를 허물고 새 교회가 건설됐다. 14세기에는 더 큰 규모로 새 교회 건설 공사가 시작됐다.
아름답고 신비하게만 보이는 틴 교회는 사실 체코의 종교 갈등을 상징하는 여러 장소 가운데 하나다.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가 싸웠던 후스 전쟁(1419~34년)과 백산전투(1620년), 그리고 그 뒤를 이은 수백 년 동안의 합스부르크 지배 등 15세기 이후 체코의 슬픈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건축물이다. 틴 교회는 처음에는 가톨릭 교회였다가 나중에는 후스파의 거점으로 바뀌었고, 최종적으로는 다시 가톨릭에게 돌아갔다. 이 사실만으로도 틴 교회가 얼마나 많은 역사의 부침을 경험했으며, 체코 역사는 얼마나 험난했는지를 알 수 있다.
틴 교회의 종탑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종탑은 보이는데 틴 교회는 어디에 숨었는지 찾을 수 없다. 다른 건물이 교회 앞을 가려 버린 탓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11세기에 옛 병원 교회를 처음 만들 때 이미 주변에는 건물이 많이 들어서 있었기 때문이다. 13세기와 14세기 두 차례에 걸쳐 옛 교회를 허물고 새 교회를 지을 때에는 이미 서 있던 건물을 부술 수 없는 형편이었다. 현재의 교회가 건물 뒤에 숨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틴 교회가 여러 건물 사이에 숨어 버린 덕분에(?) 관광객에게는 오히려 극적인 효과를 주게 됐다. 교회가 신비하게 보이도록 만든 것이다. 교회를 유심히 관찰하면 마치 봄에 땅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세속의 때가 잔뜩 묻은 건물들 사이에서 첨탑이 위로 솟아오른 것처럼 보인다. 신의 성스러운 섭리가 인간 세상 한가운데로 튀어나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틴 교회 입구를 찾는 건 쉽지 않다. 교회를 가린 건물에 카페가 있는데 카페 안이 아니라 그 사이로 들어가면 교회 입구가 나온다. 모르는 사람이 처음 가면 카페로 가는 길로 착각할 수도 있다. 아쉽게 틴 교회 입구는 닫혔다. 밖에서 닫힌 문 사이를 통해 안을 슬쩍 볼 수밖에 없다.
구시가지광장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곳은 구시청사의 천문시계다. 체코어로는 프라슈스케 오를로이인 이곳은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 유적이다. 프라하성, 카를교와 함께 체코의 관광엽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장소다. 체코 국민들은 물론 프라하를 찾는 많은 관광객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증거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수백 명은 돼 보이는 사람이 천문시계 앞에 모였다. 다들 기대에 찬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들고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이들이 기다리는 것은 프라하에서 가장 이색적인 천문시계의 ‘쇼’다.
많은 사람이 고대하던 천문시계의 종이 울린다. 창이 열리고 각종 인형이 차례로 튀어나와 행진을 펼친다. ‘쇼’를 진행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불과 45초. 이벤트가 모두 끝나자 관람객 사이에서 큰 박수가 터져 나온다. 여행 안내인을 따라 다니는 관광객들은 ‘쇼’가 끝나자마자 질문을 퍼붓는다.
“천문시계는 얼마나 오래 된 것인가요?”
“누가 만들었지요?”
“천문시계에는 무슨 의미가 담겨 있나요?”
물론 관광객이 묻지 않아도 이미 여행 안내인은 손님이 궁금해 하는 내용을 설명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빙긋 웃으며 역사 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한다.
프라하 천문시계는 바츨라프 4세 황제(재임 1378~1419년) 시대에 만든 기계 장치다. 당시 유럽의 어지간한 도시에는 기계식 천문시계가 하나씩 있었다. 프라하 시청은 프라하에도 천문시계를 만들기로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1410년 10월 9일 마침내 시청사 앞에서 천문시계 준공식이 열렸다.
천문시계는 당시 사람들에게 시간은 물론 날짜, 천체의 위치와 움직임, 기독교 축일을 알려주는 놀라운 장치였다. 프라하는 어떻게 해서 이렇게 엄청난 기계를 만들 수 있었을까? 당시에는 프라하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을 자랑하던 도시였던 덕분이었다.
천문시계는 중세의 기준으로 봐서는 매우 뛰어난 기술로 만든 최고의 장치였다. 엄청난 노하우에 예술적 가치를 더해 제작한 최첨단 기계였다. 현재 기준으로는 정확성이 다소 떨어지지만 그래도 여전히 실용적일 뿐만 아니라 아름답기까지 하다. 관광객들이 천문시계를 사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프라하 천문시계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해와 달의 위치를 나타내는 천문판, ‘12사도 행진’을 펼치는 성인 조각상, 그리고 달을 표시하는 달력판이다.
달력판은 맨 아래 부분이다. 이름 그대로 날짜를 알려주는 달력이다. 처음에는 매일 밤 사람이 올라가 날짜를 조정했다. 1566년에야 완전히 자동화됐다. 달력판에는 목재 인형 네 개가 붙어 있다. 깃펜을 붙잡은 철학자, 망원경을 든 천문학자, 책을 보는 연대기학자, 칼을 흔드는 대천사 미카엘이다. 이 인형들은 고정돼 움직이지 않는다.
윗부분은 복잡한 기계로 구성된 천문판이다. 시계이면서 천문의 또는 천체투영관이다. 현재 천체의 위치를 알려주는 장치다. 프라하에 있는 천문시계인 만큼 프라하에서 바라보는 천체의 위치를 보여준다. 해와 달도 프라하에서 보는 위치를 표시한다. 필요하다면 다른 도시에서 보는 천체의 위치로 바꿀 수도 있다. 물론 프라하 사람들이 그렇게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천문시계가 설치된 것은 지동설이 등장하기 200년 전이어서 천동설에 근거해 제작됐다. 그래서 천문판에서는 해와 달이 지구를 도는 것으로 나온다. 이 탓에 시계는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천문판 옆에는 인형 네 개가 달려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이 있고, 그 옆에는 욕망과 쾌락을 상징하는 터키인 모습의 인형 투렉이 보인다. 반대편에서 작대기를 들고 있는 인형은 구두쇠인 라코멕이다. 그는 돈주머니를 흔들면서 작대기로 12사도를 위협한다. 라코멕 옆에는 허영을 상징하는 마르니베치가 있다. 거울로 얼굴을 쳐다보는 인형이다.
12사도 성인 인형은 매시간 행진을 펼친다. 행진은 시계 밖에 달린 해골 인형이 종을 울리면서 시작한다. 12사도 인형이 차례로 작은 창에서 밖으로 나와 전 세계에서 몰려든 관광객에게 인사한다. 행진은 수탉 코후트의 울음소리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
천문시계에서 가장 인상적인 인형은 역시 해골이다. 끔찍한 형상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이 해골에 특별한 힘이 있다고 믿었다. 해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어려운 시기가 닥친다고 생각했다.
천문시계가 600여 년 전에 처음 만들어졌을 때의 모습을 지금도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천문시계는 제2차 세계대전 등 여러 차례에 걸쳐 큰 피해를 입었다. 체코인은 그때마다 서둘러 복구, 수리 작업을 진행했다. 1865년에는 큰 불이 나는 바람에 큰 피해를 입었다. 복구공사를 위해 전국적으로 모금운동이 벌어졌다. 체코 국민이 낸 성금은 금화 4천200개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가장 최근의 경우 2018년에 대대적으로 수리를 실시했다. 그 덕분에 원래 사용했던 부품 350개 가운데 4분의 3이 여전히 건재하다. 이곳은 유럽의 모든 중세 천문시계 중에서 가장 원형에 근접한 시계라는 평가를 받는다.
천문시계 관리실은 구시청사 지하에 있다. 가이드 투어를 이용하면 구시청사의 지하로 내려가 내부 시설을 둘러볼 수 있다. 구시청사 인근에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관광객, 거리 공연자, 카페, 식당으로 붐벼 제법 시끄럽지만 지하 계단에 발을 딛는 순간 모든 소음은 사라진다. 지구가 돌아가는 소리까지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적막만 감돈다.
구시청사 안 지하 한쪽 구석에 아주 작은 문이 보인다. 문을 열면 천문시계 통제실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관광객은 입장할 수 없다. 통제실에는 단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다. 시계 관리인이다. 관리인은 1주일에 한 번 천문시계를 살피러 간다. 사다리를 타고 문 안으로 들어가 모든 게 잘 돌아가는지 점검한다. 사실인지 아닌지 정확하지는 않지만 천문시계 작동 원리를 아는 사람은 이 사람 하나뿐이라고 한다. 만약 이 사람이 갑자기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시계는 멈춰버릴까?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세상에는 설마 하던 일이 나중에 사실로 드러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아름다운 천문시계를 관람하는 것도 가슴 벅찬 일이지만 천문시계탑 꼭대기에 올라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천문시계 아래 조그마한 공간에서 입장권을 산 뒤 구시청사 쪽으로 들어가면 승강기가 나온다. 이 승강기를 타고 올라가면 천문시계탑 꼭대기다.
여기에 꼭 올라가야 하는 이유는 구시가지 광장과 주변 풍경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더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프라하에서는 페트린 언덕의 페트린 전망대, 프라하성 남쪽탑, 카를로바 거리의 클레멘티눔에 올라가면 제각각 다른 모습의 프라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구시가지 일대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은 천문시계탑 꼭대기다.
천문시계탑에서 내려온 일행은 바로 맞은편 건물 2층으로 올라간다. 건물 이름은 그랜드 호텔이다. 2층은 왜 가느냐고? 이곳에는 ‘모차르트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모차르트와는 전혀 관련은 없고, 이름만 모차르트 카페다. 그래도 건물 내부가 아주 고풍스러운 데다 커피도 꽤 맛있고, 게다가 천문시계를 내려다볼 수 있어 가볼 만한 곳이다.
여행을 하면서 강행군할 이유는 없다. 천천히 느긋하게 다니면서 길거리 음식도 먹고 이색적인 곳에서 커피도 마시는 게 여행이다. 그런 점에서 모차르트 카페는 30분~1시간 정도 쉬어 가기에 제격이다. 커피만 마실 수 있는 게 아니라 식사도 팔고 수시로 모차트르 음악을 연주하기 때문에 뜻밖의 횡재를 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