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슬픈 인생을 생각하며 카를로바거리로 걸음을 옮긴다. 둠 우 미누티 건물을 돌아서자마자 삼각형 모양의 작은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이름은 체코어로는 말렘 나메스티, 번역하면 ‘작은 광장’이다.
이곳에는 ‘하드락 카페’가 있어 많은 젊은이가 몰린다. 하드락 카페 건물을 잘 살펴보면 매우 특이한 외관을 가졌다는 걸 알 수 있다. 로투브 둠 또는 둠 우 로타로 불리는 건물이다. 19세기에 빈센초 로트라는 사람이 세운 철물 회사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게 됐다. 2층과 3층 사이에 ‘V.J.ROTT’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데 건물주였던 빈센초 로트의 이름 약자다. 로트 가문은 이곳에서 1948년까지 철물회사를 운영했지만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집을 버리고 미국으로 이민을 가 버렸다.
로투브 둠은 영어로는 ‘세 장미의 집’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여기에는 슬픈 전설이 담겨 있다. 이곳에 부모를 잃은 세 자매가 살았다. 그들은 아주 잘생긴 한 남자에 빠지는 바람에 차례로 재산을 빼앗기고 외국을 떠돌다 목숨마저 잃었다. 여기서 ‘세 장미’는 억울하게 죽은 세 자매를 뜻한다.
프라하에는 똑같은 내용은 아니지만 억울하게 죽었거나, 슬픈 사연을 안고 죽은 유령 이야기를 담은 건물이 많다. ‘세 장미의 집’은 그런 곳 중에서 하나다.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유령과 관련된 집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세 장미의 집 4층 구석방에서 슬픈 표정을 한 여인이 밖을 내다보는 걸 의아하게 생각하며 카를로바거리로 이동한다. 카를로바 거리는 꽤 복잡해서 처음 가는 사람은 이리저리 헤매게 된다. 물론 잠시 헷갈려도 결국에는 구시가지광장이나 카를교를 찾을 수 있다. 구역이 너무 작고 좁기 때문에 오락가락하다가도 금세 원래 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이다.
구글 맵에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지만 구시가지광장과 카를교를 연결하는 카를로바거리는 일직선이 아니다. 작은 광장을 기준으로 할 경우 직진했다가 곧바로 좌회전한 뒤 다시 우회전하고, 20~30m 뒤 다시 우회전했다가 10m 앞에서 좌회전해야 한다. 길이 이렇게 수시로 꺾어지는 것은 구시가지광장과 카를로바거리가 생긴 역사를 알면 이해할 수 있다.
외국 상인이 국제 무역을 하는 운겔트가 생기자 주변 공터에 현지인이 모여 물건을 파는 비상설시장이 생겼다. 세월이 흘러 시장 규모가 커져 상설시장으로 바뀌었는데 그곳이 바로 구시가지광장이었다. 광장이 생기자 인근에 집이 하나둘씩 들어섰다. 길이 먼저 만들어지고 나중에 길을 따라 집이 생긴 게 아니라 집이 만들어지면 집과 집 사이 빈터가 골목이 됐다. 집이 중구난방으로 들어서는 바람에 골목은 길고 구불구불해질 수밖에 없었다. 카를로바거리는 이 때문에 직선이 아니라 이리저리 오락가락하는 희한한 모양이 됐다. 골목의 이름은 이전에는 ‘예수회 거리’였는데 19세기에 ‘카를 황제의 길’이라는 뜻인 ‘카를로바’로 바뀌었다.
카를로바거리는 구시가지광장과 카를교를 연결하는 골목이어서 프라하를 찾는 관광객이 가장 자주 다니는 골목 중 하나다. 좁은 길 양쪽에는 다양한 기념품 가게가 즐비하다. 여러 가지 음식을 파는 식당도 늘어서 있다. 외국인 왕래가 잦다 보니 곳곳에 환전소가 흔하고, 소규모 갤러리와 마사지 숍도 적지 않다. 카를로바거리 주변에는 후소바, 릴리오바, 유일스카 같은 아주 좁고 복잡한 골목길이 미로처럼 널렸다. 시간이 많아 그리 서두를 필요가 없다면 골목을 이리저리 돌아보는 재미도 쏠쏠한 게 기대 이상이다.
카를로바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클레멘티눔이다. 우리나라 관광객은 거의 들어가지 않는 곳이다. 클레멘티눔은 프라하에서 프라하 성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복합건물이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이라는 평가를 듣는 체코국립도서관으로 이용된다. 체코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관측시설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클레멘티눔은 예수회가 세운 복합건축물이다. 이탈리아에서 활동하던 예수회가 프라하에 간 것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페르디난트 1세(재임 1526~64년) 때였다. 예수회는 황제의 지원을 받아 저택 32채, 정원 일곱 곳, 교회 3개, 수도원 하나를 매입했다. 건축 분야에서 뛰어났던 예수회는 처음에는 성살바도르교회와 대학을 지었고 점점 더 많은 건축물을 덧붙였다. 바로크 양식 및 고전주의 양식인 클레멘티눔의 여러 건물은 한두 해가 아니라 170년 동안 꾸준히 건축한 결과물이었다. 이곳이 얼마나 아름다웠던지 과거의 건축 전문가들은 ‘프라하 바로크 건축의 진주’라는 별명을 붙였다.
클레멘티눔에는 성당과 교회 두 곳이 있다. 성살바도르교회와 성클레멘스성당이다. 클레멘티눔이라는 이름은 성클레멘스교회에서 유래했다. 성클레멘스교회에서는 밤에 클래식 음악회가 열린다. 교회 입구는 물론 프라하 시내 곳곳에서 음악회 입장권을 판매한다. 드보르작과 스메타나의 고향인 만큼 프라하의 음악 수준은 꽤 높다. 음악회는 성클레멘스교회뿐 아니라 곳곳에서 진행된다. 10~20유로 정도면 티켓을 살 수 있기 때문에 프라하에 머물 때에는 기회가 되면 교회 음악회에 들어가 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된다.
클레멘티눔은 매우 넓다. 과거에는 채소를 키울 수 있을 정도로 넓은 정원 다섯 곳과 하수구 시설은 물론 인쇄실, 진료실, 학습실 등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공간을 갖추고 있었다. 도서관, 관측소, 인쇄실, 약국, 학교, 국내외 학생 700명을 수용하는 기숙사도 있었다. 대형 홀도 한두 개가 아니었다. 수학, 음악, 그리고 문학에 바친 홀까지 있었다. 나중에는 극장도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화려한 오페라와 연극이 상연됐다.
클레멘티눔에서는 영어 가이드투어를 진행한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가서 티켓을 구입하면 10~15명이 동시에 클레멘티눔에 들어간다. 클레멘티눔 전체를 돌아보는 것은 아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천문탑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도서관을 둘러보는 게 정해진 코스다.
다른 일행은 커피를 마시는 사이 나는 가이드투어에 동참했다. 클레멘티눔에 들어가는 입구는 클레멘스성당 오른쪽에 있다. 입구가 작기 때문에 유심히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입구로 들어가면 높은 탑이 보이는데 이 탑이 가이드 투어가 진행되는 천문탑이다. 탑 앞으로 가면 티켓을 파는 창구가 보이고, 가이드 시작 때까지 기다리면서 앉아 쉴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도 보인다.
가이드투어에서는 꽤 높고 가파른 천문탑 계단을 일일이 걸어가야 한다. 나이가 많거나 신체적 장애가 있는 사람 그리고 내려오는 사람만 승강기를 탈 수 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힘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쉬운 코스는 아니다.
안내인는 먼저 1층에서 천문탑을 간단히 설명한다. 예수회는 종교 활동 이외에도 천문학, 수학, 물리학 같은 과학 분야에 관심을 쏟았다. 그 대표적인 시설이 바로 천문탑이다. 천문학자 요셉 스테플링이 체코에서는 처음 1722년에 만든 곳인데 원래는 감시탑으로 사용하다 나중에 천문 연구시설로 바뀌었다. 높이 68m인 천문탑 꼭대기에는 어깨에 하늘을 멘 아틀라스 조각상이 새겨져 있다.
클레멘티눔에서 천문 연구시설은 천문탑에만 있는 게 아니다. 메리디안 홀에는 중세시대 천문기구 원본이 전시돼 있다. 과거에 시간을 알려주던 기구였다. 정오에는 태양이 바닥에 햇빛으로 긴 선을 그린다. 시간이 낮 12시라는 걸 표시하는 것이다. 19세기에는 매일 정오가 되면 천문탑에서 깃발을 흔들어 정오라는 걸 프라하 시민에게 알려 주었다. 나중에는 블타바강 건너 레트나 지역에서 대포를 쏘거나 스피커를 이용해 알리기도 했다.
솔직히 클레멘티눔 천문탑 가이드투어는 아주 인상적이거나 감동적이지는 않다. 내용이 너무 평범하다 못 해 빈약하기 때문이다. 설명은 그럴싸하지만 가슴 깊이 울려 퍼지는 느낌을 주지는 못한다. 그런 와중에도 훌륭하다고 느껴진 것은 고풍스러운 도서관과 천문탑 꼭대기 전망대다.
도서관에서는 휴대폰으로만 사진을 찍을 수 있다. DSLR 카메라는 사용할 수 없다. 카메라를 사용하면 금세 “노”라는 차가운 반응이 날아온다. 도서관 안을 돌아볼 수도 없다. 관람객은 차례대로 입구에 가서 1~2분 정도 도서관을 둘러보고 사진만 찍어야 한다. 도서관 조명을 일부만 밝히기 때문에 내부가 어두워 제대로 볼 수도 없다. 그래도 도서관은 정말 아름답기 때문에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천문탑에서 다소간의 실망감을 안고 내려오면서 클레멘티눔에 전하는 전설을 떠올렸다. 이곳을 지은 예수회는 18세기 중엽 프라하에서 쫓겨났다. 그들은 재산을 그대로 놔두고 몸만 챙겨 체코를 떠나라는 명령을 받았다. 수도사들은 쫓겨나기 전 클레멘티눔에 비밀의 방을 만들어 모든 귀중품을 숨겼다. 나중에 돌아오면 다시 찾아내 사용하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했고, 클레멘티눔은 체코 정부의 소유물이 됐다. 그들이 숨긴 보물은 아무도 찾지 못했다. 아무도 어딘지 모르는 비밀의 방에 영원히 잠들어 있다.
클레멘티눔 도서관 한가운데에 서 있으면 오랜 역사를 담은 수백만 권의 책에 둘러싸여 있는 셈이 된다. 도서관을 한 바퀴 빙 둘러보면 수백 년의 역사가 도서관 이곳저곳을 흘러 다니면서 옛날이야기를 함께 나눌 적당한 인물을 찾는다는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프라하에 여행을 갈 기회를 얻는다면 도서관을 한 번 둘러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누가 알겠는가? 클레멘티눔의 보물이 숨겨진 ‘비밀의 지도’가 꽂힌 책을 발견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