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넌벽 앞의 벤치에 앉아 유튜브로 존 레넌의 음악 ‘이매진’을 듣는다. 나는 이 노래를 매우 좋아한다. 리듬이 아주 간단하면서도 음이 높지 않아 듣기에 부담이 적다. 특히 좋아하는 것은 평화로운 가사다. 프라하 시내 곳곳에 내걸린 현수막에 적힌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 구호를 생각하면서 그의 노래에 깊이 귀를 기울인다.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life in peace(상상해 봐! 모두 평화롭게 산다는 걸.)
You may say I'm a dreamer(나를 몽상가라고 할지도 몰라)
but I'm not the only one(나만 그런 게 아니야)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언젠가 너도 합류하기를 바라)
And the world will live as one(세상은 하나가 돼 살게 될 거야).’
레넌벽을 떠나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전날 ‘승리의성모마리아교회’에 다녀올 때 지나갔던 골목 인근이다. 골목길 끝으로 가면 교회가 있는 카르멜리트스카거리가 나온다. 물론 오늘 목적지는 교회가 아니다. 방향을 교회 반대쪽으로 틀어 걷는다.
이 지역은 말라 스트라나다. 체코어로 ‘블타바강의 작은 쪽’이라는 뜻이다. 흔히 레서 타운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레서는 ‘더 작은’이라는 뜻인데 ‘작다’는 뜻인 말라(Malá)를 영어로 번역해 놓은 데 불과한 이름이다. 따라서 레서타운이나 말라 스트라나나 같은 말이다.
존 레넌은 차별이 없고 전쟁이 없는 세상을 원했지만, 말라 스트라나가 생긴 계기는 그의 뜻과 정반대된다. 13세기에 보헤미아 국왕 오타카르 2세는 말라 스트라나에 살던 가난한 체코계 주민과 유대인을 모두 블타바강 건너편으로 쫓아냈다. 이 지역에는 신도시를 만든 뒤 부유한 독일계 주민이 들어와 살게 했다. 이때부터 웅장한 귀족 저택이 연이어 들어서 오늘날 말라 스트라나를 만들었다.
카르멜리트스카거리를 걷고 있는데 교회에서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절의 종소리에는 사람의 마음을 가라앉히는 은은한 매력이 있는 반면 성당의 종소리에는 새로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아른아른한 흥분이 담겨 있다.
종소리가 울리는 쪽을 바라보니 높이가 50m에 이르는 성미쿨라시(니콜라스)교회의 녹색 돔이 눈길을 끈다. 이 돔은 말라 스트라나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이면서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다. 말라 스트라나 중심지인 말로스트란스케광장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고 있는 데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많지 않아 이곳에서 여행을 다니다 보면 언제 어디서나 이 돔을 안 볼 수 없다.
성미쿨라시교회 돔 옆에는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종탑이 있다. 종소리는 여기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다. 종탑은 돔보다 20m 높은 79m인 데다 계단만 306개라고 한다. 여기에 올라가려면 여름이 아니라 겨울에도 땀깨나 흘려야 한다. 하지만 이곳에 올라가 볼 만한 가치는 충분히 있다. 카를교는 물론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보는 전망이 대단하다. 네루도바거리에 있는 미국대사관 정원을 가장 완벽하게 한눈에 담을 수 있다.
프라하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도시다. 고딕 양식의 교회 종탑은 물론 온갖 종류의 첨탑이 도시의 하늘을 온통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탑이 얼마나 많았으면 ‘백탑 도시’라는 이색적인 별명까지 붙었을까!
프라하에 탑이 얼마나 많은지는 높은 곳에 올라가야 정확하게 알 수 있다. 한 전문가가 탑의 개수를 확인하려고 직접 세어본 적이 있었다. 그가 일일이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고 기록한 결과 시내에만 120개 이상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외곽 지역은 물론 낮은 탑까지 통틀어 계산할 경우 족히 1천 개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게 사실이라면 프라하는 ‘백탑의 도시’가 아니라 ‘천탑 도시’인 셈이다.
개인 건물에 붙은 첨탑이 사유재산이라는 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프라하의 교회 종탑 중에서 상당수는 교회 재산이 아니다. 대부분 프라하시청 소유물이다. 성미쿨라시교회의 종탑도 마찬가지다. 이 종탑 주인은 교회가 아니라 레서타운 구청이다.
프라하 사람들은 무슨 이유 때문에 시내에 이렇게 많은 탑을 만든 것일까? 탑의 용도는 설치된 장소는 물론 건설한 시대에 따라 다르다. 처음에는 외적의 침입이나 화재 등 도시 안팎을 감시하는 역할을 맡았다. 탑에는 밤에 시내를 살피던 야경꾼이 올라가 사는 게 일상적이었다. 일부 탑은 프라하로 들어오는 출입구에 자리를 잡아 세관 사무실 역할을 했다. 저장고 노릇을 하는 탑도 있었다.
야경꾼은 탑 위에서 혼자, 또는 가족과 함께 먹고 자면서 시내에서 불이 나는지, 아니면 외적이 쳐들어오는지를 살폈다. 일이 생기면 상황에 따라 나팔을 불거나 깃발을 흔들었다. 때로는 시민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려고 종을 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성미쿨라시교회 종탑이었다. 이 탑의 내부는 생각보다 넓다. 놀랍게도 방이 두 개나 되고, 작은 부엌도 있다. 초소형 아파트 한 채 규모는 된다. 이곳에는 19세기 말까지 사람이 살았다.
성미쿨라시교회 종탑은 전망이 좋다는 장점 때문에 공산정권 시절에는 비밀경찰이 사용하던 감시 시설로 이용됐다. 1960년대에 네루도바거리 등 말라 스트라나에 있던 미국과 서유럽 대사관을 관찰하기 위해 비밀경찰 요원을 배치한 게 시작이었다. 종탑에는 항상 비밀경찰 요원 한두 명이 상주했다. 그들은 망원경이나 망원카메라로 대사관 안팎을 하루 종일 살폈다. 종탑 꼭대기에는 사방으로 창문이 4개 있다. 각 창문에는 나무로 만든 가리개가 달려 있다. 비밀경찰이 위장용으로 사용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당시 비밀경찰 요원들이 쓰던 장비 중 일부는 아직도 종탑에 남아 있다. 물론 중요한 장비는 모두 폐기처분했고 남은 것은 간단한 생활 도구뿐이다. 요원들이 사용했던 게시판도 눈에 띈다. 스포츠를 좋아했던 요원들은 신문기사를 오려 벽에 붙여놓기도 했다. 좋아하는 선수의 사진을 붙여 놓기도 했다.
성미쿨라시교회는 원래 1283년에 완공한 고딕 양식 건축물이었다. 4세기 고대로마 시대에 많은 기적을 일으켜 유명해진 그리스 출신 주교 니콜라스에게 헌정한 성소였다. 니콜라스의 체코식 이름이 미쿨라시다. 400여 년 뒤인 17세기 교회가 낡아 허물어질 위기에 몰렸을 때 콜로브라트 가문의 유산 상속자였던 소년 바츨라프가 물려받은 엄청난 재산을 모두 기부한 덕분에 교회를 새로 지을 수 있었다.
프라하에는 성미쿨라시교회가 두 곳이다. 말라 스트라나 외에 구시가지광장에도 하나 있다. 프라하 출신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생가에 붙어 있는 교회가 바로 그곳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면서도 말라 스트라나의 교회는 가톨릭인 반면 구시가지광장의 교회는 후스파 프로테스탄트라는 점이다.
프라하성 성비투스대성당이 프라하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 양식 성당이라는 평가를 받는다면 말라 스트라나의 성미쿨라시교회는 가장 훌륭한 바로크 양식 교회라는 호평을 받는다. 교회 정면은 여러 조각상으로 장식돼 있다. 정문 위에는 성 니콜라스 조각상이, 양 옆으로는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가 서 있다. 모퉁이에는 예수회 설립자인 성 이그나티우스와 성 프란시스 사비에르 조각상이 있다.
교회 내부 장식의 하이라이트는 천장 그림이다. 유럽에서 가장 멋진 천장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돔을 통해 들어오는 빛과 어두운 실내가 묘한 조화를 이뤄 천장화를 신비하게 만들어준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천장화에는 ‘훔쳐보는 수도사’라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한다.
전설에 따르면 천장화를 그린 화가는 작업 과정을 누구에게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림을 부탁한 교회의 요청을 승낙할 때도 비밀 작업을 요구 조건으로 내걸 정도였다. 그런데 호기심을 참지 못한 한 승려가 몰래 그림을 그리는 장면을 엿봤다. 화가는 뒤늦게 그 사실을 눈치 챘다. 화가 난 그는 승려를 천장화에 집어넣었다. 지금도 교회에 가서 천장화를 잘 살펴보면 몰래 훔쳐보는 표정을 한 승려를 발견할 수 있다. ‘훔쳐보는 수도사’라는 전설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불투명하지만 그림에 승려가 있다는 점은 사실이다.
성미쿨라시교회는 모차르트와도 깊은 관계를 갖고 있다. 모차르트는 프라하를 다섯 차례 방문했는데 그때마다 이 교회에 가서 오르간을 연주하곤 했다. 모차르트가 1791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자 이를 슬퍼한 프라하 사람들이 추모 미사를 연 곳도 여기였다. 미사는 모차르트가 눈을 감은 지 9일 만에 열렸다. 프라하국립극장 오케스트라가 그의 마지막 곡이었던 ‘레퀴엠’을 연주했다. 프라하 시민 4천여 명은 눈물을 뿌리며 프라하를 사랑했던 시대의 거장에게 꽃을 바쳤다.
성미쿨라시교회와 말로스트란스케광장 주변은 중세에 귀족이 살던 궁전이 둘러싸고 있다. 벨리코브스키궁전, 스미시츠키궁전, 리히텐슈타인궁전, 하르티고브스키궁전 등이다. 지금은 정부 사무실, 학교, 갤러리 등으로 사용되지만 중세에는 창문투척사건 같은 깊은 역사를 간직한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 지역은 구시가지와는 달리 매우 웅장하고 강인하게 느껴진다.
성미쿨라시교회를 지나 프라하성으로 방향을 바꾼다. 성으로 가는 길은 여러 갈래다. 트램을 타고 올라가 프라하성 정류장에서 내려도 되고, 그냥 걸어서 올라가도 된다. 걸어서 갈 때 가장 좋은 코스는 네루도바거리와 트후노브스카거리다. 네루도바거리는 좀 멀지만 경사가 얕고 각종 상점이 많아 볼거리가 풍부한 게 장점이다. 트후노브스카거리는 가깝고 조용하지만 경사가 급하고 계단이 많아 숨이 찬 게 단점이다.
외국 관광객이 프라하성에 갈 때 가장 많이 이용하는 경로는 네루도바거리다. 이 거리의 가로등은 세월에 빛이 바랜 듯 그야말로 고색창연하다. 어두운 바다에서 외롭게 배를 모는 선장에게 항로를 일러주기 위해 세운 등대 꼭대기에서 빛을 내는 등명기 모양이다.
햇빛에 반사된 까무잡잡한 보도석은 바닥에 은가루가 흘러 다니는 것처럼 반짝인다. 잘 살펴보면 보도석 사이로 이리저리 흩어진 프라하의 역사 조각을 구경할 수도 있다. 먼 옛날 구시가지에 있던 시청사에서 대관식을 치른 보헤미아 국왕 행렬은 카를로바거리를 지나 카를교를 건넌 다음 이 거리를 지나 프라하성으로 올라갔다.
네루도바거리는 로열 루트, 즉 ‘황제의 길’의 마지막 구간이었다. 황제가 행차할 때면 거리 입구에서 황제를 제외한 모든 사람은 말이나 마차에서 내려야 했다. 황제만 프라하성까지 말을 탈 수 있었다. 나머지 사람은 숨을 헐떡이며 급하게 뒤를 따라가야 했다.
네루도바거리는 원래 오스트루호바 거리였지만 19세기 체코 최고 시인으로 평가받는 얀 네루다가 이곳에서 살았다고 해서 네루도바로 이름이 바뀌었다. 1971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칠레의 유명한 소설가 파블로 네루다의 본명은 네프탈리 리카르도 레예스 바소알토였다. 그는 얀 네루다를 정말 존경해서 ‘네루다’라는 필명을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네루도바거리 양쪽에는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이 이어진다. SNS에 올리기에 좋은 훌륭한 사진을 찍는 데 충분한 풍경이다. 과거에는 이곳의 여러 건물도 부유한 독일계 귀족의 저택이었다. 지금은 여러 나라 대사관, 또는 식당이나 호텔, 상점으로 이용된다. 과거나 지금이나 달라진 게 없는 것은 가스를 이용하는 가로등뿐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각 건물마다 외벽에 독특한 장식이 달렸다는 사실이다. 태양이 달린 집도 있고, 양이나 사자가 보이는 집도 있다. 도대체 이것은 무엇일까?
이곳만 그런 게 아니다. 프라하의 오래된 건물에는 아주 특이한 이름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빨간 사자의 집, 황금 곰 두 마리의 집, 검은 태양의 집, 황금 우물의 집, 붉은 독수리의 집, 푸른 사슴의 집, 검은 마돈나의 집, 하얀 유니콘의 집, 석종의 집.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프라하 시내에 이렇게 독특한 이름이 달린 건물은 무려 300여 곳에 이른다.
설명하자면 희한한 건물의 이름은 대개 외벽이나 문에 붙은 상징물에서 유래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빨간 사자의 집에는 빨간 사자, 황금 곰의 집에는 황금 곰, 검은 태양의 집에는 검은 태양이 붙어 있는 식이다.
건물 벽에 특이한 상징물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유는 뜻밖에 간단하다. 바로 주소였다. 18세기 말까지만 해도 프라하에는 주소라는 게 없었다. 프라하에서 오래 산 사람이라 하더라도 다른 동네에 가서 낯선 건물을 찾으려면 애를 먹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건물 주인은 외벽에 누구나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상징물을 부착한 것이었다. 한마디로 상징물이 주소였던 셈이다.
주소라는 편의성을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주인이 건물 외벽에 아무 상징물이나 함부로 붙인 것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기준에 따라 심사숙고해서 상징물을 고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 기준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건물을 지은 사람이나 나중에 그곳에 살았던 주인의 직업, 또는 그 건물의 성격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네루도바거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곳은 얀 네루다가 살았던 ‘두 태양의 집’이다. 이 집의 문 위에는 황금 태양 두 개가 새겨진 부조가 붙어 있다. 태양은 ‘금’을 상징한다. 두 태양은 사람 얼굴 모양이다. 부조에는 ‘IHS’라는 약자가 적혔다. 예수의 그리스 이름인 ‘이소타 에타 시그마’를 줄인 것이다. 특이하게도 ‘H’는 삼각형처럼 보이도록 아랫부분이 넓고 윗부분이 좁다. 삼각형은 연금술에서 중시하는 기본 성질 중 하나인 ‘불’을 상징한다. 이 건물의 부조가 담고 있는 뜻은 ‘불이 금을 만나는 장소’라는 것이다.
네루도바거리에는 ‘빨간 사자의 집’도 있다. 포효하는 사자가 발로 황금 성배를 꼭 붙든 부조가 문 위에 붙은 집이다. 건물은 1726년 이전에 지었고 부조는 1608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서 성배는 ‘불로장생의 영약’인 철학자의 돌을 뜻한다. 빨간색은 철학자의 돌을 만드는 연금술 작업인 마그눔 오푸스에서 네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인 ‘적화’를 뜻하는 ‘루베도’다.
지금은 기념품가게가 자리를 잡은 ‘황금 잔의 집’은 17세기에는 금세공사 작업장이었던 곳이다. 황금은 마그눔 오푸스의 결과물 가운데 하나다. 금세공사가 금을 창조해내는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사람들은 그들도 연금술사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황금 잔은 불로장생의 영약일 뿐 아니라 예수가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성배’를 상징한다.
‘황금 바퀴의 집’에 달린 황금 바퀴는 금속을 금으로 바꾸는 마그눔 오푸스의 작업이 한 바퀴 진행된다는 것을 상징한다. ‘황금 열쇠의 집’에서 황금 열쇠는 ‘정확한 지식 없이는 철학자의 돌을 발견하는 정확한 지식을 영원히 찾을 수 없다’는 진리를 상징한다. ‘바이올린 세 대의 집’도 있다. 바이올린을 제작하는 가업을 이어 갔던 가문이 3대에 걸쳐 살았던 집이었다. 그들의 작품은 정말 훌륭해서 외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보름달이 뜨는 날 자정에 이 집 앞을 지나면 유령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전설이 전한다.
여기서 잠시 유령 이야기를 해 보자. 프라하에는 유령 전설이 참 많다. 정확히 집계한 것은 아니지만 100개를 넘는다. 당연히 네루도바거리에도 유령 이야기가 전한다. 이곳의 대표적인 유령은 둘인데, 둘 다 ‘목 잘린 유령’이다.
하나는 17세기 30년 전쟁 말기에 프라하로 쳐들어 왔던 스웨덴군 기병이었다. 그는 전쟁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성미쿨라시교회를 약탈하는 데에만 전념하다 지역 주민의 분노를 사 목이 잘려 살해당했다. 다른 하나는 18세기 스트라호프수도원의 수도사였다. 그는 죽어가는 형에게 종부성사를 해 달라고 요청하는 신도의 요청도 무시하고 노름에만 몰두하다 나중에 나귀에서 떨어져 목이 잘려 죽었다. 두 사람은 참수당해 죽은 뒤 유령이 돼 네루도바 거리에 출몰한다고 전해진다. 이들을 봤다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믿고 안 믿고는 듣는 사람 자유다.
네루도바거리를 따라 프라하성으로 올라가는 관광객은 한둘이 아니다. 대부분 관광객은 이곳에 유령 전설이 있는지, 건물 외벽에 붙은 장식이 무엇인지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즐겁게 깔깔 웃으며 그저 걸을 뿐이다. 자전거를 탄 사람들도 줄을 지어 힘들게 골목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주 고풍스러운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1960~70년대 영화에나 나올 법한 자동차이다. 프라하의 평범한 시민이 몰고 다니는 차는 아니고 돈을 받고 관광객에게 프라하성 일대를 구경시켜 주는 관광용 차량이다.
거리 중간쯤에 있는 뜨르들로 가게 앞에는 허기나 심심해진 입을 달래고 싶어 하는 관광객이 몰렸다. 어린 아이는 엄마가 빵을 예쁘게 싸 주기를 기다리며 눈을 빵에서 떼지 못한다. 거리에 즐비한 카페나 커피하우스마다 빈자리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꽉 들어찼다.
뜨르들로는 사실 체코 전통음식이 아니다. 슬로바키아 스칼리차가 원산지다. 21세기 들어 프라하를 찾는 외국 관광객이 늘어나자 그들에게 뭘 팔지 고민하던 식당 주인들이 생각해낸 게 뜨르들로였다.
뜨르들로는 긴 쇠 작대기에 밀가루를 둥글게 말아 구운 뒤 설탕이나 견과류를 묻힌 과자다. 처음에는 단순히 빵만 팔았지만 요즘은 여러 가지 변형 제품이 나왔다. 가장 인기 있는 것은 뜨르들로에 아이스크림을 넣어 파는 제품이다.
뜨르들로는 빵이기 때문에 구울 때 고소한 냄새가 난다. 여기에 설탕과 견과류가 발려 맛있게 보이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맛있는 빵이 아니다. 단순히 밀가루와 설탕 맛이 전부다. 그래서 빵을 사더라도 다 먹지 않고 맛만 본 뒤 버리는 사람이 많다. 현지인은 뜨르들로를 거의 사지 않는다.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이 줄을 서서 빵을 구입한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이색 경험을 해 보는 것은 여행의 재미이자 추억이기 때문이다.
프라하는 과잉관광에 시달리고 있다. 그 증거 중 하나는 네루도바거리 길가에 불법 주차한 차량이다. 차들이 줄을 이어 정차해 가뜩이나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든다. 프라하 시청은 하루 24시간 끊임없이 네루도바거리를 오가는 관광객 행렬을 줄이기 위해 밤에는 가로등을 끄는 방안을 검토할 정도라고 한다.
네루도바거리가 끝날 무렵 아담한 규모의 광장이 나타난다. 광장 맞은편 벽에 커다란 검은색 부조가 붙어 있다. 부조에는 ‘얀 네루다’라는 이름이 적혔다. 부조 아래에는 석재 틀 안에 사람 얼굴이 든 황금색 태양 두 개가 담겼다. 이곳이 바로 네루도바거리에 이름을 제공한 시인 얀 네루다가 살았던 집이다.
얀 네루다의 집과 광장을 기점으로 길은 네 갈래로 나눠진다. 직선으로 계속 걸어가면 스트라호프 수도원으로 연결되는 우보스 거리다. 호텔 골든스타 옆의 계단으로 올라가면 흐라드차니 광장이 나온다. 네루도바거리에서 유턴하다시피 180도 가량 돌아 오르막길로 가면 프라하성이 나타난다. 어디로 가든 상관은 없다. 나는 스트라호프 수도원을 먼저 둘러본 뒤 흐라드차니로 내려와 노비 스벳과 로레타 수도원을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프라하성에 들어가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