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스키크룸로프성 관람을 마치고 구시가지로 간다. 그곳에 하룻밤을 묵을 숙소가 있다. 구시가지 한가운데의 소노보르시티 광장에 있는 호텔이다. 옛 저택을 고쳐 지은 호텔인데 방이 정말 작다.
브니트르지니 메스토로 불리는 체스키 크룸로프 구시가지는 1992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구시가지 건물은 대부분 14~17세기에 만든 것이라고 하니 400~700년 정도 된 셈이다. 건물은 대부분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졌다.
구시가지의 중심인 소보르노스티 광장에서 중심 건물은 1597년에 건설한 시청이다. 광장은 호텔, 식당, 카페로 둘러싸였다. 가운데에는 분수와 기둥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기둥의 이름은 ‘역병 기둥’이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1680~1682년 이곳에 대유행한 역병이 사라지게 해 준 것에 감사하면서 성모 마리아에게 바친 기둥이다. 역병 기둥은 이곳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올로무츠 등 체코 여러 도시에 산재해 있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빈에는 역병 기둥뿐 아니라 역병 교회도 있다. 기둥 등을 세울 만큼 중세에 역병은 무서웠던 전염병이었던 셈이다. 또 의료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그들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성모 마리아의 자비뿐이었다.
흥미롭게도 지금 이곳에 여행을 온 사람 대부분은 유럽의 노인 부부다. 광장 벤치에는 노인 부부들이 앉아 따스한 햇볕을 쬐며 늦은 오후를 보낸다. 역병 기둥 앞의 두 벤치에 나란히 앉은 두 부부는 처음 보는 사이 같은데 신나게 이야기를 나눈다.
호텔이 짐을 푼 뒤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대부분 한국 관광객은 성에 가서 멋진 경관 사진만 찍고 떠나버리지만 이곳에도 제법 볼 게 많다. 서두르지 않고 느긋하게 중세 거리를 돌아다니는 맛은 꽤 상큼하다.
먼저 이발사 다리를 다시 건너 체스키크룸로프성이 있는 라테란 거리로 간다. 길은 꽤 예쁘고 고색창연하다. 중세의 전설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분위기다. 어린이를 대동한 한 부부가 앞서 걷는다. 아내는 예쁜 거리에 감탄한 듯 환하게 웃으며 이곳저곳을 두리번거린다. 눈에는 기쁘고 즐거운 표정이 가득하다. 거리에는 각종 기념품 가게나 지역 특산품 상점이 많다. 골동품 가게도 있고 식당도 적지 않다.
늦은 오후라서 배가 출출하다. 가볍게 먹을 음식을 찾는데 식당에서는 가벼운 음식을 팔지 않는다. 거리 끝부분에 작은 샌드위치 가게가 보인다. 들어가니 중년의 여주인이 어린 딸과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가게를 지키고 있다.
커피와 칠면조 샌드위치를 주문한다. 생각보다 맛있고 가격도 싸다. 가게에 앉아 샌드위치를 먹으면서 구글맵에서 식당을 찾아보니 관광객에게 꽤 인기 있는 맛집이다. 주로 현지인이 많이 가지만 관광객도 자주 들른다.
깔끔하고 고소한 샌드위치를 맛있게 먹고 식당에서 나오는데 여주인 딸처럼 보이는 초등학생이 “굿 애프터눈”이라며 영어로 인사를 건넨다. 밝은 미소로 답하고 상쾌한 기분으로 가게를 나선다.
돌아가는 길에 14세기에 건설됐다는 체스키크룸로프수도원에 들른다. 미노리테수도회에서 운영하는 곳이어서 미토리테수도원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특이하게도 과거 존재했던 수도원 3곳을 통합한 곳이라고 한다. 낡아서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했지만 대대적으로 수리해 2015년에 재개장했다.
수도원 각 건물의 문은 굳게 닫혔다.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도 괜찮다. 이곳은 고즈넉한 데다 시내로 향하는 전망이 꽤 좋은 곳이어서 벤치에 앉아 한동안 멍때리기를 하기에 정말 좋다. 햇살이 잘 들어오는 벤치에 잠시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본다. 새 소리 말고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마침 다행스럽게도 수도원 구경을 하러오는 사람도 없다. 우리나라 도시 어디에서 이런 적막과 고요를 누릴 수 있을까? 그야말로 평화요 천국이다.
다시 이발사 다리를 건너 구시가지 쪽으로 간다. 광장에 들어가지 않고 강변로를 따라 걷는다. 거리 끝에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체스키크룸로프성에서는 구시가지를 내려다본다면 이곳에서는 거꾸로 성과 라테란 거리 쪽을 바라볼 수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든 이곳에서 바라보는 강 너머 풍경은 정말 아름답다. 어떤 관광객은 숨이 멎을 정도로 멋지다고 표현한다. 노인이 많은 단체 관광객이 전망대에 몰려온다. 다들 조용히 가이드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설명이 끝나자 밝은 표정을 지으며 성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한 할머니는 힘든지 남들이야 사진을 찍든 말든 벤치에 앉아 한숨만 내쉰다.
파르칸 거리 끝에서 방향을 틀어 구시가지로 이어지는 호르니 거리로 접어든다. 옛 예수회 수도사 숙소, 체스키크룸로프시립도서관 같은 유서 깊은 건물이 지나간다. 구시가지광장 바로 인근에서 왼쪽으로 꺾으면 성비투스교회가 나타난다. 교회 첨탑이 높이 솟아 구시가지를 상징하는 곳이다. 규모가 작아도 스테인드글라스가 볼 만한 곳이지만 사진을 찍을 수는 없다.
성비투스교회를 지나 구시가지 골목길 탐험에 나선다. 좁은 골목이 나타나더니 조금 너른 골목으로 이어진다. 골목의 끝은 블타바다리다. 강변에는 카페는 물론 식당이 많다. 강 건너편에 선 집의 윤곽이 강물에 비친 모습이 꽤 예쁘다. 강을 건너가서 한 바퀴 쭉 둘러보면 좋으련만 곧 해가 질 모양이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빼먹을 수 없는 마지막 목적지로 향한다. 표현주의로 유명한 20세기 초 오스트리아 화가 에곤 실레의 이야기를 담은 에곤실레미술관이다.
에곤 실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170km 남쪽의 오스트리아 툴린에서 철도역장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머니 가틴 마리 실레는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태어나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다. 실레에게는 외가이자 어머니의 고향인 셈이었다.
빈에서 구스타프 클림프에게서 그림을 배우기도 했던 그는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빈의 분위기에 실망한 나머지 두 차례에 걸쳐 외가인 체스키 크룸로프에 가서 살았다. 그가 지냈던 곳이 바로 오늘날 에곤실레미술관이 있던 집이었다.
누드화를 많이 그렸던 실레는 체스키 크룸로프를 매우 좋아했다. 빈에 비할 수 없는 시골이어서 자연은 물론 사람들도 순수해 마음에 무척이나 들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체스키 크룸로프에 갔을 때 1년여 만에 마을 주민들에 의해 쫓겨나고 말았다. 10대 소녀들을 데려가 누드 모델로 활용한 게 들통 나고 만 것이었다. 인구가 많고 문화 수준이 높은 빈에서도 실레의 작품에 대한 반발이 심했는데 시골이나 마찬가지인 체스키 크룸로프 주민 눈에는 그의 작품은 그야말로 포르노나 마찬가지였다.
실레가 체스키 크룸로프에 살 때만 해도 그가 어떤 인물인지 잘 몰랐던 체스키 크룸로프 주민들은 세월이 한참이나 흐른 뒤에야 그가 위대한 화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가 체스키 크룸로프에 오래 살았다면 그곳을 소재로 하는 많은 그림을 그렸을 텐데 안타깝게도 그에게는 그럴 기회조차 없었다.
실레를 쫓아낸 것을 늘 후회하던 체스키 크룸로프는 80여 년이 흐른 1993년 그를 기념하는 시설을 하나 만들었다. 이름은 ‘에곤실레미술관’이었다. 2023년은 미술관 개관 30주년이 되는 해여서 체스키 크룸로프에서는 다양한 기념행사가 열렸다.
900여 평 규모의 에곤실레미술관에는 실레의 인생과 작품 활동을 다룬 각종 자료가 전시됐다. 그가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그린 드로잉, 그가 사용했던 가구, 개인적 편지, 명함, 사진 그리고 실레 외가의 가계도 등이다. 물론 그가 그린 미술작품도 다수 전시됐다. 미술관에는 실레의 그림 복사본을 파는 기념품가게와 체코 전통 과자 등을 파는 카페도 있다. 일부 공간은 유럽 다른 나라에서 온 젊은 화가들이 장기간 거주하면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사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