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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드리드 알무데나 대성당의 성모 마리아 성화

by leo

4세기 무렵 스페인 마드리드 외곽 언덕의 한 성당에 아담한 그림이 하나 모셔져 있었다. 성모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안은 형상이었다. 사람들은 틈만 나면 성당으로 달려가 그림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드렸다. 그들에게 그림은 단순한 작품이 아니라 살아 있는 성모 마리아 그 자체였다.


마드리드 사람들은 성 니고데모가 그림을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가 성모 마리아 신앙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 삼나무와 향나무에 다양한 색깔을 넣은 그림을 그렸다는 것이다. 사도 야곱이 그림을 성 칼로체로에게 건네주었고, 성 칼로체로는 마드리드 외곽 언덕에 작은 성당을 짓고는 그림을 보관했다는 게 마드리드 사람들의 생각이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어쨌거나 이 믿음 덕분에 성당은 흥성해 많은 사람이 찾아가는 곳으로 성장했다.


711년 이슬람 우미야드 왕조의 군대가 아프리카에서 지브롤터 해협을 건너 스페인을 침공했다. 타리크 이븐 지야드 장군이 이끄는 1만 2천여 명 규모의 군대였다. 15세기 말까지 700여 년 동안 스페인이 이슬람의 지배를 받는 시대의 서막이 열린 것이었다. 막강한 이슬람 군대에 스페인 병사들은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무너져 버렸다.


이듬해 이슬람 군대가 마드리드를 향해 진군한다는 소식이 마드리드에 전해졌다. 대부분 주민은 피난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차피 전 영토를 점령당한 처지에 마땅히 피난을 갈 곳도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슬람 군대가 주민을 학살하거나 종교적으로 탄압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이슬람 사람들은 세금을 잘 내고 통치에 저항하지만 않으면 기독교도들에게 관용을 베푼다고 하더군. 성당에 계속 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장사도 그대로 하게 해 주고, 농토도 빼앗지 않는다는구먼. 그렇다면 굳이 피난을 갈 필요가 있겠느냐 말이지.”


하지만 마드리드의 일부 기독교도들은 아무리 이슬람 군대가 관용을 베푼다고 해도 곧이곧대로 믿을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당장 외곽 언덕의 성당에 있는 성모 마리아 그림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슬람 군대가 불태워 버리거나 부숴 버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그림을 숨기기로 했다.


“그림을 너무 잘 숨기면 오히려 위험할 거야. 또 나중에 이슬람 군대가 물러간 뒤에 다시 찾아내기 어려울지도 몰라. 성당 밖으로 멀리 옮기지 말고 성당 인근에 작은 비밀 공간을 만들어서 그림을 숨겨 두기로 하세.”


기독교도들은 성당 주변에 있는 성벽에서 벽돌을 여러 개 빼낸 뒤 가운데 부분을 파냈다. 이들은 그곳에 그림을 숨긴 뒤 다시 벽돌을 집어넣었다. 아무도 그림이 숨겨져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장소였다. 심지어 그림을 숨긴 사람들조차 몇 달 뒤 성벽을 다시 찾아갔을 때 그림을 숨긴 벽돌 위치가 어딘지 모를 정도였다.


이슬람은 11세기까지 마드리드를 통치했다. 그들은 성모 마리아 그림에 대해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림을 찾아내 파괴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대신 그들은 그림을 보관했던 성당을 고쳐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로 바꿔 버렸다. 그림이 숨겨진 성벽을 무너뜨리는 대신 보강 작업을 실시해 더 튼튼한 성을 만들었다. 아랍어로 성을 ‘알 무다이나’라고 한다.


이슬람의 통치가 수백 년 이어지는 사이 마드리드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그림은 모두의 기억 속에서 사라진 채 성벽에 숨겨져 있었다. 어떻게 말하면 갇혀 있었다고 해도 무방한 상황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림은 실체가 아니라 전설이 돼 버렸다.


이슬람에 영토를 빼앗긴 스페인 귀족들은 국토회복운동, 즉 레콩키스타에 나섰다. 수백 년간 절치부심한 이들은 11세기 들어 본격적으로 영토를 조금씩 회복하기 시작했다. 레콩키스타 운동에 나선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6세는 이슬람 군대를 몰아내고 마드리드를 회복했다. 그는 마드리드에 입성한 뒤 기독교도들로부터 그림에 대한 전설을 전해 들었다.


“그렇게 귀중한 기독교 유산이 수백 년째 마드리드 어디엔가 숨겨져 있다는 말인가? 이슬람 군대를 스페인 땅에서 완전히 몰아내려면 꼭 그림을 찾아야겠군. 하느님과 성모 마리아의 은총을 등에 업으면 병사들의 사기도 올라갈 것이고, 전쟁에서 이길 가능성이 높아지겠지.”


알폰소 6세는 먼저 이슬람이 모스크로 바꿨던 성당을 원래대로 회복시켰다. 그리고는 병사들을 배치해 그림을 찾는 임무를 맡겼다. 그림을 찾아내면 포상금을 두둑이 주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병사들이 몇날 며칠, 아니 몇 달을 찾아다녀도 그림은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포상금에 눈이 멀어 그림 찾기에 몰두하던 병사들의 열기도 조금씩 시들어갔다. 그때 신앙심이 다른 어느 누구보다 깊었던 한 병사가 이런 제안을 내놓았다.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의 신앙심을 시험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군. 그렇다면 발로 뛰어다니는 게 무의미하지 않겠나? 그러기보다는 성당에 가서 그림을 찾게 해달라고 기도를 드리는 게 어떻겠나? 그림이 주는 종교적 의미를 생각한다면 그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말이지.” 


다른 병사들은 모두 그의 말에 동의했다. 다들 돌아다니느라 지친 상황이었기 때문에 그림을 찾느라 체력을 더 소모하기보다는 성당에 편안하게 앉아 기도를 드리는 게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이렇게 해서 병사들은 그날부터 그림을 보관했던 성당에서 하루에 몇 시간씩 함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간 장난스럽게 진행됐던 기도는 날이 갈수록 진지해졌다. 병사들은 왜 그런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기도를 올릴수록 경건해지고 성스러워지는 느낌을 갖게 됐다. 그들은 머지않은 장래에 그림을 꼭 찾게 될 것이라는 확실한 믿음도 얻었다.


병사들이 성당에서 기도를 드리고 한 달쯤 될 무렵이었다. 어느 날 밤, 마드리드에 천둥번개가 몰아치면서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 내륙 지방인 마드리드에서는 좀체 보기 힘든 날씨였다. 사람들은, 오늘밤에 무슨 큰일이라도 나려나, 하면서 일찌감치 일을 마치고는 집으로 돌아가 문을 꼭꼭 걸어 잠갔다.


다음날 아침, 전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듯이 하늘은 맑게 개었다. 병사들은 다시 기도를 드리러 성당으로 걸어갔다. 성당에 가려면 이슬람 군대가 수리를 해 놓은 성벽 옆을 지나야 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성벽 한쪽이 무너져 있는 게 보였다. 성벽의 약한 부분이 밤새 내린 폭우를 견디지 못한 모양이었다.


“성벽이 아주 튼튼하게 보였잖아? 그런데, 왜 저기만 무너졌을까? 이슬람 사람들은 토목기술이 뛰어나서 건물을 하나 만들면 절대 무너지는 법이 없다고 하던데, 꼭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군.”


병사들은 무너진 성벽 쪽을 향해 걸으면서 농담을 주고받았다. 한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은 낄낄낄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이 무너진 성벽을 막 지날 즈음이었다. 한쪽 구석에서 무엇인가 반짝 하는 빛이 반사돼 모든 병사들의 눈을 간질였다. 벽돌 사이에서 이상한 물체가 하나 드러나 보였다. 한 병사가 힘들게 벽돌 사이를 헤집고 걸어가 그 물체를 들어올렸다.


“아! 그림이다. 성모 마리아의 그림이 여기 있었구나!”


그 병사는 그림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감동스러운 목소리로 힘차게 외쳤다. 다른 병사들은 모두 무릎을 꿇은 채 성모 마리아 그림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림을 발견했다는 소식은 알폰소 6세 뿐만 아니라 마드리드 주민들에게 금세 퍼져 나갔다. 주민들은 앞 다퉈 성당으로 달려가 다시 발견한 그림을 감동스럽게 바라보면서 기도를 올렸다. 주민들은 ‘알 무다이나’에서 성모 마리아의 그림을 찾았다고 해서 그림을 ‘알무데나의 성모 마리아’로 부르게 됐다.


그림을 찾아낸 덕분인지 스페인 군대는 이슬람 군대와의 전투에서 서서히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1492년에는 그라나다에 있던 나스리드 왕조가 항복함으로써 이슬람의 스페인 지배는 막을 내리게 됐다.


1561년 수도를 톨레도에서 마드리드로 옮긴 국왕 펠리페 2세는 레콩키스타를 완성하게 해 준 성모 마리아에게 바칠 대성당을 짓기로 했다. 건설 예정지는 그림을 보관했던 성당 자리였다. 대성당은 당시 기독교 중심지이던 톨레도의 반대에 부닥쳐 한참이나 미뤄지다 300년 후인 1883년에나 착공될 수 있었다. 스페인 내전 때문에 다시 중단됐던 공사는 1944년 재개돼 1993년에야 완성됐다.


대성당 축성식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집전했다. 스페인의 수많은 성당 중에서 교황이 봉헌식을 거행한 것은 이곳이 유일하다. 알무데나 대성당 앞에는 요한 바오로 2세 동상이 서 있는데, 대성당 측이 봉헌식을 열어준 데 대한 감사의 의미로 세운 것이다.


대성당의 이름은 ‘알무데나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으로 지어졌다. 사람들은 이를 줄여서 알무데나 대성당이라고 부른다. 이곳에는 전설 속에 나오는 성모 마리아의 그림은 보관돼 있지 않다. 다만 곳곳에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동상만 세워져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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