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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o Nov 24. 2020

5. 누마 폼필리우스(2)

로마의 사제제도와 베스탈 신녀



누마는 법률과 제도도 만들어 두 가지 방향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 상세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내용이 너무 긴데다 꼭 모두를 기록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약한 내용만 설명할 작정이다. 그래도 그의 목적을 설명하기에 충분하리라고 본다. 신의 숭배와 관련한 내용부터 시작하려 한다.


누마는 로물루스 시대에 관습과 법에 따라 만들어진 모든 의식은 건드리지 않았다. 가장 훌륭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대신 로물루스가 놓쳤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든 새로 만들었다. 


먼저 어떤 명예도 얻지 못한 신을 위해 많은 신성구역을 지정하거나 여러 제단, 신전을 건립했다. 각 신을 위해 축제도 만들었다. 각 성소와 의식을 책임질 사제를 임명하고, 정화제, 기념식, 속죄식이나 다른 축하행사 및 명예와 관련한 법률을 그리스, 야만족의 어떤 도시보다 훨씬 많이 만들었다. 심지어 어느 한 시기 또는 다른 시기에 어느 누구보다 경건함에서는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도시보다도 많았다. 


누마는 또 인간의 본성을 넘어서는 위대함을 보인 로물루스에게도 퀴리누스라는 이름을 붙여 신격화시켰다. 그를 위해 신전을 짓고 1년 내내 희생제물을 바쳤다. 


로마인이 신의 섭리와 인간의 배신 중 어느 것이 로물루스의 실종을 불러온 원인인지 모르고 있을 때였다. 아스카니우스의 후손이며 오점 없는 삶을 살았으며 개인적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 목동이었던 율리우스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는 포로 로마노에서 이렇게 말했다. 


“시골에서 올 때 무장한 채 로마에서 나오는 로물루스를 만났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율리우스, 나에게서 들었다면서 로마인들에게 이렇게 말하게나. 나를 태어나게 했던 신이 나를 다른 신들에게로 인도하고 있다네. 나는 인간으로서의 삶을 마감했기 때문이지. 이제 나는 퀴리누스라네.’”


 누마는 모든 종교법 체계를 모두 여덟 부분으로 나눈 뒤 문서로 남겼다. 종교 의식을 다루는 사제 종류는 모두 여덟이었다. 


누마는 종교 의식의 첫 부분을 30명의 쿠리오네스에게 맡겼다. 쿠리아를 위해 공공 희생제례를 거행하는 사제였다. 


두 번째는 그리스어로 스테파네포로이 즉 ‘관을 쓴 사람들’ 로마인들은 플라미네스라고 부른 사제였다. 그들은 플라마라고 불린 앞부분에 챙이 달린 모자나 필레트 모자를 쓰고 다녔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얻었다. 이 사제들은 지금도 이런 모자를 쓰고 있다. 

세 번째는 왕의 경호원으로 임명됐고 기병이나 보병으로 싸웠던 켈레레스였다. 이들은 특정한 종교적 의식을 거행했다. 


네 번째는 신이 보낸 신호를 해석하고 그들의 특기인 추측하는 기술을 통해 신이 개인이나 공공사회에 어떤 예언을 하는지를 결정하는 사제였다. 로마인들은 이들을 아우구르라고 불렀다. 그리스어로는 ‘새를 통해 예언하는 사람’이라는 뜻인 오이오노폴로리였다. 이들은 하늘에 나타나는 조짐이든 아니면 허공이나 땅에 나타나는 조짐이든 로마인 사이에 사용되는 모든 종류의 점에 능통했다. 


다섯 번째는 신성한 불을 지키는 수호자인 베스탈이라고 불린 신녀였다. 이 이름은 그들이 모스는 신(베스타)에게서 나온 것이다. 누마는 로마에 베스타를 모시는 신전을 처음 건설했고, 처녀들을 신녀로 임명했다.


일부 역사학자는 베스타 신전 건설을 로물루스의 공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점에 능통한 사람에 의해서 도시가 건설됐는데, 공공 화로가 무엇보다 먼저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 도시의 건국자가 고대로부터 베스타 신전이 있던 도시인 알바에서 자란 사람이었고, 어머니가 베스탈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베스타 여신과 관련한)종교적 의식을 거행하는 두 종류의 사제-하나는 공공 의식, 다른 하나는 특정한 가문에 국한된 의식을 거행하는 사제-가 있다는 점을 깨달은 역사학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로물루스는 이 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고 있었다. 사람에게 공공 화로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었다. 출생이라는 점에서 베스타보다 로물루스의 관심을 더 끈 것은 없었다. 그의 조상은 일리움에서 베스타 여신의 신성한 의식을 가져왔고, 그의 어머니는 베스탈 신녀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종교 문제를 모르지 않는 남자가 도시를 건설했고, 이 때 무엇보다 화로를 세울 필요가 있다는 일반적 원칙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베스타 신전을 누마가 아니라 로물루스가 건설했다’는 주장은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현재 신전의 건설은 물론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신녀와 관련된 상세한 여러 가지 점 중에서 그들이 무시한 게 적지 않다. 


신성한 불이 보존돼 있는 장소를 여신에게 바친 사람은 로물루스가 아니었다. 로마인은 로마를 성벽으로 둘러싸고 콰드라타라고 불렀다. 그렇다면 콰드라타 밖에 신성한 불이 있었다는 게 된다. 다른 도시의 사람들은 공공 화로의 신전을 도시에서 가장 좋은 위치에 두는 게 일반적이었다. 아무도 도시 밖에 두지 않았다.


두 번째, 로물루스는 어머니가 겪었던 경험을 생각하면서 신녀가 여신을 모시도록 하지 않았다. 그의 어머니는 여신을 모시던 중 임신했다. 로물루스는 어머니의 불행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녀가 전통법을 어기더라도 처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로물루스는 공통의 베스타 신전을 짓지 않았고, 그녀를 모실 신녀도 임명하지 않았다. 


대신 30개 쿠리아에 각각 공공화로를 지어 구성원들이 희생제의를 치르게 했다. 그는 공공화로를 모시는 사제로 각 쿠리아의 지도자를 임명했다. 이것은 아직도 대부분의 고대 그리스 도시에서는 지켜지고 있는 관습을 모방한 것이다. 그리스에서 프리타네이아라고 불리는 것은 헤스티아 신전이며, 이 신전은 그 도시의 최고 행정관이 관리한다.


누마는 왕권을 물려받은 뒤 각 쿠리아의 개별적인 공공화로는 건드리지 않았다. 대신 카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 공간에 모두에게 공통되는 공공화로를 하나 건설했다. 두 언덕은 이미 같은 벽으로 둘러싸여 하나의 도시로 통합돼 있었다. 신전이 건설된 포로 로마노는 두 언덕 사이에 있다. 


누마는 또 라틴인의 고대 관습에 따라 성스러운 물건을 보호하는 일은 처녀에게 맡겨야 한다고 정했다. 그러나 이 신전에 무엇이 보존됐으며 어떤 이유로 처녀에게 보호 업무를 맡겼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일부는 이렇게 말한다.


“그곳에는 누구나 볼 수 있는 불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불의 관리는 남자들이 아니라 처녀들에게 맡겨졌다. 불은 오염되지 않았고 처녀는 훼손되지 않은 존재라는 이유에서였다. 또 죽어야 하는 존재에게서 가장 순결한 것만이 신적인 존재의 완벽한 순수성에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스타 여신은 땅이며 우주에서 중심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녀 자신에게서 천상의 불을 밝힌다. 그래서 불이 이 여신에게 헌정됐다.”


다른 주장을 하는 사람도 있다. 


“베스타 신전에는 불 이외에 대중에게 공개해서는 안 되는 성물 여러 개가 있었다. 다만 폰티프 사제와 신녀만이 무엇인지를 안다.”


이들은 그 강력한 증거로서 로마와 카르타고 사이에 제1차 포에니 전쟁이 벌어졌을 때 신전에서 불이 난 사건을 사례로 든다. 신전이 불길에 휩싸이자 신녀들은 서둘러 화염을 피해 달아났다. 그때 폰티프 중 한 명이며 메텔루스라는 별칭을 가진 루키우스 카에킬리우스가 있었다. 그는 집정관 출신이며, 시칠리아에서 카르타고를 격파한 뒤 개선식을 열 때 코끼리 138마리를 소개했던 인물이었다. 


카에킬리우스는 안전을 도외시한 채 공공의 이익을 위해 불타오르는 신전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신녀들이 버리고 간 성물을 화재에서 무사히 살려냈다. 이 일 덕분에 그는 국가로부터 큰 명예를 얻었다. 카피톨리노 언덕에 이 일을 상세히 기록한 명문을 붙인 석상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를 받은 것이었다.


이 일을 입증된 사실로 생각하는 역사학자들은 여기에 추론을 덧붙인다. 이들은 이렇게 말한다.


“여기에 보존된 성물은 한때 사모트라케에 있던 성물의 일부분이다. 다르다노스가 섬에서 성물을 빼내 그가 건설한 도시에 안치했다. 아이네아스가 트로이에서 탈출할 때 다른 성물과 그 도시에 있던 성물을 함께 가지고 이탈리아에 왔다.”


이것과는 또 다른 주장을 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이런 이야기다.


“성물은 하늘에서 떨어진 팔라디움이다. 일리움 사람들이 갖고 있던 것이다. 아이네아스는 이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탈리아로 갖고 왔다. 반면 아카이아인들은 복제본을 훔쳐갔다. 많은 시인과 역사학자가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글로 남겼다.”

대중에게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실제로 성물이 있다는 많은 증거를 알고 있다. 성물은 신녀들이 지키고 있다. 성물은 불 하나만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다. 나도 그렇고 다른 역사학자도 그렇다. 신에게 마땅히 주어져야 하는 경외감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베스타 여신을 모시는 신녀는 원래 네 명이었다. 신녀는 누마가 세운 원칙에 따라 왕이 뽑았다. 나중에 신성한 의식 규모가 커짐에 따라 신녀 수는 여섯으로 늘었다.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신녀는 베스타 신전에서 산다. 낮에는 누구라도 신전에 들어갈 수 있다. 밤에는 어떤 남자도 그곳에 머물 수 없다. 


신녀는 30년 동안 결혼하지 않고 순수하게 살아야 한다. 희생제물을 바치는 일에 집중하고 법에서 정한 다른 의식을 거행하는 일에만 몰두해야 한다. 첫 10년 동안은 업무를 배운다. 두 번째 10년 동안은 업무를 수행하고 나머지 10년 동안은 다른 신녀를 가르친다. 30년 임기를 마치면 결혼할 수 있고, 신녀를 상징하는 필레트 모자와 다른 상징물을 내려놓아도 된다. 


하지만 실제 이렇게 한 신녀는 드물었다. 신녀 인생의 마지막은 결코 행복하지 않았고 부러운 게 아니었다. 나머지 신녀는 그들의 불행을 신의 뜻으로 생각하고 죽을 때까지 베스타 신전의 신녀로 남아 있었다. 신녀가 세상을 떠나면 폰티펙스 막시무스(대제사장)는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다른 신녀를 선발한다.


국가는 신녀에게 많은 명예를 부여했다. 그래서 신녀는 굳이 결혼이나 아이를 바라지 않는다. 잘못된 행동을 하면 심한 형벌이 내려진다. 잘못을 조사해서 처벌하는 것은 폰티펙스 막시무스의 업무라고 법에 명시돼 있다. 가벼운 잘못을 저지른 베스탈은 매를 맞는다. 몸을 더럽힌 신녀에게는 가장 수치스럽고 끔찍한 처형의 형벌이 내려진다.


이런 신녀는 장례 절차에 따라 수레에 실려 운반된다. 친구와 친척들이 그녀를 따라가며 눈물을 흘린다. 콜리나 문에 간 이후 지하 방에 감금된다. 신녀는 수의를 입는다. 하지만 기념비나 장례 의식, 또는 다른 관습적인 경건한 의식은 진행되지 않는다. 


신녀가 순수한 마음으로 성스러운 임무를 수행하지 않아 불이 꺼지는 경우가 더러 있다. 로마인은 이런 일을 가장 불행한 사건이라며 두려워한다.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도시의 파괴를 예언하는 불길한 조짐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여러 보조 의식을 통해 신전에 다시 불을 가져간다. 


베스타 여신이 부당하게 비난을 받은 신녀를 도와주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 스스로를 나타냈는지는 한 번 언급할 가치가 있다. 믿기 힘든 일이지만 로마인들은 이런 일을 믿었다. 그래서 역사학자들은 많은 기록을 남겼다.


무신론적 철학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리스인이나 야만인 사이에 신이 나타났다는 주장을 비웃는다. 이들은 이런 주장에 대해 코웃음을 치며 인간의 사기라고 생각한다. 신은 인간과 관련한 일이라면 어떤 것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신에게 인간의 일을 돌볼 책임이 없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신이 나타났다는 주장을 믿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역사를 깊이 들여다본 뒤 인간은 신에게 우호적이고 악에게 적대적이라고 주장한다.


한때 신성한 불이 꺼진 적이 있었다. 당시 불을 관리하는 일을 맡은 아이밀리아라는 신녀가 일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막 새로 뽑혀 이제 겨우 일을 배우는 다른 신녀에게 업무를 떠맡겼다고 한다. 로마는 큰 혼란에 휩싸였다. 


폰티펙스 막시무스는 신녀에게 불을 꺼뜨릴 만한 다른 불순한 잘못이 없었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사실 아이밀리아에게는 잘못이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일어난 일 때문에 정신이 산만해졌을 뿐이었다. 그녀는 여러 폰티펙스 막시무스와 다른 신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단으로 손을 뻗어 목소리를 높였다. 


“오, 베스타 여신이시여! 로마의 수호자이시여! 제가 30년 동안 성스러운 업무를 제대로 수행했다면, 순수한 마음과 순결한 육체를 지켰다면 저를 위해 모습을 드러내시고 도와주소서. 당신의 신녀가 모든 죽음 중에서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죽는 고통을 겪지 않게 하소서. 만약 제가 불경한 행동을 했다면 저를 처벌함으로써 도시의 죄를 씻어주소서.”


아이밀리아는 이렇게 말한 뒤 입고 있던 옷의 허리띠를 뜯어 신전 위로 던졌다. 잠시 후 불이 꺼진 바람에 오랫동안 식어 있던 재에서 불꽃이 전혀 일지도 않았는데 거대한 불길이 순식간에 허리띠를 태워버렸다. 로마는 더 이상 속죄의식을 거행하거나 새 불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좀 더 훌륭하고 좀 더 신화 같은 이야기도 있다. 누군가 부당하게 투키아라는 신녀를 고발했다. 고발자는 불이 꺼졌다는 증거를 제시할 수 없었지만 가짜 증거와 증언을 동원해 거짓 주장을 계속했다. 신녀는 변명을 해보라는 지시를 듣고는 단지 이렇게 말했다. 


“저는 행동으로써 이런 비난에 대해 무죄라는 걸 입증하겠습니다.” 


신녀는 여신에게 안내자가 돼 달라고 부탁한 뒤 테베레 강으로 걸어갔다. 폰티프 사제단의 동의를 받아 로마의 모든 사람이 따라갔다. 테베레 강에 도착했을 때 신녀는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했다. 신녀는 강에서 체로 물을 떠 포로 로마노까지 들고 갔다. 그리고 폰티프 사제단의 발아래 물을 콸콸 쏟아 부었다. 이 일이 있은 뒤 신녀를 고발한 사람에 대한 조사가 실시됐다. 그 사람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는 알 수 없다. 나는 베스타 여신의 현신과 관련한 다른 많은 사례도 알고 있지만 이 정도만 설명해도 충분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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