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2)

각종 제도와 군대

by leo


바티칸의 면적은 약 13만 평이며 인구는 1000여 명이다. 대개 각 나라는 시민권의 원칙으로 속지주의나 속인주의를 택한다. 바티칸은 조금 다르다. 이른바 임명주의다. 바티칸으로부터 특정 직위에 임명되면 그때부터 바티칸 시민이 되는 것이다. 당연히 직위 임기가 끝나면 시민권은 사라진다. 바티칸 시민과 함께 사는 배우자, 부모, 자식도 시민권을 가게 된다.


바티칸 시국은 영토가 이탈리아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군대가 필요 없다. 국방은 이탈리아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그러나 자체 경찰과 준 군대인 근위대, 소방대는 존재한다.


바티칸 경찰은 이탈리아어로 ‘코르포 델라 겐다르메리아 델로 스타토 델라 시타 델 바티카노(Corpo della Gendarmeria dello Stato della Città del Vaticano)’로 불린다. 우리말로 하면 바티칸 시국 경찰대(또는 헌병대)다. 간단하게 바티칸 겐다르메리에라고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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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인원은 130명이다. 바티칸 시국에서 치안, 질서 유지, 국경 및 교통 통제, 범죄 수사를 맡는다. 교황이 바티칸 시국을 벗어나 시찰할 경우 경호 업무도 담당한다. 2008년에는 인터폴에도 가입했다.


현재 경찰대장은 2019년 10월 취임한 지안루카 가우치 프로콜레티다. 그의 전임 대장은 35년간 복무하다 2006년 은퇴한 카밀로 기빈, 이후 13년간 복무한 도메니코 지아니다.


지아니는 2009년 스위스 여성 수산나 마이롤로가 교황을 덮쳤을 때 가장 먼저 몸으로 그녀를 밀어낸 사람이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던 수산나는 2009년 성탄절 전날 성베드로 대성당에서 열린 성탄 이브 대미사 때 교황에게 달려들어 교황과 추기경 한 명을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추기경은 다리와 엉덩이 골절상을 입었다. 그녀는 교황을 다치게 할 의도는 없었고 다만 교황에게 세계의 가난한 사람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달라고 요청할 생각이었다고 해명했다. 교황도 그녀의 의도를 이해했다. 그리고 2010년 1월 수산나와 가족을 교황청으로 초청해 잠시 만나 축복을 내렸다.


바티칸 경찰대는 1816년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스위스 근위대 등과 함께 바티칸 군대의 일부분이었지만 교황 바오로 6세가 군대를 스위스 근위대만으로 축소하는 개혁 조치를 취한 뒤 경찰대로 돌아섰다. 과거에는 전통적인 의식용 복장을 입었지만 1970년 이후에는 감청색 현대 경찰복을 착용한다. 경찰대 입대 자격은 20~25세 사이의 이탈리아 국민으로 이탈리아 경찰학교에서 2년 이상 훈련 받은 경력이 있어야 한다.


경찰은 있지만 문제는 교도소다. 바티칸에는 교도소가 없다. 그래서 범죄가 발생할 경우 이탈리아 정부와 맺은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가 바티칸 범죄자 처벌을 담당한다. 그 비용은 바티칸에서 부담한다. 바티칸은 인구도 적고 대부분 사람들이 성직자여서 범죄가 거의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2002년의 경우 민, 형사상 범죄가 무려 1,000건이나 발생했다. 물론 대부분 범죄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소매치기 등 잔 범죄이지만 교황청에서 일하는 민간인 직원의 횡령 등도 가끔 발생한다.


특이한 일이 있다. 바티칸 시국이 돈세탁 위험국으로 지정된 것이다. 2012년 3월 미국 국무성이 펴낸 마약통제보고서는 돈세탁 위험국 명단에 사상 처음 바티칸 시국을 포함시켰다. 그냥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돈세탁과 관련한 실제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9월 이탈리아 사정당국은 바티칸 시국이 운영하는 바티칸 은행이 이탈리아 주요은행에 예치한 2300만 유로에 대해 인출 동결 조치를 내렸다. 돈세탁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교황청의 항의로 동결 조치는 해제됐지만 조사는 계속되고 있다. 바티칸 은행의 투명성을 놓고 바티칸 고위 당국자들 사이에 갈등이 빚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편지가 언론에 유출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과거에는 바티칸에도 군대가 존재했다. 정확하게 말하면 교황청 군대였다. 교황청에는 민병대였던 코르시카 근위대가 있었지만 1860년 해체됐다. 1870년까지는 또 총 병사 수가 4,500여 명에 이르렀던 주아비 폰티피키라는 보병부대도 존재했다. 교황이 이탈리아 통일세력에 맞설 때 교황을 위해 싸운 부대이다. 결혼하지 않은 독실한 가톨릭 신도 청년들로 구성된 부대였다. 프랑스, 벨기에 등 유럽은 물론 인도, 멕시코 등 다른 대륙 청년도 참가했다. 이후 이탈리아가 통일되고 교황국가가 없어진 뒤 이 부대도 사라졌다.

최근까지는 팔라티노 근위대, 노블 근위대 등이 있었다. 팔라티노 근위대는 주로 관측병으로 활동했다. 구성원도 파트 타임 자원봉사자로 채워졌다. 당연히 무기는 물론 급여도 없었고, 유니폼 수선비 등 경비만 지급받았다. 800명 정도였던 이 부대는 2차 세계대전 때는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다. 독일군이 로마를 점령하자 바티칸을 지키는 임무를 부여받은 것이다.


이들은 밤낮없이 바티칸 시국 주변을 순찰하며 독일군은 물론 이탈리아 파시스트가 유물을 훔쳐가거나 훼손하는 행위를 감시했다. 독일군 및 파시스트 경찰과 물리적으로 충돌을 빚는 일도 있었다. 반 파시스트 활동가들이 경찰을 피해 바티칸으로 숨어 들어오면 근위대는 이들을 색출하려는 파시스트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팔라티노 근위대는 2010년 미국 여류소설가 맥 카봇이 쓴 소설 『인세이셔블』에 뱀파이어와 싸우는 사람들로 나온다.


1801년에 만들어진 노블 근위대는 중무장 기병대였다. 교황이 로마 시내로 외유를 나갈 때 항상 호위했으며 평시에는 교황 숙소 주변을 경호했다. 교황 비오 7세가 프랑스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을 거행하러 파리로 갈 때 동행한 것으로 유명하다. 팔라티노 근위대와 노블 근위대는 1970년 교황의 교회 개혁 조치 때 해체됐다.


이제 바티칸에 남아있는 유일한 준 군대조직은 알록달록한 유니폼을 입은 스위스 근위병이다. 스위스 근위병은 원래 프랑스, 스페인 등에서도 활동했지만 지금은 바티칸에서 근무하는 근위병을 일컫다.


스위스 근위병의 역사는 수백 년이나 됐다. 가장 초기의 근위병은 프랑스 궁정에서 활약하던 100인 근위대였다. 스위스 근위병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불굴의 용기 때문이었다. 과거 스위스는 가난한 나라였다. 그래서 스위스 남자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의 전쟁터에서 용병으로 활약했다. 기율이 엄격하고 고용주에 대한 충성도가 높아 인기가 많았다.


스위스 정부는 1874년 스위스 국민이 다른 나라 군대에서 용병으로 복무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개인적, 자발적으로 용병에 참가하는 것을 막지는 못하다가 1927년 다시 법이 만들어져 모든 종류의 용병 활동이 전면 금지됐다.


스위스 근위대의 정식명칭은 교황청 근위대(Pontificia Cohors Helvetica)이다. 1506년에 창설돼 현재 전 세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스위스 근위대다. 교황 식스토 4세가 스위스연방과 동맹을 맺어 스위스 근위병 영입의 길을 열었고. 1503년 율리오 2세가 스위스 정부에 근위병 200명을 파견해줄 것을 요청했다. 이어 3년 뒤인 1506년 1월 22일 첫 근위병 150명이 로마에 도착했다. 이날은 교황청 근위대 창설 기념일이다. 율리오 2세는 그들에게 ‘교회 자유의 수호신’이라는 이름을 붙여줬다.


이후 교황청 근위대는 우여곡절의 역사를 겪었다. 1527년 5월 6일 ‘스위스 근위병의 저항’이라는 이름이 붙은 신성로마제국과의 전투에서 근위병 189명 중 147명이 전사했다. 당시 신성로마제국의 카를 5세가 로마에 쳐들어왔을 때 스위스 근위병은 교황이 산탄젤로 성으로 피신할 시간을 벌기 위해 절대 물러서지 않고 지금 베드로 대성당 인근에서 끝까지 버티며 싸웠다.

교황청 근위병은 현재 135명이다. 근위병 선발 기준은 제법 까다롭다. 먼저 결혼하지 않은 스위스 남자 가톨릭 신자여야 한다. 스위스 군에서 복무한 경력이 있어야 한다. 나이는 19~30세 사이이며, 고졸 이상 학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며 키는 174㎝ 이상이어야 한다.


새 근위병을 뽑으면 ‘스위스 근위병의 저항’ 기념일인 매년 5월 6일 교황이 참석한 가운데 충성 서약식을 갖고 현장에 배치한다. 서약식을 할 때 언어는 근위대 신병이 살던 스위스 지역의 언어에 따라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중에서 고를 수 있다고 한다. 평소에 근무할 때는 독일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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