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티칸(3)

바티칸 박물관의 역사

by leo



1506년 1월 14일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성당 인근 에스퀼리노 언덕의 포도밭에서 굉장한 조각이 발견됐다. 밭에서 일하던 농부가 발견해 성당에 알렸다. ‘라오콘 군상’ 또는 ‘라오콘과 그의 아들’로 불리는 조각이었다.


라오콘 군상은 그리스 로도스 출신인 하게산드로스, 폴뤼도로스, 아타나도로스가 공동으로 만든 조각이다. 라오콘과 두 아들이 뱀들과 사투를 벌이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라오콘은 고대 그리스 트로이 사람이었다. 그는 아폴론 신전을 지키는 신관이었다. 세상을 제대로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었다. 트로이전쟁 말기 오디세우스가 이른바 ‘트로이 목마’를 만들었다. 그리스 연합군은 목마를 남겨두고 떠나는 것처럼 속였다. 그리고 스파이 시논을 풀어 헛소문을 퍼뜨렸다.


“목마를 가지는 나라는 절대 패하지 않는다는 신탁이 있습니다. 목마를 트로이 성 안으로 들여와야 이번 전쟁에서 궁극적으로 승리하고, 앞으로 더 이상 전쟁에 시달리지 않게 될 겁니다.”


그리스 연합군이 철수하는 모습을 본 트로이 사람들은 이 말을 믿었다. 라오콘은 시논의 말이 거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목마의 배로 창을 던지기도 했다. 라오콘은 두 아들과 함께 큰 뱀 두 마리에 물려 죽었다. 트로이가 패하기를 바랐던 바다의 신 포세이돈이 라오콘의 행동에 분노해서 뱀 두 마리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


이 모습을 본 트로이 사람들은 라오콘이 신을 노하게 해 죽었다면서 목마를 성 안으로 들여놓았다. 결국 트로이는 목마의 배에 숨어 있다 튀어나온 그리스 연합군 병사들이 성 문을 여는 바람에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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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콘 군상 조각을 발견했다는 보고를 받은 율리오 2세(재임 1503~13년)는 미켈란젤로를 현장에 보내 조사하게 했다. 미켈란젤로는 조각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는 교황에게 이렇게 보고했다.


“정말 엄청난 작품이군요. 지금 시대의 어느 누구도 만들 수 없는 훌륭한 걸작입니다. 고대 로마의 예술 평론가 플리니가 저서에서 설명한 내용 그대로예요.”


1세기 무렵 학자 플리니우스는 『자연의 역사』라는 책에서 이렇게 설명한 바가 있다.


‘여러 작가가 아주 훌륭한 예술 작품을 공동 작업한 사례가 더러 있다. 이럴 경우 그 영광을 혼자 독차지하기란 어렵다. 티투스 황제 궁전에 있는 ‘라오콘 군상’도 마찬가지다. 하게산드로스, 폴뤼도로스, 아타나도로스가 공동으로 만들었다.’


보고를 받은 율리오 2세는 포도밭 주인에게 적절한 값을 치르고 조각을 사들였다. 그는 한 달 뒤 바티칸에서 라오콘 군상 전시회를 열었다. 벨베데로 아폴론이라는 조각도 함께 전시했다. 오늘날 ‘옥타고날 코트’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금도 라오콘 군상은 그곳에서 있다. 바티칸 박물관에 가면 초반에 나타나는 8각형 모양의 정원이다.


첫 전시회에 많은 성직자, 귀족, 서민이 몰려 조각을 관람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전시회가 바티칸 박물관의 시초였다. 2006년은 바티칸 박물관 설립 500주년이 되는 해였다. 박물관 측은 바티칸 언덕의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유해를 대중에게 공개하는 행사를 열어 500주년을 자축했다.


율리오 2세의 전시회가 열린 이후 여러 교황은 엄청난 예술품을 수집했고, 바티칸에서 연이어 전시회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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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박물관이 실제로 만들어진 것은 교황 클레멘스 14세(재임 1769~74)와 비오 6세(재임 1775~99) 때였다. 두 교황은 수집 작품을 대중에게 공개함으로써 대중의 문화적 소양을 향상시키려 했다. 바티칸 박물관 중에서 가장 먼저 개방된 비오-클레멘스 박물관은 두 교황의 이름을 딴 것이다. 이 박물관은 고전 조각품을 전시한 공간이다.


19세기 비오 7세(재임 1800~23년)는 나폴레옹 황제가 이탈리아를 점령했을 때 약탈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했던 많은 작품을 돌려받았다. 그는 이 작품들을 전시해 라피다리 갤러리, 치아라몬티 박물관, 브라치오 누오보 박물관 등을 열었다.


그레고리오 16세(재임 1831~46년)는 로마 외곽에서 발견된 보물로 에트루리아 박물관을 만들었고, 이집트 박물관과 라테라노 프로페인 박물관도 만들었다.


비오 9세(재임 1846~78년)는 바티칸 박물관을 더 확장했다. 비오 크리스찬 박물관을 연 것이다. 이 박물관은 성경 이야기를 표현한 판화 작품을 가장 많이 소유한 곳이다.


20세기 초 비오 10세(재임 1903~14년)는 로마의 유대인 공동묘지에서 발굴한 유물로 유대인 라피데리를 만들었다.


교황청은 1929년까지만 해도 바티칸을 대중에게 일상적으로 개방할 생각이 없었다. 1929년 2월 11일 라테라노 조약에 따라 바티칸시국이 탄생하면서 바티칸 박물관은 비로소 개방되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개방 대상은 일부 귀족층에게 한정됐다.


바티칸 박물관은 약 7만 점에 이르는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전시 중인 것은 2만 여점이다. 박물관에는 640여 명이 일하고 있다. 2017년 기준으로 바티칸 박물관을 다녀간 관광객은 무려 600만 명에 이른다. 세계에서 방문객이 4번째로 많은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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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바티칸 박물관은 13개의 개별 박물관으로 구성돼 있다.


알렉산데르 6세(재임 1492~1503년)가 살았던 보르기아 궁전, 비오 11세(재임 1922~39년)가 만든 바티칸 페인팅 갤러리, 성 로렌스와 성 스티븐의 이야기를 묘사한 그림이 있는 니콜라오 5세(재임 1447~55년) 예배당, 바티칸 사도 도서관을 만든 교황 식스토 4세(재임 1471 ~84년)의 이름을 딴 시스티나 예배당, 레오 12세(재임 1823~29년)가 세운 칸델라브라스 갤러리, 15~17세기 양탄자 작품을 갖춘 태피스트리 갤러리, 16세기 말 그레고리오 13세(재임 1572~85년)와 17세기 우르바노 8세(재임 1623~44년) 때 꾸며진 지도의 방, 그리고 소비에스키의 방과 무원죄 잉태설의 방 등이다. 박물관의 모든 작품을 다 보려고 하면 이동해야 할 거리는 무려 7㎞를 넘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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